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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라고는 해도 초가을의 햇볕은 한여름처럼 쨍쨍합니다. 곡식을 영글게 하고 과일이 익게 하는 결실의 햇살이지요, 등산하기 위해 산을 찾아 나선 길에서 만나는 시골들녘은 참 포근하고 넉넉한 풍경입니다.

 

아직 어린 벼논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이삭이 나와 고개 숙인 벼들이 누릿누릿 익어가는 모습이 여간 대견한 것이 아닙니다. 지난여름의 장마와 가뭄, 그리고 비바람 휘몰아치던 태풍을 이겨내고 풍성한 씨앗을 알알이 맺었기 때문입니다. 역시 계절의 변화는 도시가 아닌 산골과 들녘에서 흠뻑 느끼게 되나 봅니다.

 

그러나 도심이라고 해서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쨍하고 맑은 하늘과 푸른 하늘에 두둥실 떠오른 뭉게구름도 가을의 얼굴이고, 따가운 햇볕이지만 그늘에 들면 품속으로 파고드는 서늘한 바람이 가을을 실감케 합니다.

 

해가 기운 석양 무렵이나 해뜨기 전의 새벽녘에 뜰에 나서면, 귀뚜르르 속삭이는 귀뚜라미 소리와 풀 섶의 여치 소리도 가을을 알리는 계절의 속삭임입니다. 그렇다고 계절의 속삭임을 곤충들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길가에 핀 코스모스와 잡초 속에서 꽃을 피운 이름 모르는 작은 꽃들에게서도 가을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지요. 가을의 꽃 코스모스도 한적한 시골길가에 피어 있는 모습이 가장 잘 어울리는 풍경입니다. 그러나 아파트 담장 밑에서 가을바람에 너울거리는 코스모스도 메시지가 조금 약하긴 하지만 역시 가을을 속삭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 길을 걸어갑니다. 기다리는 마음처럼 초조하여라, 단풍 같은 마음으로 노래합니다. 길어진 한숨이 이슬에 맺혀서 찬바람 미워서 꽃 속에 숨었나.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 길을 걸어갑니다.“

 

1970년대 가수 김상희씨가 불러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의 가사입니다. 노래도 좋았지만 가사 내용이 코스모스를 빌려 가을 마음을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게 된 요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데 가을꽃이 어디 코스모스뿐이겠습니까? 마당가의 풀 섶에는 ‘닭의장풀’들이 작고 노란 꽃술을 내밀고 곱게 피어 있는 모습이 여간 앙증스런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 옆에는 여리고 가는 줄기 끝에 노랗게 꽃피운 민들레가 봄에 피운 꽃 하고는 또 다른 매력으로 한들거리고 있었지요.

 

길가 경계석 옆에는 누가 씨를 뿌렸는지 노랗고 빨간 채송화 몇 송이가 여간 귀여운 모습이 아닙니다. 화단에는 분꽃들이 다투어 꽃을 피운 모습이 탐스럽습니다. 분꽃은 대개 붉은 꽃들인데 샛노란 빛깔도 있고 노란 바탕에 붉은 반점이 점점이 찍힌 분꽃도 귀엽고 예쁜 모습입니다.

 

아직 따가운 가을 햇살 아래 피어난 꽃들이나 커다란 나무 그늘 밑에서 가냘픈 모습으로 피어난 꽃들, 모두 하나 같이 가을빛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식물들에게, 특히 꽃에게 가을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봄에 피어난 꽃들은 한해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화려한 희망이 담겨 있겠지요. 그러나 가을에 피어난 꽃에게 가을이라는 계절은 또 다른 의미를 담고 있을 것입니다. 희망으로 싹을 피웠던 봄과 화려하게 불타올랐던 여름을 회상하며 마무리하는 깊은 의미, 어쩌면 조금은 쓸쓸한 의미를 담고 있을 것 같지 않나요?

 

그래서 봄꽃들에 비해 조금은 초라한 모습이지만, 요즈음에 피어난 가을꽃 가까이 다가가 귀를 기울이면 작은 속삭임이 들리는 듯합니다. 지난여름은 행복했었노라고, 그리고 이 가을에 이렇게 꽃을 피울 수 있는 것도 커다란 보람이고 또 다른 행복이라고.

 

그래서 가을은 꽃보다 열매의 계절인지도 모릅니다. 한 생의 끝에서 맺은 보람과 사랑의 열매, 그것이 가을이 갖는 가장 깊은 의미이고 상징일 테니까요. 가을이 결실의 계절이라는 말도 같은 의미겠지요.

 

화단에서 자란 산달나무 한 그루는 지난여름 꽃을 듬뿍 피웠었는데 열매는 단 한 개 밖에 맺지 못했네요.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요? 어쩌면 아파트 건물에 가려 햇볕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였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현상은 사람이나 식물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햇볕을 받는 부근의 대추나무는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 모습입니다.

 

환경이 썩 좋은 곳은 아니지만 햇볕을 받는 조금 떨어진 언덕 중간에서 자란 밤나무도 열매를 많이 맺었습니다. 촘촘한 가시로 중무장을 한 열매 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중무장을 했지만 맨살의 대추보다 벌레에 약한 것을 보면 그 중무장이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 가을에 피어난 작은 꽃들과 대추와 산달나무 같은 작은 열매, 그리고 중무장을 한 밤나무 열매도 모두 이 계절의 의미를 속삭입니다. 아름다운 이 가을엔 더욱 소박한 행복을 가꾸라고요, 너무 크고 화려한 것보다 비록 작고 초라해도 스스로 만족하고 보람을 가꾸며 행복할 수 있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라고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승철, #초가을, #속삭임, #가을꽃, #가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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