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영화<변산>에서 학수(박정민)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 장항선을 만났다.

영화<변산>에서 학수(박정민)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 장항선을 만났다.ⓒ 이희훈


드라마 <전우>(1975) 속 장 하사, 그리고 <실화극장>에 이은 <형사 기동대>(1983) 속 그 형사는 기성세대에겐 하나의 아이콘이었다. 반공드라마와 각종 형사물에서 온몸을 던진 배우 장항선(72)은 그렇게 몸을 잘 쓰는 통쾌한 연기로 대중에게 친숙하게 알려졌다. '전쟁 신에 잘 어울리는 배우'라는 소릴 들었다. 크고 작은 역할을 오가며 말 그대로 치열하게 연기했다.

"먹고 사는 문제였으니까..." 지난 2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장항선은 나지막이 말했다. 영화로는 <마마> 이후 7년 만, 작품 전체로 따지면 MBC 드라마 <오만과 편견> 이후 4년 만에 대중 앞에 서는 자리였다. 곧 개봉을 앞둔 이준익 감독의 신작 <변산>에서 장항선은 래퍼를 꿈꾸며 고향을 떠난 학수(박정민)의 아버지 역을 맡았다.

"왜 하필이라고 생각하던 그때..."

노을이 아름다운 작은 마을 변산. 학수에게 변산은 피하고 싶은 곳이었고, 건달 생활과 노름으로 가정을 저버린 아버지는 증오의 대상이었다. 아버지가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에 마지못해 학수가 고향을 찾게 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된다. 설정만 놓고 보면 마냥 무겁고 우울할 것 같지만, 분위기는 오히려 반대다. 인생사 폼이 우선인 아버지는 아들에게 꿀리기 싫어 애써 씩씩한 척한다. 고향 친구들의 익살맞은 태도가 <변산>의 묘미기도 하다.

장항선은 <왕의 남자>(2013)로 10여 년 전 이준익 감독과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재회한 소감이 궁금했다. "그때 감독님 느낌이 참 좋았다. 배려심 있고, 꼭 다음에 좋은 작품으로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었다"고 운을 뗀 장항선은 담담하게 그간의 이야기를 전했다.

 배우 장항선은 담담하게 그간의 일을 전했다.

배우 장항선은 담담하게 그간의 일을 전했다.ⓒ 이희훈


"연기자로서의 욕심이지만 좋은 작품에서 다시 만나 내가 그간 못했던 걸 감독의 도움을 받아 표출하고픈 마음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연락한다거나 차를 마신다거나 그런 건 없었다. 서로 바쁘기도 했고. 다만 그때 내가 괜찮았다면 다음에 불러주겠지 하고 생각만 했었지. <오만과 편견>이 끝나고 쉬던 터에 그러니까 재작년에 속이 안 좋아져서 병원에 갔다. 대장암이라더라. 병원에서 '잘 왔고, 지금 수술하지 않으면 안 된다'더라. 의사 분이 믿음이 가서 8시간에 걸쳐 수술했다.

병실에 있으면서 내 앞날을 생각했다. 이게 길면 3년도 간다는데, 왜 하필... 이런 병이 내게 왔을까. 드라마나 영화를 병실에서 보는데 저 역할을 내가 했으면, 또 이것도 해봤으면 하는 환상에도 빠지고 화도 났다. 그렇다고 주변에 알리긴 싫었다. 대장암이라고 소문나면 일을 안 줄까봐 쉬쉬했다. 다만 혹시라도 내 스케줄을 묻는 전화가 올까봐 항상 휴대폰을 머리맡에 두고 잤다.

그렇게 지내니 내 스스로 참 우스워지더라. 유명 배우는 아니지만 나름 열심히 연기했고, 손가락질 받진 않을 정도로는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아프니까 점점 집념도 약해지더라. 그러던 차에 이준익 감독에게 전화가 온 거다. 처음엔 받질 못해서 내가 전화했다. '왜 했을까? 나 아픈 게 소문나서 안부 전화한 건가' 그러던 차에 감독이 '작품 하나 들어가는데요' 하더라. 순간 온 몸에서 전율이 일더라. 주인공의 아버지 역인데 대장암 걸린 아버지라기에 혹시 제가 아픈 걸 아셨는지 물었다. 괜히 얘기했나 싶었지(웃음)."


장항선은 "그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시나리오를 받아서 보니 자신이 겪은 고통을 투영해선 안 되는 캐릭터였다. "병하고는 상관없는 캐릭터더라"며 그는 이준익 감독에게 한 가지를 부탁했다고 전했다. "오랜 만에 작품을 하게 돼서 행복하고 마음이 들떠 있는데, 혹시나 오버를 하게 되면 잘 누르고 잡아 달라"는 것이었다.

 영화<변산>에서 학수부 역을 맡은 배우 장항선.

영화<변산>에서 학수부 역을 맡은 배우 장항선.ⓒ 이희훈


 "그렇게 지내니 내 스스로 참 우스워지더라. 유명 배우는 아니지만 나름 열심히 연기했고, 손가락질 받진 않을 정도로는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아프니까 점점 집념도 약해지더라."

"그렇게 지내니 내 스스로 참 우스워지더라. 유명 배우는 아니지만 나름 열심히 연기했고, 손가락질 받진 않을 정도로는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아프니까 점점 집념도 약해지더라."ⓒ 이희훈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에게

보통의 이야기라면 장항선이 맡은 역할은 주인공의 보조적 기능을 하고 말았을 테지만, <변산>은 조금 달랐다. 홍보 과정에선 '청춘영화', '음악영화'라는 수식어가 붙지만 세대 간의 거리감을 좁히려는 가족 영화로 볼 수도 있다. 이준익 감독 역시 "기성세대로부터 온 무거운 짐을 털고 넘어가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어떤 배우든 열 가지를 하면 영화화 과정에선 몇 개가 잘리는 경험을 한다. (편집에 따라서) 내 캐릭터는 그냥 젊은 시절 술 먹고, 바람피우다가 병이 들어 아들과 다투는 게 될 수도 있다. 포스터를 봐도 젊은 친구들이 랩을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젊은 영화라 내가 굳이 뭘 할 게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기에 실제로 그의 캐릭터가 어떻게 그려졌는지 기자가 설명했다- 기자 주).

마지막 유언도 솔직히 멋진 말을 하고 싶었다. 아들을 '똥 치우는 막대기' 취급하다가 죽는 거 아닌가.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라도 자기 아들에겐 행복하라고 울컥하는 말을 하고 싶을 텐데 시나리오를 보니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걱정부터 들었다. 촬영을 마친 이후에도 사실 만족스럽지 않았다. '학수 아버지가 이런 말밖에 못하는 무식이구나!' 싶었지. 가장 신경 쓴 장면이기도 했다. 만약 그 장면이 괜찮았다면 전적으로 감독과 작가의 공이다. 배우는 그저 재료일 뿐이다(웃음)."


장항선은 해당 장면을 설명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당시 연기를 재연까지 했다. 계속 자신에게 뻗대는 학수를 향해 주먹으로 쳐 보라고 소리치는 장면이었다.

"커몬! 드루와! 쳐봐! (웃음) 학수가 건달이 된 동창 친구 용대에게 괴롭힘 당하지 않나. 아버지 입장에선 속이 어떻겠나. 산처럼 바위처럼 여겼던 아버지를 향해 주먹을 날릴 배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산을 넘어야 학수가 앞으로 살아갈 수 있겠구나 확인하고 싶은 거지. 이게 사실 모든 아버지의 꿈인 것 같다. 이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로서 많은 사람들이 <변산>을 봐주셨으면 한다. 그래서 가정의 달인 5월에 개봉했으면 하는데 7월에 한다고 하네? (웃음)." 

 " 시나리오를 보니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걱정부터 들었다. 촬영을 마친 이후에도 사실 만족스럽지 않았다. '학수 아버지가 이런 말밖에 못하는 무식이구나!' 싶었지."

" 시나리오를 보니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걱정부터 들었다. 촬영을 마친 이후에도 사실 만족스럽지 않았다. '학수 아버지가 이런 말밖에 못하는 무식이구나!' 싶었지."ⓒ 이희훈


실제로 장항선은 자신의 아들에게도 꽤 냉정한 편이다. 아버지처럼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는 배우 김혁은 몇몇 예능 프로에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다"는 고백 아닌 고백을 한 바 있다. 영화 <쏜다>, 드라마 <태왕사신기> 등에 아들과 함께 출연한 장항선은 "아들과 한 작품에 출연한다는 사실이 조심스러웠다"고 과거 인터뷰에서 밝혔고, 김혁 역시 "아버지 후광 없이 내 연기력으로 인정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맞다. 그랬었지. 어떤 선배가 '야! 그렇게 하면 안 돼!' 이러면 겉으로는 '예, 알겠습니다' 하겠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하고 싶진 않다. 아들에겐 모방에 의한 창조를 해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아들은 내게 대본을 잘 안 보여준다. 큰 역할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은데 나는 또 아들 몰래 아들이 표시해 놓은 부분을 본다. '아, 이런 내용이구나' 하고 말지. 아들도 연기한 지가 10년이 넘어서 나름 능구렁이가 다 됐다. 아버지가 얘기하는 건 참견이고 잔소리지. 저 또한 스승이 되고 싶은 생각도 없고."

장항선은 "이번 작품을 하면서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간 스태프나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촬영이 끝나면 현장을 떠나는 사람이었다면 이번 현장에서는 살가운 모습을 보인 것. "교만했던 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는 과거의 모습이 교만하게 보였을 것"이라며 그는 "스태프들이 좋다면 나 역시 달라질 수 있다"며 나름의 다짐도 전했다.

"그간 영화를 많이 하진 않았지만, <변산>으로 행복했다. 수술 뒤 잠시 실의에 빠져서 어쩌면 다시 일어날 수 없을지 모르는 찰나에 타이밍이 맞았다. 무사히 잘 끝낸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영화<변산>에서 학수부 역을 맡은 배우 장항선.

영화<변산>에서 학수부 역을 맡은 배우 장항선.ⓒ 이희훈


어떤 외길 인생
 
인터뷰 중 수술 경과를 묻는 말에 그는 "아프다고 하기 싫다"며 "지금도 2층에서 뛰어내리라면 뛸 수 있다"고 웃어 보였다. 스스로를 전문적인 연기를 사사받은 전문가가 아닌 의지로 배우고 익힌 사람이라 표현했다. 겸손과 자신감이 동시에 묻어나는 말이었다.

48년 차. 누가 뭐래도 한 길을 긴 시간 걸었다는 건 존경받아 마땅하다. 연상호 감독이 자신의 작품 <사이비> 속 민철 캐릭터를 만들 때 장항선과 일본 배우 기타노 다케시의 개성을 끌어왔다는 건 영화계에 유명한 일화다. 

"연기를 하고 싶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시골 극장에 몰래 숨어들어가 영화를 보곤 했다. 흔히들 '쌔비'라고 하지(웃음). 무대 밑에 숨어 있다가 영화가 시작할 때 기어 나와서 봤다. 배우가 돼야 겠다! 지금처럼 전문 회사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마냥 부딪혀서 KBS 9기로 들어갔지. 그땐 말라서 반공 드라마에 북한군으로 자주 출연했다. <형사기동대> 할 땐 11층 아파트 창문에 밧줄 타고 맨몸으로 매달려 있기도 했고. 사극하면서는 말에서 꽤 떨어졌었지. 갈비뼈도 부러져 보고.  

배우는 이름을 남기잖나. (다쳐서) 어디가 잘못 돼도 버텨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가끔은 아, 내가 열심히는 했구나 생각하긴 한다. 연기 말고는 먹고 사는 수단이 없었으니까. 재산을 가지고 태어난 것도 아니고, 무에서 유를 만들어야 했다. 포졸 역할을 하더라도 눈에 띄지 않으면 다음에 안 불러주니까 최소한 '싹이 보이네?' 이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 압축된 사연에서 그의 표정은 다양했다. "내 스스로는 이미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장난스럽게) 말하지만 사실 우리 나이에 맞는 개성 있는 역할을 맡고 싶다"며 그는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외국영화 보면 노인들도 갱 역할을 하더라!" 웃어 보였다. 다양한 표정과 이 말 자체가 그의 여전한 연기 열정을 충분히 증명하고 있었다.

 "그간 영화를 많이 하진 않았지만, <변산>으로 행복했다. 수술 뒤 잠시 실의에 빠져서 어쩌면 다시 일어날 수 없을지 모르는 찰나에 타이밍이 맞았다. 무사히 잘 끝낸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간 영화를 많이 하진 않았지만, <변산>으로 행복했다. 수술 뒤 잠시 실의에 빠져서 어쩌면 다시 일어날 수 없을지 모르는 찰나에 타이밍이 맞았다. 무사히 잘 끝낸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희훈


예명 '장항선' 어떻게 탄생했을까?

배우 장항선의 본명은 김봉수. 예명 자체가 충청남도 천안과 전라북도 익산을 잇는 철도에서 따온 것임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왜 하필 철도였을까. 보다 자세히 질문했다.

"탤런트가 되면서 내 이름이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근데 예명을 지을 정도로 특수한 상황도 아니어서 고민 좀 했지. 어느 날 분장실에서 선배인 문오장씨 등 몇 분이 예명에 대해 얘기하고 있더라. '여자 중에선 김지미씨 예명이 좋고, 남자 중에선 신성일, 최불암이라는 예명이 좋아! 문오장도 삼장도 사장도 아닌 오장이라 부르기 좋고 기억하기 편해!' 그러시기에 내가 끼어들었다. '저도 예명을 생각한 게 있습니다. 장항선요. 제가 장항선을 타고 통학했거든요' 그 말에 선배들이 '경부선으로 하라'며 웃더라.

2주인가 후에 AD에게 사정했다. 자막에 나가는 이름을 장항선으로 바꿔달라고. 충청도 출신이고, 나름 구수한 맛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웃음). 근데 가끔 돌아가신 장학수씨로 잘못 아시는 분도 있고 그랬다. 예전 TBC에 경인선이라고 미녀 탤런트가 있었다. 선배들이 한때 장난삼아서 '장항선과 경인선이 결혼하면 자식은 경부선이겠네' 하고 놀리기도 했지."


내 외모가 뭐... 배우 고성희가 악플에 대처하는 법

[인터뷰] <마더><슈츠>서 인상적인 연기... "이제 예능 요정이 되고 싶어요"

고성희는 거침이 없었다. "악플에는 시원하게 욕을 하면서 '싫어요'를 누른다"거나 "연기가 산으로 가는 느낌이 있었다" 같은 말을 했다. 질문에 답을 망설이는 일도 없었다. 대답이 막힘없이 척척 나왔다."스스럼 없는 성격처럼 보인다"는 말에 고성희는 "시행착오로 인한 변화다. 옛날에는 남들의 시선에 걱정과 고민이 많았는데 그러다 보니 연기가 산으로 가는 느낌이 있었다"고 대답하며 웃었다.고성희는 "배역을 준비할 때도 감독님이나 작가님 외에는 조언을 잘 구하지 않는다. 스스로 확신을 갖고 처음부터 밀고 나가야 힘이 생기는 편"이라고 덧붙였다.지난달 26일, tvN <마더>에 이어 KBS <슈츠>까지 연달아 기세 좋게 끝낸 배우 고성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댓글은 집요하게 본다" 고성희의 얼굴은 한 번 보면 좀처럼 잊기 힘든 얼굴이다. 살짝 올라간 눈매는 새침한 인상을 만든다. 그 이미지에 배우 고성희 특유의 나른한 목소리가 맞아떨어지면서 어딘지 모르게 미스터리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그 덕분인지 고성희는 그간 장르물도 여러 차례 소화해냈다. 그는 SBS <당신이 잠든 사이에>에 나오기 전까지는 주로 "사연 있고 우울한 장르물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자신의 얼굴에 대해서는 "조명이나 각도에 따라 얼굴이 많이 바뀌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옛날에는 단점으로 보였지만 요즘은 배우로서 연기하는데 있어 장점이라고 본다"고 자평했다.또 "배역에 따라 목소리 톤도 많이 고민하는 편"이라면서 "'검사' 역할로 나왔던 <당신이 잠든 사이에>에서는 이종석씨와 친구 사이로 보이길 원했기 때문에 중성적인 톤을 많이 썼고 <마더>에서는 자영이 가진 백치스러움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에 좀 더 높은 톤의 목소리를 표현하려고 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슈츠>에 나온 '김지나'의 목소리는? 박형식과의 로맨스가 들어가기 때문에 "이성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톤"이라고 한다. - 얼굴이나 목소리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은데, 평소에 반응 같은 걸 챙겨 보나."집요하게 본다. 댓글마다 '좋아요' '싫어요' 다 누른다. (웃음) 이 직업을 오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볼수록 매력을 느끼게 되는 배우'라는 말은 아직 좋은 칭찬으로 남아 있다. 발성이 좋은 배우라는 반응도 부끄럽지만 좋다."- 댓글에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있지 않나."어렸을 때는 상처를 많이 받았다. 감사하게도 요즘은 좋은 평이 더 많다. 외모에 대한 지적이나 터무니 없는 이야기는 욕하면서 '싫어요'를 누르고 좋은 것만 기억하려고 한다."- <슈츠>에서 '법률 사무 보조원(paralegal)' 김지나 역할을 맡았다. "내가 맡은 캐릭터 중에 <슈츠>의 김지나가 제일 멋있었다"는 말을 했다. 김지나의 어떤 점이 멋있었나."물론 멋있었던 인물들이 꽤 있었다. 그 중에서도 지나는 주체적이고 스스로 많은 것들을 독립적으로 해결해 나가려는 의지와 용기가 있는 친구였다. 아닌 척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측은지심이 많았고 그런 점에서 더 애착이 갔다. 나와 가장 닮은 동시에 나도 못하는 걸 해낼 수 있는 이상적인 인물이었다."- '고성희도 못하는 건' 뭔가? "사랑을 시작하는데 있어 적극적이고 겁이 없는 지점도 그렇고 화가 나면 화를 내고 표현을 하는 점도 그렇다. 특히 솔직하려고 노력하는 점을 좋게 봤다.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해내는 인물이라서 더 좋았다."- 실제 고성희는 겁이 많은가?"나는 시작을 하고 나면 뒤도 안 돌아본다. 하지만 일이든 사랑이든 시작을 하기 전에 고민을 많이 한다. 최대한 도망을 치다가 시작을 하는 편이다. 아마 뭔가를 하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성격이라는 걸 잘 알아서 그럴 것이다."- 배우를 처음 시작했을 때도 망설이다가 결정했나."맞다. 사실 오래 걸렸다. 10년 전에 내가 출연했던 광고들이 잘 되면서 여러 제의를 많이 받았다. 연극영화과에 들어가긴 했지만 배우의 길을 걸을 생각도 없었다."- 연극영화과에 입학했음에도 배우를 할 생각이 없었다고?"연기를 공부하려고 했다.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교수가 되고 싶었다. 연기가 좋았지만, 연예인이나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는 내가 갈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선입견도 있었다. 어쩐지 무서운 곳일 것 같은? 한 2년 정도 오는 제안을 모질게 뿌려치고 학교만 열심히 다녔다. 그러다가 꿈과 열망이 커졌다. 배역을 따내겠다는 욕심이 아니라 누군가의 앞에서 연기를 하고 확인을 받고 싶었다."- 그런 생각까지 하는데 얼마나 걸렸나."움직이는 데까지 한 2~3년 정도 걸렸다. (웃음) 늘 욕심은 있었는데 스스로 외면했다. 그리고 마음을 먹었다. 안 하다가는 내가 죽겠다 싶어서 움직였다. 모델로 잘 나갈 때였는데 모델 회사와 눈물의 이별을 했다. 위약금도 다 물고 나와서 공개 오디션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마음 먹으니 퇴사하고 공문서를 정리하는 것까지 일주일도 안 걸리더라." - 걸그룹 데뷔도 한 번은 무산되고 한 번은 스스로 그만둔 적이 있다."고집이 좀 있다. 아이돌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음악을 좋아하지만 이걸 업으로 삼으면서 치열하게 할 수 없었다. 남의 밥그릇을 빼앗고 있다고 느껴졌다. 가수 연습생 생활을 같이 해보니 너무 치열하게 한다고 느껴지더라."- 요즘 데뷔하고 싶어하는 아이돌 연습생들이 더 많아진 것처럼 보인다. 고성희가 아이돌이 됐으면 어땠을까."그 생각을 신인 시절에는 많이 했다. 배우 오디션을 보러가 늘 문턱에서 떨어지곤 했다. 아이돌 연습생을 그만두고서 1년 반 정도는 배우 오디션을 매일 보고 떨어지고의 반복이었으니까. 음악을 좋아했고 아이돌로 데뷔한 친구들이 부러울 때도 많았다. 사랑받고 무대에서 공연을 할 수 있다는 점도 부러웠다. 그렇다고 해서 그곳에 서있는 내 모습이 그려지진 않는다. 나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싸우려는 의지가 많다"- 출연하는 작품 속 캐릭터들이 주체적인 편이다. 작품 선택에 있어 이를 고려하는 편인가."실제 성격이 그렇다. 거침 없고 어려서부터 맞서 싸우고 싶어했고 변화 의지가 많았다. 물론 직업 특성상 나서서 이야기하는 건 조심스러운 지점이 있다. 여러 배우마다 스타일이 다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사회적인 문제를 알게 됐을 때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지금은 맡은 책임이 있는 입장이고 이를 배역이나 작품으로 간접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작품이 좋고, 나도 주체적인 캐릭터를 만났을 때 관심이 많이 간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지 않나. 리더를 하고 있는 여성들도 너무나 많다. 시청자들도 남녀를 불문하고 내가 맡은 주체적인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이런 배역들이 더 많아질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 <마더>의 학대하는 엄마 '자영' 역할을 맡은 건 굉장히 힘든 선택이었을 것 같다."그 역할은 내가 달라고 했다. OCN <아름다운 나의 신부>를 같이 한 감독님이신데 <마더>는 그 작품을 할 때부터 이야기를 했던 드라마다. 대본 나왔다던데 왜 나 안 주냐고 그랬다.(웃음) 자영이란 역할은 분량도 너무 없고 20대 여배우가 맡을 수 있는 역할이 아니라고 그러셨다. 그래서 '그건 내가 정하는 거 아니냐'고 '대본 빨리 달라'고 해서 읽어봤다. 주변의 걱정과 우려가 많았다. 하지 말라는 말도 많았다. 원래 사연 있고 좀 우울한 장르물을 많이 했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로 2년 뒤 복귀하면서 원래 성격에 맞는 트렌디한 작품을 했다가 다시 어두운 역할을 맡으려고 하니까. 그것도 애를 학대를 하는 엄마를. 그런데 스스로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왠지 모르겠는데 이 역할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끝까지 밀고 갔고 드라마를 끝마치고 혼자 뿌듯해했다. 데뷔하고 나서 스스로 했던 선택 중에 가장 잘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현장에서 고성희는 어떤 이미지인가."옛날에는 지금보다 소극적이고 약간 위축돼있고 혼자 고립시키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많이 변했다. 요즘에는 다들 나를 좀 신기하게 바라본다. 앉아있는 것도 막 축 늘어져서 앉아있고 그런다. <슈츠> 때도 너무 피곤해서 의자에 발을 올리고 쭈그려서 자고 있는데 감독님이 발바닥을 치면서 '연예인 맞냐'고 '어떻게 이렇게 자냐'고 하셨다. (웃음) 선배님들에게 예의를 지키면서도 내가 있는 공간에서는 나답게 있어야 연기가 자연스럽게 되는 것 같다."- 연기에 있어서 처음 데뷔했을 때랑 지금 달라지거나 편해진 점이 있나."당연히 있다. 훨씬 자유로워지고 있고 매작품마다 바뀌고 배우고 있다. 연기를 하는 게 너무나 힘들지만 그래서 멈출 수 없다. 배우고 변하는 걸 스스로 느끼니까 재미있다. 이 끝이 어딜까 싶어지기도 하고." - 소속사 대표가 5년 동안 예능 출연을 금지시켰다가 얼마 전에 허락했다고 들었는데. (웃음)"예능 욕심이 굉장히 많다. '쏘주 요정'이 아니라 '예능 요정'이 되고 싶을 정도다. (과거 고성희는 영화 <롤러코스터>를 찍으면서 '쏘주 요정'이라는 별명을 얻은 적이 있다. 술자리를 좋아하고 제일 자주 마시는 게 소주라서 '쏘주 요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영화를 찍은 지 5년이 지났지만 배우 하정우를 비롯해 당시 같이 출연했던 배우들은 고성희를 '쏘요'라고 부른다고 한다. -기자 주)하반기에 작품을 하지 않는다면 예능으로 복귀하고 싶다. 나의 개그 욕심을 마음껏 펼치고 싶다. 원래 성격이... 이것보다 더 심했다. 거침없이 이야기를 하니 대표님이 걱정하셨던 것 같다. 이제 예능 출연이 자유로워졌으니 가능하다면 관찰 예능을 해보고 싶다. 고정 예능! 그런 걸 한다면 나를 쓸모 있게 다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고성희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트레이드 러브>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트레이드 러브>는 <마더> 직전에 촬영한 영화다. 고성희는 "백발이 될 때까지 연기를 하고 싶고 분량이나 배역에 상관 없이 살아서 숨 쉬는 배우이고 싶다"는 말을 강조했다. 그는 연이어 "올해까지 '고성희의 재발견'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면 이제 30대를 앞두고 있으니 믿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덧붙이면서 웃었다.

죽고 싶었던 시인 이상... '이 사람'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인터뷰] 뮤지컬 <스모크> 시인 이상의 또 다른 자아 '홍' 맡은 배우 유주혜

시인 김해경, 필명 이상. 그는 시를 쓰는 삶에 지쳤다. 나라도 뺏기고 언어도 뺏기고 눈뜨고 날강도를 당한 이런 시국에서 그는 20세기에 나서 21세기를 살려 하지만, 다른 이들은 19세기에 나서 18세기로 향하고 있다. 결국 "미친 글쟁이의 미친 헛소리", "무력한 지식인의 할 일 없는 헛소리"라는 비난에 지쳐버린 그는 "인생의 마지막 날 만큼은" 스스로 정하고자 한다.시인은 어린 아이(孩)로 돌아간다. 바다(海)에 가서 닿고 싶은, 바다를 꿈꾸는 순수한 어린 아이. 그리고 이 날카로운 현실에 본인 대신 싸울 이를 꺼낸다. 모든 것을 초월할, 이상(李箱)의 이상(理想)적인 존재, 초월하고자 하는 그 욕망의 대리인, 지친 '해'를 대신해 종착지에 추락할 초(超). 김해경은 거울 속 세계로 들어가 해가 되고, 자기를 대신하여 글을 쓸 초를 꺼내 든다.그러나 김해경 본인이 견딜 수 없던 세계를 그의 초월적 자아가 쉬이 돌파할 수 있을 리 없다. 초는 글을 쓰고 또 썼지만 바뀌는 건 없다. 결국 초 역시 삶을 포기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는 이상이되 이상이 아니기에 이상처럼 스스로 죽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 역시 안으로 들어간다. 초는 어럽게 해를 마주한다. 모든 것을 잊고 자기 자신 안에 스스로를 가둔 채 사는 해를 마주한 초는 해를 꼬드겨 홍을 납치하고자 한다.붉은 머리의 홍(紅). 이들이 닿고 싶어하는 넓은 바다, 생의 의지, 고통, 동시에 아프지만 상처를 낳게 할 빨간 약, 사랑·그리움·미움·증오·열망을 담은 채 오래 전에 버려진 보따리…. 초와 해 모두 바다에 닿고 싶어 하지만 초가 바라는 바다는 너무 깊어 끝을 알 수 없는 죽음의 바다요, 해가 원하는 바다는 너무 깊어 마르지 않고 얼지도 않는 생의 바다였다. 스스로 죽을 수도 없는, 실체 없는 존재들이 이상 안에서 갈등한다. 이상은 그래서 생을 고를 것인가, 스스로 결심한 대로 자신이 죽을 날을 정할 것인가.뮤지컬 <스모크>, 이상의 연기 같은 존재들이 이상 안에서 각자의 이상을 추구하며 싸우는 이상한 작품이다.트라이아웃부터 재연까지, 홍과 함께하다 트라이아웃과 초연을 거쳐 지난 4월 24일 개막한 뮤지컬 <스모크>는 재연 시즌에도 많은 관객을 극장에 불러들이고 있다. 오는 15일까지 서울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에서 상연되는 이 작품은 상술했던 것처럼 시인 이상에 대한 작품이다. 난해했던 그의 작품 세계처럼, 뮤지컬 <스모크> 역시 다소 난해하고 뒤틀려 있다. 언뜻 경성시대를 그린 여타 작품 같아 보이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연기 같던 캐릭터의 실체들이 가시화된다. 초는 그저 죽고 싶어만 하는 존재가 아니고, 해는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가 아니었으며, 홍은 미츠코시 백화점의 딸이 아니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그저 예술가"인 그는 "미완의 박제로 천재를 꿈"꿨다. 그의 안에서 언쟁하는 자아들 중에는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다.뮤지컬 배우 유주혜는 트라이아웃 때부터 이번 재연 시즌까지 꾸준히 참석하며 홍이라는 캐릭터를 맡아오며 함께 성장한 배우이다. 지난 6월 14일 오후에 만난 그는 홍이라는 캐릭터를 이해하고 입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음을 고백했다. 특히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머릿속에 떴던 물음표를 지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무대 예술에서 인간의 감정이나 관념을 의인화한 캐릭터는 종종 등장한다. 하지만 그러한 캐릭터들 중에서도 홍은 유독 그 정체가 불분명하다.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는 초나 해의 캐릭터에 비해, 대본집에 쓰여 있는 홍은 단 한 줄이 전부이다. 고민 끝에 마주하고 홍이라는 옷을 입은 유주혜에게, 홍은 어떤 존재일까.이상 김해경 그리고 홍 유주혜 김해경은 너무도 죽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살고 싶기도 했다. 폐병으로 죽어가는 시인은 이 고통을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욕망도 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글을 쓰고 싶은, 살고 싶은 욕망도 있다. 전자가 초라면 후자는 홍이다. 김해경은 왜 그토록 죽고 싶었을까. 그런데도 왜 죽지 않았을까.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그는 왜 진즉 글이나 삶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뮤지컬 <스모크>는 유주혜라는 배우에게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안고 가는 법에 대해 고민하게 된 작품이니까. 시인 이상의 자아 중 하나를 표현하면서, 글을 쓰면서 괴로워했던 이상의 아픔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김해경이 글을 포기하지 않도록, 글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의지의 표상이 됐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잠시의 고통처럼, <스모크>라는 작품이 보는 관객에게도 치유의 힘이 될 수 있길 바란다.예정된 이별 그리고... 추정화 연출의 부름을 받고 트라이아웃 때부터 <스모크>를 하게 된 유주혜. 이 배우가 대학로에 쌓아온 경력이 얕은 건 아니지만, <스모크>는 그가 자신을 대학로 관객들의 눈과 귀에 강렬하게 인식시킨 작품이다. <스모크>를 만나서, 홍을 만날 수 있게 된 걸 유주혜는 큰 행운으로 여겼다. 관객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고, 그 사랑에 감사할 줄 알게 된 작품이기에 더더욱….대학로는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변하고 있다. 여자 배우가 맡는 여자 캐릭터에 대한 고민에 방점을 더 찍어가는 과정 중에 있다. 아직 많이 부족하고, 한계도 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년 전에 비해 대학로는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 좋은 여자 캐릭터, 좋은 여성 서사에 대한 고민을 창작진과 배우 그리고 관객이 함께 공유하고 있다. 그런 계기를 만들어준 작품이지만, 유주혜는 이번 재연을 끝으로 <스모크>와 거리두기를 하려고 한다. 이처럼 좋은 작품, 좋은 캐릭터를 다른 동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자신이 느끼고 성장할 수 있었던 기회를 여자 동료들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유주혜가 자신의 말을 번복하고 <스모크>의 홍을 다시 맡든, 아니면 또 다른 극의 다른 배역을 하게 되든, 유주혜는 스스로 선택할 것이고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훌륭하게 무대 위에서 보여줄 것이다. 그의 귀에는 이미, 날개가 달려 있으니까. 아무도 그를 박제할 수 없으리라.

  • inter:view 다른 기사

  • 옆으로 쓸어 넘길 수 있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