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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부터 한 달간 북경의 인구조사가 시작된다. 중국의 인구조사는 10년에 한 번씩 이뤄지는데 2000년 인구조사 결과 중국의 인구는 12.9억. 10년이 지난 지금도 광고에서는 '아국 13억 인구'라는 말이 종종 등장한다. 올해 시작된 제6차 중국인구조사와 함께 중국의 호구문제는 여전히 뜨겁다.

2010년 제6차 중국인구조사가 시작되면서 북경은 8월 15일부터 한 달간 인구조사가 실시된다.
▲ 제6차 중국인구조사 포스터 2010년 제6차 중국인구조사가 시작되면서 북경은 8월 15일부터 한 달간 인구조사가 실시된다.
ⓒ 손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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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조사실시공고에는 '잠주증(暫住證)'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잠주증이란 말 그대로 호적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자가 취업 등을 통해 북경이나 상해와 같은 대도시에서 살게 될 때 거류를 허가받는 공증을 의미한다.

잠주증(暫住證)이란 말 그대로 호적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자가 취업 등을 통해 북경이나 상해와 같은 대도시에서 살게 될 때 거류를 허가받는 공증을 의미한다.
▲ 제6차 중국인구조사 공고 잠주증(暫住證)이란 말 그대로 호적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자가 취업 등을 통해 북경이나 상해와 같은 대도시에서 살게 될 때 거류를 허가받는 공증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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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약 1300만 명을 넘어선 북경 인구의 절반 가량이 이방인이다. 1958년 중국 인구를 도시호구와 농촌호구로 구분해 도농(都农) 간의 이동을 제한한 '호구등기조례'는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데, 현재 9억 명에 이르는 농촌 호구자가 금의환향을 꿈꾸고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내집마련, 의료, 실업, 양로 보험의 혜택에서 제외된다. 북경에서 그들은 주로 공사현장, 식당 종업원, 경비원 등의 저임금 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농촌 호구의 '신분'은 한 세대에서 끝나지 않고 자녀들의 출생에서부터 입학, 졸업, 취업과 결혼에 이르는 인생의 중대한 과제 앞에서 발목을 잡는다. 그들에게 호구는 바로 대우(待遇)와 직결된 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스로의 표현에 따르면 '북경에서 표류하는' 산서성(山西省) 출신 직장인 곽씨, 대학원생 정씨가 몸소 겪고 있는 중국의 호구제도에 대해 자세히 들어본다.

1. 북경 시민이 되려면 어떻게 하나

산서성 출생인 곽씨는 북경에서 잘 나가는 증권회사에 취직을 했다. 천진(天津)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천진에서 첫 직장을 잡았을 때는 회사가 나서서 곽씨의 호구(주민등록과 같은 개념)를 천진으로 이전해 주었다. 그런데 북경으로 직장을 옮기고 주택을 장만한 지도 이미 1년이 넘었지만 북경으로는 호구를 이전할 수가 없다.

듣자 하니 북경으로 호구를 이전하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다. 첫째는 정부기관의 고급 공무원이 되거나, 둘째는 북경의 경제와 상업발전에 공헌을 한 외자기업이나 국유기업의 고위직을 역임하는 법, 셋째는 해외에서 공부한 걸출한 인재가 귀국 후 북경 소재의 기업에 취직했을 경우인데, 이때는 해당 기업이 나서서 호구 문제를 해결해 준다. 이외에 북경호구를 가진 사람과 결혼하는 방법도 있는데 그것도 45세가 되어서야 호구이전이 가능하다.

2. 구인광고 : 북경호구자만 모집합니다

곽씨의 고등학교 동기인 정씨는 북경대학(北京大學)에서 막 역사학 석사학위를 받았지만 고민에 빠져 있다. 학생의 신분이므로 아직 임시북경호구(集體戶口)가 있지만 취직이 쉽지 않다. 어떻게 해서든 취직을 해 북경에 남는 것이 정씨의 일차적인 목표다. 고향으로 돌아가면 전공을 살리기는커녕 근무환경이 좋은 직업은 찾아보기 더욱 힘들기 때문.

북경에서 취직을 하려면 북경호구가 있어야 유리한데, 이는 구인조건 자체가 북경호구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졸업과 동시에 정씨는 자동적으로 산서성 호구로 전환된다. 정씨는 어쩔 수 없이 북경호구를 유지하기 위한 일환으로 박사과정을 밟으며 일자리를 찾으려고 한다.

3. 같은 생활보호대상자라도 난 너랑 달라, 난 북경사람이라고!

북경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자녀 동반한 3인 가족이며 10㎡이하의 집에 거주한다. 1년 수입은 약 900만원(4만5300위안)이 안 되고 총자산이 7000만원(36만 위안)에 못 미친다. 이런 사람이 북경호구를 가졌다면 경제적용방(經濟適用房)을 신청해 분양받을 수 있는데 북경 5환 기준으로 1㎡당 40-60만원(2000~3000위안)이면 된다(환: 도시구분의 개념, 북경 중심에 있는 자금성을 둘러싼 지역이 2환, 도심에서 멀어지면 숫자가 커진다. 북경 시내로 볼 수 있는 곳은 5환까지이며 나머지는 교외로 구분된다). 그러나 경제적용방은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가 북경 호구가 없는 사람은 이러한 혜택에서 제외되고 내집마련의 꿈은 요원해진다.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에 근무하는 곽씨는 치솟는 부동산 가격이 무서워 '미친 척' 대출을 받아 북경 5환 근처에(정확히 말하자면 '밖'에) 있는 집을 샀다. 그의 집은 현재 1㎡당 200-400만원(1만-2만위안)인데, 한 달에 80만원 가량을 쏟아 붓는 주택대출금 상환을 마치려면 딱 30년이 걸린다.

4. 미안해요, 당신에게는 미래가 없어요!

곽씨는 묘령의 여인에게 푹 빠졌다. 하지만 그녀는 끈질긴 그의 구애에도 묵묵부답이다. 불행하게도 그녀는 북경호구를 가진 여인이었던 것. 북경호구를 가진 여인네들은 농촌, 타지방 호구를 가진 사람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단다.

북경호구가 없으면 북경의 의료, 실업, 양로 보험혜택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북경호구의 여자가 타지방 호구를 가진 남자를 선택할 리 없다. 산서성에서는 자수성가한 20대로 경제잡지에까지 소개된 잘 나가는 곽씨는 억울하다.

5. 고향으로 돌아가세요, 아니면 웃돈 얹어주시든지.

곽씨가 북경에서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으면 자녀 역시 곽씨를 따라 자동적으로 천진 시민으로 등록된다. 북경에서 태어났다고 북경호구가 주어지지는 않는다. 원정출산으로 시민권(?) 못 얻는 것은 그렇다 치자. 그래도 북경에 있는 학교에 입학할 수가 없다는 건 기막힌 노릇이다.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려면 웃돈이 필요한데 보통 3만-4만위안(한화 약 600만-800만원)에서 비교적 이름 있는 학교에 들어가려면 6만-7만위안(한화 약 1200만-1400만원)까지도 든다. 그런데 이 웃돈이 일시불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중학교, 고등학교로 진학할 때는 더 많이 주고 들어간다. 직장을 포기하고 귀향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라도 북경에서 자녀교육을 결심하는 사람들은 그나마 안정된 직장을 가진 사람들이고, 웃돈을 얹어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조부모가 있는 고향으로 자식만 내려 보낸다.

6. 수능은 봐야 할 것 아닌가요.

이러나 저러나 한 명뿐인 자녀인지라(중국은 아직까지 소수민족을 제외하고는 1가구 1자녀가 법으로 정해져 있다) 웃돈을 줘서라도 겨우 학교를 보낸다 해도 산 넘어 산이다. 바로 수능(高考) 때문이다. 중국의 수능은 매년 6월경 치러지는데, 자녀가 북경에서 학교를 다녀도 수능은 출신지역에서만 응시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와는 달리 중국은 북경, 상해, 천진, 산서성, 산동성, 복건성의 수능 문제가 모두 다르다는 데 있다(중국 호남성, 호북성, 산동성, 산서성은 수험생도 많고 난이도 높기로 유명하다).

7. 우리 학교는 올해 산서성 학생은 받지 않아요.

이래저래 수능까지 봤다고 하자. 유명한 대학은 북경에만 몰려 있는 상황. 북경지역 각 대학교는 신입생 모집요강을 발표할 때부터 '북경 O명, 상해 O명, … 복건성 O명, 청해성 O명, 절강성 O명'의 식으로 지역별 모집인원을 제한한다. 지역별 수능문제가 달라서 점수로만 전국 수험생의 절대적 비교는 불가능하다.

대부분 북경소재대학은 모집인원의 상당수를 북경에서 뽑는다. 2010년 전국 957만 명의 수능응시자 중 북경대학의 모집인원은 3280명이었다. 북경의 수능응시자 8만 명(전국의 0.83%) 중 368명(11.2%)이 북경대학에 합격했다. 게다가 올해 북경의 수험생 숫자는 작년에 비해 20%나 줄어들었지만 북경대학의 북경지역 수험생 합격률은 오히려 상승했다.

자연적으로 지방 수험생들의 커트라인은 엄청나게 높아지고 경쟁도 치열하다. 750점 만점인 수능에서 북경 수험생의 대입커트라인은 400점 수준, 지방 수험생의 대입커트라인은 그보다 100-200점이나 높은 500-600점 수준이다. 북경호구를 가진 수험생들은 웬만해선 대학에 입학한다. 그러나 북경소재의 모 대학은 특정 성(省)의 출신 학생은 아예 뽑지 않아 원성을 사기도 했다.

교육불평등에 대한 불만의 소리가 거세지면서 학교들이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대응책을 마련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학교의 입장은 이렇다. 빈곤한 지역 출신의 학생이 많을 경우 학생복지에 대한 압력이 커지고, 게다가 지방 학생들이 위에서 언급한 각종 어려움으로 취업에 곤란을 겪으면 겪을수록 대외적으로 비쳐지는 학교의 취업률이 낮아지기 때문에 지방 학생, 특히 집안 환경이 상대적으로 빈곤한 농촌 호구의 학생들을 기피할 수밖에 없다.

8. 북경도 북경 나름이죠!

중국인들이 우리나라 관광비자를 받을 때도 호구 관련 조항이 등장한다. 올해 7월 19일부터 중국인이 개별관광비자를 신청할 때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간소화되었는데 북경호구를 소지한 자는 비자발급신청서와 신분증 사본만 제출하면 된다.

그러나 북경시 외곽지역인 통주구, 순의구 등의 8개의 구는 북경호구 소지자에서 제외된다. 이외의 관광객은 재직증명서, 자동차·부동산 소유증명서, 사회보험 가입증명서 등의 경제능력 입증서류, 호구가 지방일 경우에는 잠주증까지 제출하는 번거로운 절차가 필요하다.

이렇게 북경 호구는 단순히 주민등록지가 아니라 중국 내부에 존재하는 돈 주고도 못 사는 시민권이다. 지난 3월 남방도시보(南方都市報)를 비롯한 중국의 13개 주요 신문들이 "거주 이전의 자유를 보장"하고 "농촌 호구를 괴롭히는 낡은 호구제를 폐지할 것"을 촉구했지만 공동사설 주도자가 해직되는 파문이 일었다.

한편 광동성(廣東省)의 일부 시와 상해, 산서성의 태원(太遠) 등의 10개 도시는 시내에서 5-10년을 거주한 농민공에게 임시거주증을 발급해 도시 호구자와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제한적인 호구완화정책을 도입 중이다. 중국 국무원이 6월에 발표한 '경제개혁 심화를 위한 의견서'에는 이러한 거주증 제도의 전국적 확대를 제안하기도 했다.

"인구조사의 성공은  호구(戶口)정리로부터"라는 뜻을 가진 제6차 중국인구조사를 알리는 현수막. 호구는 우리 나라의 주민등록과 같은 개념이나 중국에서는 대도시 호구가 돈 주고도 사기 힘든 시민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제6차 중국인구조사를 알리는 현수막 "인구조사의 성공은 호구(戶口)정리로부터"라는 뜻을 가진 제6차 중국인구조사를 알리는 현수막. 호구는 우리 나라의 주민등록과 같은 개념이나 중국에서는 대도시 호구가 돈 주고도 사기 힘든 시민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손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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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제6차 중국인구조사를 통해 중국의 인구가 혹자가 말하는 18억일지, 아니면 20억을 너끈히 돌파할는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참에 더 이상 미루기 힘들어 보이는 중국호구제도의 변화까지도 함께 기대해 본다.


태그:#호구제도, #중국, #중국인구, #인구조사, #중국호구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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