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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지금껏 읽어왔던 대개의 책들은 일방적이었습니다. 책장을 가득 채우는 글이나 사진은 몽땅 저자의 몫이었으니 독자의 입장에선 그냥 읽기만 해야 했습니다. 읽는 중이거나, 읽고 난 후에 공감은 할 수 있었지만 책을 편집하거나 완성하는 데는 끼어들 틈새가 없었습니다.

 

굳이 끼어들 수 있는 틈새가 있다면 누구의 책이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이름을 쓰거나, 구입한 날자 정도를 적어 놓는 경우가 있고, 마음에 드는 글귀나 표현을 발견했을 때, 기억하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형광펜이나 볼펜 등으로 밑줄을 긋고, 페이지 언저리에 작은 메모를 하는 정도가 끼어들 수 있는 전부였을 겁니다.

 

내가 '꼭' 들어가야 완성되는 책

 

하지만 이 책, <아름다운 인연>에서 출판하고, 저자 안직수가 쓴 '아름다운인생'은 그렇지 않습니다. 독자인 내가 '꼭' 들어가야만 완성될 수 있습니다. 내가 들어 갈 수 있는 여백이 빈 의자처럼 마련되어 있고, 내가 써야 할 몫이 공란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여백으로 남겨진 공간들을 차곡차곡 채우다보면 '나'가 이 책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내가 이 책을 쓴 저자라고 우겨도 될법합니다.

 

저자인 안직수가 써놓은 글들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상이 소재입니다. 누군가의 일기장을 읽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참 소소한 이야기들입니다. 그러기에 내 이야기 같고, 내 이야기 같기에 공감하게 됩니다.

 

집에서 치러지던 할아버지의 장례식과 갑작스레 돌아가신 아버지의 죽음을 맞으면서 저자가 느꼈던 죽음에 대한 고뇌와 애별이고(愛別離苦)를 밑그림으로 하여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소소한 빛깔로 덧칠하였습니다.   

 

어떤 책을 보거나 법문을 듣다보면 '보라는 달은 보지 않고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만 본다'는 말이 가끔 등장합니다. 손가락 끝에 온갖 치장물을 달고, 혼란스런 동작으로 시선이 손끝에 머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는 보라는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본다고 뭐라고 하듯 온갖 미사여구로 이야기의 초점을 흐려놓고는 남만을 탓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습니다.

 

이럴 때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세요'라고 간단하게 한마디만 더해주면 될 걸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횡설수설 흔들어 놓고는 손가락만 바라봤다고 한탄합니다. 저자 안직수가 말하는 '아름다운 인생'은 아이러니 하게도 '웰다잉 안내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웰빙안내서의 신호등들

 

'웰빙=웰다잉'이라는 해괴망측한 공식(?)도 등장하지만 저자가 실선으로 그려놓은 밑그림 위에 '나와 죽음'을 덧칠해 가다보면 저자가 제시하는 공식이 결코 해괴망측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빈 의자처럼 마련되어 있는 책 속의 여백을 채우게 되는 나의 글들은 지나 온 삶을 뒤돌아 볼 수 있는 거울이 되고, 섬돌처럼 놓여 있는 관련 지식들은 웰다잉이라는 달로 시선을 향하게 하는 직진 신호등입니다.

 

대청마루에 늘어뜨린 문발처럼 촘촘하게 들어가 있는 회색조의 사진, 초라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을 만큼만 광택이 나고, 피사체가 큼지막하게 강조 된 사진에 곁들인 인용의 글들은 웰다잉이라는 강에 놓인 또 하나의 징검다리입니다.

 

미사여구로 현혹하지 않고, 내 이야기 같은 글로 공감대를 형성하며, 내가 들어가야만 완성되게끔 편집 된 '아름다운 인생'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본다고 탓하지 않고, 손가락만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고 일러주는 덧셈의 안내서입니다.

 

책 중간 중간에는 '생활만족도'나 '나의 죽음에 대한 불안 척도' 등을 계량해 볼 수 있는 체크리스트가 들어가 있습니다. 죽음에 따르는 정의와 유언, 상속 등과 관련된 이런저런 법률조항이나 상식, 장례절차와 장례이후의 절차까지도 내가 준비하고 검토해 볼 수 있는 자료들도 세세히 수록되어 있습니다.

 

 

생자필멸이라고 했으니 나 역시 맞아들일 수밖에 없는 나의 죽음, 죽음 이후의 절차까지도 온전히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가 챙길 수 있는 상식이나 관련 지식들이 안내표지와 신호등으로 웰빙안내서에서 깜박대고 있습니다.

 

나를 넣어 채우다보면 완성되는 비망록

 

부록으로 들어가 있는 여백, '나는 누구인가요?' '나의 자산 형황', '조상님이 계신 곳', '우리가족 주요 행사날', '나의 장례절차와 제사상 차리기'에 이어 '내가 남긴 육신은', '자필 유언 증서' 등에 적시되어 있는 여백을 나로 채우거나 항목을 선택해야만 책이 완성(?)되니 '나'를 정리하고 후사를 설계하게 하는 비망록이 됩니다.

 

곶감을 빼먹듯 글을 읽고, 염주 알 꿰듯 내 이야기를 채우다보면, 하고 싶은 말, 쓰고 싶은 글, 꼭 남겨야 할 사항들이 빼곡하게 기록된 비망록이 되어 목적지에 다다르게 되니 '아름다운 인생'은 함께하는 웰다잉안내서이며 주인공은 '나'가 됩니다.

덧붙이는 글 | <아름다운 인생> (안직수 지음 / 아름다운 인연 /  2009. 9. 30 / 값 1만3천8백 원)


아름다운 인생 - 웰다잉 안내서

안직수 지음, 아름다운인연(2009)


태그:#웰다잉, #윌빙, #안직수, #아름다운인연, #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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