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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보다 정보다 더 질기고 더러운 것이 뭔지 아요?”


순간, 내 마음 속에 물결들이 여러 갈래로 흩어진다. 사랑보다 질긴 것이 정이라고, 오죽하면 정을 더럽다는 말로 표현을 했겠는가? 그런데 그 정보다 더 질기고 더러운 것이 있다니.

 

나에게 사랑보다 정보다 더 더러운 것이 뭔지 아느냐고 물어보신 분은 65세 구직자였다. 30년이 넘는 직장생활을 접고 퇴직한 지 6년째. 퇴직하고 살아온 6년 동안 날마다 마음을 닦는 공부를 하고 있다는 어르신은 조용히 나에게 물었다. “사랑보다 정보다 더 질기고 더러운 것이 뭔지 아요” 라고.

 

말없는 시간이 흘렀다. 어르신은 나에게 답변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할 뿐이었다. 하얀 종이컵에 담긴 물을 한 모금 들이킨 후 한숨을 내쉬던 어르신은 “그것은 습관이여. 습관”이라고 말씀하셨다. 습관이라는 단어가 천둥처럼 머릿속을 때렸다.

 

일이라면 질리도록 해 보았다는 어르신은 퇴직해 버리면 행여나 아이들 혼사가 더디어질까봐 현직에 있을 때 부모 노릇 하나라도 더해 주려고 아이들까지 부지런히 제 짝을 찾아주었다.

 

자식들 혼사까지 시켰으니 이제 남은 인생 여행도 다니고 그동안 못해 봤던 것들도 하면서 편히 살아야지 작정하고 정년을 일 년 앞두고 퇴직을 하셨다. 하지만 놀아본 사람이 놀 줄도 안다고, 30년이 넘은 세월 동안 몸과 마음은 이미 그 일상에 시계추처럼 길들여져 있었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제 시간에 눈이 떠졌고 출근 때가 되면 자신도 모르게 안절부절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폐기처분을 기다리는 폐품 같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힘들어졌다.

 

“내 몸이고 내 마음인데도 뜻대로 되지가 않았어.”

 

직장생활을 할 때는 일에 치이고, 사람과 승진 스트레스에 시달려 하루 빨리 때려치워야지라는 생각을 계절병 앓듯이 했는데 이제는 일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돼버렸다는 어르신은 “돈도 필요 없으니 아침에 눈을 뜨면 갈 곳이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하신다.

 

고령구직자를 상담하다 보면 한결같이 하시는 말씀이 아직은 젊은데, 충분히 현업에 종사할 수 있는데 너무 빨리 정년이 와 버렸다는 거다.

 

고령자들의 구직 욕구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비는 여전히 미비하다. 특히 노년의 일자리에 대해 개인이 준비한 것은 거의 없다. 현실의 무게에 눌려 '현재에 충실하면 미래는 어떻게 되겠지', '젊어서 실컷 일했는데 나이 들어서까지 일은 무슨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퇴직이 현실이 되고 일이 없는 날이 늘어가면 노년은 허깨비 같은 삶이 되어 버린다.

 

어르신처럼 한 직장에서 오래도록 근무하신 분들의 공통점은 퇴직 후에도 여전히 예전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신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데' 하는 생각이 결국 자신을 더 힘들게 하기도 한다.

 

현명한 삶이란 어쩌면 버리는 연습을 하는 삶일지도 모른다. 욕심을 버리고 권위를 버리고 몸에 밴 습관을 버리는 연습을 하는 것.

 

어르신은 퇴직한 지 6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예전의 습관에서 조금씩 벗어났다고 하신다.

 

“버리고 비우고 나니까 이제 편해. 나이가 들수록 혼자 놀기도 잘 하고. 일이 있어야 해.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그것으로 족해.”

 

나이가 들수록 혼자 놀기를 잘하고 일이 있어야 자식에게도 집사람에게도 덜 섭섭해진다는 어르신에게 나는 또 한 수를 배운다.

 

사람들은 내가 직업상담을 한다고 하면 “참, 좋은 일을 하시네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나를 찾아오시는 분들 덕분에 인생을 배우고 삶의 지혜를 얻는다.

 

노년의 일, 노년의 직업. 제2의 인생을 위해서는 시간보다 시점이다. 퇴직함과 동시에 과거의 습관을 벗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매진하는 것, 거기서부터 제2의 인생이 시작된다.

 

시간(time)보다 시점(timing)

 

질레트라는 면도기 회사가
일회용 면도기를 만들기로 결단했던 때,
포드 자동차가 근로자들에게 파격적인 일당을 지급키로
결단했던 때,

인텔사의 CEO 앤디 크로브가 자신을
해고하고 메모리 사업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 사업으로
전환할 것을 결단했던 때 등

한 순간의 결정으로 인해
비즈니스의 역사가 뒤바뀐 장면들이다.
이는 연속적인 시간(time)보다
의미 있는 때(timing)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 김석년의'변화' 중에서 -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국정브리핑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고령자일자리, #제 2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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