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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설산 가는 길목에 위치한 백망설산(5620m)의 가을정취
 메리설산 가는 길목에 위치한 백망설산(5620m)의 가을정취
ⓒ 변훈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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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色 5景 메리설산 가을 트레킹③- 신의 가장 가까운 곳에 서다!

이 곳에 올때마다 그 밤을 상상해본다. 올려다보는 설산 위로 은하수가 펼쳐지는 고요한 밤풍경은 어쩌면 두 번 다시 경험해보지 못할 특별한 밤이 될 듯하다. 고요한 그 풍경 속으론 신들의 호흡소리마저 들릴 것 같은 설산 깊숙한 자락. 대지의 모든 에너지가 이 곳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강렬한 기운이 느껴진다.

지금은 설산의 신으로 향하는 길다란 '롱다'와 한가로이 풀을 뜯는 야크가 자리잡고 있는 그 곳. 1991년 1월 긴박했던 순간으로 잠시 들어가본다. 해발 6700m까지 접근한 17명의 중일 합동등반대는 갑작스런 눈보라에 휩싸이고 통신이 두절된다. 분노한 설산의 신은 눈사태로 모든 인원을 삼켜버리고 만다. 이들의 구조를 위해 티벳등반협회 구조대와 현지인들까지 동원되었으나 시신은커녕 실종지점으로 접근도 하지 못한 채 이 비극은 마무리된다. 이듬해 일본원정대가 수색을 위해 다시 한번 도전을 하였지만 설산의 신은 분노를 삭이지 않고 이마저도 거부해 버린다.

그리곤 시간이 지난 후 밍용빙하를 통해 이들의 물건을 조금이나마 돌려보내며 그 분노는 사그라들게 되었다. 지금도 현지인들의 일본인에 대한 시각은 상당히 적대적이다. 자신들 신의 영역을 침범하고 더럽힌 자들에 대한 분노가 그대로 표출된다고나 할까?

저 빙하뒤론 설산의 신이라 신성시되는 메리설산 주봉이 자리잡고 있다.
 저 빙하뒤론 설산의 신이라 신성시되는 메리설산 주봉이 자리잡고 있다.
ⓒ 변훈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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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설산도 식후경. 빙하가 녹아 얼음호수를 거쳐서 내려오는 개울가에 자리를 잡았다. 한국에서 준비해 온 발열도시락에 차디찬 개울물을 넣고 끓이니 따뜻함속엔 만년설의 정기까지 들어 있는 듯하다. 눈앞의 설산과 빙하, 수목한계선의 구분이 뚜렷한 원시림과 험준한 봉우리들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풍광 속에서 눈과 입이 호화로운 시간을 가졌다.

이틀 전부터 두통을 호소하던 일행 중 한 명이 남기로 한다. 연세가 있으셨긴 하지만 취미가 마라톤인 분이어서 고산반응을 별로 걱정하진 않았는데, 역시나 고산반응엔 장사가 없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베이스캠프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우리는 한 시간 남짓 이어지는 오름막을 거침없이 오른다.

풍경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운행시간이 길어져 이미 시간은 두시를 넘어서고 있었고, 위뻥마을에서 우리보다 늦게 출발한 이들도 이미 얼음호수를 만끽하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조급해 하지 말자. 렌턴을 켜서 돌아가는 일이 있더라도 이 신비스럽고도 아름다운 풍경들을 최대한 마음에 담고 돌아갈 수 있게.

메리설산 주봉 생명의 호수의 풍경. 만년설을 타고 내려온 빙하가 호수까지 닿아있다.
 메리설산 주봉 생명의 호수의 풍경. 만년설을 타고 내려온 빙하가 호수까지 닿아있다.
ⓒ 변훈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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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설산 얼음호수. 현지어로 '나이친라춰'라 불리며, 메리설산 주봉인 카와커보의 생명의 근원이라 여겨지는 호수이다. 주변의 토사 유입으로 인해 빙하가 녹아 내려 담아진 호수의 물빛이 탁해 보이긴 하지만 거대한 암벽 전체를 새하얀 빙하가 감싸고 빙하가 뿜어내는 만년설의 정기를 품은 새하얀 물들은 거대한 암벽 사이사이 아름다운 자태로 흘러내리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어쩌면 개척되어 있는 길로는 메리설산의 가장 깊숙히, 설산의 신에 가장 가깝게 다가설 수 있는 곳일 듯하다. 물론 설산의 저 뒤편에도 4~5가구가 살아가는 작은 마을이 있긴 하지만... 해발 3850m. 이 곳에도 매년 여행자들의 실종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작년에만 해도 이 곳에서 프랑스인 여행객과 중국인 여행객이 실종되었다고 한다. 메리설산! 그 신비로움을 인간들에게 과시라도 하려는지... 아마도 호수 주변의 빙하에 올라서는 부주의로 거대한 크레파스 속으로 빠져버린 게 아닐까?

5色 5景 메리설산 가을 트레킹④ - 샹그릴라를 만나다!

메리설산 위로 휘영청 보름달이 떠올랐다. 환한 달빛은 머금은 메리설산의 만년설은 맑고 깨끗함 그 이상의 순결함이 묻어난다. 형용할 수 없는 그 고귀함은 밤이든 낮이든 그저 바라만 보게 할 뿐이다. 머릿속의 모든 잡념들,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힘겨운 짐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느새 그것들에게 벗어나 나만의 샹그릴라를 만들어낸다.

3일차 트레킹. 짧고 굵은 메리설산의 트레킹을 마무리하는 날이다. 어젯밤 여흥이 과했던 탓일까? 신성한 기운을 받아 가뿐해야 할 몸이 꽤 무겁게 느껴진다. 어쩌면 가장 신성한 신의 영역으로 들어가야 하는 통과의례일지도 모른다. 해발 3650m에 위치한 신의 폭포. 메리설산 순례의 종점이자 인간의 발걸음이 닿을 수 있는 가장 신성한 곳이다. 폭포의 물은 성수(聖水)로서 자신의 악업을 정화하고 복을 기원하는 신의 축복을 의미한다.

하위뻥 마을을 통과해 원시산림숲으로 평탄한 산책길이 이어진다. 태곳적 자연이 그대로 묻어나는 원시림 속에는 햇빛조차 들지 못하는 곳에서 오랜 시간을 그 속에서 살아온 이끼들과 하늘과 맞닿을 듯한 기세로 곧게 뻗은 아름드리 고목에서 자연의 맑은 정기와 함께 메리설산을 신으로 받들며 살아가는 티벳탄들의 신앙 또한 가득 묻어난다. 메리설산 최고의 성지로 가는 길은 이렇듯 절대 평범하지 않으면서도 종교적인 엄숙함이 길 위에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위뻥마을에서 신의폭포로 가는 길. 원시림을 벗어나면 손을 뻗으면 닿을듯한 거리만큼 설산은 가까이 다가와 있다.
 위뻥마을에서 신의폭포로 가는 길. 원시림을 벗어나면 손을 뻗으면 닿을듯한 거리만큼 설산은 가까이 다가와 있다.
ⓒ 변훈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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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한 원시산림을 벗어나니 아침햇살을 가득 머금은 순백색의 설봉들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그저 웅장하고 경이롭게만 보이던 봉우리들이 아름답게 보여지기 시작한다.

히말라야 조산운동이 만들어 놓은 날카로움 아래에는 수천년의 시간이 만들어놓은 수려한 산세의 선과 고산식물들이 고귀한 신의 영역을 아름답게 꾸며놓고 있다.

어쩌면 제임스힐턴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의 무대가 바로 이 곳이 아닐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힘들었던 현실을 탈피하기 위한 가상의 세계로 만들어 놓은 샹그릴라지만 세상의 모든 색과 거칠고, 부드러운 모든 선율들이 모여 있는 이 곳이 어쩌면 우리가 마음속에 꿈꾸던 이상향의 세계가 아닐까?

신의 폭포로 향하는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위뻥마을을 출발한 지 이미 세 시간을 넘긴 상태라 지체되는 시간에 점점 마음이 초조해진다. 오전에 신폭트레킹을 마치고 여유롭게 더친으로 돌아가는 나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최종 마지노선을 스스로 정해놓고 그냥 자연속에 나를 던져놓기로 했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고민하고 노력하되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면 걱정은 내려놓고 주어진 상황에 충실하는 게 현명하다는 것은 지난 야딩트레킹을 함께 했던 일행이 일러준 말이다. 그래 이럴 땐 그냥 한번 즐겨보자~

메리설산의 가을. 베이스캠프 코스의 풍경이 웅장하다면 신폭 코스는 화려함이 길위에 펼쳐진다.
 메리설산의 가을. 베이스캠프 코스의 풍경이 웅장하다면 신폭 코스는 화려함이 길위에 펼쳐진다.
ⓒ 변훈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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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폭가는 길. 어제 갔던 베이스캠프와 얼음호수와는 산능성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지만 풍경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베이스캠프쪽이 큰 규모의 오케스트라 연주라면 신폭쪽은 국악연주같은 차분하면서도 부드러운 아름다움이 물씬 배어나는 느낌이다.

짧은 거리였지만 왠지 힘들었던 그 길을 올라서니 드디어 메리설산 최고의 성지 신폭에 도착했다. 성스러운 곳답게 오색타르쵸가 폭포 주변으로 휘감아 있고, 순례온 이들은 마음을 다잡더니 폭포물이 떨어지는 곳 주변으로 한바퀴~ 한바퀴 돌기 시작한다.

신의 폭포. 무슨 노여움이 있었는지 작년 5월 두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폭포 위에서 갑작스런 눈사태가 발생해 순례를 돌던 두 명의 현지인이 사망하고 여행객 여러 명이 다친 사고가 발생했다. 매년 사람들을 재물삼아 자신의 신성함을 과시라도 하려는 욕심인 걸까? 아님 몽매한 인간들에게 던지는 무언의 메세지일까? 사고의 아픔은 언제 잊혀졌는지 성스러운 물줄기는 부드럽게 흘러내리며 주변 풍경들과 어우러져 한폭의 풍경화를 그려낸다.

무엇을 간절히 바라는 것일까? 그녀는 결혼을 앞두고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길 기도하며 신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기도하고 있다.
 무엇을 간절히 바라는 것일까? 그녀는 결혼을 앞두고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길 기도하며 신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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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온 가족들을 만났다. 그 모습이 너무나 경건해 보여 다가서지 못하다가 잠시 휴식(?) 시간을 이용해 다가가 물었더니 곧 결혼할 딸아이를 데리고 찾아왔다고 했다. 시집가기 전 몸과 영혼을 성수에 정화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 왔다고 했지만 그 모습이 엄숙하기까지 했다.

자신과 신만 소통할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 과연 행복의 기준은 무엇인 것일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행복은 어쩌면 정신적이면서도 물질적인 여유가 될 수 있겠지만 이들에게는 이렇게 신과 소통할 수 있는 게 삶의 가장 큰 목표이자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메리설산 최고의 성지 신의 폭포. 성수에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기 위해 많은 티벳탄들이 찾아온다.
 메리설산 최고의 성지 신의 폭포. 성수에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기 위해 많은 티벳탄들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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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의 물줄기가 땅에 부딪혀 흩어지며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들어낸다. 과학적인 기준으로야 그렇겠지만 순례자들은 그 무지개가 곧 설산의 신이라 믿는다. 자신과 가장 가까이서 자신의 악업을 씻겨주고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메리설산 순례의 필수코스이자 최고의 성지이다.

메리설산 순례의 종점으로 메리설산 봉우리 중 주봉인 '카와커보'봉 외에 두 번째로 신성시되는 멘츠무(선녀봉)이 내려다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빙하가 녹아 깍아지른 바위 절벽으로 떨어져 내린다.

물줄기가 바람에 흩날리는 수려함과 떨어지는 물방울 사이로 비춰지는 무지개가 성스러운 곳임을 알려준다. 폭포의 물줄기는 총 3개의 물줄기가 있는데 모두 성수로 여겨진다. 각 물줄기마다 의미가 있어 몸과 영혼을 정화하고 복과 운의 기운을 담고 있는 물줄기와 장수의 기운을 전해주는 물줄기, 그릇된 일을 바로 잡아주고 바른길을 나아가게 하는 구원의 물줄기로 인식되어 물줄기를 맞으며 폭포 주변을 돌며 육자진언을 읊조리는 순례객들을 만날 수 있다.

현지인들의 말을 밀리자면 이 곳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으면 물줄기가 머리 위로 떨어지지 않고 옆으로 흘러내리거나 공중에서 흩어져 버린다고 한다. 그럴 경우 제단에서 향을 피우고 육자진언을 큰소리로 외치며 신의 노여움을 풀어주어야만 그때서야 비로소 성수를 제대로 맞을 수 있다고 한다. 종교적 엄숙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가을의 메리설산 트레킹.  이렇듯 아름다운 대자연의 풍경속에서 종교적 엄숙함까지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함이 있었다.


태그:#메리설산, #샹그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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