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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하는 영화마다 몸을 자유자재로 만들고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연기를 선보이는 설경구도 자책을 한단다. 지난 2일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아래 <불한당>) 언론 시사가 끝난 뒤 이어지는 기자회견 사이, 설경구는 잠시 얼이 빠져있었다. '나 왜 저렇게 연기했지?' 편집까지 완료된 완성품으로서 <불한당>을 처음 본 순간 그가 느낀 감정은 그토록 솔직했다.

"언론시사 당일 <불한당> 완성본을 처음 봤다. 영화를 전체적으로 처음 보면 (스크린 속의) 내 모습만 보게 된다. 왜 좀 더 '갖고 놀지 못했을까?' 하는 잠깐의 자책이 있었다."

스스로 "속을 갉아먹는 스타일"이라고 밝힌 그는 언론시사 당시 호평을 받고 곧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에서 상영될 영화 <불한당>을 두고도 "칸에 갈 만한 영화는 아닌 것 같은데 솔직히 이야기하면 '칸이 살렸다'"고 평했다. 부담감 때문일까? 아니면 지나친 겸손일까? 아마 영화가 개봉하면 관객들이 대신 알려주지 않을까.

11일 오전 서울 삼청동 근처에서 배우 설경구를 만났다.

 영화 <불한당>의 배우 설경구가 11일 오전 서울 삼청동 모처에서 열린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 <불한당>은 범죄 조직에 가담한 재호(설경구)와 현수(임시완) 사이에서 일어나는 믿음과 배신에 대한 내용을 담은 영화로 제70회 칸영화제 비경쟁부문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에 초대돼 관심을 받고 있다.

<불한당>은 범죄 조직에 가담한 재호(설경구)와 현수(임시완) 사이에서 일어나는 믿음과 배신에 대한 내용을 담은 영화로 제70회 칸영화제 비경쟁부문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에 초대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배우 설경구는 "17년만에 칸에 가본다"면서 "그래서인지 잘 기억도 안 난다"고 말했다.ⓒ CJ엔터테인먼트


"감독과 밀당했다"

<불한당>의 장르를 굳이 구분하자면 '범죄 액션물'이다. 그렇다. 최근 한국에 범람하고 있는 그 '흔한' 범죄 액션물말이다. 설경구도 그런 이유에서 <불한당>의 출연을 망설였다. 그가 출연을 결정한 배경에는 <불한당> 변성현 감독의 자신감이 있었다.

"설정 자체가 워낙 비슷한 영화들이 많지 않았나. 근래 교도소 설정 영화나 드라마도 많이 나왔고. 그리고 또 남자 이야기. 너무 막 쏟아져 묻히지 않을까 했다. 장르도 흔하고. 그래서 우리가 왜 칸에 가? 했다. 사실 정말 의외였다. 감독의 확신이 뚜렷했다. 본인은 다른 영화 만들 거고 느와르보다 좀 더 감정에 집중하겠다고. 그 감독은 자기 확신이 없으면 정확하게 표현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 믿음이 갔다. '자기 것이 있구나' 하고. 그래서 나도 모험을 한 거다. 믿지 않을 수도 있는데 믿었기 때문에 그건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설경구는 스스로 "감독과 밀당을 잘했다"고 자평했다. "감독이 직접 각본을 썼으니 더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그가 작가기 때문에 각본을 쓴 사람을 믿어야 한다. 그렇게 믿는듯 안 믿는듯 하면서 찍었다." (웃음)

"변성현 감독이랑 두 번째 만난 날에 술을 마시면서 죽이 맞으니까 '말을 놓자'고 이야기를 하다가 농담으로 '죽여버리겠다'고까지 했다. 계속 확신이 있다고 하니까 '당신 말과 달리 차별점이 없는 영화가 안 나오면 정말 죽여버릴 거'라고. (웃음) 만들고 나서 감독이 '나 안 죽이셔도 될 것 같다. 죽일 일 없을 거다'라고 하더라."

 영화 <불한당>의 배우 설경구가 11일 오전 서울 삼청동 모처에서 열린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 <불한당>은 범죄 조직에 가담한 재호(설경구)와 현수(임시완) 사이에서 일어나는 믿음과 배신에 대한 내용을 담은 영화로 제70회 칸영화제 비경쟁부문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에 초대돼 관심을 받고 있다.

"왜 굳이 남자 이야기를 또 해야 하지? 싶었다. 나도 (교도소 내부를 다룬) 영화 <프리즌>을 봤는데 전혀 다른 영화 같더라."ⓒ CJ엔터테인먼트


그렇게 배우 설경구의 때 아닌 위협(?)을 받으며 촬영한 영화 <불한당>은 완성도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줄 만했다. 설경구 본인도 "<불한당> 속에 좋은 장면이 많다. 정성을 담은 그림 같았다"고 말했다.

"콘티를 그리는 단계부터 미술 감독이 함께 참여했다. 한 커트를 그릴 때마다 서로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고집을 피우고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안 그리겠다고 그러고. 그렇게 합의가 돼야 겨우 한 커트 나온다. 콘티 작업부터 치열했던 것 같다. 궁금해서 한 번 보여달라고 했는데 만화를 보는 것처럼 술술 넘어갔다. 촬영 전 준비부터 믿음을 줬다. 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하루 촬영을 접고 조명 세팅을 한 적도 있다."

 미처 알려지지 않은 <불한당>의 에피소드 하나. <불한당> 설경구는 오직 이 장면 촬영을 위해 팔 근육을 따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평소 <로키>의 장면을 오마주하고 싶었던 변성현 감독은 설경구에게 "이 장면은 내가 반드시 촬영을 해야겠다"고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미처 알려지지 않은 <불한당>의 에피소드 하나. <불한당> 설경구는 오직 이 장면 촬영을 위해 팔 근육을 따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평소 <로키>의 장면을 오마주하고 싶었던 변성현 감독은 설경구에게 "이 장면은 내가 반드시 촬영을 해야겠다"고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CJ엔터테인먼트


"그게 사랑 아닌가 목숨을 거는 게"

까마득한 후배 배우인 임시완을 어떻게 이끌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설경구는 딱 잘라 "임시완씨는 이끌어줘야 할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설경구가 옆에서 지켜본 임시완은 열정적인 사람이다. "철저하게 준비를 하는 사람이라 걱정을 0.1%도 해본 적이 없다"고 그는 임시완을 기억한다.

"(임시완은) 계속 연기만 생각을 하고 있는 거다. 새벽이고 뭐고 연기에 대한 생각이 나면 전화를 해서 '이 신에서 이렇게 하면 어때요? 들어보실래요?'라면서 전화기에 대고 연기를 한다. 생각이 딱 났을 때 못 참고 전화를 하는 거다. 내가 임시완 나이 때? 난 열정적으로 술을 마셨다." (웃음)

 설경구 "촬영을 하면서 중반쯤 그런 느낌을 받았다. 재호가 유일하게 믿고 싶은 사람이 현수일 거라고. 재호는 현수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운 와중에도 흔들렸다. 그게 사랑 아닌가. 목숨을 거는 게."

설경구 "촬영을 하면서 중반쯤 그런 느낌을 받았다. 재호가 유일하게 믿고 싶은 사람이 현수일 거라고. 재호는 현수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운 와중에도 흔들렸다. 그게 사랑 아닌가. 목숨을 거는 게."ⓒ CJ엔터테인먼트


<불한당> 속에서 설경구는 임시완을 아끼고, 임시완은 그런 설경구를 따른다. 먼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면 목이 날아가는 느와르적 세계에서 애정은 곧 목숨을 건 여정이다. 그런 둘 사이의 관계를 우정인지 아니면 동지애인지, 사랑인지 명확히 규정하기 어렵다. 이런 애매모호함을 부순 건 변성현 감독이었다.

변성현 감독은 몇 번이고 "<불한당>은 느와르보다 멜로에 가깝다"고 말했다. 변성현 감독이 예시로 든 영화는 무려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배우 설경구는 "그 이야기를 듣고 헉 했다. 촬영 끝난 다음에 들어서 다행이었다. 촬영 전에 들었으면 정말 헷갈렸을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감독의 말에 동의하는듯 "극 중에서 현수(임시완)랑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언급했다. 그는 <불한당> 촬영을 중반부터 현수를 향한 재호(극 중 설경구의 배역)의 사랑을 깨달았다고 했다.

"촬영 전에 김희원씨가 나를 쭉 짝사랑하는 것으로 콘셉트를 잡았다고 말해줬다. 극 중에서 내가 뭘 시키면 이유도 안 물어보고 작업을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그 이야기를 들으니 '나는 그럼 시완이를 사랑해야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삼각관계가 됐다는 이야기를 했다.

촬영 중반부터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서서히 눈에 들어왔다고. 사랑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40대 중반까지 살면서 유일하게 믿고 싶은 한 사람이 저 사람일 거라고 여겼다. 재호는 사람을 죽일 때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눈빛도 흔들리고 고민도 한다. 죽을 위기에 있으면서도 현수 때문에 흔들리는 거다. 그게 사랑 아닌가. 목숨을 내거는 게."

 영화 <불한당>의 배우 설경구가 11일 오전 서울 삼청동 모처에서 열린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 <불한당>은 범죄 조직에 가담한 재호(설경구)와 현수(임시완) 사이에서 일어나는 믿음과 배신에 대한 내용을 담은 영화로 제70회 칸영화제 비경쟁부문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에 초대돼 관심을 받고 있다.

설경구는 말한다. "조금 욕심을 내서 말하자면 여운이 남는 영화였으면 좋겠다. 2시간 보고 치우는 게 아니라 '왜 이 영화 계속 생각나지? 하면서. 말도 안 되는 욕심이다."ⓒ CJ엔터테인먼트


이 대사는 진짜일까? 거짓일까?

설경구가 맡은 재호라는 인물은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다. 어떤 대사는 그조차도 진짜인지 거짓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는 <불한당>에서 "속내를 보여주지 않으려는 재호의 성격"이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변성현 감독은 그런 <불한당>의 재호를 디딤돌 삼아 설경구의 옆모습을 발굴해낸다.

"다 드러나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 옆모습을 많이 썼다. '뭐야 진짜 옆모습 보면 무슨 생각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라고 감독님이 많이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옆모습을 많이 찍었다.

<불한당> 중간에 현수에게 재호가 가정사를 고백하는 장면이 나온다. 난 그게 재호가 거짓말로 현수를 엮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그렇지 않았을 거라고. 대사를 다 말하고 나서 시완이에게 '진짜 같냐'고 물어봤다. 시완이는 '진짜 같은데요?'라고 말하더라. 스태프들에게도 물어봤는데 진짜 같다고 이야기한 사람도 있었고 거짓말일 거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다."

과연 관객들은 재호의 고백을 믿을까? 진짜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설경구처럼 거짓말로 낚는 거라고 여길까? 재호는 영화 속에서 현수에게 내내 "사람을 믿지 말고 상황을 믿으라"고 주문한다. 하지만 그 믿음이라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설경구 "옆모습을 많이 사용한 영화였다. 앞모습으로 계획한 것도 옆모습으로 많이 갔다. '뭐야 진짜 옆모습 보면 무슨 생각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라고 감독님이 이야기를 많이 했다. 포스터까지 옆모습이더라."

설경구 "옆모습을 많이 사용한 영화였다. 앞모습으로 계획한 것도 옆모습으로 많이 갔다. '뭐야 진짜 옆모습 보면 무슨 생각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라고 감독님이 이야기를 많이 했다. 포스터까지 옆모습이더라."ⓒ CJ엔터테인먼트


<불한당> 결말이 달라졌다고?
<불한당>이라는 제목은 변성현 감독이 시나리오를 다 쓰고 나서 정해졌다고 한다. 설경구는 영화 제목을 그렇게 흡족해하지는 않았다. "<불한당> 이상하지 않나. 왠지 좋은 영화 같지 않고."

만약 <불한당>의 에필로그를 살렸으면 변성현 감독의 다음 작품은 <불지옥>이 될 뻔했다고 설경구는 전한다.

"원래 에필로그가 있었다. 그건 마지막에 편집됐다. 프리퀄의 가능성이 있는 엔딩이었는데 감독이 프리퀄은 절대 안 할 거라고 말해서."

한 피디는 프리퀄을 찍으면 <불한당>에 이어 <불지옥>으로 제목을 짓자고 제안했다고 설경구는 말하며 웃었다.


조선사극 속 여성 캐릭터는 뻔해? 채수빈이 하면 달랐다

[inter:view] <구르미 그린 달빛> 이어 <역적>까지, 연기의 재미 알아가는 채수빈

국내 사극, 특히 조선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여성 캐릭터에게 제한적인 역할과 성격을 부여하고는 했다. 하지만 채수빈이 연기한 인물들은 달랐다. 라온(김유정 분)을 사랑하는 세자(박보검 분)에게 "국혼을 피할 수 없다면, 나와 내 집안을 이용하라"라고 당차게 청혼하던 <구르미 그린 달빛>(아래 <구르미>)의 하연이도, 공화(이하늬 분)가 떠난 뒤 찾아온 길동(윤균상 분)에게 "다 떠나고 나 혼자 남았다. 나만 너 기다렸다"라고 웃던 <역적>의 가령이도 그랬다. 모두 사극에서 보기 힘든 당차고 용감한 캐릭터였다.하연이와 가령이는 분명 닮은 구석이 있다. 두 캐릭터 모두 기존 사극에서 만나기 어려운, 매력적인 역할이다. 결과적으로는 <구르미>와 <역적> 모두 잘 되어 '배우 채수빈'을 대중에게 깊게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신인 배우에게 연이은 사극 출연은 분명 모험. 지난 18일 서울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채수빈은 "주위에서 하연이와 가령이가 비슷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긴 했다"라고 전했다."주변의 우려는 있었지만, 하연이와 가령이는 근본적으로 다른 삶을 살아온, 다른 인물이에요. 하연이는 내가 먼저고, 내 감정이 우선인, 이기적인 성향이 있어요. 하지만 가령이는 사랑에 모든 걸 걸고, 헌신적인 아이죠. 다른 캐릭터이기 때문에 (저는) 걱정 없었어요."겁쟁이 채수빈, 용감무쌍 가령이 채수빈은 자신은 "가령이 보다 하연이를 더 닮았다"라고 말했다. 가령이는 자기감정에 솔직하고 당차지만, 자신은 겁도 많고, 사랑에 있어서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채수빈은 그래서 자신과 다른 가령이에게 더 큰 매력을 느꼈단다."저는 서방이 죽었다고 하면 울고만 있었을 거예요. 어휴, 궁에 어떻게 가요. 저랑은 반대죠. 그래서 더 가령이가 부럽고 멋있었죠. 가령이는 감정 표현에 솔직하고, 돌아올 사랑을 기대하지 않고도 받은 사랑을 모두 주는 사람이에요. 시청자분들도 그래서 '직진 가령'이라고. (웃음) (가령이를) 연기하면 할수록 씩씩한 가령이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어요."채수빈은 "새로운 도전에 대한 겁이 많다"라고 했다. 하지만 배우란, 언제나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하는 직업. 그는 "매번 스트레스를 받는다"라고 고백했다. 낯을 가리는 성격에, 익숙해질 만하면 헤어지고, 다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작업을 해야 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견딜 수 있었던 건, 그 스트레스를 이기고도 남을 행복감과 즐거움 덕분이다. 이젠 사람과 친해지고, 새로운 역할에 대해 알아가는 것들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고.그는 자신의 단점으로 "감정 신 찍을 때 기복이 심한 것"을 꼽았는데, 감정이 제대로 잡히지 않을 때는 집중이 잘 안 되어 애 먹을 때가 많았단다. 하지만 <역적>에서는 달랐다. <역적>의 가령이는 채수빈에게 연기에 대한 즐거움은 물론, 희열까지 느끼게 해준 작품이다."처음에 가령이라는 인물을 만들 때, 감독님께 이것저것 많이 여쭤봤어요. 얘는 어떤 삶을 살았어요? 어떤 가족 밑에서 자란 거예요? 성향은 어떤 아이예요? 근데 감독님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가령이로 살면서 놀고 즐기면 돼' 하시더라고요. 혼란스러웠지만 다 내려놓고, 감독님을 믿고 의지했죠. 따라가다 보니 어느 순간 제가 가령이가 돼 있는 거예요. 가령이의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데, 처음 느껴본 감정이었죠. 다음 작품에서도 (이번처럼) 자연스럽게 그 인물이 될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감독님이 한 번 경험해봤으니,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해주시더라고요. (웃음)"첫 키스 신 상대는 윤균상 아닌 조재현 <역적>은 채수빈에게 배우로서 여러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줬는데, <구르미>에서 짝사랑에 그쳤던 사랑이 결실을 맺은 일도 그중 하나다. 앙숙으로 만나 오누이로, 다시 연인으로, 부부로 발전해가는 윤균상과의 러브 라인은 또 다른 재미요소. 두 사람의 첫 키스 신은 가령을 누이로만 여기던 길동이 자신의 마음을 처음으로 내보인 장면이었다.이 키스는 길동과 가령에게도 처음이었지만, '드라마' 배우 윤균상과 채수빈에게도 첫 키스 신이었다. 방영 당시 공개된 메이킹 영상에는 어색함과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두 배우의 풋풋한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채수빈에게 그날의 분위기를 물었더니 "어색하고 민망했지만, 사실 첫 키스 신은 따로 있다"라며 웃었다. "드라마에서는 <역적>이 처음 맞는데요, 제 첫 키스 신 상대는 연극 <블랙버드>에서 조재현 선생님이셨어요(관련 기사: 40살에게 성폭행 당한 12살 소녀... 왜 가해자를 찾아갔나). 제가 (조)혜정 언니랑도 친해서 집에도 놀러 가고, 밥도 먹고, 그렇게 선생님이랑 친구 아버지처럼 지냈거든요. 그런데 키스를 하려니까 너무 민망한 거죠. (웃음) 선생님도 연습할 때 '얘랑은 못하겠다'라고 하시고. 하하하. 근데 막상 무대 올라가니까 민망한 감정이 눈곱만큼도 안 들고 몰입이 되더라고요. <역적>에서도 그랬어요. 균상 오빠랑 키스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어색하지만, 길동이와 가령이잖아요. 가령이가 되니 민망함은 사라지고, 그 감정에 푹 빠질 수 있었어요." 가령은 <역적> 후반부 갈등의 큰 축이었다. 길동이 죽었다고 생각해 스스로 궁으로 간 가령은, 서슬 퍼런 임금 연산(김지석 분)에게 저주를 퍼붓는가 하면, 인질이 된 자신 때문에 흔들리는 길동을 향해 "나 때문에 돌아서면 다시는 보지 않겠다"라고 절규한다. 초반 솔직 발랄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붙들었던 가령의 한 맺힌 오열은 안방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역적> 첫 회에도 등장하는 이 장면. 눈 밝은 시청자들은 눈치챘겠지만, 후반부 장면은 재촬영된 것이다. 같은 대사, 같은 상황. 하지만 본격적으로 가령이가 되기 전과, 6개월 동안 가령이로 살아 낸 뒤는 분명 달랐다. "첫 회 촬영은 1월이었는데 너무 추웠어요. 입이 얼어서 말도 제대로 안 나오는 데다 장대 올라가는 게 무서웠죠. 그냥 주어진 연기만 했어요. '추워 죽겠다' 이런 느낌이 전부였던 것 같아요. 하지만 후반부에 다시 장대 올라갔을 때는,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가령이의 고통이 진심으로 느껴졌죠. 그땐 서방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감정이 달랐어요. 같은 연기인데 이렇게 달리 느껴질 수 있구나 싶더라고요. 이것도 흔치 않은 경험이잖아요.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대선 맞물린 <역적>의 절정... "묘했다" 채수빈은 <역적>의 가장 멋진 장면으로 연산과 길동의 마지막을 꼽았다. 길동이 폐주로 전락한 연산을 찾아가 "이융 너의 죄는 진짜 위를 알아보지 못하고 위를 능멸한 죄, 능상"이라 외치는 장면이다. 늘 위아래를 중시하고, 폭력과 강압으로 군주의 위엄을 세우려던 연산에게, 진정한 위는 '백성'임을 알려준 대사. 채수빈은 "우리 드라마지만 대사가 너무 소름 돋을 정도로 좋더라"라며 감탄했다. <역적>은 현 시국과 우리의 근·현대사를 연상시키는 듯한 이야기로 큰 감동을 전하기도 했다. 직접 <역적> 속 민초가 되어, 그들의 울분과 고통을 고스란히 느껴본 채수빈이니만큼, 근현대사에 대한 인식은 물론, 현 시국도 더 남다르게 느껴지지는 않았을까?"백성의 힘으로 왕을 몰아낸 드라마의 이야기인 건데, 딱 우리의 현재 상황이잖아요. 드라마와 현실의 결말이 달랐다면 마냥 판타지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았기에, 더 감격스럽고, 크게 와 닿았던 것 같아요." 촬영 도중 있었던 대통령 선거 역시 남다른 감동이었다. 1994년생인 채수빈의 첫 대선 투표였다. "대선 투표는 처음이었는데 기분이 정말 이상하더라고요. 내 손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자를 뽑는다는 게 너무 신기했죠. 개표 방송에 숫자 막 올라가잖아요. 그중 하나가 제 표라는 게 뿌듯하기도 하고, 묘하기도 하고. (웃음)" 연기의 재미 알아가는 3년 차 신인 데뷔 3년. 여전히 '신인'이지만, <구르미> <역적>에서 연이어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인 그. 이제는 '가장 기대되는 20대 배우' 중 한 사람이 됐다. 지금까지 잘 해오고 있는 것 같은지 묻자, "잘 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라며 씩씩하게 말했다. "연기가 점점 좋아져요. 하면 할수록 느껴지는 폭도 넓어지는 것 같고요. 물론 그만큼 부담감도 점점 생기는 것 같아요. 전에도 물론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는 했지만, 어느 정도는 '부족할 수밖에 없지 뭐' 이런 마음을 가졌거든요. 진짜 그런 삶을 살아본 것도 아니고,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고…. 비난받겠지 생각하고 연기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땐 제게 기대치가 없어 그런지, 보시는 분들이 관대하게 평가해주셨어요. 하지만 이젠 다르겠죠. 더 새로운 모습, 나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분명 힘든 점도 있지만, 아직은 힘든 것보다 연기하는 행복이 더 크고, 사랑받는 게 감사해요."갈고 닦은 '무술 실력'은 후속작에서 채수빈은 "사실 가령이가 후반부에 싸움을 배워서 홍가 식구들이랑 같이 싸우는 계획이 있었다"라며 "무술 연습도 했었다"라고 귀띔했다. "무술 연기를 보여드리지 못해 아쉽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하고..."라며 말끝을 흐리는 그에게, 기회만 있었다면 잘할 수 있었는지 묻자 "무술 감독님이 칭찬해주셨다"라고 자랑하듯 말했다.갈고 닦은(?) 무술 실력은 후속작에서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최근 출연을 확정한 KBS 2TV <최강배달꾼>에서 무술 유단자 이단아 역을 맡았기 때문이다. 6개월 대장정을 마친 뒤, 별다른 휴식 기간 없이 결정한 후속 작품이다. <구르미> <역적> 등 사극으로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채수빈의 현대극. 채수빈은 "캐릭터가 통통 튀고 재미있다"라며 웃었다."작품 할 때마다 캐릭터가 가진 성격도, 매력도 다르잖아요. 다양한 역할 많이 하면서 저랑 맞는 역할, 저만의 매력을 느끼고 싶어요. 언젠가는 독하고 강한 역할도 해보고 싶고, 정작 청순가련한 역할은 해본 적이 없어서 이것도 욕심나네요. 로맨틱 코미디도 해보고 싶은데, 음…. 제가 웃음이 너무 많아서. 하하하."채수빈은 "가령이를 연기하며, 배우로서 성장한 느낌이 든다"라고 말했다. 너무나도 멋지고 예쁘게 가령이를 연기해냈지만, 아직 배우로서 성장기이니만큼 본인도, 지켜보는 이들도, 앞으로에 더 큰 기대를 품을 수밖에 없다. 어서 가령이를 떨쳐내고, 새로운 캐릭터를 입어야 할 채수빈에게, 가령이와, 가령이를 사랑해준 시청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부탁했다. 채수빈은 "작품이 끝날 때마다 일기를 쓴다"라며 말을 골랐다."우선, 그동안 가령이를 사랑해주시고 아껴주신 분들께 너무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5~6개월 동안 울고 웃으며 너무 행복했던, 값진 시간이었습니다.가령이는 정말 배우고 싶은 부분이 많은 친구예요. 어린 나이부터 힘든 일을 많이 겪었는데도 밝고 씩씩하게 자랐잖아요. 그만큼 행복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니까, 앞으로도 길동이와 행복하게 살 거라고 믿어요. (웃음)"

나영석과 유재석의 성공 비결, 이 남자는 알고 있다

[inter:view] 책 <예능, 유혹의 기술> 저자 이승한 TV 칼럼니스트

우연한 계기로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이승한 TV 칼럼니스트의 글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볼 기회를 얻게 됐다. 그는 당시 만날 때마다 내게 지겹도록 어떤 프로그램이 어떤 이유에서 재밌는지를 (심지어 내가 보지도 않은 프로그램을) 설명하곤 했다. 그때도 그는 지금처럼 변함없이 TV를 끼고 사는 사람이었다. TV를 켜고 잠시 눈을 붙였다가 해도 뜨지 않은 새벽녘 일어나 다른 프로그램을 보려고 채널을 돌린다. 어찌 보면 조금은 팍팍한 일상. TV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아도 TV를 보는 일 자체가 직업이 되면 어떨까? 이를 테면 세월호 참사 같은 스스로 추스르기 어려운 뉴스를 접한 날 집에 돌아와 칼럼을 쓰기 위해 '웃긴'(실은 하나도 웃기지 않은)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일 같은. 그는 매순간 TV를 봐야 하는 직업에 대해 난처함을 토로하곤 했다. TV를 보고 글을 쓰는 일은 뭇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는 걸 그를 통해 알게 됐다. <한겨레>를 통해 이승한의 글을 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그는 여성·인종·성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담은 글을 여러 편 연달아 내기도 했다. 이를 테면 불편한 상황을 '좋게 좋게'만 풀어가려는 '유느님'에 대해 비판한 날이면, 댓글란은 난리가 나곤 했다. 그는 그럼에도 크게 개의하지 않고 성심성의껏 비판하는 편을 택했다. 몇 년 전부터 책을 낸다고만 하고 미루고 미루다 해를 넘기기 일쑤였던 그가 낸 첫 번째 책은 <예능, 유혹의 기술>이다. <예능, 유혹의 기술>은 '먹방'부터 '쿡방' 혹은 '눕방', 또 최근 범람하는 나영석 류의 '여행 방송'까지, 소위 '잘 나가는' 예능 프로그램들은 어떻게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사실 '유재석에서 나영석까지, 예능 최강자의 행보에서 배우는 기획의 기술'이라는 책 뒤표지부터 다소 의아했음을 미리 밝힌다. 유재석을 가열차게 비판하던 사람이 이제 와서 유재석의 성공을 분석하겠다니? 이런 의문점을 갖고 그를 만났다. 그는 "(모순으로 보일 수 있는) 부분도 의도를 하고 책을 냈다"고 밝혔다. "유재석은 늘 '더 낫게' 실패해왔다" - 책 <예능, 유혹의 기술>은 예능의 '기획'에 관한 책이다. 어떻게 제대로 '기획'을 해야 시청자들의 마음을 제대로 사로잡을 수 있는지를 분석했는데. 이 책의 기획은 어떻게 이뤄졌는지 궁금하다. "사실 다른 기획이 있었다. 출판사가 원했던 건 예능을 이끌어가는 나영석 같은 피디를 인터뷰하는 대담집이었고, 나는 한국 예능에서 의미 있는 실험이나 성취를 거둔 작가들을 만나 인터뷰를 내고 싶었다. 물론 세부적인 부분이 달랐지만, 그럼에도 해보자 싶어 덤벼들었다. 그런데 단순하게 좋은 작가들을 인터뷰한다는 기획 말고 디테일한 콘셉트나 섭외, 인터뷰 횟수 등에 대한 기획을 거의 못했다. 막연하게 이런 책을 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거지. 서로 서툰 부분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그 기획은 엎어지게 됐다.일단 책을 만들어보자고 했으니 어떤 책을 쓸까 고민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하려던 인터뷰 기획이) 왜 안 됐던 거지? 왜 망한 거지? 그런 반성을 하게 됐다. 기업 경영을 하는 사람들은 경영 사례를 통해 기획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정책 기획을, 창업가들은 프랜차이즈 성공과 실패 사례에 대해 이야기하겠지. 나는 주로 예능을 보고 글을 쓰니 외부에서 바라본 성공과 실패 사례를 분석해서 성공하는 기획은 무엇이고 어떤 기획은 왜 성공하지 못했는지를 다뤄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은 기획에 대한 실용서인 동시에 비평서이고, 또 반성문이다. '내 기획은 왜 망했는가'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된 책이니까."- 평소에 자주 쓰는 글과는 달리 이 책에서는 "성공한 사람들도 다 이유가 있어서 성공했다"는 식으로 접근했다. 그래서 일견 자기개발서처럼 보이기도 한다. "의도를 하고 기획됐다. 지금껏 예능에 참여하는 사람들에 대해 인물론을 중심으로 쓰기도 했고(<한겨레>에 연재 중인 '술탄 오브 더 티브이'에서) 어떤 콘텐츠가 사회에 파장을 불러오고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 다루었는데 그렇다면 (비판의 대상이 됐던) 이런 콘텐츠를 제작자들은 '어떤 고민을 통해 만드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좋은 작품 하나를 남기고 커리어가 꺾이는 피디들도 있지만 끊임없이 유의미한 진전을 이끌어내는 피디나 작가들도 분명 있다. 유재석이나 나영석 같은 좋은 성과를 만드는 사람들들도 있고. 우리는 결과물만 보고 얼마나 뛰어난지에 대해 칭찬한다. '역시 유느님' '과연 나피디' 이런 식으로. 그들이 어떤 국면에서 어떤 행보를 취했는가에 대해 분석한 글은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자신의 기획을 성공시키는지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보고 싶었다." - 유재석 이야기가 나왔으니, 유재석에 대해 비판을 하면서도 이 책에서는 유재석의 성공에는 이유가 있다고 말했는데.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나? "오늘날 신성불가침적 영역에 도달한 유재석이 보여준 퍼포먼스에 대해 비판하는 것과 과거에 그가 어떤 실패를 반복하면서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왔는지를 분석하는 건 전혀 다른 것이다. 유재석이 여성 출연자라든지 나이를 많이 먹었는데 아직 미혼인 연예인을 놀리는 태도라든지, 물론 유재석이기 때문에 악의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어느 순간 심리적 문턱을 덜커덕 하고 넘는 순간이 있다. <예능, 유혹의 기술>은 그럼에도 평소에 하던 비판보다 이 사람들의 성공 비결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유재석만이 아니라 이 책에서 칭찬한 사람들을 다른 칼럼에서 매섭게 비판한 사례를 많이 찾아볼 수 있을 거다. 우리 세대는 올려다 볼만한 멘토가 없는 세대다. 멘토라고 해서 우르르 몰려가 보면 '너희들이 노력을 안 해서 그래'라고 말하든지 사실은 학력을 위조했다든지 그런 사람들이 즐비하다. 보고 배울 롤모델이 많지 않다. 여기서 예능을 롤모델로 삼으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어떤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가장 가까운 TV에서 어떤 건 성공하고 실패하는지, 이들이 실패를 어떻게 딛고 일어나는지 힌트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유재석이 거듭 실패를 하면서 올라온 과정을 소개했는데 그가 그만큼 남들보다 많은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2000년대 초반, 유재석이 프로그램을 말아 먹어도 계속 기회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특A급 엠시는 아니었다. 유재석은 그보다 기회를 얻기 위해 <진실게임>이랄지 다른 프로그램의 성과를 지렛대 삼아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들이 밀었던 사람이다. 유재석은 '더 낫게' 실패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기반을 만들어야 했던 사람이다. 유재석은 프로그램을 하다가 망했는데 한 번 더 해보자고 마냥 들이밀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프로그램에서 '나는 이만큼 시청률을 견인할 수 있고 그러니까 이거 한 번 더 해보자'고 끊임없이 말했던 사람이다." 나영석의 성공 전략, 결국은 '콘텐츠' - 나영석의 경우 해외 영화의 이미지를 예능으로 가져와 비슷하게 차용하는 것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데, 그의 성공 전략을 어떻게 보았나?"나는 표절 문제는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할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더 지니어스> 같이 유사점이 크지 않다고 본다. 나영석 피디나 이우정 작가가 자신이 보고 접했던 대중문화 콘텐츠의 기호를 따서 자신의 작품 안에 갖다 놓는 일을 잘 하는 사람이라는 건 나도 동의하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데 그렇게 가져온 요소 대비 이들이 만드는 예능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가 얼마나 되는지를 봐야 하는 것이다. 왜 비슷한 프로그램이지만 <마마도>는 흥하지 못하고 <꽃보다> 시리즈는 흥했을까? 단순히 네임밸류가 있기 때문에 잘 된다는 이야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나영석이 tvN으로 이적하고 <꽃보다>를 발표하기까지 6개월이 걸렸는데 그 당시 나영석 피디에 대해 비관론이 많았다. '본인이 <1박2일>이라는 브랜드 안에 있었기 때문에 잘 된 거지 혼자 가서 뭘 할 수 있을까' 같은 회의론. 또 <꽃보다> 시리즈를 성공시키고 <삼시세끼>를 만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요리왕 서진이라고 농담 따먹기나 했던 걸 진짜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네?'라면서. 결과적으로 둘 다 성공을 거뒀지. 어느 정도 과대평가 된 부분도 없진 않지만 그럼에도 나영석이 콘텐츠 없이 여기까지 올라온 사람은 아니다. 이 사람이 과대평가 됐다는 이유로 이 사람이 만든 콘텐츠 전체에 대한 유효성을 탄핵할 필요는 없다." - 책 속에서 강호동과 이경규가 출연하는 JTBC 예능 <한끼줍쇼>를 토크쇼로 분류한 것은 다소 의아한 측면이 있었다."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밥을 얻어먹기 위해 탐색하고 문전박대 당하는 걸 예능적으로 사용했다가 맨 마지막에 어느 집에 들어가서 밥을 먹으면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대화를 나누는 것. <한끼줍쇼>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앞의 모든 장면들은 그 뒤의 '고갱이'를 위해 무리수를 던진 것이다. '식탁에 밥 차려 놨으니 먹고 가라'는 게 아니라 같이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눌 사람을 찾는 것이다. 갑자기 불쑥 찾아온 사람에게 밥을 주겠다면, 물론 이경규랑 강호동이지만 (웃음) 이 사람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오늘 보낸 하루는 어땠는지를 묻게 된다. 나는 JTBC 토크쇼에 분명한 흐름이 있다고 보았다. <톡투유>나 <말하는 대로> 같은 스튜디오 안에 들어오지 못했던 사람을 들어오게 하고 말수가 적고 리액션만 하던 사람들에게 마이크를 주고. '이 사람들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해주세요'라고 청하는."- 한국의 예능사를 책을 통해 쭉 훑어봤는데 앞으로 어떤 예능 포맷이 잘 될 것 같나? "그것에 대해 장담하면서 말하는 사람은 사기꾼이다. (웃음) 10년 동안 여기서 일을 하면서 배우고 확신하게 된 것이 하나 있다면 앞으로 어떤 종류의 예능이 뜨고 어느 구석에서 어떤 것이 성공을 거둘지는 1년 뒤가 아니라 당장 내일도 확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경규처럼 방송 경력이 35년이 넘는 사람은 척척 예언도 한다. 그 안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니까. 하지만 단언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한 번 이야기해보자면, 이미 지금도 각광받는 종류의 예능이지만 '한국 사회에 산적한 갈등을 직시하고 해결방안을 이야기하는 종류의 쇼들'의 인기가 점점 늘어날 것이다.이미 <마녀사냥>이랄지 <비정상회담>이랄지 JTBC가 이런 포맷으로 재미를 본 바 있고 지상파로 이런 흐름이 옮겨와 교양으로 다뤄야 할 분야를 예능의 문법으로 다루는 EBS <까칠남녀> 같은 프로그램들. 정치·경제적이나 젠더이슈까지 보자면 한국 사회가 이렇게까지 분화된 적이 없었다. 예전에는 공포 정치로 눌렀고 공포 정치가 끝난 다음 사람들의 불만이 수면 아래 있었고, 어떤 민중이 자기가 가진 정치적 힘이랄지 개개인의 권리에 대해서는 눈을 떴는데 그 권리를 개인 차원에서 현실로 옮길 수 있는 경제 사정이 되지 못할 때 사회적 갈등이 일어난다. 예능은 결과적으로 당대 욕망의 반영이다. 그래서 각자 억눌린 욕망 같은 걸 반영하는 쇼들이 인기가 있었다. 독신 가구의 외로움을 달래는 '먹방'이나 '노령 예능'은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예능의 화법으로 넌지시 반영한 건데 이제는 그런 식의 욕망 반영으로 만족하지 않고 각기 다른 의견이 어떤 식으로 충돌을 하고 어떤 식으로 접점을 찾아가는가를 지켜보는 것이 '시대의 엔터테인먼트'가 될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간에 다음 5년은 갈등을 봉합하고 봉합하는 과정에서 청산할 것이 있다면 어떻게 청산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홍준표가 되면 그런 거 안 하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가 거기에 쏠릴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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