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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로 몇 년째 마음이 지쳐 있습니다. 올해는 '마음 돌보기'라는 키워드가 가장 많이 생각나는 한 해였습니다. 제 나름의 '마음 돌보기' 선물 3종 세트를 준비해서 연말에 마음을 나눠 봤습니다. 제 선물 리스트를 공개해보겠습니다.

코로나 시절을 지내는 동안 저를 살린 것은 빵과 커피 그리고 책이었습니다. 빵을 좋아하는 저는 우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독일의 크리스마스 빵인 슈톨렌에 관심이 가더군요. 유명한 제과점이 집 근처에 있어서 가격을 살펴보았습니다.

몇 명에게 선물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입니다. 이국적이고 달콤한 크리스마스 케이크로 연말의 정을 나누면 좋겠지만 살짝 망설여집니다. 대신 시나몬 향이 그윽한 애플파이를 손수 만들어볼까 했지만 먼지 쌓인 베이킹 도구를 꺼내려니 피곤함이 몰려옵니다.

아이들도, 어른도 좋아하는 술빵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마침 딱 생각나는 빵이 있습니다. 준비는 5분, 조리 시간 40분, 맛은 별 5개 보장하는 술빵입니다. 마트에서 막걸리 한 병을 사 옵니다. 주로 장O막걸리를 사용하는데 막걸리 한 병으로 술빵 두 개를 찌면 조금 남으니 각자의 입맛에 맛있는 것으로 고르면 됩니다. 최근에 먹어본 지O 생막걸리의 맛이 좋아서 넉넉하게 두 병을 준비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호박떡용 가루! 빵 만드는 데 필요한 밀가루는 마트에서도 흔하게 팔지만 술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떡용 가루가 필요합니다. 떡용 가루는 마트에 없는 곳이 많아서 미리 구매해서 준비해 놔야 합니다. 가격도 저렴하고, 양(3kg)도 많아서 미리 구매해서 냉장고에 비축해 둡니다. 특히 떡과 빵 사이의 식감을 좋아하시는 어른들에게 사랑받는 술빵입니다.

비가 오거나, 날이 추워지면 저는 술빵을 찝니다. 이사 간 1층 OO이네 할머니, 떡을 좋아하시는 양가 어른들께 만들어 드리면 정말 맛있게 드십니다. 아이가 맛을 보더니 '참잘빵'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아이 입맛에도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술빵.
 술빵.
ⓒ 빈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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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과정은 아주 간단합니다.

 1) 재료; 호박떡용 가루(500g), 막걸리(300g), 우유(200g) : 없으면 물로 대체, 삶은 완두콩 한 주먹 (저는 설탕에 졸인, 초록과 붉은빛이 진하게 보이는 시판 완두콩배기/팥배기를 사용했습니다.)
 2) 호박떡용 가루+막걸리+우유를 한꺼번에 넣고 하얀 가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잘 섞어줍니다.
 3) 찜 솥에 물을 끓이고 찜 솥 크기보다 조금 더 긴 길이로 잘라놓은 종이 호일 두 장을 교차해서 준비해 놓습니다.
4) 물이 끓으면 찜 판 위에 교차한 종일 호일을 올린 후 반죽을 붓고 그 위에 준비해둔 완두콩배기+팥배기를 빈틈없이 뿌려줍니다. 찜솥의 뚜껑을 닫고 인덕션 7단, 가스 불로 중불 보다 약간 센 불로 40분간 찝니다.


두둥! 완성되었습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술빵이 먹음직스러워 보입니다. 방산 시장에 가서 예쁜 비닐 포장지를 사둘 걸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한 김 식힌 단호박 술빵을 투명 비닐에 넣어 귀여운 스티커를 붙여서 선물 포장을 끝냅니다. 노란 단호박 빵 위에 초록색과 붉은색 콩의 조화를 보니 제법 크리스마스 기분이 납니다.

빵은 커피와 함께일 때 진정한 위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직접 만나서 주고 싶은 마음에 카톡 선물하기는 패스했습니다. 산타 선물처럼 양손 가득 풍성하게 안겨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소상공인들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음을 알기에 대형 커피숍보다는 동네의 입소문 난 커피 대회 입상으로 실력이 더욱 입증된 아담한 커피 공장을 찾았습니다.

선물용으로 콜드 브루(cold-brew)가 참 좋습니다. 콜드 브루는 따뜻하게 마셔도 맛있고, 차갑게 우유와 섞어서 라테로 마시면 고소함이 정말 일품이지요. 크레마는 없지만 캡슐커피와는 차원이 다른 부드러운 목 넘김이 특징입니다. 내년에는 원두 값이 올라서 가격이 인상된다고 하는데 영업에 큰 영향을 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콜드 브루를 넣은 까만 상자에 크리스마스 스티커를 보니 절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차차! 한 해 동안 맛있는 커피를 제공해주신 사장님께 술빵 하나 준비해 올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요. 

쓸쓸한 마음을 책으로 위로를 받습니다. 저는 책을 좋아합니다. 열심히 읽지는 못하지만 틈틈이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올 한 해는 특히 책이 제 마음을 채워주고 다독여 주었습니다. 제가 좋다고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것은 아니겠지만 올해는 책 선물이 꼭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각자의 취향과 상황에 맞게 고르는 일이 어려웠습니다. 가장 고심했고요.

읽은 책도 있고, 추천받은 책도 있습니다. 빵에 커피를 마실 때 스마트폰 대신 책으로 빠져들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교O문고에서 책을 주문할 때 선물 포장을 요청하면 (2000원 추가) 책이 예쁜 포장 상자에 담겨 옵니다. 마음을 적을 수 있는 엽서까지 있어서 친필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다음 만남에는 읽은 책으로 서로의 감상을 나눠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만남이 더욱 풍성해질 듯합니다.

제가 선물한 책 리스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알로하 나의 엄마들/이금이/창비 : 어린 네 명의 아가를 키우느라 책을 읽을 시간이 없이 바쁜 그녀에게 드라마처럼 술술 읽는 재미 한 스푼
2) 시를 잊은 그대에게/정재찬/휴머니스트 : 소녀 예술가를 키우며 예술가의 감성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는 그녀에게 감성 한 스푼
3) 빈센트 나의 빈센트/정여울/21세기 북스 : 미술을 사랑하는 우아한 그녀에게 위대한 화가의 내면 이야기 한 스푼


'선물한 책을 좋아할까? 싫어하면 어쩌지...' 수많은 고민 끝에 누군가 책은 놔두면 언젠가는 읽게 된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 주문하기를 눌렀습니다. 그들이 잘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선물을 준비하면서 여러 마음이 있었습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예쁜 케이크를 사는 것이 모양도 좋고 맛도 좋지만 제 정성을 나누고 싶었고, 개업부터 지켜본 작은 커피 공장이 큰 대회에서 몇 차례 우승도 하고 매출도 좋아져 직원도 두고 사업이 성장하는 과정에 저의 응원을 보태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준 책을 읽으며 자신을 들여다보는 마법의 시간이 펼쳐지길 바랐습니다. 여러 마음이 담긴 제 작은 선물을 받고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크리스마스가 되길

올해 연말, 특별한 케이크도 아닌 어쩌면 흔하디흔한 술빵으로 마음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내년 연말에도 술빵을 찌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빵이나 케이크를 사러 외출하기가 여의치 않을 때 만들기 간단한 술빵을 쪄 보시는 건 어떨까요?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자칫 연말이 더욱 힘들 수가 있습니다. 조심은 하되 전염병 소식에 너무 깊게 매몰되지 않고, 한 해 동안 수고한 가족들에게 서로 덕담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따끈한 술빵을 먹으며 가족끼리 모여 막걸리도 한잔하면서요.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만들어 보세요.

술빵, 책, 커피를 주르륵 놓고 보니 갓 쪄낸 따끈한 술빵처럼 제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선물을 준비하면서 제 마음이 넉넉해졌습니다. 산타의 마음이 이런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선물을 받는 것도 좋지만 주는 기쁨이 참으로 큽니다. 선물을 받을 사람을 떠올리며 그 사람과의 관계도 더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새삼 그분들과의 인연에 감사하고요. 부자가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베푸는 것입니다. 저는 마음 부자입니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 게재했습니다.


태그:#술빵, #슈톨렌대신술빵, #내가산타, #나를돌보기3종, #크리스마스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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