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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저 능선 좀 뒤돌아봐? 이게 천국이야? 극락이야?”

“정말 대단하다 대단해! 산에 올라 이런 경치는 난생 처음인 걸”

“오늘 산에 올라 횡재했네, 횡재했어, 이런 눈꽃세상 언제 또 보겠어?”

 

산에 오른 사람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우리 일행들뿐만 아니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능선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감탄을 하고 있었습니다. 눈꽃을 피운 길가의 나무들뿐만 아니라 앞산봉우리며 뒤돌아보는 능선길이 정말 이 세상이 아니라 어느 선계에 와있는 것 같은 황홀한 풍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말(1월31일) 우리 일행들은 모처럼의 눈꽃산행을 기대하며 계방산으로 향했습니다. 서울을 출발하여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던 버스는 대관령 못미처 속사 나들목을 빠져나왔습니다. 구불구불 산길을 돌고 돌아 오른 곳이 운두령이라는 고개였습니다.

 

ⓒ 이승철

 

우리나라에서 차도로 이용되는 고개로는 함백산 만항재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고갯길이라는 운두령(1089m)에는 이미 수많은 관광버스들이 등산객들을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저마다 중무장을 단단히 한 등산객들은 고갯마루에서 산길로 오르는 계단을 가득 메우며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우와! 웬 등산객들이 이렇게 많아? 오늘은 사람들에게 떠밀려가야 되겠는 걸”

일행들은 우선 너무 많은 등산객들에 놀랐습니다. 주말이어서인지 산길을 가득 메운 많은 등산객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날씨가 이렇게 포근해서 어디 눈꽃을 볼 수 있겠나? 오늘도 틀린 것 같은데..”

일행들이 실망스런 표정을 지었습니다. 하늘에서는 눈발이 조금씩 날리고 있었지만 날씨가 포근하여 금방 모두 녹아버리고 있었습니다. 양지쪽 산길은 흙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산은 흙산이었지만 능선길은 경사가 상당히 가팔라 만만치 않았습니다.

 

수많은 등산객들과 환상적인 눈꽃풍경에 놀라다

 

조금 올라가자 등산로의 눈이 점점 두꺼워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길가에 허리까지 빠지는 눈산맥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산이 높아 전에 휘몰아치며 내린 눈이 녹지 않고 쌓여있었던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발도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눈발이 더 거세어졌습니다. 하늘을 뒤덮은 눈발이 희부옇게 봉우리들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길가에 서있는 나무들의 모습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앙상하던 나목들이 흰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 일행들은 모두 아이젠을 착용했습니다. 이제 넘어지기 전에 미리 준비를 단단히 하기로 한 것입니다.

 

“히야! 눈꽃이다, 눈꽃”

여성 등산객들 몇이 탄성을 질렀습니다. 저만큼 앞서 작은 능선 안부에 올라선 사람들이었습니다. 일행들도 재빨리 안부로 올랐습니다.

 

“우와! 눈꽃이다, 눈꽃! 자, 우선 사진부터 한 컷!”

멋진 배경을 두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행 둘이 눈꽃을 배경으로 자세를 잡았습니다. 멋진 풍경을 만나면 우선 사진으로 남겨놓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인가 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우리 일행들뿐이 아니었습니다. 너도나도 첫 번째 만난 멋진 풍경을 놓칠 수 없다는 듯 사진 찍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 풍경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다음부터 정상으로 이어진 능선길과 봉우리에서 만난 눈꽃세상 풍경들은 그야말로 ‘환상’이었습니다.

 

“새하얀 눈꽃세상, 참 깨끗하고 신비롭구먼, 이건 더럽고 추한 이 세상 풍경이 아니야. 아무래도 이건 우리들이 천상에 올라와 있거나 이름 모를 어느 선계에 올라와 있는 거야”

 

 능선에서 바라보이는 앞쪽 봉우리는 새하얀 눈꽃으로 뒤덮인 채 정말 희부연 안개에 휩싸인 하늘에 맞닿아 있었습니다. 나뭇가지에 목화솜처럼 피어난 새하얀 눈꽃들이 깨끗하고 포근한 모습입니다. 일행의 말처럼 눈꽃이 만발한 산 위의 풍경은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저 사람들 좀 봐? 이 산꼭대기에서 시산제라도 지내는 건가?”

첫 번째 봉우리인 1492봉에 올랐을 때였습니다. 봉우리 넓은 공터 한쪽에 사람들이 빙 둘러 서있는 가운데 제사상이 차려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눈꽃세상에서 시산제를 올리는 산악회 사람들

 

“저 사람들 정말 가장 멋진 시산제 지내는 걸, 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시산제를 지내다니.”

 

다가가보니 어느 산악회 사람들이었습니다. 열댓 명의 등산객들은 음식상이 차려지자 대표로 한 사람이 나와 술을 따르고 절을 하는 것으로 시산제를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정초잖아요? 회원들이 많이 참가하는 주말이라 날을 잡았는데 정말 좋은 날인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그래도 오늘 이런 눈꽃세상은 예상 못했는데 우리들이 정말 날을 잘 잡은 것 같은데요, 허허허”

 

아직 겨울인데 벌써 시산제를 지내느냐고 물으니 껄껄 웃으며 하는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양력으로는 1월 31일이지만 음력으로는 정월 초엿새이니 때를 잘 맞추고 날을 잘 잡았다는 그의 말은 맞는 것 같았습니다.

 

 

이 봉우리에서는 다음 봉우리가 마주 바라보이는데 그 경치가 정말 신비경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희부연 눈발과 안개 속에 자태를 드러낸 눈꽃세상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롭고 환상적인 풍경이었습니다.

 

산길 옆에는 이곳저곳에 주목들이 한두 그루씩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곳 주목들은 태백산 주목들과는 달리 키가 크고 우람하다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왼편 산자락의 주목군락지를 바라보며 중간 봉우리에 오르자 제법 넓은 공터에 옹기종기 몰려 앉아 있는 사람들은 점심을 먹고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여기서 점심을 먹기로 하지? 내가 오늘은 특별한 것을 준비해 왔으니까 기대해도 좋을 거야.”

 

우리들도 수북한 눈바닥에 주저앉아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던 일행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일행은 그동안 우리들이 한 번도 산 위에서 먹어본 적이 없는 컵라면을 준비해온 것이었습니다.

 

눈 덮인 산위에서 먹는 컵라면과 복분자 정상주의 맛

 

“자! 이렇게 뜨거운 물을 부어놓고 잠깐만 기다리면 됩니다.”

그러나 잠깐이라고 했지만 그 시간도 지루했던지 금방 라면을 휘저어 퍼뜨린 다음 먹기 시작했습니다.

 

“자, 라면이 있으니 정상주도 이곳에서 먹기로 하지”

컵라면 안주에 복분자 정상주라, 어떻습니까? 이만하면 환상적인 경치에 어울리는 멋진 한 잔이 되지 않겠습니까? 따끈한 컵라면과 함께 마시는 정상주 맛이 역시 대단했습니다.

 

“캬! 이맛! 쥑여준다 쥑여줘! 아주~그냥 ~죽여줘요~~”

눈길에 위험하지 않게 아주 적은 양이었지만 술꾼인 일행들 두 사람은 황홀한 경치와 황홀한 술맛에 흠뻑 젖어들고 있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가요의 한 소절까지 흉내를 냈으니까요.

 

 

다시 정상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능선길에서 뒤돌아본 1492봉에 햇볕이 쨍 내려 쪼이고 있었습니다. 희부연 풍경 속에서 어느 한 곳에 쏟아져 내리는 햇살의 풍경이라니, 정말 죽여주는 멋진 풍경이랄까요? 그 사이 하늘은 어느새 눈발이 그치고 엷은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정상에 오르자 그야말로 인산인해입니다. 해발 1577미터라고 쓰여 있는 자그마한 정상 표지석 옆에는 또 작은 돌무더기가 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상에 오른 사람들이 너도나도 정상표지석을 중심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하는 바람에 순서를 기다리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어렵사리 기념사진을 찍고 돌아서 바라본 능선길에도 사람들의 행렬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새하얀 눈꽃사이로 이어진 사람들의 행렬은 또 다른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지요.

 

최고의 전망대로 손꼽히는 정상에서는 날씨가 맑은 날이면 북쪽으로 설악산, 점봉산, 동쪽으로는 오대산 노인봉과 대관령, 서쪽으로 회기산과 태기산이 바라보이는 곳이었지만 날씨가 흐려 전망은 그리 넓고 멀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정상에서부터 줄기줄기 이어진 산줄기들이 새하얀 눈세상을 이룬 모습은 여간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었지요. 이제부터는 내리막길이었습니다. 내리막을 내려오다가 앞서 걷던 한 사람이 사진을 찍으려고 눈길 옆으로 한 걸음 발을 내딛었는데 눈이 허리까지 빠져 들었습니다.

 

그는 사진을 찍은 후 스스로의 힘으로는 눈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겨우 눈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정상부근은 그동안 쌓인 눈이 녹지 않아 쌓인 눈의 두께가 만만치 않았던 것입니다.

 

“자, 여기서부터는 오른쪽으로 내려가십시오.”

엄청나게 커다란 주목이 서있는 주목능선 삼거리였습니다. 주목 위에는 커다란 눈덩이가 얹혀 있고 나무 아래에서는 몇 사람이 잠깐 쉬며 간식을 들고 있었습니다. 주변에는 다른 산에서는 볼 수 없는 매우 큰 주목들이 여기저기 우람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눈이 두껍게 쌓여 있는 내리막길은 경사가 급하여 주르륵 주르륵 미끄러졌습니다. 그러나 눈이 두껍고 흙길이어서 다칠 염려는 거의 없었습니다. 몇 번인가 미끄러져 엉덩이 눈썰매를 타며 내려오는 것도 재미있었지요.

 

산 아래쪽으로 내려오자 골짜기가 온통 얼어 빙판입니다. 골짜기 입구엔 1969년 12월 9일 북한에서 내려온 무장공비에 의해 죽임을 당한,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이승복 군의 집터에 새로 지은 귀틀집 한 채와 장독대가 돌담에 감싸여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계방산 , #눈꽃세상, #환상적인, #이승철, #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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