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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할부금을 연체했다고 형사고소를 당한다면? 설마 그런 일이 생기겠느냐고? 믿기 어렵겠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법정에서 벌어졌다.

할부금융회사인 A캐피탈을 통해 할부로 자동차를 구입했던 B씨는 졸지에 형사 피고인이 되었다. A사가 B씨를 고소했기 때문이다. 고소장의 내용은 "B씨가 자동차 값을 낼 의사나 능력도 없으면서 A사를 속여서 대출을 받았다"는 것이다. 정상적으로 대출 승인을 받았던 B씨로서는 황당 그 자체였다.   

하지만 자동차 할부금을 연체한 고객을 형사 고소한 금융회사의 횡포에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대구지법 영덕지원 황인경 판사는 할부금융사에 자력(자격과 경력 - 편집자)을 속여 대출을 받은 혐의(사기)로 기소된 B씨에게 10일 무죄를 선고했다.

사연은 이렇다.

2006년 B씨는 자동차를 구입하기 위해 A사에 신용조회를 요청했다. 그 결과 B씨의 신용이 좋지 않아서 본인 명의로는 구입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에 B씨는 대출신청자를 아버지 명의로 하고 자신과 어머니가 보증을 서는 방식으로 서류를 제출했고 A사는 2천만원을 대출해주었다. 

문제의 발단은 할부금이 연체되면서부터다. A사는 B씨에게 할부금을 내라고 독촉하기 시작했고, B씨가 작년 7월 전화를 통해 "차를 담보로 돈을 융통하였다"는 말을 하였다는 사실을 들어 형사고소를 했다. B씨가 애초부터 차 값을 지불할 능력도, 의사도 없었다고 본 것이다. 검찰은 사기죄로 B씨를 기소했다.

이에 재판부는 자동차 판매상과 A사의 직원 등을 증인으로 불러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관련자료 등을 검토하여 A사의 대출 절차 등에 대해 따져보았다.

재판부는 이를 통해 실제 차량매수자가 자력이 부족하여 다른 사람 앞으로 차를 사거나 대출받더라도 할부금융 회사는 그 사실을 알고도 대부분 대출해 준다는 사실, A사가 대출 기준으로 실제 채무나 수입을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 자체 전산을 통해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면 나오는 금액을 대출해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한 B씨의 차량에 담보설정을 하고 보증인까지 세웠기 때문에 대출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는 증언도 확보했다.

결국 재판부는 "A사는 B씨가 실제 자력이 있다고 보아 대출하였다기보다는 자체 심사결과 대출대상자로 적합하다고 판단하여 대출하였다고 보인다"며 "B씨가 A사를 기망하였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A사의 형사고소가 지나친 처사였음이 드러난 것이다. B씨는 작년부터 올해 10월까지 무려 15번의 법정공방 끝에 무죄를 받게 되었다.

금융기관의 할부금 독촉이나 채권추심의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당사자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 엄포를 놓는가 하면, 법적으로 책임질 의무가 없는 가족들에게 압박을 가하기도 한다. 물론, 채권 회수를 위해 금융기관이 정당한 방식으로 다양한 노력을 하는 것을 문제삼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이번 사건과 같이 형사고소로 할부금을 받아내겠다는 방식은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A캐피탈은 대기업의 계열사이다. 계열사의 자동차를 팔기 위해 정상적인 심사를 거쳐 대출을 해주었고, 보증인과 차량담보까지 확보한 A캐피탈이 연체고객을 형사법정에 세우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 사건을 통해 말로는 '고객을 찾아가는 서비스', '인터넷 즉시 대출' 등 감언이설로 꼬드기면서 제때 갚지 못하는 채무자에게는 협박과 고소를 일삼는 할부금융회사의 두 얼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태그:# 자동차할부, #형사고소, #캐피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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