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문화홀에서 열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기자회견에 참석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문화홀에서 열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기자회견에 참석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유성호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화두는 영화의 힘과 진실이었다.

5일 오전 부산 해운대 센텀CGV에서 기자 시사가 있었고, 이어 오후에 감독과 기자간담회가 열린 자리에서였다. 해당 작품은 그의 첫 번째 글로벌 프로젝트로 까뜨린느 드뇌브, 줄리엣 비노쉬, 에단 호크 등이 출연했다. 

기자간담회 당일 부산에 도착해 급히 회견장을 찾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한국영화 100주년인 의미 있는 해에 부산영화제에서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해 더욱 기뻤다"는 말로 운을 뗐다. 그는 "부산영화제와 함께 저 역시 역경을 극복하며 길을 걸어 왔다"며 영화제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드러냈다.

황금종려상 효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문화홀에서 열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기자회견에 참석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문화홀에서 열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기자회견에 참석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유성호

 
<어느 가족>으로 2018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후 프랑스에서 쟁쟁한 배우들과 작업한다는 소식에 영화팬들의 궁금증이 컸던 상황이었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원제는 <진실>로 사실 <어느 가족>보다 이른 2015년 감독이 직접 이야기를 구상해 쓰고 캐스팅까지 진행해온 경우였다. 

12년 전 줄리엣 비노쉬와 쭉 친분을 쌓아왔다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가끔 그와 만나며 교류했고, 2015년에 완성된 이야기를 줄리엣 비노쉬에게 전했다"며 "이미 제 노트 첫 페이지엔 까뜨린느 드뇌브, 줄리엣 비노쉬 이름이 적혀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황금종려상 수상이 캐스팅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됐던 사실을 전하며 "캐스팅을 위해 만난 배우들이 먼저 축하의 말부터 전하더라. 그 상의 은총을 톡톡히 누렸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영화엔 엄마이자 관록의 배우인 파비안느(까뜨린느 드뇌브), 그의 딸인 루미르(줄리엣 비노쉬), 그리고 손녀 마농(마농 끌라벨) 등 세 여성이 축이 된다. 그간 가족에 대한 탐구를 영화에 녹여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번엔 가족 드라마라기 보단 연기란 과연 무엇인가로부터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며 "영화엔 다양한 딸과 어머니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들의 관계가 역전되기도 하는데 어머니이자 딸, 손녀이기도 한 그들의 모습을 다층적으로 그리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언어가 다른 만큼 소통방식도 중요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제가 일본어밖에 못해서 처음엔 소통이 과제처럼 느껴졌는데 뛰어난 통역사분을 만나 도움을 받았고, 그 외의 경우엔 제가 손편지를 직접 써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배우들에게 전했다"고 말했다.

참고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편지로 배우와 소통하는 방식을 즐기는 편이다. <어느 가족> 당시 출연 배우인 릴리 프랭키와도 SNS를 통해 자신의 편지를 전달했다는 후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15년 전 배두나씨와 작업할 때도 서로 공통언어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하는지 보조를 맞출 수 있었다. 언어는 나중엔 필요없어졌다"며 특별한 기억을 전하기도 했다.

이어 그는 "일본에서 촬영할 땐 집이 작은 편이라 구조가 머릿속에 감각적으로 들어와 있는데 프랑스 집은 매우 넓어 가늠하기 힘들었다"며 "그래서 시나리오 완성 직전 이틀 밤을 촬영지인 그 숙소에 머물며 직접 걸어 다니며 대사를 읊었다. 집이 넓어서 대사량을 더 늘려야 했다"고 전했다.

영화 제목처럼 '진실'을 전면에 내세운 것에 대해서도 그는 "거짓과 허구가 뒤섞인 자서전을 쓴 어머니가 있고, 그를 찾아오는 딸의 이야기인데 딸 역시 자신을 속이는 부분이 있었다"며 "어머니와 보내는 일주일의 시간에 그들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연기하기도 하고 마법을 사용한다. 그렇게 서로 도달하고 싶었던 진실을 찾게끔 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한일 관계 경색 질문에... "영화의 힘 믿는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한일 관계 경색 질문에... “영화의 힘 믿어”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5일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기자회견에서 악화된 한일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유성호

 
평소 아베 정권에 비판적이었고, 영화를 통해 국가주의가 아닌 해체주의에 가까운 메시지를 전해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게 한일관계 경색으로 인한 생각을 묻는 질문이 나왔다. 실제로 양국 관계가 냉각되며 <날씨의 아이> 신카이 마코토 감독 등 한국에서 큰 흥행을 거둔 일본 영화인들의 내한이 취소되거나 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이 질문이 나올 걸 예상했다. 오히려 앞선 질문이 더 어렵게 느껴진다"며 재치 있게 응수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5년 전쯤인가 부산영화제가 정치적 압력으로 개최가 어려울 수 있는 상황이 있었다"며 "그때 전 세계 영화인들이 연대해서 부산영화제를 지지하는 목소리를 냈다. 저도 미력하게나마 연대했다"는 말로 답을 시작했다.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며 영화제가 지금까지 이어졌고 저도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 부산영화제가 대응을 잘했고 잘 견뎠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문제와 여러 고난을 겪었을 때 영화인들이 연대하고 서로를 더욱 깊이 내보였는데 이런 형태의 연대가 가능다는 걸 보이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올해 이 자리에 저 또한 와 있다. 지금 이 자리엔 영화의 힘을 믿는 영화인들, 기자분들, 사람들이 와 계시다고 생각한다. (중략)

평소 영화 작업할 때 전 일본영화를 한다고 의식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시아 영화인이라는 의식은 있다. 프랑스에서도 그랬다. 다만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을 뿐이다. 평소 동시대를 사는 아시아 감독님들에게 자극받고 영감을 얻는다. 저 또한 그분들에게 제 영화를 보일 때 부끄럽지 않고 싶다. 그래서 이번에 받은 아시아인영화인상이 제게 의미가 크다. 

이번 영화에서 프랑스, 미국 스태프와 함께 했고, 오늘 이렇게 부산영화제에 왔는데 제겐 눈에 보이는 국가라는 공동체보다 영화라는 공동체가 훨씬 더 풍요롭고 크다는 걸 실감한다. 내셔널리즘과 전혀 무관하게 서로가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고 영화로 연대하고 있는 걸 느낄 때 정말 행복하다. 그런 경험을 거쳐오며 제 영화는 물론이고 저 역시 한 사람으로서 성장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문화홀에서 열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기자회견에 참석해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문화홀에서 열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기자회견에 참석해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유성호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남포동이 살아난다' 김지미에 생기 넘친 부산영화제 고향

[BIFF 현장] 원도심 살리는 커뮤니티비프... 첫날 행사부터 관객들 '관심'

부산영화제가 태동한 남포동 비프광장이 원로배우 김지미와 함께 부활을 선언했다. 옛 영화를 회복하겠다는 듯 오랜만에 열린 남포동 행사에는 많은 관객들이 몰렸다. 이곳을 찾은 이들은 한국영화 역사를 상징하는 배우의 이야기를 들으며 추억을 떠올렸다. 부산영화제 개막 이틀째이자 커뮤니티비프가 시작된 4일 남포동 비프광장은 낮 12시부터 <종이꽃>의 무대인사를 시작으로 행사를 이어갔다. <종이꽃> 고훈 감독과 안성기, 유진 등 출연 배우들이 무대에 올라 영화 상영에 앞서 관객들에게 인사를 했는데, 정오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남포동 야외무대에 마련된 좌석들이 대부분 들어차는 등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오후 1시부터 이어진 <종이꽃> 상영은 평일인데도 일반 관객 좌석은 매진되는 등 관심이 뜨거웠다.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도 마찬가지였다. 죽음을 소재로 한 영화지만 밝고 따듯하고 웃음이 섞인 영화에 관객들은 적극적으로 반응하면서 남포동의 열기를 한껏 달궜다. 남포동으로 새 옷 입고 돌아온 영화제 남포동에 힘을 잔뜩 불어 넣어 준 것은 김지미 배우의 토크쇼였다. 이날부터 3일간 이어지는 김지미 배우의 토크쇼 첫날엔 2번의 상영과 대담이 이어졌다. 관객들을 위해 마련된 토크쇼 좌석은 모두 들어찼고 무대 주변으로도 사람들이 운집해 1990년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북적였던 남포동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챙길 수도 없었던 '미운오리새끼' 같았던 공간이 원로배우의 손을 잡고 백조처럼 화려하게 부활의 날갯짓을 하는 순간이었다. 평상시 거리를 채우던 노점들은 예전처럼 영화제 기간 중 남포동에서 철수했고, 거리는 시민들의 품안으로 돌아와 있었다. 영화제 역시 커뮤니티비프라는 새 옷을 차려입고 고향에서 잔치를 벌이는 모양새가 됐다. 사실 지금의 부산영화제를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곳이 남포동이었다. 부산영화제가 시작하던 때 남포동엔 극장 시설이 몰려 있어 거리에 젊은 관객들로 북적거리게 했다. 당시 외신은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시작한 영화제에 젊은 관객들이 거리에 가득 차 있다'며 20~30대 관객이 70~80%를 차지했다고 놀라워했다. 극장이 응집된 구조가 영화제의 성공을 이끌면서 부산영화제는 매해 눈부시게 성장했다. 안전사고가 우려될 만큼 엄청나게 몰려드는 관객들로 영화제측은 해마다 영화제 개최 장소를 놓고 고심했다. 남포동은 부산영화제 초기 관객들의 추억이 뚜렷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남포동 인근에 위치한 국제시장과 자갈치 시장 역시 영화제 성공에 많은 도움이 됐다. 그때만큼은 못했지만, 김지미 토크쇼에 모인 관객들이 20년 전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데 지장이 없었다. 부산영화제에서 남포동 역사는 외면하기 어려운 단단한 기초석과도 같았다. 올해는 태풍으로 인해 취소됐지만 매해 전야제가 열리는 공간이었다. 이 때문에 이용관 이사장은 2012년 17회 영화제를 앞두고 남포동에서 열린 전야제에서 "영화제의 고향인 남포동을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커뮤니티비프가 이 약속을 지켜낸 셈이다. 이날 원로배우 김지미는 커뮤니티비프의 상징적 인물로 부상하면서 남포동을 멋지게 장식했다. 부산영화제 초기, 한국영화의 중심을 이루던 영화인들은 이제 원로가 돼 지난 역사를 회고하며 김지미 배우의 이야기를 즐겼다. 김지미 향수에 남포동 북적북적 김지미는 한국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초대형 배우였던지라 이날 행사에 참여한 노년 관객들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김 배우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 60대 관객은 "예전부터 팬이었는데 오랜만에 보니 나이가 많이 드셨다"라며 그가 전하는 옛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일부 관객은 앞 자리 사람들에게 휴대전화를 넘겨주며 김지미 배우 대담 모습을 찍어 달라고 요청했다. 토크쇼 사이에 상영되는 김지미 배우 주연 영화에 대한 관심도 컸다. 많은 관객들이 광장에서 상영된 <티켓>, <을화> 등을 통해 옛 스타의 열연을 지켜봤다. 김지미 배우는 이날 대담에서 자신에게 과분한 사랑을 쏟아준 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모든 게 촬영, 조명 등등 각 분야에서 도움 준 분들의 덕분"이라고 스태프들에게 공을 돌렸다. 김 배우는 검열로 인해 소재 제약이 있던 시대를 이야기했고, 후배 배우들에 대한 격려와 성원도 아끼지 않았다. 조진웅 배우는 이날 처음 만난 김지미 배우에 대해 "명명백백하게 말하는데, 지금 영화를 찍는다고 할 경우 내가 형사 역할을 맡는다면 김지미 선생님은 조직의 보스 역할을 맡았을 것이라며 그 정도 압도당했다"고 고백했다. 김규리 배우 역시 "레드카펫을 걷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김지미 선생님의 걷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고, 너무 매력적이었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두 배우는 김지미 배우에게 '요즘은 동시에 3편 출연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당대 동시에 34편에 출연할 수 있었던 초인적 힘의 근원'과, '요즘도 여배우에 대한 제약들이 있는데, 더 많은 제약이 있었던 때 독보적인 여배우의 위치를 지켜낼 수 있었던 비결' 등을 물었다. 이에 대해 김지미 배우는 "가난한 시대에 영화 하기 좋지 않은 조건이었고 스타도 없었기에 모든 것을 내가 책임져야 했다"라며 어려운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해 불가피한 과정이었음을 설명했고, "풍요로운 시대 더 열심히 해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또한 "아직까지 남성우월주의가 있으나 이 흐름이 바뀔 수 있다"면서 "지금은 여성이 활발하다, 자기 역할에 열심히 해달라"라고 후배 여배우들에게 조언했다. 김지미 배우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관객은 "김지미 배우를 예전부터 잘 알고 있거나 혹시 팬이었냐"라는 질문에 "대한민국에서 김지미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었겠냐"며 "예전에는 정말 예쁘셨다. 나이가 드셨지만 여전히 그 모습을 유지하고 계신 것 같다"고 말했다. 남포동 행사에 대해서도 그는 "오랜만에 남포동에서 영화제가 행사가 열리니 사람도 많아진 것 같고 보기 좋다"라고 덧붙였다. 커뮤니티비프의 한 관계자는 "(관객들이 영화제) 초반부터 남포동 행사에 관심을 많이 가져 더 정신이 없다. 분위기가 너무 좋다"라고 말했다. 한편 관객 참여행사가 중심인 커뮤니티비프는 3일간 이어지는 김지미 토크쇼를 시작으로, 오는 12일까지 남포동과 광복동, 중앙동 등 원도심에서 다채로운 행사를 진행한다.

사채 때문에 위장이혼했는데, 로또 당첨됐다? 이 남자의 비극

[넘버링 무비 158]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럭키 몬스터>

봉준영 감독의 데뷔작 <럭키 몬스터>는 말장난처럼 보이는 세 줄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사채업자에게 큰 빚까지 지고 거의 망한 인생의 끝자락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주인공 도맹수. 어떻게는 살아보겠다고 녹즙기 판매 회사에까지 들어가지만 다단계로 끊임없이 수렁으로 빠지기만 한다. 남은 유이(有二)한 낙이라고는 값싼 막걸리를 마시는 일과 동네 한 귀퉁이에 마련된 아이들을 위한 트램펄린을 타는 것. 독백과 함께 그가 서 있는 곳 역시 그 트램펄린이다. 정장 차림의 그가 10살 남짓한 아이들과 함께 그 위에 서 있는 모습이 이상하지만 한편으로는 슬퍼 보인다. 사채업자의 폭력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심지어는 아내 리아까지 협박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맹수와 리아는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만 위장 이혼을 하기로 결심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혼을 하자마자 50억이 넘는 로또에 당첨되어 하루 아침에 부자가 된다. 물론, 그렇다고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거액의 돈이 생기기는 했지만, 이제는 찾을 수가 없게 되어버린 아내와 그를 조금씩 건드려오는 사람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내면의 폭력성 등이 점차적으로 그를 잠식해가기 시작한다. 영화 <럭키 몬스터>의 설정상의 특징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주인공 맹수의 주변을 맴도는 또 다른 자아 '럭키 몬스터'의 존재다. 이 작품의 타이틀과도 동일한 '럭키 몬스터'는 주인공의 귓가에만 들리는 환청, 영화적 표현에 따르자면 맹수만를 위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DJ와도 같다.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럭키 몬스터'의 목소리를 지우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의약품인 용각산을 먹는 것이다. 다만, 어떻게든 목소리를 지우고자 하는 그의 노력과는 별개로 그 목소리가 항상 악영향만 주는 것은 아니다. 이는 실재하는 주인공과 허상의 목소리에 불과한 '럭키 몬스터'를 이어주는 매개가 되는데, 그 목소리가 바로 로또 1등에 당첨이 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주인공 맹수와 그의 또 다른 자아로 표현되는 럭키 몬스터가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물과 캐릭터다. 특히, 소심하고 퇴행적인 모습을 보이던 맹수가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와 외부 인물들의 끊임없는 자극으로 인해 점차 광기 어린 인물로 변해가는 모습은 극을 이끌어가는 동력이자 작품의 다양한 요소를 하나의 이야기로 응집시키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 맹수의 모습을 따르기라도 하는 듯이 다소 어리숙하게 시작하는 전반부와 점차 복잡해지기 시작하는 중반부, 잔혹한 장면들로 채워지는 후반부의 종잡을 수 없는 변주를 가능하게 하는 것도 변해가는 맹수의 모습이다. 주인공에게 선(善)으로의 전환을 강요하는 인물이 이 작품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이 작품만의 특징이다. 그나마 맹수에게 그 어떤 직접적인 영향도 끼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캐릭터가 선역에 가까워 보인다. (간접적으로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는 하나, 직접적으로 악한 영향을 끼치는 인물들에 비해서는 선역에 가까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로또에 당첨이 되어 찾아간 농협에서 만나게 되는 직원이나 녹즙기 판매 회사의 상사가 이에 해당한다. 반대로, 영화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이 그의 잠재되어 있는 폭력성을 증폭시키고 외부로 드러나게끔 자극한다. 어린 시절 같은 고아원에서 자라며 자신을 대신해 맞아주고 울어줬다는 이유로 주인공을 속이고 이용했던 아내 리아는 물론, 돈을 빌려줬다는 이유로 맹수의 삶을 괴롭히는 사채업자, 사채업자를 도와 폭행을 저지르는 부하, 약자를 도와준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폭력적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HR 컨설팅 직원들 모두. 심지어는 상대인 맹수가 약해 보이니 공원 정자의 자릿세를 내라며 시비를 거는 고등학생까지 말이다. 내부에서는 럭키 몬스터가 그렇다면, 외부에서는 다양한 인물들이 그를 자극해 오는 셈이며, 이 과정을 통해 주인공 맹수는 광적인 인물로 변화해 나간다. 언뜻 보기에는 복잡해 보이지만 생각보다 극을 쉽게 따라갈 수 있는 이유는 여러 지점에 떨어져 있는 하나의 시퀀스, 그리고 내러티브들의 집합이 생각보다 깔끔하게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데뷔작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군더더기 없이 절제된 연출이 이 작품의 매력을 더하는 셈이다. 특정 오브제에 의미를 부여하여 활용하거나 동일한 행동을 서로 다른 장면에서 끌어다 쓰는 부분에 있어서도 무의미하게 남용된 지점은 보이지 않는다. 특히, 인중을 긁는 행위는 작품 속에서 '거짓을 이야기 하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활용되는데 이 지점은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다. 오브제의 활용에 있어서는 '용각산'의 존재가 중요하다. 쉽게 설명하면, 영화 속에서 이 장치는 주인공이 지니고 있는 선(善)의 정도를 말한다. 실재하는 인물이 원래 맹수의 자아와 럭키 몬스터의 자아 사이에서 어느 쪽에 더 가까이 있는지를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주인공이 유약하고 소시민적으로 그려지는 초반부에서는 귓가에 들리는 럭키 몬스터의 환청을 지우기 위해 사용되는 물건이지만 시간이 흐르고 인물이 변화하면서부터는 점차 보이지 않게 되는 식이다. 극의 클라이막스에 이르러 맹수가 럭키 몬스터 그 자체가 되고 난 뒤에는 결국 쓸모가 없어진 럭키 몬스터를 폐기하는데 이용되기까지 한다. 영화를 연출한 봉준영 감독에 따르면, 스스로 생각하기에 독립 영화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특징적인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고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자신은 그 지점을 다른 방식으로 돌파하고 싶었고, 그랬기 때문에 지금의 <럭키 몬스터>와 같은 장르물의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10억이 채 되지 않는 부족한 예산과 한 달 사이에 20회차 이상을 소화해야 했던 강행군 속에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은 그의 심지가 그대로 전해져 오는 말이다. 그가 밝힌 것처럼, 영화를 처음 만난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분명히 익숙하지 않은 작품이 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 익숙하지 않음으로부터의 이상한 느낌이 부정적인 감정으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되려, 이전에 만나보지 못한 방식으로 인한 신선함과 다음을 예측할 수 없는 스릴감으로 전환될 것이다. 선정된 영화 전체를 잘 모르기는 해도,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나볼 수 있는 가장 이색적인 경험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