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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출국

민필호의 장형 민준호는 중국으로 떠나는 어린 동생에게 따뜻한 밥이라도 한 끼 먹여 보내고 싶었다. 그는 학교를 운영하느라 재정이 몹시 어려운 상태였다. 동생에게 넉넉한 여비를 주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필호는 도리어 형이 지나치게 많은 여비를 주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형님, 돈을 너무 많이 주셨습니다.”
“아니다. 제호에게도 자금을 보내려 했는데 구해지지가 않았다. 기회가 되는 대로 다만 얼마라도 보내겠다고 전해 다오.”

상에는 쇠고기 무국과 배추 겉절이와 수북한 쌀밥이 놓여 있었다.
“격식에는 안 맞지만 도련님 좋아하시는 것 위주로 만들었으니 많이 드세요.”
“잘 먹겠습니다. 형수님.”

가뜩이나 굶주렸던 조선 민족은 일제 강점 이후 그 정도가 한층 심해지고 있었다. 끼니를 제대로 때우지 못하는 인구가 75%를 넘고 있었다. 일제가 진행하고 있는 토지조사사업이라는 것은 조선의 토지를 빼앗는 데 목적을 둔 것이었다. 일제는 왕실이나 공공 기관의 토지를 일차적으로 강탈했다. 다음으로는 여러 사람이 주인인 공동 명의의 토지가 약탈의 대상이 되었다.

일제는 빼앗은 토지를 일본인들에게 헐값으로 되팔았다. 그러자 왕조 시대에도 보장되었던 농민들의 경작권이 허물어지게 되었다. 일제는 지주의 소유권만 보장함으로써 대부분의 농민을 소작농으로 전락시켰다. 소작료는 지주가 원하는 대로 바쳐야 했다. 그렇게 되자 자신의 세금까지도 소작농에게 전가하는 지주가 많이 나타났다. 이 모두가 지주만의 소유권을 인정한다는 토지조사사업의 독소 조항 때문이었다.

경작권 보장과 소작료 인하를 요구하는 농민이 나타나면 일제는 무조건 지주의 편을 들어 주었다. 일제는 지주들을 정책적으로 지원한 것이었다. 지주가 토지를 자유롭게 매매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꾸었으며, 토지를 더 구입하려는 지주에게는 자금 융자도 쉽게 해 주었다. 지주의 땅이 많아질수록 소작비로 거둬들이는 쌀도 많아지기 때문이었다.

일본으로 들어가는 쌀의 대부분이 소작비로 받아 놓았던 것이었다. 조선 쌀값은 당연히 치솟았고 지주들의 재산은 날이 갈수록 불어났다. 천석꾼과 만석꾼은 일제의 토지 수탈 정책이 만들어낸 기형적인 산물이었다. 어쨌든 지주들의 태평천하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쌀값 인상은 농민에게 아무런 이득도 주지 못했다. 빚에 시달리지 않는 농민이 거의 없었고 추수와 동시에 빚을 갚아야 했으며, 빚을 갚고 나면 식량이 떨어지고 그래서 또 빌려먹게 되는 악순환이 거듭되었다. 농민들의 식생활은 극도로 조악해졌다. 그래서 그들의 소원은 모두가 비슷해져 가고 있었다.

“쌀밥에 고깃국 한 번 먹어 봤으면….”

민필호는 그 쌀밥에 고깃국을 먹고 있었다.

“왜 이렇게 서둘러 떠나려는 거냐? 곧 졸업식인데.”
“졸업장을 받기가 싫어졌습니다.”

필호는 졸업장에 일본 연호가 찍힌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이미 학기는 다 마쳤고 졸업식만 남겨두고 있는 시점에 일본 연호가 인쇄된 졸업장을 받기 싫다는 것은 필호가 내세운 조기 출국의 명분이었다.

“독립운동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충동성이다.”
장형 제호는 어린 동생이 못내 미덥지 않았다. 그는 참았던 말을 끝내 동생에게 한 것이었다. 필호는 형이 무엇을 걱정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잘 새겨 실천하겠습니다. 형님도 어서 드시지요.”
그들은 다시 쌀밥과 고깃국으로 눈을 돌렸다.

일제의 토지 수탈은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내세워 자행되었다. 그것은 영국의 동인도회사를 보고 배운 것이었다. 그들은 희고 윤기 있는 조선의 쌀을 본국으로 빼돌리는 대신 조선인에게는 누렇고 거친 만주 잡곡을 들여와 팔아먹었다.

그 결과 조선인은 일본인이 먹는 쌀의 반 정도로 연명해야 했다. 그나마도 없어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배를 채운 조선인들은 배설하는 똥만 대책 없이 굵어져서 수도 없이 똥구멍들이 찢어져 나갔다. 그래서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자조적인 말이 전국으로 번지고 있었다.

또 닥칠 보릿고개가 두려워진 농민들은 하루라도 서둘러 대책을 세워야만 했다. 그들에게 눈보라 치는 북방이 두렵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얼어 죽으나 굶어 죽으나 매한가지였다. 그들은 누더기 봇짐들이나마 나누어서, 남편은 짊어지고 아낙은 인 채, 까마득히 먼 간도 땅과 연해주를 향하여 눈 위에 서럽도록 바들바들한 발자국을 남기며 사라져 갔다. 그리하여 조선의 농촌에는 날이 갈수록 빈 집이 늘어만 갔다.

날로 밤으로
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대대손손에 물려줄
은동곳도 산호관자도 갖지 못했니라.

재를 넘어 무곡을 다니던 당나귀
항구로 가는 콩실이에 늙은 둥글소
모두 없어진 지 오랜
외양간엔 아직 초라한 내음새 그윽하다만
털보네 간 곳은 아무도 모른다.

찻길이 놓이기 전
노루 멧돼지 족제비 이런 것들이
앞뒤 산을 마음 놓고 뛰어다니던 시절
털보의 셋째 아들
나의 싸리말 동무는
이 집 안방 짓두광주리 옆에서
첫울음을 울었다고 한다.

그가 아홉 살 되던 해
사냥개 꿩을 쫒아 다니는 겨울
이 집에 살던 일곱 식솔이
어데론지 사라지고 이튿날 아침
북쪽을 향한 발자국만 눈 위에 떨고 있었다.
- 이용악 <낡은 집>

범선 한 척이 황톳빛 돛폭을 바람에 펄럭이며 탑승할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범선은 황혼을 배경으로 물 위에서 작은 요동을 하고 있었다. 마포 나루에는 크고 작은 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었지만 유독 그 배가 눈에 띄는 것은 그 배의 황톳빛 돛폭이 석양과 절묘하게 얼크러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강물 색은 크게 다르냐 하면 결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결국 범선과 석양과 강물이 삼체 일색의 동화를 이루어 내고 있었다. 그래서 그 배는 보는 이가 눈을 어떻게 뜨느냐에 따라 보였다가 안 보이기도 하고, 없었다가 있기도 할 수 있는 풍경 구조였다. 

범선의 선장은 농바위에 피어오르는 저녁연기가 가시고 양화진의 노을이 어두워지면, 배에 오를 귀인이 나타나리라고 어림하고 있었다. 그러나 와우산 목동의 피리 소리가 들릴  때쯤이 되었는데도 귀인은 한사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제 저녁이 지나고 달이 오르면, 서강에서  물때를 기다리는 홀어미들은 둥근 달을 옆에다 두고 마포로 들어오는 돛단배를 볼 수 있을 터였다. 그러면 밤섬의 모래가 은빛을 내면서, 멀리 고기잡이배들의 불빛과 은밀하고도 치열한 조응을 시작할 것이었다.

선장은 도사공과 함께 부리나케 배에서 뛰어 나갔다. 달빛을 받아 얼음처럼 빛나는 모시 두루마기에 색깔 바랜 갓을 쓴 호리호리한 젊은 선비가 장죽과 말고삐를 말아 한 손에 쥔 채 말 위에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나으리!”

선장과 도사공은 말 탄 선비에게 압도되었는지 똑같은 동작으로 허리를 굽혔다.

덧붙이는 글 | 제국주의에 도전하는 매혹적인 인간들의 삶과 사랑을 그리는 소설입니다.



태그:#민필호, #지주, #소작, #마포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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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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