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독전>이 31일로 관객수 240만 명을 넘겼다. 손익분기점인 280만 명까지 무리 없이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지만, 그간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67만 명),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35만 명) 등 흥행운이 없었던 이해영 감독에게 <독전>은 남다른 영화가 될 것이 분명하다.

 영화 <독전>의 이해영 감독

영화 <독전>의 이해영 감독 ⓒ 이정민


<독전>이 막 100만 명의 관객을 만난 지난 28일, 이해영 감독에게 소감을 물었다. 이해영 감독은 "사실 (100만 명이라는 관객수가) 내 영화에서 처음이라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일단 손익분기점을 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했다. 그의 소망은 곧 이뤄질 것 같다.

"나 스스로를 증명하는 일, 목숨만큼 중요해"

<독전>은 이해영 감독이 기존에 선보였던 전작들과 상당히 결이 다른 영화다. 이해영 감독은 <독전>을 통해 "그 전까지 내가 갖고 있던 작업의 성향을 깨고 보다 정확한 장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흥행'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을까.

"스코어를 떠나 주변 지인들이나 일반 관객 분들이 전작들보다 훨씬 좋아해주는 게 느껴지니 감사하다. 그 이유를 말씀해주지는 않으시지만 더 '정확해서'가 아닐까. 전작에는 어딘가 의뭉스럽거나 낯선 구석들이 있었는데, 그런 것에 비해 <독전>은 정확한 장르 영화를 표방했으니까. <독전>을 두고 흥행을 하고 싶어서 (기존 작품들과 다르게) 만들었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흥행만을 지향하는 건 창작자로서 적절하지 않은 목표라고 본다.

상업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서 상업 영화 진영 안에서 나 스스로를 증명하는 게 중요했다. 이는 영화를 직업으로 삼은 영화인으로서 목숨 같은 것이다. 상업성을 입증받아야 하는 내게 <독전>은 중요한 통과의례였다. 물론 이렇게만 말하면, 영화 제작을 단순히 기능적으로 수행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하고 꽤 오랜 시간 동안 비슷한 패턴에, 비슷한 에너지로 달려왔다. 그간 내 안에 있던 것을 내보이거나 영화를 통해 새로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소중했다면 전문적인 직업 감독으로서 영화를 전문적으로 다루기 위한 전환점이 필요했다. 나이를 더 먹기 전에 스스로 만든 틀을 깨고 다른 곳으로 자유롭게 나아가야 연출자로서 폭도 넓어지고 더 유연해질 수 있겠다 싶었다. 욕심이 생긴 딱 그 타이밍에 <독전>을 만났다. <독전>은 중요한 타이밍에 매우 간절하게 선택한 영화다."

이해영 감독은 <독전>을 만들면서 가장 중요한 목표를 "장르물의 관습들을 정확하게 이행하고 수행하는 것"으로 잡았다. 그는 '정확하다'는 말을 세 번 반복했다. "매우 정확하고, 정확해서, 정확한 상업 장르 영화를 만들자는 게 스스로와의 중요한 다짐이고 약속이었다. 한 순간도 낯설게 만들거나 장르를 비트는 시도를 하지 말자."

대신 그는 기존 '범죄 장르물'과 다른 <독전>의 매력을 '캐릭터'에 심어두었다. 이해영 감독은 드라마 <마더>, 영화 <박쥐> <아가씨>의 시나리오를 썼던 정서경 작가와 협업하면서 <독전>의 각본을 완성했다. 이 감독은 "범죄 장르 영화는 반복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감독 이해영이 <독전>을 해야 하는 명분이나 개성은 캐릭터에 두었다. '캐릭터 무비'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고 말했다.

<독전>은 반전 영화? 

 영화 <독전>의 이해영 감독

"보통 한국 마약 영화는 주사기를 많이 쓰는데, 그게 싫었다. 그래서 일부러 <독전>에서는 가루 형태의 마약만 흡입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여기에는 내 취향이 어느 정도 반영됐다." ⓒ 이정민


형사 원호(조진웅 분)와 함께 마약 조직의 우두머리를 쫓는 마약 조직원 락(류준열 분)은 <독전>의 세계관 안에서 알 수 없는 알쏭달쏭한 존재다. 다친 개를 보면서 마음 아파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관객들을 놀라게 만든다. 배우 류준열은 갈피를 잡기 어려운 인물인 락을 잘 연기해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얻고 있다. 이해영 감독은 "초반에 락의 캐릭터를 잡기 위해 준열이와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주파수를 맞추었고, 그 뒤부터는 믿고 맡겼다. 몇 마디만 해도 알아서 잘 해주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오히려 "준열이에게 촬영하는 동안 많이 의지했다"고 했다.

"<독전>은 원호가 결국 락의 진짜 모습을 마주치는 이야기인데, 나는 처음부터 <독전>이 '관객들의 뒤통수를 치는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고 작업했다. 후반부 반전을 놀랍게 만들거나 좀 더 극적으로 만들려는 목적이 있었다면, 영화 초반부터 관객들을 속이기 위해 많은 장치를 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단 한 순간도 그렇게 연출되지 않았다. <유주얼 서스펙트>(1996)처럼 다리를 절다가 제대로 걷는다거나 완전히 다른 인간형처럼 보이게 반전을 넣을 수도 있겠지만 <독전>은 그런 영화가 아니다. 락이라는 인물이 매순간 진심이었다는 게 내게는 중요한 설정이었다.

아마 <독전>을 처음 보시는 분들은 원호의 시선을 따라 보시겠지만 락의 시선으로 보면 또 다를 것이다. 이 영화는 원호가 이선생을 찾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락이 원호를 관찰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락이 마지막에 응징을 하는 장면 역시 나는 자신의 어머니와 강아지가 당한 것과 동일한 형태의 인간적인 보복 같은 느낌으로 보았다."

이해영 감독은 다소 이중적인 락의 모습을 위해 배우 류준열의 겉모습부터 신경을 썼다고 한다. '비주얼'에 방점을 찍은 영화인만큼, 영화 속 배우들의 옷차림 또한 오랜 고민의 결과물이었다.

 이해영 감독이 신경 써서 골랐다는 배우 류준열의 면티.

이해영 감독이 신경 써서 골랐다는 배우 류준열의 면티. ⓒ NEW


"락은 원호에 비해 땀이 한 방울도 안 맺히고 하얗고 창백한 이미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준열이가 <리틀 포레스트>를 찍으면서 중간에 과수원에 사과를 따러 간다고 했는데 살이 탈까봐 걱정했다. 우리 콘셉트가 있으니까. 나는 락이라는 인물이 하얀 피부에 갈색 머리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현장에서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다 갈색으로 칠했다. 한 번에 파악하기 어려운 인물이라는 락의 이미지를 살리고 싶었다.

락이 입은 양복은 가장 깔끔하면서 단단하게 보일 수 있는 것으로 맞췄고 보령(진서연 분)이 매주는 넥타이는 보령이 고른 거니까 너무 과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세련되지도 않은 적당한 센스의 패턴을 고르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 입고 나왔던 하얀 면티도 너무 '난닝구'(러닝셔츠)처럼 보이지 않고 후줄근하지 않은 적당히 예쁜 것으로 골랐다."

 노르웨이에서 디렉팅을 하고 있는 이해영 감독의 모습. "마지막 로케이션 촬영은 원래 노르웨이가 아닌 동남아시아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락이 땀 흘리는 모습이 너무 이상할 것 같더라. 무엇보다 준열이가 땀 흘리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노르웨이에서 디렉팅을 하고 있는 이해영 감독의 모습. "마지막 로케이션 촬영은 원래 노르웨이가 아닌 동남아시아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락이 땀 흘리는 모습이 너무 이상할 것 같더라. 무엇보다 준열이가 땀 흘리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 NEW


반면, 배우 조진웅의 경우 "형사 같은 형사의 옷"을 구하기 위해 애를 썼다고 한다.

"실제 형사 분들이 입고 다니시는 브랜드를 물어 그 브랜드 옷 중에서도 가장 형사 같고 가장 기능적인 옷을 택했다. 머리 길이도 앞으로 내렸을 때는 형사처럼 보였다가 원호가 하림(김주혁 분)을 흉내 냈을 때는 다른 카리스마가 나올 수 있는 정도의 적당한 길이를 택했다 그 신에서 영화적으로 비주얼이 폭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마침 조진웅 배우가 살이 많이 빠져 잘생기게 나오지 않았나 싶다." (웃음)

원호가 우연치 않게 하림을 그대로 흉내 내는 신을 "어떻게 풀어낼지가 큰 숙제"였다고 이해영 감독은 말했다. 원호가 단순히 이선생을 잡기 위해 하림을 흉내 낸다고 보기에는 애매한 장면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마치 원호가 하림이 된 듯한 신을 이해영 감독은 어떻게 해석했을까.

 하림(김주혁 분)을 그대로 흉내내는 원호(조진웅 분)

하림(김주혁 분)을 그대로 흉내내는 원호(조진웅 분) ⓒ NEW


"원작 <마약전쟁>(두기봉 감독)에서 이 신은 오히려 <독전>보다 더 아리송하다. 원작 속 원호 캐릭터는 하림을 흉내 내면서 마치 메소드 연기를 하는 것처럼 보여준다. 이 설정을 어떻게 풀지가 큰 숙제였는데, 일단 내가 내린 나름의 해결책은 '원호가 연기를 잘해서 해냈다'는 것이 아니라 '원호가 진짜 하림이 되는 포인트가 있어야 겠다'는 것이었다.

원호가 위스키를 한두 모금 마시면서 하림에 대해 모사를 하고 있을 때, 부하가 어리바리하게 "팀장님 저 어디 숨을까요?"라고 물어보지 않나. 당장 문이 열리고 이 상황을 무마시키기 위해 원호는 자기 부하의 머리를 잔으로 내리친다. 그 순간 연극을 하려던 게 뒤집히면서 '진짜'가 돼버리는 것이다. 원호도 스스로 이렇게까지 할 건 아니었는데, 손에 피가 나고 그 피 묻은 손을 하림처럼 똑같이 내미는 순간이다. 이는 꽤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독전>은 남성 영화, 운신의 폭 한정적이었다"

<독전> 언론 시사회를 마치고 이해영 감독은 취재진에게 여러 질문을 받았다. 여러 질문 중 하나는 원호와 락의 전사(前史)가 없다는 점에 대한 지적이었고, 다른 하나는 주요한 여성 캐릭터가 없다는 비판이었다.

이해영 감독은 먼저 "<독전>은 인물의 전사를 통해 온전히 설득을 시키는 성격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보다는 원호가 이선생을 잡는 과정의 중간부터 끝까지 보여주는 것이 보다 더 본질에 맞다고 봤다"고 답했다. 이어 "설명을 했다면 이해도가 높아질지 모르겠지만 이야기의 속도가 느려지고 군살이 붙는 느낌이 분명 들 테고, 나는 속도감을 택했다"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전사를 충분히 넣었다면 오히려 '설명충'이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았을까? 사실 조금 놀랐다. 나는 한국 영화가 가진 '설명 강박'에 대한 관객들의 저항감과 피로도가 분명 있다고 봤다. 설명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게 내게는 중요한 일 중에 하나였다. 많은 사건들이 벌어지고 많은 인물들이 나오는 속도감 있는 장르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서 내게는 이 쪽이 맞는 선택이었다."

 이해영 "다양한 옷을 입혀봤다. 밀리터리룩부터 힙합까지. 그런데 뭘 입혀도 다 이상해서 축구복 같은 바지에 늘어진 민소매를 입혔는데 괜찮았다. 어떻게 보면 쓰레기 버리러 나온 동네 주민 같은 비주얼인데 또 어떻게 보면 갱 같은 묘한 느낌이 있다."

이해영 "다양한 옷을 입혀봤다. 밀리터리룩부터 힙합까지. 그런데 뭘 입혀도 다 이상해서 축구복 같은 바지에 늘어진 민소매를 입혔는데 괜찮았다. 어떻게 보면 쓰레기 버리러 나온 동네 주민 같은 비주얼인데 또 어떻게 보면 갱 같은 묘한 느낌이 있다." ⓒ NEW


한편, 이해영 감독은 "<독전>은 여성 캐릭터가 상대적으로 적은 남성 영화"라고 뚜렷하게 밝혔다. 이 감독은 "남성 영화라는 충실한 장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목표 지점이 있었고 감독으로서 운신의 폭이 좁았던 것이 분명하다"고 언급했다. 다만, 원작에서 연옥(김성령 분)과 청각장애인 남매 캐릭터는 원래 모두 남성이었다고 한다.

"'농아남매'의 경우 원작에서는 '농아형제'였다. 모두들 그 캐릭터를 어떻게 리메이크할지에 대해 초반부터 궁금해했다. 사실 원호나 락 캐스팅보다 이쪽 캐스팅을 물어보곤 했는데 내게 부담이 됐다. 비교되기 십상이니까. 처음에 김동영 배우를 캐스팅해 두고 이주영 배우를 붙이게 됐다. 일단 조합이 굉장히 만족스럽다.

성비의 균형을 위해 김성령 배우나 이주영 배우를 캐스팅했다고 말하기에는 조심스럽다. 성별을 떠나서 김성령과 이주영이라는 배우를 캐스팅하고 싶었다. 여성들만 나오는 여자 영화(<경성학교>)를 만든 감독으로서 이번에는 남성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중요한 미션이었다."

"지금이 최선의 결말"

이해영 감독은 <독전> 기자간담회를 통해 "<독전>이 흥행할 경우 다른 결말을 공개하겠다"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해영 감독은 '다른 결말은 공개할 것이냐'는 질문에 망설이다가 "아직 뭐라 말씀드리기 어려운데 기회가 된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어쨌든 지금 극장에 걸린 버전이 감독으로선 최선의 버전이고, 감독판이라 부르고 싶다. 기자간담회에서 말씀드렸던 다른 결말 공개에 대해서는 사실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극장에 걸린 버전에 대해 계속 여지를 두는 건, 지금의 <독전>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에게 죄송스러운 일이다."

 영화 <독전>의 이해영 감독

영화 <독전>의 이해영 감독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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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터진 김민재... "유해진, '진짜 어른'이라고 생각"

[inter:view] 영화 <레슬러>로 돌아본 가족 관계... "꼭 하고 싶었다"

전직 국가대표 레슬링 선수였던 귀보(유해진)는 아내와 사별한 뒤 아들 성웅(김민재)을 지극정성을 뒷바라지 한다. 성웅 역시 레슬링 유망주로 아버지 기대에 부응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한 지붕 아래 살던 동갑내기 친구 가영(이성경)을 두고 고민에 빠진다. 가영이 진지하게 귀보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기 때문.영화 <레슬러>는 코미디 장르를 표방한 가족 영화다.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과한 기대, 그리고 연애감정에 대한 오해로 여러 사건이 벌어지는데 그 과정이 촘촘하고 재미있다. 무엇보다 부자 관계로 호흡을 맞춘 유해진과 김민재(21)가 돋보였다. 특히 이번 작품으로 상업영화 데뷔를 알린 김민재는 신인임에도 복잡한 감정 연기를 설득력 있게 해냈다.가족의 재정의성웅 역을 두고 김민재는 "꼭 하고 싶었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극중 성웅 나이가 갓 성인이 되기 직전이라 일종의 편안함을 느꼈을 수도 있지만, "부모와 자식 간 관계에서 성웅의 마음을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답했다. 다분히 실제 감정과 관계에 대한 고민이 엿보이는 대답이었다."부자 관계 이야기가 그때 당시 제 감정에 크게 와 닿았었다. 꼭 하고 싶었던 얘기였고, 실제 제 모습도 성웅에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귀보처럼) 부모님이 기대감을 겉으로 표현하고 제게 부담을 주고 그러시진 않지만 스스로 느끼는 책임감이 있었다. 부모님의 관심에 사랑을 느끼면서도 예민해질 때가 있잖나. 그런 마음을 품고 오디션을 보러 갔다. 3차 까지 본 것 같다. 성웅에 대한 제 생각을 듣고 감독님이 절 캐스팅하셨다고 들었다. 또 자신감에 차 있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고 하시더라. 저에게 가족이란 항상 1순위다. 가족이 있기에 제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임감도 더 생기고 그러는 것 같다. 형제 관계? 세 살 위의 형이 있다. 미술을 전공했는데 아무래도 저도 관련 분야다 보니 형과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음악 이야기도 해주고 제 작품을 형이 모니터 해주기도 하고..." 실제 가족 관계처럼 김민재는 아버지 역을 맡은 유해진과 함께 이야기에 물들어 갔다. 함께 레슬링 훈련을 받으면서 몇 가지 중요한 장면에서 합을 맞춘 것 빼고는 나머지를 실제 몸싸움처럼 했다. 아들에 대한 기대를 품은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야속한 아들. "이번 현장에서 유해진 선배님을 만난 게 정말 행운"이라며 그가 말을 이었다."촬영에 들어가기 전, 연기하는 순간까지 선배님은 같이 고민해주셨고 지켜봐주셨다. 연기적인 면에서 제게 새로운 걸 알게 해주셨다. 정말 중요한 건 선배와 연기하면서 들었던 감정이 진실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아버지 귀보에 대한 서운하고, 답답한 감정이 진짜처럼 자리 잡더라. 그리고 우는 장면이 있었는데 진짜로 눈물이 터졌다. 원래 눈물이 없는 편인데 연기하면서 제가 이렇게 울 수도 있구나 싶었다. 아버지가 유해진 선배여서 그랬던 것 같다.물론 초반에 선배를 봤을 때 선배님이시고 하니까 혼자 긴장하고 떨었다. 겉으로 내색하진 않으셨지만 선배는 절 챙기시고 계셨더라. 은근히 진지한 말씀을 안 하시는데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어느 순간 제가 스스로 느끼게끔 하셨다. 속으로 '와, 진짜 어른이다. 저런 어른이 돼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를 테면, '우리 땐 그랬어 혹은 연기는 이렇게 하는 거야' 이런 말씀을 안 하신다. 근데 뒤돌아 생각하면 잔상이 남는 분이었다. 성경 누나와도 유해진 선배와 같이 하는 게 참 감사한 일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연기 욕심연기자 이전에 4년간 아이돌 연습생 시절을 거쳤다. <레슬러>에 빗대 김민재 본인 또한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때가 있었을 법했다. 오히려 그는 "진로 자체에 대한 고민은 많이 안 했다"며 "다만 어떻게 더 잘할까가 화두였다"고 설명했다."고등학생 때까진 연습생이었으니 좋은 무대를 보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더 잘하고 멋있어지고 싶었다. 사실 가수의 꿈은 연습생 시절을 겪으면서 생긴 것이다. 원래 음악을 좋아해서 중학교 3학년 때 실용음악학원을 다녔고, 한 회사의 오디션을 봐서 운 좋게 합격했다. 그러다 19살 때 우연히 연기수업을 듣게 됐는데 캐릭터를 하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게 너무 재밌더라. 왕도 되어보고, 여러 직업을 경험하는 게 사실 연기 말고는 어렵잖나. 소속사에 '단역이라도 많이 해보고 싶다'고 말하다가 지금까지 온 것이다." 그렇다고 가수에 대한 꿈을 아주 접은 건 아니다. 평소에도 그는 여가시간에 작업실로 가서 곡을 만들고, 노래를 하곤 한다. 2015년에는 <쇼미더머니4>에 참가하는 등 연기를 하면서도 꾸준히 음악을 놓지 않았다."(웃음) 일단 <쇼미더머니>에 나간 이유는 재밌을 것 같아서였다. 제가 뭘 할 때 가장 첫 번째 기준은 재미다. 힙합을 원래 좋아했고, 마침 힙합 열풍이 불고 있었고 그래서 출연했다. 여전히 곡을 만들고 있지만 제가 플레이어로 (무대에) 설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온전히 집중하고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분명 쉽진 않다. 요즘엔 OST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 연기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발라드를 주로 듣고 부른다."타블로, 조이 배드애스 등 몇몇 힙합 뮤지션의 이름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직업으로 음악을 하기 보단 이렇게 좋아하면서 (취미로) 하는 게 어떤 면에선 좋은 것 같다"며 김민재는 "이번에 영화를 하면서 더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속마음을 고백했다."첫 영화가 제겐 너무 감사한 현장이었다. 진짜 재밌는 것이구나. 영화에 대한 기회가 더 주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들 연기를 보면서 자랐고, 꼭 해보고 싶은 선배를 현장에서 만나온 것 같다. 유해진 선배도 그 중 한 분이셨다. 황정민, 최민식, 류승범 선배님 등 꼭 현장에서 뵙고 싶은 분들이 너무도 많다."음악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여행 다니며 농구와 볼링, 탁구 등 각종 운동을 즐기는 등 여느 보통의 20대와 다르지 않는 모습이었다. 연기에 대한 열정, 그리고 적절한 자기 여가 활동이 어쩌면 김민재의 연기 에너지를 채우는 동력 아닐까. 차기작으로 사극 <명당>에 출연할 그는 더욱 연기가 고픈 청년이었다.

"나도 그런 대우 받고 싶지 않다"... '버닝' 전종서의 솔직함

[inter:view] 영화 <버닝>에 남은 전종서의 흔적들을 찾아서

지난달 31일, 영화 <버닝>의 공식 홍보 일정이 마무리 됐다. 흥행 성적은 다소 아쉽다지만 이 작품이 남긴 몇 가지의 유산은 분명해 보였다. <시> 이후 8년 만에 복귀한 이창동 감독은 한국 상업영화의 흐름에 타협하지 않는 독창적인 개성을 증명했다. 그리고 영화계에 새로운 피를 수혈했다. 배우 전종서의 발견이 그렇다.제 71회 칸영화제 기간 중 만났던 그는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첫 오디션에 첫 영화, 그리고 첫 주연으로 이제 막 영화계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진심으로 <버닝>을 껴안고 있었다. 지난달 30일 서울 삼청동의 모처에서 다시 한 번 그를 만날 수 있었다.전종서가 만난 해미<버닝>의 첫 장면은 한창 택배 일을 하는 종수(유아인)와 무심하게 상가 입구에서 춤을 추던 해미(전종서)가 종수를 발견하고 이름을 부르는 모습이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지만 동시에 쉽게 스쳐지나갈 수 있는 인물들을 조명하며 영화는 이들 사이에서 일어날 일들을 하나씩 암시한다. 분노를 가슴에 안고 사는 종수, 그리고 해미와 종수 사이에 끼어들어 일종의 게임을 즐기는 벤(스티븐 연)이 지극히 세속적 인물이라면 해미는 그런 것에 아랑곳 하지 않고 인생의 참 뜻을 찾으려 하는 일종의 구도자 같은 모습을 보인다. <버닝>은 바로 이 세 인물이 각각의 악기가 돼 앙상블을 이루는 합주 같은 영화인 셈.해미의 정확한 직업명은 내레이터 모델. 그러니까 가게 홍보의 수단이자 사람들 앞에 전시돼 기꺼이 시선을 받아내야 하는 고된 서비스 업 중 하나다. 전종서는 "직업? 혹은 일?"이라며 해미의 업을 정의하기 위해 단어를 세심하게 골라 설명했다."내레이터 모델 그 자체가 생소했다. 그렇다고 제가 연기하게 될 이 캐릭터를 특별히 형상화시키진 않았다. 제가 만들어가야 하니까. (대본을 처음 읽고 났을 때) 귀엽고, 매력적이라는 느낌은 있었다. 시나리오에 이 친구의 성격이 어떤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정확하게 나와 있진 않으니 처음엔 많이 헤맸다. 하지만 촬영할수록 그를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제가 혼자 해미를 형상화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상대 배우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해미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종수가 주는 게 있었고, 벤이 주는 게 있었고, 해미의 방이 주는 게 있었다. 매회 마다 체감하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또 그 많은 스태프 분들이 만들어 주신 덕이기도 하다. 제가 만약 그런 머리, 그런 옷과 신발을 입거나 신지 않았다면 또 다른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삶의 의미를 구하기 위해 아프리카 대륙으로 훌쩍 떠난 해미는 자신의 방에 숱한 상징물을 남겨 두고 있었다. 가난하고 고된 경제 계급이지만 그 선에서 꿈 꿀 수 있는 소품들이 방에 가득했다. 아프리카 지도, 마그네틱, 책자들. 전종서의 방 또한 그러했다. "방 청소를 잘 하진 않는다"고 짐짓 웃어 보이면서도 그는 "인테리어 소품과 블라인드 색깔까지 신경을 많이 쓴다"며 "벽의 색은 올리브였다가 지금은 바이올렛과 인디 핑크, 그리고 말린 장미색인데 언제 또 마음의 변화가 있으면 바꿀 수도 있다"고 자신의 방을 잠시 묘사했다."해미의 가치관과 실제 제 가치관은 좀 다르긴 하지만 꿈을 꾼다는 건 닮아 있다. 해미처럼 저 역시 희망적인 꿈을 꾼다. 지금 제가 살아있는 순간이 가짜라고 믿고, 그 꿈이 현실이라고 믿을 때도 있다. 몽상하는 순간이 행복하거든. 동시에 전 굉장히 현실적이기도 하다."삶의 자유로움, 그리고 불안함칸영화제 당시 인터뷰에서 밝혔듯 전종서는 영화광이다. 단순히 취미를 넘어 그에게 배우라는 꿈을 갖게 한 매개체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을 캐나다에서 보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했을 시기를 타지에서 보낸 그에게서 해미가 품고 있던 어떤 불안감을 주는 자유로운 감성이 엿보였다. 해미의 위태위태함은 알게 모르게 전종서의 이런 전사로부터 비롯됐을 것이다."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는 <해리포터>였고, 비디오로는 <악동클럽>이었다. 제 또래 아이들이 나오는 영화였는데 왜 그걸 골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몇 번을 반복해서 보다가 꽤 연체했다. 그걸 기점으로 다른 비디오들을 빌려보고, 반복해서 보다 또 연체하고. 나중엔 제 이름으로 대여가 안 돼서 부모님 이름으로 빌려야 했다(웃음). 어릴 땐 눈으로 부각되는 게 일단 배우니까 거기에 끌렸던 것 같다. 정말 단면인데 말이지... 한 장면을 담기 위해 많은 사람이 동원되는 걸 그땐 몰랐으니까. 초등학생 때 캐나다에 갔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기서 다녔다. 고등학교 졸업은 한국에서 했고. 어릴 때부터 외국에 자주 가긴했다. 부모님께선 제가 여러 경험을 해보길 원하셨던 것 같다. 그림도 직접 보고, 먹을 것도 직접 먹고, 사람들도 직접 만나고 그랬다. 그 나라 가서 할 수 있는 경험을 직접 했던 건데 다양한 문화가 우리 삶에 존재한다는 걸 그때 무렵 몸으로 느꼈던 것 같다. 근데 그 영향이 좋게 작용하기도 하지만 좋지 않은 면도 있다. 마음이 항상 불안했거든. 진득하게 친구를 만나고 사귀고 싶었는데 환경이 바뀌곤 해서 그러지 못했던 아쉬움은 있다." 일찌감치 접했던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 덕에 전종서는 쉽게 타인을 판단하지 않는 태도를 갖게 됐다. "사람에 대한 판단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그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밝혔다."너와 나 사이 어떤 문제가 있는데 그 문제에 대한 판단은 할 수 있을지언정 사람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상대를 그렇게 대하고 싶지 않고, 저 역시도 그렇게 대우받고 싶지 않다. (이 맥락에서 칸영화제 출국 당시 공항 사진 관련 기사이야기를 물었다-기자 주) 지금 상황에서 전 좋은 말이든 좋지 않은 말이든 어떤 영향을 받는 것에 조심하고 있다. 관심과 비난의 화살은 누구에게나 향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감정이 진짜 나라는 사람에게 향한 것일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것 같다. 지극히 단면만 노출이 된 거잖나. 그런 면을 가지고 저를 바라본다 해도 저는 제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잘 알 것 같기에 (지금에선) 영향을 받진 않으려 한다." 이제 막 20대 중반을 지나는 그에게 행복의 조건을 물었다. "행복을 찾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선 슬픔을 찾기도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불행을 자처하기도 하고, 분노를 찾기도 하지만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진 않으려 한다. 감정을 믿지 않고, 행복을 믿지 않는다. 슬픔이라는 건 어떤 순간 슬픔이 아닐 수도 있다. 다만 많이 느끼고 교감하려 한다." <버닝>이 남긴 것들쉽게 판단하지 않지만 기꺼이 소통하려는 자세. 이 감수성 충만한 배우가 첫 걸음을 뗐고, 이제 그 결과물인 <버닝>을 뒤로 할 때가 왔다. 무대인사, 인터뷰 등 공식 일정이 마무리 돼 가는 것에 전종서는 강한 아쉬움을 전했다. 첫 주연작, 이창동 감독의 발견, 칸영화제 진출이라는 외부의 평가 말고 그 스스로는 <버닝>으로 무엇을 얻었고, 어떤 과제를 안게 됐을까."말로 표현할 수 없고 얘기하기 벅찰 정도로 <버닝>은 제게 크다. 감독님, 스태프 분들, 아인 오빠, 스티븐 오빠, 많은 배우 분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었는데 제 인생의 어떤 지점에서 이 분들을 만났다는 자체가 정말 큰 경험이었다. 이 분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일방적인 게 아니었다. 상대방의 진심을 느끼면서 첫 시작을 할 수 있었다는 것. 정말 값진 것 같다. 일상에서도 사랑을 느끼는 건 흔치 않은 경험이니까. 이런 기적 같은 순간이 또 올까 싶다. 그런 순간이 온다 해도 이 분들을 대했던 제 모습 그대로 임할 수 있을까. <버닝>을 통해 올바른 게 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이제 시작하는 입장에서 그런 가치관을 갖고 건강한 마음을 갖고 연기에 임할 수 있다는 건 진짜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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