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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데리고 나들이하기가 점점 쉽지 않습니다. 어릴 때야 둘러업고 차에 태우면 그만이었는데, 이제는 한번 나가려면 아이 눈치부터 살펴야 합니다. 친구들과 놀기가 더 좋은 시기가 됐는데, 재미없이 어른들을 쫓아다니려니 답답하고, 심심하겠지요.

하지만 어쩝니까? 아직은 혼자 집에 놔두기 불안하니 어떡하든 데리고 다녀야죠. 오늘도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서며 말합니다. 혼자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 수 있게 되면 안 데리고 다닐 테니 빨리 크라고 말이죠. 그런데 사실 웃긴 것은, 나들이 장소에서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면 더 놀다가자고 아이가 먼저 조른다는 사실입니다.

일요일(13일), 정오를 알리는 라디오 소리에 맞춰 서서울 톨게이트를 통과했습니다. 이번 주도 아마, 수많은 차들이 이곳을 통과해 서해안 곳곳에서 주말을 보내고, 지금쯤 돌아오려고 준비를 하고 있겠지요?

시원하게 뚫린 목포방향으로 달려가면서, 점점 서울 방향의 차들이 많아지는 것을 바라보며, 돌아올 땐 국도를 이용하자고 아내와 밀담을 나눴습니다. 서해대교가 개통되기 전에 자주 다녔던 길도 있고, 만약 그곳도 막힌다면 또 다른 샛길도 알고 있는 터라 저희 부부는 돌아올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심한 바람이 차를 무섭게 흔들어대는 서해대교를 건넜습니다. 호기심에 바람이 어느 정도인지 느껴보려고 창문을 열었다가, 차가 요동을 치는 바람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 강풍에 떠밀리듯 송악 나들목으로 빠져나와 차분히 마음을 진정시키고, 석문 방조제 방향으로 차를 몰기 시작했습니다.

▲ 석문방조제, 거의 직선으로 곧게 뻗은 이 방조제는 그 길이만도 10.6km에 달한다고 합니다.
ⓒ 방상철
방조제가 생기면서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변했을까요? 과연 윤택해졌을까요? 만약 이곳에 방조제가 생기지 않았다면 지금 이곳의 모습은 또 어땠을까요? 석문 방조제를 달리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습니다.

하지만 이미 드넓은 갯벌과 황금 어장을 산업단지와 맞바꾼 이 시점에서 개발과 보존을 놓고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마는, 이제 본격적으로 산업단지 조성이 이뤄진다고 하니(실제로 토지개발공사에서는 지난 3월 5일, 석문 국가산업단지개발과 관련한 교통, 환경영향 평가에 대한 설명회를 주민들 대상으로 했었다고 합니다) 생태계 파괴가 적은 쪽으로 가닥을 잡아, 개발을 해 나가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잠깐 생각에 빠졌던 것 같은데, 어느새 끝까지 다 달려버렸네요. 길다면 긴 방조제 길도 오늘따라 아주 짧게 느껴집니다. 이 석문 방조제가 끝나고 나면 바로 장고항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타납니다.

이곳에 올 때마다 그 유명한 실치를 한번 보고 싶었는데, 항상 겨울이나 초가을쯤에만 찾았으니, 전에는 영 기회가 없었습니다. 이번엔 어떨까? 혹시? 하는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항구 이정표를 따라 들어갔습니다.

운전하며 얼핏얼핏 보이는 간판마다 적어 놓은 ‘실치 회’라는 식당 메뉴. 아! 비로소 ‘실치의 산지’에 왔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곳 장고항에서는 지난 4월 20일~22일, 3일동안 ‘제4회 장고항 실치 축제’를 열었답니다. 봄철 축제로 자리매김을 확실히 하고 있는 것이지요.

참고로 실치는 성질이 급해, 잡자마자 바로 죽어버리는 탓에 산지인 이곳이 아니면 회로 맛볼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이곳에 더 유명해 지기도 한 것이죠.

▲ 항구로 나가는 길에 있는 뱅어포 작업장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 방상철
▲ 실치를 넓게 펴서 햇볕에 말려, 영양 만점 밑반찬인 뱅어포를 만들고 있습니다.
ⓒ 방상철
넓어진 길을 따라 달리다가 눈앞에 뱅어포 작업장을 알리는 표지판을 발견했습니다. 남의 작업장에 성큼성큼 들어갈 용기가 없는 저이지만 밖에 써 붙인 안내문을 읽어보고, 편한 마음으로 작업장에 들어섰습니다.

그곳에는 ‘작업장을 보고 싶은 분은 언제든지 환영’이라는 글귀가 있었습니다. 외부인을 배려한 모습에 고맙기도 합니다. 사람들을 자꾸 모이게 하려면 이런 열린 마음도 필요하겠지요.

뱅어포는 아시다시피 실치로 만듭니다. 고기가 워낙 작다 보니 마치 김을 말리듯 넓게 펴서 햇볕에 널어 말리고 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뱅어포 만드는 체험도 한번 해보고 싶네요.

▲ 방파제를 따라 걷는, 나들이 나온 가족들의 모습이 정겹습니다.
ⓒ 방상철
뱅어포 작업장에서 차를 돌려 나와 방파제 근처에 다시 차를 세웠습니다. 바다 위에는 작은 어선들이 포말을 일으키며 어디론가 분주히 떠나가고, 또 돌아오고 있습니다. 낚싯배를 빌려 탄 가족들의 즐거운 모습도 보입니다. 아이와 함께 방파제 위를 걷다가 물이 점점 차오르는 것을 바라보며 바다에 쫓겨 해변으로 돌아 나왔습니다.

그리고 포장마차가 보이는 곳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실치를 먹어볼 기회가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걸었는데, 제가 알기로 실치는 3월 중순에서 5월 초까지만 먹을 수 있다고 알고 있었기에 이미 너무 늦었을지도 모릅니다.

▲ 해변을 따라 길게 늘어선 포장마차를 향해 걸었습니다. 혹시 실치가 있으려나?
ⓒ 방상철
포장마차에는 각종 횟감들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실치는 영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이미 다 들어가 버린 것일까요? 혹시나 하며 왔었는데, 이번에도 너무 늦게 이곳에 와버렸나 봅니다. 하지만 중간쯤까지 걸어 들어가다가 비로소 바구니에 가득 담긴 실치를 보게 되었습니다. 왜 이리 반갑던지, 아내에게 빨리 오라며 손짓을 해댔습니다.

주인장과 흥정에 들어갔습니다. 한 접시에 만 오천 원 달라고 합니다. 보여주는 양을 보니 둘이 먹기엔 상당히 많습니다. 4명 정도가 먹어도 충분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조금만 달라며, 만원어치만 시키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점심을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도 하고, 또 솔직히 그 맛이 어떨지 몰라 그나마도 남기지 않을까 조금 걱정이 됩니다.

▲ 드디어, 기다리던 실치 회가 각종 야채무침과 함께 저희 테이블에 놓였습니다. 맛에 대한 평가는 접어두겠습니다. 일단 배가 부른 상태에서 한 접시를 싹 비웠다는 사실만 말씀드리겠습니다.
ⓒ 방상철
“언제까지 실치 회를 먹어 볼 수 있나요?”

제 물음에 주인 아주머니는 묘한 웃음을 짓습니다. 그리고 대답을 해주는데, 지금 저희가 먹는 실치가 마지막이라는 군요. 오전에 그물을 모두 걷어올렸답니다. 내일도 먹을 수 없고, 딱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합니다. 갑자기 기분이 묘해지네요.

태그:#장고항, #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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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 이야기, 혹은 여행지의 추억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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