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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필자의 시어머님은 아들이 셋이건만 혼자 사시는 독거노인이시다. 시아버님께서 돌아가신 후 함께 사시자고 말씀 드렸지만 “같이 살면 어멈도 나도 시집살이야. 이렇게 따로 사는 게 서로 편해. 이담에 더 나이 들어 수족을 못 쓰게 되면 모를까…” 늘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맏이인 우리 부부의 마음은 몸처럼 편치가 못하다. 꿈자리라도 뒤숭숭할라치면 혼자 계신 어머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신 건 아닐까 걱정이 앞서곤 한다.

 

자동차로 40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멀지도 않은 거리에 살면서도 매 주도 아니고 보름에 한 번 찾아뵙는 것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안부전화로 대신할 때가 많다.

 

“어머니, 진지 잡수셨어요?”
“응, 먹었어, 어멈넨 별 일 없지?”
“네, 잘 지내고 있어요.”
“그럼 됐어.”

 

“어머니 기름 아끼지 마시고 따뜻하게 지내세요.”
“기름 값이 여간 비싸야지, 그래서 아침 먹으면 노인정에 갔다가 저녁 때나 오는 걸 뭐. 노인정은 방바닥이 설설 끓고 아주 좋아. 어멈네만 잘 지내면 됐어 이 늙은인 아무래도 괜찮으니까 걱정들 마.”

 

말씀은 그리 하시지만 80을 바라보는 연세시라 이젠 걸음걸이도 부자연스럽고 예전 같지가 않으시다.

 

몇 년 전만 해도 여장부처럼 건장한 체구에 쩌렁쩌렁한 목소리여서 뭐라지 않으셔도 며느리들이 주눅들어 할 정도였는데 해가 거듭될수록 그 당당하시던 모습은 사라져가고 이젠 며느리들 목소리가 조금씩 커져가는 걸 느끼게 된다.

 

뵙고 오면 며칠은 마음이 편하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 궁금하고 은근히 걱정이 된다. 그래서 다른 일은 뒤로 미루고 일요일(20일) 오후 어머니를 뵈러 갔다. 오늘도 노인정에 가셨는지 집은 비어 있었다. 집안으로 들어가자 썰렁하니 한기가 느껴진다. 기름값을 아끼시느라 집에 계실 때만 보일러를 잠깐씩 튼다고 하시더니….

 

가자마자 어머님이 벗어놓으신 편한 몸빼바지로 갈아입고 남편은 밖을, 난 집안을 맡아 청소부터 시작했다. 한참을 치우고 있는데 어머니 목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지팡이를 짚고 붕대로 칭칭 감은 한쪽 다리를 끌다시피 절룩거리며 대문 안으로 들어오고 계셨다.

 

안마당에 쌓인 눈을 치우던 남편이 그 모습을 보고는 왜 그러시냐며 놀라 물으니 이유인 즉, 식탁보를 갈기 위해 두께가 9mm나 되는 무거운 유리를 드시다가 발등에 떨어뜨리셨다는 것이다. 그래도 뼈를 다치지 않아 이렇게라도 움직일 수 있어 다행이라시며 어멈, 아범이 걱정할까봐 알리지도 않고 일부러 잠자코 계셨단다.


상태가 어떤지 궁금하여 붕대를 풀어보니 발등은 검푸르게 멍이 들어 신발을 신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부어 있었다. 민간요법으로 치료를 하고 계신지 주방엔  찜질을 하신 듯한 스테인 대야에 시커먼 물과 부탄가스 통이 여러 통 비워져 있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마음이 아프고 속도 상한 듯 “이 정도면 병원에 가셨어야죠”라고 하자 “뼈에 이상이 없는데 병원엔 가 뭐해? 이러다 낫겠지”하셨다.

 

이렇듯 부모님은 자식에게 짐이 될까봐 몸이 불편하여도 내색도 안 하시고 자신의 몸을 태워 어둠을 밝히는 촛불처럼 웬만한 아픔은 고통으로도 생각하지 않으신다. 그저 한없는 자식사랑에 온몸을 태우실 뿐.

 

남편은 자주 찾아뵙지 못한 까닭으로 이런 일이 생긴 듯 '지난 주에 왔어야 하는 건데'라며 자책을 하듯 몇 번씩이나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어머닌 당뇨병이 있으셔서 작은 상처도 쉽게 아물지 않기에, 특히 발 관리를 소홀히 할 경우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며 큰걱정을 했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아무래도 내일 아침 병원에 모시고 갔다가 출근을 해야겠다며 ‘어머니 모시고 병원에 가는 길입니다’라고 써놓으라고 했다. 마침 월요일은 차량운행을 못하는 날이라서 ‘차량요일제 스티커’ 옆에 붙이고 가기 위해서였다.

 

몸이 불편하시면서도 전화로 안부를 물으면 잘 계시다고 하시니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자식들이 그 고통을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더욱이 보살펴 드리는 이 없이 홀로 사시는 경우엔 그저 '어떠시냐'고 물을 것이 아니라 자주 찾아뵙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보! 이젠 전화로 묻지 말고 그냥 갑시다."


태그:#안부전화, #지팡이, #독거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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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저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52세 주부입니다. 아직은 다듬어진 글이 아니라 여러분께 내놓기가 쑥스럽지만 좀 더 갈고 닦아 독자들의 가슴에 스며들 수 있는 혼이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특히 사는이야기나 인물 여행정보에 대한 글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이곳에서 많을 것을 배울 수 있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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