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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함께 결혼시즌이 시작됐습니다.
▲ 청첩장 봄과 함께 결혼시즌이 시작됐습니다.
ⓒ 성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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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카페에 올릴 고향소식을 편집하고 있는데 집배원 S가 들어선다. 그는 학교 후배인데 바쁜 업무에도 묵묵히 제 할일을 하는 성실한 친구이다. 다른 날에 비해 우편물이 간단하다. 정사각형 봉투를 보니 보나마나 결혼식 청첩장이다.

"형님, 오늘 또 청구서 하나 왔네요."

이 친구 대놓고 청구서란다. 하긴 결혼 시즌이 되면 일주일에 많게는 서너 통씩 날아드는 청첩장을 놓고 '청구서'로 빗대 표현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오늘은 채소농사로는 '도사'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B씨의 차남 결혼식에 와달라는 청첩장이다. 어제 우연히 들은 바 있는 또 다른 댁의 청첩장도 필시 오늘 내일 중으로 도착할 것임을 예상하면 새 달력을 보기도 전인 4월에만 벌써 2건의 '청구서'가 발행된 것이다.

도시생활을 20여년 한 입장에서 시골과의 여러 크고 작은 차이점을 꼬집어본다면 바로 경조사 부조문화가 그 중 한 가지임이 틀림없을 듯싶다. 도회지에서 행정구조상 시골의 면(面)에 해당하는 통(洞)에 함께 산다고 해서 경조사를 챙기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저 가까이 지내는 몇몇 이웃 정도가 해당될 것이다.

시골은 다르다. 1200여 가구에 인구 3천여 명이 살고 있는 이곳(강원 횡성 안흥)만 해도, 특별한 친분 없이 이름 석 자만 아는 사이라도 경조사를 알린다. 특히 부고의 경우 지역에서 발행되는 전화번호부에 등재된 가구 전체에 부고장이 전달된다. 나중에 대소사를 알리지 않은데 대한 원망을 들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현상은 아직까지 시골에 우리의 공동체적 전통 문화인 '두레' 정신이 이어져 내려옴을 의미한다. 물론 근래에 와서 경조사가 청탁을 위한 뇌물수수의 수단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신은 반드시 돈이 아니더라도 이웃의 경조사에 물품 또는 노동력을 돕는 등으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우리만의 아름다운 문화로서 가치가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하듯 이처럼 아름다운 문화도 시쳇말로 '먹고 살기 힘든' 요즘에는 부담스럽다는 반응도 없지 않다. 특히 시골의 경우 농사철이 시작되기 직전인 3~5월이 가장 경제적으로 궁핍한 시기로서 과거에는 '보릿고개' 또는 '춘궁기(春窮期)'로 표현되기도 했는데, 만물이 생동하는 봄을 맞아 혼인을 치르는 결혼시즌과 맞물리는 게 문제인 것이다.

내 경우에도 3월 한 달간 여섯 집으로부터 결혼식 청첩장을 받았다. 여기에 예기치 않은 애사도 두 건이나 치렀으니 한 달간 무려 여덟 건의 경조사에 참석하거나 봉투를 보냈다. 시골이라 해도 5만 원 권 지폐가 나온 이후로는 최소단위 경조금이 5만 원으로 '인상'돼 총 40만 원을 경조사비로 지출한 셈이다.

이는 그야말로 칩거하며 고립된 생활을 하는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이거나, 최근에 전입해와 이웃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 등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보통 주민이면 누구나 부담하지 않을 수 없는 생활비의 일부분이다. 또한 언젠가 내게 닥쳐올 일들에 대비한 '품앗이'의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이기에 더더욱 외면할 수도 없는 필수 지출항목이기도 하다.

"웬만큼 벌어서는 경조사비도 못해대겠어요."

공사현장 등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한 후배가 얼마 전 헛웃음을 치며 내뱉은 말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진심으로 축하해주어야 할 이웃의 경사스런 일, 슬픔을 함께해야 할 애사가 때로는 부담으로 여겨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많든 적든 꼭 정해진 금액이 아닌 마음의 표시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게 또 그렇지만은 않은 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사정이 이러니 요즘 환갑잔치를 내놓고 하는 사례는 아예 찾아보기 힘들다. 몇 년 전엔가 환갑잔치 초청장을 '광범위'하게 돌렸던 '용기'있는 분이 있었는데, "요즘 이런 거 한다고 알리는 사람도 있나?"라는 눈총을 꽤나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시골에는 형제자매를 많이 둔 가구도 꽤 있는 편인데, 1~2년 간격으로 혼례가 여러 차례 치러지는 경우 청첩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기도 한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오래전인 1969년 정부가 나서 국민생활의 합리화를 기하고 허례허식에 빠져 있는 가정의 폐습을 바로잡기 위해 '가정의례준칙'이란 것을 대통령 고시로 선포한 바 있다. 관혼상제를 간편하게 하라는 취지였는데, 가정사를 국가가 강요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기에 반발도 있었으나 오랜 기간을 거치면서 실제로 가정의례가 간소화 되는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개개인이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체면을 의식해 빚을 내서라도 남이 하는 만큼의 경조사비를 지출해야 하는 시골의 요즘 사정이 어찌 보면 자못 심각하다. 정말, 강제할 수는 없다 치더라도 결혼식 축의금과 장례식 조의금, 기타 사안별 축하의 표시를 현금으로 하는 경우에 대해 사회적 합의로써 규모를 정하는 운동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태그:#청첩장, #경조사비, #두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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