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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의 연못
 공원의 연못
ⓒ 정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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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수도, 파리는 19세기 도시개발로 만들어진 근대도시다. 도시구역을 숫자로 나눠 20개의 지역구를 만들었고 각 지역은 나름의 색깔로 파리를 다양하게 만든다. 

17구역은 파리의 북서쪽에 위치한다. 몽쏘(monceau), 바티뇰(batignolles), 에피네뜨(epinettes) 그리고 이 지역의 가장 오래된  떼흔(terne) 지역을 일컫는 행정지이기도 하다. 
같은 숫자로 묶이기 전까지 서로 다른 성격의 지역들이 편의상 한 구역으로 묶였다. 대체적으로 남서쪽은 최상위 계층 주거지로 또, 북동쪽은 노동자 주거지역으로 구분하는데, 통합이전 각 지역성격과 관계가 있다. 그렇게 현대 파리가 추구하는 도시이념인 사회통합을 지역명으로 실천하는 행정구역이 되었다. 

가을 낙엽과 회전목마
 가을 낙엽과 회전목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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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몽쏘지역은 루이 14세의 동생가문이던 오를레앙 가문의 소유지였다. 평등공(Philippe egalité)으로도 불리는 샤르트르 공작이 1778년 빈터를 사들여, 당대 유행대로 별장을 지으며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다. 

참고로, 평등공, 샤르트르공작, 오를레앙 공작은 모두 같은 사람을 일컫는다. 프랑스 왕족은 소유 영지와 출신 가문에 따라서 명칭이 변하는데, 샤르트르는 오를레앙가문의 영토로, 적장자가 작위를 물려받기 전까지 불리는 명칭이기도 하다.

중세시절부터, 프랑스의 귀족들은 한적한 시골의 커다란 부지에 취향껏 꾸민 저택을 짓곤 했다. 18세기 말에 들어서면, 파리 외곽지역에 이런 독특한 저택(la folie)을 짓는 게 유행이되는데, 몽쏘에 지어지는 저택도 그런 맥락으로 지어진다. 

 몽소공원, 영국식 정원
 몽소공원, 영국식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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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소공원, 피라미드
 몽소공원,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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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몽쏘 공원에는 독특한 구조물들이 있다. 현재 공원에 남아있는 대부분의 시설물은 평등공의 지휘로 꾸며졌다. 평등공은 취향껏 다양한 구조물을 넣었는데, 연못 옆으로 조성된 기둥만 있는 조형물은 처음부터 그렇게 지어졌다. 폐허나 무덤같은 장식부터 피라미드나 지금은 사라진 여러 기계 기구까지 평등공의 취향대로 다양하게 채워졌다.

21세기의 시각에도 평등공은 괜찮은 취향을 지닌 듯하다. 오를레앙가는 대체로 자유주의 사상가들로 깨어있는 지식인이었다 한다. 물론, 정치적인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국왕의 형제가문으로 왕위 계승권자이지만 실제 승계 가능성은 적다는 점에서, 못 받을 왕위에 대한 반항심리로도 읽힌다. 

어째뜬, 역사는 평등공을 시대를 앞서보는 혜안이 있었다고 평가한다. 오를레앙 가문의 최초이자 유일한 '평등'공은, 혁명으로 유력 귀족들의 목이 잘려가는 와중에도 자유적이고 개방적인 발언 덕에 영지와 목숨을 보존한다. 아들이 사고치기 전까지 말이다.

아들 루이 필리프 1세(아래 루이-필리프, 1773~1850)는 야심가였다. 혁명이 발발하고 프랑스는 국내외로 전쟁에 시달리는데, 어린 루이-필리프도 이런 정쟁에 참가했다. 다만, 오스트리아군과 함께하는 왕위탈환을 꾸미다 혁명군에게 들킨 게 나빴을 뿐이다. 덕분에, 아버지는 사형당했고, 21년간의 루이-필리프 해외망명생활도 시작된다. 혁명군에겐 나라를 팔아버리려던 매국노로, 왕당파에겐 루이 16세 사형에 찬성한 배신자로 공공의 적이 된다. 

오를레앙가의 귀환

흔히 정치인에겐 영원한 적은 없다고 한다. 프랑스 왕가의 마지막 후예들도 그랬다. 루이 16세의 동생이던 루이 18세는, 혁명황제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서 실패하자 왕권을 되찾는다. 그러나, 정세는 여전히 불안했고, 왕실은 위기에 대응해 다시 뭉친다. 그렇게 형을 사형시킨 오를레앙 가문을 사한다. 덕분에, 루이-필리프의 긴 망명 생활은 끝나고, 작위와 덤으로 재산도 물려받는다. 몽소의 주인이 귀환하는 거다. 

다만 루이-필리프가 돌아올 쯤엔, 공원 안 주거용저택은 이미 부서진 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오를레앙가는 꽤 오래 이 지역을 가지고 있다가, 1860년 파리시에 매각한다. 매각 시점이 루이-필리프가 죽고 몇 년 후인 걸 감안하자면, 그 전후 사정은 모르긴 몰라도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이 조금 있지 않았으려나? 단순히 생전엔 부지를 팔 필요가 없을만큼 부유했을지도 모른다. 어째뜬, 값은 제법 잘 받았을거란 짐작이 어렵진 않다. 

몽소공원, 피라미드
 몽소공원,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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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를레앙가는 영국과 같은 입헌군주제를 지지했다고 한다. 특히 몽소의 정원을 조성했던 평등공은, 계몽주의자로 프리메이슨의 일원이란 의심을 받고 있다. 피라미드와 더불어 저택터 곳곳에 프리메이슨단의 상징들이 남아있다 한다. 그 덕에 미스테리와 음모론을 신봉하는 젊은이들이 이 공원을 서성이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주거용 저택도 신전(temple)과 같은 생김새였다고 한다. 

한편, 음모론자들은 프리메이슨단이 미국, 영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 모두에 영향을 끼쳤다고도 한다. 개인적으론, 18세기 프리메이슨의 기본 이념인 계몽사상과 시민주의 그리고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적, 합리주의적 의식과 혁명이 연관있는 거라 생각한다. 형 목을 자른 친척이랑 화해하는 세상에서, 생각이 비슷하다고 모두를 음모가로 모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후의 일을 축약하자면, 루이-필리프는 기회를 잘 보다가 왕이 된다. 집권 초기엔,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의 승리, 시민왕이라는 칭송도 받았는데, 모든 게 불만인 마르크스에 의하면, 당대 주류의 이권을 봐줬기 때문이랬다. 

그마저도, 권력을 조금도 놓기 싫어하다 1848년 혁명으로 쫓겨난다. 군주제의 마지막 유물이던 왕인만큼, 선거나 선출로 이뤄지는 민주주의에 이해도가 낮았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당대 프랑스 시민들도 이해도가 높진 않았던 듯싶다. 어렵게 되찾은 권력을 다시 독재자의 조카, 나폴레옹 3세에게 바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황제가 싼 똥에 알자스-로렌 지역을 통째로 독일에 넘기게 되지만, 그건 또 그 이후의 이야기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루이-필리프와 관계 많은 1830, 1848 혁명으로  파리 서쪽 지역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는데, 그 와중에 몽소지역은 부유층의 주거지로 개발된다. 그 개발을 주도 하는 게, 루이-필리프를 몰아내고 세운 황제, 나폴레옹 3세다.

조각상, 몽소공원
 조각상, 몽소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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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몽쏘는 시민들의 공원이다. 중세 프랑스 왕가가 지은 궁이 있던 뛸르리도, 룩셈부르크도 모두 시민들의 공원이다. 오를레앙가의 또 다른 저택이던 빨레호얄의 뜰도 대중에게 개방됐다. 파리의 왕국터는 모두 대중에게 전해졌다. 

프랑스 사회학자, 뻥송과 뻥송-샤흘로의 부르주아 연구에 의하면, 프랑스의 옛 특권층은 여전히, 프랑스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긴다고 한다. 프랑스가 누구 소유인지는 말을 아끼겠지만, 몽쏘공원이 모두의 것인 건 눈에 보인다. 

초록의 공간안에 귀족의 취향인 장식물과 서민들의 시설물이 뒤섞여 있다. 위치도 파리의 고급주택가와 서민 동네를 화해시켜주는 중간지점이다. 이 공원은 그래서 특별하다. 부자도, 서민도, 이민자도, 공원엔 문턱이 없다. 

지나다 우연한 계기로 대화를 하고, 생각을 나누고, 그렇게 하나가 되는 사회를... 누군가는 꿈꿨을지 모른다. 그게 마지막 왕, 루이-필리프나 마지막 독재자, 나폴레옹 3세는 아니라해도 말이다. 누굴까 그사람...

역사에 이름을 남기긴 어렵다. 아무나 남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남겨도 찾아주지 않으면 잊혀진다. 프랑스 도서관의 자료를 열람할 때, 백 년이 넘은 사진이나 그림에 저작자의 이름이 빠져있는 걸 종종 본다. 좋은 자료를 읽을 수 있어 고마운데, 누구에게 고마워해야 할 지를 모르겠다. 그래서, 모두에게 감사를 돌린다. 이 공원의 땅을 다지고, 나무를 옮겼던 노동자 1씨에게 감사하고 싶다. 집에 돌아갈 길을 만들 세금을 내준 파리시민 1씨에게도 감사한다. 그분들이 감사인사 받으러 오시며, 올랑드가 르펜에게 싸워 이길 날을 만든, 옛 이웃분들께도 안부 좀 전해줬음 좋겠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기재한 적 있는 내용이지만, 형식에 맞게 약간의 수정을 했습니다.



태그:#파리산책, #파리여행, #파리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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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대학에서 프랑스를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도시와 사람들의 삶에 관심이 있고, 일상에 질문을 던져 보는 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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