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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국현의 정책은 기업정책에 불과하지 경제정책은 아니라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경제학자인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다. 문국현의 경제정책은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여 국민소득을 증가시키는 방식이므로, 공급측면을 강조하는 공급경제학(Supplyside Economics)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물론 감세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고 근로의욕을 북돋는 미국 레이건 행정부의 경제정책으로 알려진 공급경제학과는 전혀 다른 정책이다. 지속적으로 생산성을 높여서 장기 성장 기반을 조성하고, 이를 토대로 지속가능한 고도성장을 달성하고자 하는 정책이다. 이론적으로는 경제학자가 꿈꾸는 최선의 정책인데, 문제는 과연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존재하는가다.

 

문국현 사장의 유한킴벌리 모형

 

한국경제 문제의 핵심은 노동자 대부분이 중소기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이들 노동자의 생산성이 낮다는데 있다. 그래서 하루가 다르게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고, 결국 국가 전체적으로도 생명력을 잃게 하고 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지금 파멸의 절벽 끝에 놓여있다.

 

1995년 젊은 문국현 사장이 취임했을 때 바로 유한킴벌리의 사정이 그러했다. 세계적인 대기업인 P&G와의 경쟁에서 밀려 회사 제품의 시장점유율은 추락했고, 회사는 존폐의 위기에 몰렸다. 문국현 사장이 취임한 것도 이러한 회사 사정과 무관치 않으리라는 관측도 있다. P&G와의 경쟁에서 이길 묘수를 찾지 못했기에 평소 올곧은 소리 잘하며 과감한 혁신을 주장하던 젊은 문국현에게 회사를 맡겼다는 것이다.

 

문국현 사장은 노동자의 생산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에게 교육을 더 많이 시켜야 한다. 아마 최고의 경영자라면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 수준이 안되는 경영자라면 아마 정리해고부터 생각했을 것이다.

 

문국현의 '혼이 있는 경제'

 

그러나 문국현 사장은 모두가 예상치 못한 뜻밖의 대책을 내놓았다. 난데없이 4조 3교대라는 새로운 교대방식을 주장한 것이다. 이 방식은 발전하여 유한킴벌리에서는 최근 4조 2교대 방식의 작업을 하는데, 전 직원이 4조로 나뉘어 16일을 주기로, 주간 12시간 4일 근무, 휴무 4일(교육 1일 포함), 야간 12시간 4일 근무, 휴무 4일의 순서로 근무하는 것인데, 주간 평균 근로시간은 약 42시간이고 교육시간을 포함하면 45.5시간으로 이루어진다.

 

쉽게 말하자면 일하는 날은 12시간을 일하지만 1년에 절반인 180일은 집에서 쉬는 그런 근무방식이다. 상상이 되는가? 일년에 절반은 집에서 쉬면서 남들과 같은 월급을 받는다는 것이.

 

이러한 교대방식에 대한 문국현 사장의 지론은 이랬다.

 

"사람의 능력은 손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도 그리고 가슴에도 있다는 것을 마음 속 깊이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경영 속에 녹여서 실천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원의 능력을 100% 아니 120%까지 끌어내려면 머리와 뜨거운 가슴까지 활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직원들이 지식혁신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회사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우선 직원들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작업환경과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야 하며 직원들이 공부한 것을 적용해 볼 수 있도록 참여경영의 장을 마련해야 합니다."(‘세계가 배우는 한국기업의 희망, 유한킴벌리’ 중에서)

 

문국현 후보의 ‘혼이 있는 경제’론은 바로 이 3H(Hand, Head, Heart)에서 나온다. 하급의 경영자가 노동자의 손만 쓰게 한다면, 중급의 경영자는 노동자의 손과 머리를 쓰게 하고, 최상급의 경영자는 노동자의 손과 머리뿐 아니라 가슴에서 우러나온 열정까지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교육을 한다고 다그치면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그 교육시간에 졸 것이다. 그가 진정으로 공부를 하겠다는 열정이 있어야 창의력이 길러지고 비로소 혁신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세계최고의 학습국가로

 

그러나 처음에 이런 문국현 사장의 뜻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노동조합은 올곧기만 한 젊은 사장이 효율성을 올리기 위한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므로 노동자에게 피해가 갈 것으로 짐작했다. 특근수당이 줄어서 수입이 줄 것을 걱정하는 노동자도 있었다. 일각에서는 노동조합을 해체하기 위한 술수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노조의 반대로 이 시도는 무산되었고, 후에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문국현 사장이 평생고용을 보장하자 비로소 신뢰가 쌓이면서 4조 2교대제는 정착된다.

 

4조 2교대제는 큰 성과를 발휘했다. 공장의 가동률이 높아졌고, 노동자들에게 여유를 주고 생체리듬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이직율을 줄이는 효과도 있었다. 대우가 나쁘지 않았음에도 불규칙한 야간작업 때문에 회사를 떠나는 경우가 많았던 모양이다. 무엇보다도 기대했던 대로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었다. 2003년 한해 군포공장에서 334명의 직원이 2690건의 제안을 했고, 그 중 85.3%가 채택될 정도로 지속적 혁신이 이루어졌다.

 

목표했던 대로 최근 유한킴벌리의 1인당 교육시간은 연간 300시간에 달한다고 한다. 세계 최고의 학습 기업으로 거듭난 것이다. 공부를 통해 유한킴벌리를 구해냈기에 그는 자신있게 위기의 한국경제를 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는 대한민국을 세계 최고의 학습국가로 만들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그를 통해 우리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세계최고 수준으로 올려놓을 것이다. 양극화로 인한 폐해가 종식되는 것은 물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성장률이 높아질 것이다.

 

멀티플레이어 박지성

 

문국현 사장을 폄훼하는 사람들은 4조 2교대를 통한 생산성 향상은 유한킴벌리와 같은 특수한 사례에 한정된다고 주장한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필자는 그들이 유한킴벌리 모형의 특성을 잘 모를뿐더러, 특히 시대의 변화를 잘 모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시립대 신봉호 교수 등의 연구에 의하면 생산성 향상의 핵심은 학습에 있다. 즉, 학습이 부수되지 않는 4조 2교대제는 성공하기 힘들다. 특히 작업장에서의 평생학습은 노동자를 다기능 선수(multi-functional player)로 만든다. 흔히 편하게 멀티플레이어라고 부른다. 노동자들은 아무런 생각없이 단순 작업만을 하는 기계적 인간에서 벗어나, 영어를 익히고 인터넷을 하며 전세계의 정보를 취합해서 동료들과 함께 토론하며 더 나은 생산방법을 찾는 혁신형 인간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축구로 비유를 들자면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의 기둥으로 떠오른 박지성, 이영표 선수 등이 바로 멀티플레이어의 전형이다. 공수에서 다양한 역할을 하는 멀티플레이어가 많을수록 폭넓고 다양한 전술이 가능해져서 상대 진영의 공략이 쉬워진다. 걸출한 축구감독 히딩크의 천재성은 바로 멀티플레이어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서 비롯된다.

 

그는 당시 국내에서 큰 호평을 받지 못하고 있던 박지성과 이영표 선수를 주목했고,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이 2002년도에 월드컵 4강에 오르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특히 속도가 빠른 영국의 프리미어 리그에서 이들 멀티플레이어들의 진가가 드러나고 있다. 만약 그런 선수가 서넛 더 있다면 대한민국 축구는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도요타의 간반(Just-in-Time) 시스템

 

도요타는 기업 경영에서 멀티플레이어가 중요하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 사례이다. 도요타는 현재 고급 승용차 렉서스를 앞세워 사실상 미국 자동차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70년대 이후 도요타의 급성장에 놀란 세계의 경영학자들은 도요타의 경영기법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도요타가 채택하고 있는 간반시스템(Just-in-Time)이라는 경영기법을 주목했다.

 

이 기법은 사실 자본이 부족한 도요타가 미국의 대형 자동차업체와 경쟁하기 위해 마지못해 도입한 기법이었다. 자본이 부족했기에 충분한 부품을 쌓아놓고 기술자의 지원을 받으면서 자동차를 조립할 수 없었다. 모든 생산 공정이 정확한 시간에(just in time) 한 치의 차질없이 진행되어야 했다.

 

그래서 도요타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조립구간에 문제가 생기면 지체없이 처리하도록 요구받았다. 이는 도요타의 조립공들이 컨베이어 벨트와 관련한 기계 설비에 대해서도 전문가가 되어야 했음을 의미한다. 미국의 노동자들이 한 가지 일만 하는데 반해, 자본의 부족을 극복해야 했던 도요타의 노동자들은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해야 했던 것이다.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했기에 도요타의 노동자들은 더 많은 시간을 학습에 투하해야 했다. 한 가지 일도 힘든데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공부까지 해야 하는 최악의 노동조건에 몰린 것이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다양한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하는 도요타의 노동자들이 혁신 노동자로 탈바꿈하면서 도요타의 생산성이 급상승했다. 이러한 혁신 덕분에 자동차의 불량률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싸구려 자동차에 불과했던 도요타 자동차는 오히려 잔고장이 없는 자동차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학습기업으로 탈바꿈한 도요타에서는 놀라운 일들이 연이어 벌어졌다. 제 시간에 부품을 대기 위해서는 부품회사와의 유기적 관계가 중요했고, 그래서 부품회사에도 전문가를 파견하여 함께 연구하고 학습하였다. 자연스레 부품업체의 노동자들도 학습노동자로 전환하였고 세계 최고 품질의 부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도요타와 협력기업간의 공조가 일궈낸 업적이었다.

 

한편 혁신적 노동자들은 반복 작업을 자동화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는 일찍부터 공장형 로봇의 도입을 촉진하였다. 일본이 현재 로봇 기술에서 세계 최첨단을 달리게 된 연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끊임없는 학습을 통한 혁신적 노동자의 배출이 바로 도요타가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만들어내는 원천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영방식이 도요타에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평생학습을 통한 지식근로자의 양성과 이들을 통한 혁신 주도를 설파한 피터 드러커의 경영철학이기도 하다.

 

 문국현 사장이 아시아의 피터 드러커로 불리며 피터 드러커의 경영철학을 열심히 공부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경영철학이 한국에서 현실화 된 것이 유한킴벌리고 일본에서 현실화 된 것이 도요타이며, 현재 전 세계의 수많은 기업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마치 대학의 캠퍼스나 공원과 같은 분위기를 내고 있는 구글에 가보라. 마이크로 소프트를 비롯한 다른 회사들도 마찬가지다. 넥타이를 벗어던지고, 농구를 즐기면서 학습하고 있는 최첨단 지식근로자들의 모습을 보라. 이미 세상은 그렇게 학습경쟁사회로 변한지 오래되었다. 오직 한국의 지도자들만이 이러한 세계적 현상을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멀티플레이어를 요구하는 첨단 축구, 첨단 경영, 첨단 경제

 

현대자동차 임원이 도요타 자동차와 현대자동차를 비교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전반적인 기술력 면에서는 도요타를 따라잡았는데, 협력업체의 부품 품질과 노사관계에서만 밀린다는 것이었다. 바로 사람 중심의 경영철학이 부족해 생긴 공백이다. 하도급 기업에 비정규직을 사용하도록 강요하는 체제에서 부품 품질은 좋아질 수 없다. 사람의 열정을 끄집어 낼 수 있는 사람중심의 경영이 정립되지 않는 한 도요타를 따라잡기 힘들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한계가 바로 대한민국의 한계다. 지금 대한민국이 요구하는 것은 열정을 바쳐 학습하고 혁신하는 지식근로자의 양성이다. 바로 첨단 축구, 첨단 경영, 첨단 경제가 요구하는 시대적 과제이다. 세계적 메가트랜드에 주목해온 실천적 지도자만이 바로 그 시대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다. 늦게나마 우리에게 그런 지도자가 나타난 것이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홍종학 경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문국현 예비후보의 정책자문단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문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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