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가 뇌과학의 프리즘에 비춰본 사람과 사회에 대한 강연을 하고 있다.
▲ '뇌 이해'는 곧 '사람 이해'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가 뇌과학의 프리즘에 비춰본 사람과 사회에 대한 강연을 하고 있다.
ⓒ 양화진문화원

관련사진보기


# 사례 하나. 우리 집 천장 높이가 내 두뇌 능력에 영향 미칠까? 놀랍게도 정답은, '그렇다'. 소아마비 백신을 만들어 저가에 널리 보급한 러시아 출신 미국 면역학자 조나스 솔크가 이 사실을 발견한 주인공이다. 그는 소아마비 백신 연구가 잘 안 풀리자 유럽여행을 떠났는데 이탈리아의 한 성당에서 불현듯 소아마비 백신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고, 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백신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그의 공적을 기려 그의 이름을 딴 연구소인 '솔크 인스티튜트'를 세워주기로 했는데, 이때 솔크 박사는 천장이 높은 성당에서 백신 아이디어를 얻은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이 연구소의 천장을 높게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1959년 설립된 솔크 인스티튜는 2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게다가 솔크 인스티튜트 연구원들이 '내가 하버드에 있을 때는 좋은 아이디어가 잘 안 떠올랐는데 이곳에 있으니 잘 떠오른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후 과학자들이 천장높이와 아이디어 사이의 관계에 대해 실험에 착수했다. 그 결과 단순 연산의 경우 천장 높이가 2.4미터로 낮을 때 가장 좋은 성과가 나온 반면, 창의성, 추상적 개념 등과 연결된 문제에서는 천장이 가장 높은 3.3미터일 때 가장 좋은 성과가 나왔다. 우리 뇌가 천장의 높이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 사례 둘. 계단과 에스컬레이터가 있을 때, 사람들은 대개 줄을 서가면서까지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한다. 계단을 이용하는 것이 건강에 유익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편한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계단을 이용하게 할 수 있을까? 뇌과학자들은 계단에 피아노 그림을 그리고, 소리가 나도록 만들었다. 그랬더니 평소보다 66%이상의 사람들이 계단을 이용하게 되었다. 유튜브 동영상 'funtheory'에 나오는 내용이다. 우리 뇌에는 아주 재미있는 것만 감지하는 영역이 있는데, 사람들은 이 영역에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에 이 같은 흥미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위 두 이야기는 지난 17일 양화진문화원(명예원장 이어령, 원장 박흥식)에서 '뇌 과학, 세상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열린 목요강좌에서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바이오 및 뇌공학과)가 들려준 '뇌 과학이 세상과 만난' 흥미로운 사례다.

정재승 교수는 "생각과 행동의 중추인 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사람과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며 "뇌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 해결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승 교수가 뇌 과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뇌 과학이란 정재승 교수가 뇌 과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양화진문화원

관련사진보기



뇌에 대한 이해는 곧 사람에 대한 이해

13살 미만의 어린이들은 대개 자기 중심적이다. 정재승 교수는 "어린이들이 '욕망덩어리'인 이유는 13~18살에 집중적으로 발달하는 전전두엽이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단계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적인 영역으로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모든 고차원적인 일들이 벌어지는 곳이 전전두엽이다. 이마 바로 뒤에 있는 전전두엽은 책을 읽고 깊이 이해하며 비판적인 생각과 상상을 한다. 상황 파악을 하고 적절한 행동을 결정하며, 유머감각을 만들어 낸다. 아울러 도덕적 판단도 한다. 그래서 연쇄살인범의 가장 큰 생물학적 특징이 전전두엽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것이다. 추석특집과 같은 TV 프로그램에서 놀라운 기억력과 계산 능력을 보여주는 '신동'들은 등장하지만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이해했다는 신동들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아직 어린 나이인 '신동'들은 전전두엽이 발달하지 않았고, 주로 6~12살에 발달하는 언어능력, 기억력, 절차적 계산능력 등을 담당하는 뇌 영역만 발달했기 때문이다.

우리 뇌의 '전전두엽'과 대척점에 있는 것이 두뇌의 가운데에 위치한 '쾌락중추'다. 대다수의 동물에서 가장 발달돼 있는 영역이다. 1950년대 스키너가 실시한 쥐 실험에서, 먹이가 나오게 하는 스위치와 이 쾌락중추를 자극해 오르가즘을 느끼게 하는 스위치, 두 개의 선택에 직면한 쥐가 후자만 줄기차게 누르다 굶어죽었을 정도로 막강한 욕망을 표상하는 영역이다.

 "인간은 고등한 지적 영역인 전전두엽과 욕망을 표상하는 쾌락중추가 상호 영향을 주고 받으며 의사결정을 합니다. 대개의 정신질환은 이 두 영역의 밸런스가 깨질 때 생겨납니다. 너무 욕망이 시키는 대로만 행동을 하고 전전두엽이 그 욕망을 통제할 수 없는 경우도 정신질환이 되고, 반대로 전전두엽이 너무 발달해 쾌락중추를 비정상적으로 억압해도 정신질환이 발생합니다."

'전전두엽'과 '쾌락중추'의 균형이 정신건강의 핵심이라는 게 정재승 교수의 설명이다.

고등학생들도 목요강좌에 참석하여 정재승 교수의 뇌과학 강연을 귀를 쫑긋 세우고 강의를 듣고 있다.
▲ 고등학생들도 집중집중 고등학생들도 목요강좌에 참석하여 정재승 교수의 뇌과학 강연을 귀를 쫑긋 세우고 강의를 듣고 있다.
ⓒ 양화진문화원

관련사진보기



뇌에 관한 이해는 경제학의 '인간의 합리성'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정재승 교수는 강연 도중 이른바 '최후통첩게임'을 제안하며 청중석에서 두 명의 지원자를 강단으로 불러냈다. 게임은 1막과 2막으로 구성된다. 우선 '게임1막'에서 정교수가 A에게 1만원을 준다. 게임의 규칙은 이렇다. A는 이 돈을 B와 나눠야 하는데 나눠 갖는 비율은 돈을 가진 A가 마음대로 결정한다. B에게는 A가 제안한 비율로 돈을 받을지 말지 선택할 권한이 있다. B가 A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그 비율로 돈을 나눠 갖고 게임종료, 받지 않으면 그 돈은 두 사람 다 갖지 못하고 정 교수가 회수한다. 이날 강연에서 A는 5:5로 나눠서 B에게 5천원을 줬다. 그리고 B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 두 사람은 사이 좋게 5천원씩 나눠가졌다. 다음은 '게임2막'. 이번에도 정교수가 A에게 1만원을 준다. 하지만 이번 게임에서는 B에게 선택권이 없다. B는 그저 A가 주는 대로 받아야 하는 것이다. A는 이번에도 B에게 5:5로 나눠 5천원을 주었다.

이 상황을 경제학의 '인간의 합리성' 가정에 따라 풀어보자. '게임1막'에서 주도권을 가진 A는 B의 선택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B는 0을 받지만 않으면 무조건 이득이다. 0이라도 그 제안을 받는 게 유리하다. 왜냐하면 '착하다'는 등의 '사회적 평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한 A는 어쨌든 0이 아닌 최소의 금액을 B에게 주면, A의 이익이 최대가 되고 그곳에서 균형이 형성된다.(이를 경제학에서는 '내쉬균형'이라고 한다) '게임2막'에서 A의 '합리적 선택'은 돈을 안 주는 것이다. 그래야 A의 이익이 최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 교수는 "실제 실험결과는 경제학의 합리성 가정과는 다르게 나왔다"고 말했다. '게임1막'의 경우 이 날 강연에서처럼 55%의 사람들이 5:5로 나눴고, 8:2~9:1로 나눈 비율은 20%미만이었다. 또 8:2로 나누자는 A의 제안에 대해 B의 23%가 거절했고, 9:1 제안에 대해서는 B의 56%가 거절했다. 이 게임과 관련, 1997년 인도네시아에서 나온 논문에 따르면 1천만 원을 실제로 주면서 게임을 진행했는데, 9:1로 나눠서 B에게 100만원을 제안한 경우 B의 48%가 거절했다고 한다. '게임2막'의 경우 '합리적 선택'은 안 주는 것 또는 최소금액을 주는 것이지만, 실제로 30% 이상 사람들이 2~3천원 이상의 돈을 주겠다고 했다.

정재승 교수가 청중 2명과 함께 강단에서 ‘최후통첩게임’을 하고 있다.
▲ '최후통첩게임 정재승 교수가 청중 2명과 함께 강단에서 ‘최후통첩게임’을 하고 있다.
ⓒ 양화진문화원

관련사진보기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이에 대해 정재승 교수는 "이유는 아직 잘 모른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게임2막'에서 A가 돈을 나눠 갖지 않아 마음이 불편하여, B에게 나눠 준 만큼의 액수가 A의 이타적인 마음의 레벨이다. 한편, '게임1막'에서 A는 '혹시 B가 거절하여 자기도 돈을 못 받게 될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기 때문에, B에게 준 5천원 중의 2천 원정도는 '보험의 성격'이 있다. 그러므로 이타성을 측정하는 것은 '게임2막'이다. 그리고 이 게임에서 뇌의 작용을 보면, 9:1로 나눌 때 B가 1을 받지 않을 경우 '역겨움을 표상하는 뇌 영역'이 활성화 된다. 뇌의 이 부분은 길을 가다 배설물을 볼 때 활발해지는 영역이다. 즉 '더럽고 치사해서 안 받는다'는 것이다. 반면, 9:1로 나눌 때 B가 1을 받는 경우에는  '수학적 계산을 하는 뇌 영역'이 활성화 되면서 '버스비로 내면 되지, 아이스크림 하나 먹지 뭐'하는 등의 생각을 하며 받는다."

전 세계에서 이 게임이 시행되었다. 나라마다 부족마다 그 비율이 다양하게 나왔다. 자급자족하는 문화에서는 적게 나눠주었고, 물물교환하는 문화에서는 나누는 비율이 좀더 높아졌고, 품앗이, 두레가 발달된 곳은 비율이 더 높아졌다. 더 많이 나눈 곳일수록 그 사회의 신뢰수준과 만족도가 높았다. 정 교수는 "이 같은 결과들이 경제학의 '인간의 합리성' 가정에 비춰보면 '비합리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비합리성'이 사회의 신뢰수준과 만족도를 높이면, 그것이 더 현명한 것일 수 있다"며 "선택하는 그 순간만 보지 않고, 사회전체 그리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결론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뇌에 대한 이해는 '착한 일'에도 큰 도움 돼

뇌에 대한 이해는 사람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창의적인 문제해결로 이어져 '착한 일'에도 기여한다. 정재승 교수는 지난해부터 아프리카 나라들에 인터넷을 설치하는 일을 돕고 있다.

정 교수가 지난해 르완다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르완다에서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활동하고 있었는데 자신들의 헌신에 비해 현지 사람들이 호응이 낮자 실망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교육활동을 하는데 출석률도 낮고, 출석한 학생들도 산만했다. 원인을 따져보니 기생충 때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것은 1달러짜리 기생충약으로 해결되는 일임을 파악하고 약을 사서 보급했더니 출석률이 80%이상으로 뛰어올랐고, 수업집중력도 동반상승했다.

또 디자인 컨설팅 회사 아이디오(IDEO)가 제작해 2008 국제환경발명품대회 대상을 받은 자전거 정수기 '아쿠아덕트(auaduct)'는 물부족 국가에 보급돼 물 문제해결에 큰 공헌을 하였다. 아쿠아덕트는 자전거 뒤의 큰 통에 빗물 등을 부은 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그 동력으로 빗물이 정수 되어 앞의 물통에 정수된 물이 모이는 자전거 정수기다. 정 교수는 "돈을 기부하고, 몸으로 하는 기존 방식의 기부, 봉사 방식을 넘어서 이렇게 현지 사람들이 원하는 일에 대해 원인을 파악하고 문제를 개선해주는 방식으로 돕는 일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뇌 과학을 통해 본 '인간론' 귀가 솔깃

'과학자' 정재승 교수는 강연 내내 '사람과 사회에 대한 이해'에 초점을 맞췄다. 인문학, 사회과학이 아닌 뇌과학을 통해 들여다본 '인간론'은 매우 흥미롭고 신선했다. 그래서 더욱 정재승 교수의 마지막 말에 귀가 솔깃해진다.

 "저는 과학이 인간을 편리하게 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인간적 가치를 높일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관심의 중심에는 사람이 얽혀있습니다. 사람을 이해하고, 만족시키고, 가치를 높이고, 협력하는 등의 일에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그럴 때 생각과 행동의 중추인 뇌에 대한 이해가 많은 도움이 됩니다. 여러분도 뇌과학에 관심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양화진문화원 목요강좌는 양화진문화원 홈페이지(www.yanghwajin.re.kr)에서 무료로 다시 볼 수 있다. 오는 24일 열리는 양화진 목요강좌에서는 김정환 시인이 '음악의 세계사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강연할 예정이다.


태그:#뇌과학 , #정재승교수, #양화진문화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