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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교육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아마도 좋은 대학에 들어가, 국가와 사회에 이바지하는 국민을 양성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치열한 입시 경쟁. 교육은 학생을 평가하는 거의 유일한 지표인 국·영·수 주요 과목의 향상에 온 힘을 쏟고, 학부모들은 그 것만으로도 부족했는지 사교육에까지 열을 올리지요.

 

글을 쓰고 있는 저 역시도 고등학생이니만큼 치열한 입시 경쟁을 피할 순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그렇습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의 교육은 본연의 자세에서 벗어나 냉혹한 사회의 부속품이 되어 '사회인 양성소'의 역할에만 충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국민들은 어느새부턴가 그렇게 변질된 교육의 의미를 무덤덤하게,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 내던져진 학생들

 

일제 시대의 잔재인 두발 규제, 불필요한 체벌, 학생회장 입후보의 성적 제한…. 청소년의 인권, 국민들은 얼마나 신경 쓰고 있을까요?

 

이런 명백한 인권 침해가 벌어지고 있음에도, 어른들은 전혀 흥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말합니다.

 

"사회에선 더 큰 어려움이 있어. 고작 그거에 침해 운운하는 것이 더 웃기지 않니?"

"그저 주목받고 싶거나 날라리같은 녀석들이 꼭 인권 운운하지. 공부나 해."

 

대한민국에서 우리의 교육은, 그저 사회인이 되기 전에 거쳐야 할 중간 단계입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은 학교가 우리의 사회상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치열하고 냉혹한 경쟁, 약육강식의 세계. 어른들은 '사회인 양성소'에서 학생들이 그것을 느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학교가 학생들을 사회에 적합한 인간으로 양성시키는 데에 별다른 이견은 없습니다. 학교란 것은 학생들의 사회성을 길러주는 데에도 책임이 있으니까요. 허나 우리의 교육은 사회성을 강요한 나머지, 가장 중요한 목표를 잃었습니다.

 

학생들은 촌지를 통해 사회에 만연한 뇌물에 대해서 배울 것이 아니라, 촌지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통해 뇌물이 얼마나 부패한 것인지에 대해 배워야 합니다.

 

학생들은 두발 규제를 통해 위법 행위와 인권 침해에 무덤덤해질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인권을 찾아가며 국민의 권리를 위해 투쟁했던 민주주의 정신을 느껴야 합니다.

 

학생들은 학생회장 입후보 성적 제한을 통해 능력이 곧 학력이라는 가치관을 가질 것이 아니라, 다양한 학생들의 '자유로운 입후보로' 학력만이 그의 능력을 가늠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사회성을 기른다'는 말이, 더러운 사회 현실과 타협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교육은 학생들에게 사회의 구정물을 쏟아붓기 전에, 구정물을 정화시키는 법부터 가르켜야 합니다. 교육의 진정한 의미는 사회를 구성하는 더러운 인간들을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민주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니까요.

 

'보수꼴통' 혹은 '좌빨' 사이, 우리의 표심은

 

정치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에 어른들은 말합니다.

 

"어른들 하는 말을 줏어들은 주제에 어디서 아는 척을 해."

 

저도 고등학생으로서 그런 이야기를 자주 들었고, 대부분 동감합니다. 학생들은 인터넷과 미디어 같은 각종 매체들을 통해 필요한 정보는 물론이고 불필요한 정보까지 여과없이 받아들입니다.

 

어떤 학생들은 인터넷 웹 서핑을 하며 읽은 글에서 자신도 모르게 분개하곤 합니다. "한나라당은 보수 꼴통이야!"

 

어떤 학생들은 논술 준비를 위해 매일 같이 읽는 신문에서 한가지 결과를 도출해내죠. "진보 세력은 대부분 친북 세력에다 나라를 팔아 먹으려는 사람들이로구나."

 

그리고 우리의 교육은 그런 학생들을 위해 국·영·수를 가르칩니다. '사회성'과 '무한경쟁'이라는 두가지 키워드에 얽매인 우리 교육은, 많은 부분을 간과합니다.

 

학생들이 자신들의 가치관을 세우고, 미래에 대한 꿈을 꿀 때 우리의 교육은 무얼 가르쳤습니까. 더러운 사회의 현실, 국·영·수의 중요성만을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건강하고 깨끗한 정치관을 길러야 할 학생들이, 편협하고 이기적인 정치관을 기릅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투표권은 '보수꼴통' 혹은 '좌빨'이라는 편견 아래 행해집니다.

 

교육은 대체 무얼 하고 있습니까? 깨끗한 정치인, 능력 있는 정치인 구분하는 법을 제대로 가르치긴 하고 있습니까?  편향된 의견을 걸러낼 줄 아는 능력을 가르치긴 하고 있나요?

 

학생들은 어른들의 정치적 편향성을 줏어들어서 받아들이기 이전에, 올바른 정치관을 길러야 합니다. 나중에 투표권을 갖게 됐을 때 후보가 진보 세력이던 보수 세력이던 편견을 가지지 않고, 능력과 청렴함을 기준으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겠금 말이죠.

 

축구가 페어플레이를 추구하듯이

 

제가 너무 이상주의적이라구요? 학교는 이상주의적이어야 합니다. 올바른 인간상, 모범적인 인간상, 도덕적인 인간상. 그것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참된 의미가 바로 그 것 아닌가요.

 

축구가 페어플레이를 추구한다고 해서, 언제나 깨끗한 축구만을 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그 것에 가깝게 가려고 노력하죠. 현실과 비슷하게 하기 위해서 심판을 없애고, 비리를 허용한다면 축구는 어떻게 될까요?

 

유토피아가 되라고 해서 모든 것이 이상적으로 변화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페어플레이를 추구하는 프로스포츠처럼, 우리의 교육은 이상적인 교육을 끊임없이 추구해야 합니다.

 

사회에 적응하고 사회에서 경쟁하는 법을 아예 가르치지 말란 말이 아닙니다. '올바른 민주시민 양성'이라는 가장 큰 목표를 놓지 말라는 말입니다. 국·영·수에 치중한 나머지 도덕적이고 깨끗한 가치관을 가진 학생을 양성하는 목표를 까먹지 말라구요.

 

교육의 목표는 국가의 일꾼? 민주시민?

 

"하지만 관료조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조차 백미러를 통해 자신들보다 훨씬 뒤처져 있는 자동차를 볼 수 있다. 타이어는 펑크가 나서 흔들거리고, 라디에이터에서는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이 차량은 뒤따라오는 차까지 속도를 낼 수 없게 만든다. 이 부서진 고물 자동차를 유지하기 위해 4000억 달러를 들이는 일이 가능할까? 물론 가능하다. 실제로 해마다 그만한 비용을 쏟아붓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미국의 학교이다.

 

미국의 학교들은 대량생산에 맞게 디자인되어 공장처럼 가동되고, 관료적으로 관리되며, 강력한 교원노조와 교사들의 투표권에 의지하는 정치인들로부터 보호받는다. 

 

이들은 20세기 초의 경제체제를 완벽하게 반영하고 있다. 그들의 유일한 위안은 다른 나라의 학교들도 그보다 나을게 없다는 점이다. 기업들이 속도 경쟁을 벌이며 변화에 매진하는 동안 공교육 체제는 독점의 혜택을 누리며 보호받고 있다." (앨빈 토플러, <부의 미래> 중에서)

 

앨빈 토플러는 시대에 뒤처지는 공교육의 변화 속도를 '10마일'에 비유하며 그 문제점을 꼬집었습니다.

 

대한민국 교육은 어떤가요? 60~70년대 '경제 발전'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국민들이 합심하던 그 때에,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할 인간을 개발하던 교육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군부 독재는 청산됐지만, 교육계에 그들의 잔재는 여전합니다. 일제 시대의 것까지도 여전히 남아있으니까요. 맞아요. 우리의 교육은 시대의 흐름을 전혀 따라잡지 못하는 느림보입니다.

 

이명박 차기 정부는, 공교육 선진화라는 목표를 가지고 대대적인 변화를 꾀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것은 막대한 예산을 들인 "영어 공교육 강화"라는 핵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차기 정부가 제한된 예산과 인력을 신경쓰지 않고 "전과목 영어 수업 검토 중" 운운하는 것까지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70년대 교육 방식. 그 기틀 아래, 무언가를 선진화해보겠다는 생각 자체가 넌센스입니다.죽어 가는 환자에게 치료 대신 성형 수술시켜주는 격이라고나 할까요?

 

오히려 경쟁적인 교육 방식의 심화를 불러올지 모릅니다. 학교는 더이상 본연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사회인 양성소'의 의미만을 추구할지 모릅니다.

 

무엇을 위해 이 정책을 추진하십니까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님,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장님. 진정 공교육을 선진화시키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지금의 70년대 공교육, 뿌리부터 뽑아서 다시 세우세요. 단기간엔 어려우실겁니다. 교육은 10~20년 가지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 차분히, 아주 천천히 바꿔 나가야 하니까.

 

못하시겠다면, 당선자님은 당장의 업적을 세우고 싶으셔서 이 정책을 추진하고 계시는 겁니다. "이명박 정부가 무엇을 했다"라고.

 

교육을 당신의 사치품으로 생각치 마세요. 혹시 앞으로 이 정책을 특유의 불도저 정신으로 밀어 붙이실 거면, 공교육 선진화라는 말은 삼가해주세요. 어디로 봐도, 아무리 봐도 후진화니까. 저혈당 환자에게 인슐린을 투여하는 의사와 다를 바가 없으니까.

 

그리고 영어교육 정책 지지자 분들께. 저는 현재의 교육이 좋다, 영어 공교육이 좋다 라는 말은 한 적이 없습니다. 초등학교부터 영어 가르쳐놔도 간단한 회화도 안되는 영어 교육이 설마 좋을 리가.

 

문제는 영어 교육 정책의 밑바탕이 되는 교육의 거대한 틀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것을 신경 쓰지 않은 채 영어 교육 정책을 강행하겠다는 것은, 당장의 업적에 눈이 먼 욕심이지요.

 

그렇게 하면 어느 세월에 다 하느냐구요? 원래 교육이란 것이 그렇습니다. 나라의 국운이 걸린 일이니만큼, 차분히, 온갖 공을 들여야 합니다. '교육백년지대계(敎育百年之大計)' 라는 말이 괜히 있겠어요.

 

'빨리 빨리' 정신도 좋은데, 그 것이 언제나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부실 시공과 무리한 증축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성수 대교와 삼풍백화점을 통해 여실히 느끼셨을 겁니다.


태그:#이명박, #인수위원회, #이경숙, #영어 교육 정책, #공교육 선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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