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th오마이스타

 배우 류현경.

배우 류현경이 영화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의 주연을 맡았다. 2년 전 촬영한 작품으로 개봉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영화는 지난 9일 개봉해 현재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프레인


50편이 넘는 작품에 참여한 이 배우, "주연, 조연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배우로서 캐릭터를 보다 현실의 인물처럼 연기"하는 게 중하다고 말한다. 21년차 연기 경력의 류현경 이야기다.

그가 전면에 나선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가 최근 개봉했다. 개봉 즈음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일대일'로 만났다. 때가 되면 제작발표회와 언론 시사, 그리고 으레 몇 명씩 기자들을 묶어 인터뷰 하는 최근의 영화 홍보 흐름에 염증을 느끼던 차에 신선했다. "여러 기자 분들과 한꺼번에 만나면 제가 집중이 안 되어서요"라며 그가 가볍게 웃었다.

예술과 상업 사이

 배우 류현경.

무명작가에서 스타로 급부상한 캐릭터를 연기해야 했던 류현경. 미술의 문외한이었던 그는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프레인


이번 영화에서 류현경은 무명작가였으나 죽은 이후 오히려 스타로 급부상한 미술작가 지젤 역을 맡았다. 본명은 오인숙. 일단 이 설정만으로 작품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 일부를 예상할 수 있다.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을 땐 스스로 자신이 진짜 예술가라고 생각했던 지젤은 일종의 닫힌 사고방식의 인물이다. 동시에 분위기에 휩쓸려 지젤의 작품을 사려고 하는 미술 관계자들은 미의 기준 없음 내지는 허상의 산물이다. 영화는 지젤과 그런 사람들을 한꺼번에 풍자한다.

일종의 블랙코미디다. 한 사람의 생사를 놓고 벌이는 등장인물들의 행동은 하나하나가 비장하지만, 영화는 그걸 유쾌하고 빠른 흐름으로 녹였다. 배우 박정민이 미술관 관장으로 류현경과 호흡을 맞췄다. 류현경은 "감독님은 처음엔 진지하게 가고 싶어 했던 것 같은데 정민씨와 제가 캐스팅되면서 얘길 많이 했다"며 배경을 살짝 전했다. 그렇게 진지하지만 우스꽝스러운 지금의 영화가 나올 수 있었다.

미술계에 한정했지만 동시에 영화는 예술과 상업 사이에서 저울질 받는 창작자들의 일반론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우선 이걸 류현경에게 적용해 봤다. 배우 김혜수, 강수연의 아역으로 연기를 시작한 류현경은 각종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아우르며 지금에 이르렀다. 지젤에 감정 이입할 여지가 그만큼 컸다.

 영화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의 한 장면.

영화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의 한 장면. 지젤은 일종의 예술적 허영심을 갖고 있다. 그와 그를 둘러싼 미술계 인사들의 긴장 관계가 묘하게 다가온다.ⓒ 영화사소요

"제가 그림에 대해선 전혀 몰라요. 영화적 표현을 위해 영화에 등장하는 그림을 그린 작가님 작업실에 갔는데 하나의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시간이 굉장히 중요하단 걸 느꼈어요. 이 부분이 연기자와 비슷한 것 같아요. 배우 역시 결과물로 보이는 사람이지만 그걸 해내기 전까지 상당히 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준비하거든요. 지젤도 그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저 역시 준비 과정이 좋아야 결과물도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막상 2년 전에 이 영화를 찍을 땐 배우로서 느낀 어떤 갈등보단 살면서 이루고 싶은 것들에 대한 갈등을 더 생각했어요. 비단 예술계만 다룬 게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런 의미에서 언론시사회 때 '(특정 분야 사람이 아닌) 우리 모두가 아티스트'라며 정민씨가 한 말에 공감해요. 목표를 향해 준비하는 것 자체가 예술이죠."

진심의 표현

산업의 관점에서 스타 배우는 분명 중요하다. 대중의 관심도와 함께 실력까지 갖추면 금상첨화다. 실제로 많은 연기자는 알게 모르게 작품의 성공에 신경을 쏟는다. 자신의 만족도와 별개로 관객들에게 많이 팔리면, 곧 다음 작업을 지속하게 하는 물리적 지지대가 되기도 하니까. 그런데 이 관점에 류현경은 조심스럽다. 20년이 넘은 경력을 쌓으며 속된 말로 '스타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을 터. 이 우문에 류현경이 웃는다. "만약 됐을 거라면 진작 되지 않았을까"라며 받아쳤다. 현답이다. 이어진 그의 배우론이 더욱 빛난다.

"민감할 수도 있는 문젠데요. 어쨌든 배우는 진심을 표현하는 사람이라 생각해요. 진심과 진실에 가깝게 연기하려 하고 그게 잘 표현되면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실 거 같아요. 그런 점에서 상업 영화와 예술 영화를 구분하는 건 좀 의미가 다르죠. (잠시 고민하며) 이걸로 제목 안 뽑을 거죠? (웃음) 

꾸준히 일하면 어느 순간 좋은 시기도 만나고 그럴 텐데요. 전 작품을 꾸준히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요. 아직 멀었죠. 작품을 할 때마다 아쉽고, 고민과의 싸움이거든요. 진지하게 (스타성을) 고민할 시간이 없어요! 평생 연기하겠다고 마음먹었던 순간부터 제겐 스타가 되는 것보단 작품에서 잘 쓰임 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배우 류현경.

류현경은 참 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그가 쌓아온 필모그래피를 살펴 보면, 몇 번의 변곡점이 있었다.ⓒ 프레인


류현경을 수놓는 여러 작품이 있다. 그 안에서 철저히 캐릭터에 다가가고자 한 흔적이 엿보인다. <방자전>(2010)에서의 파격적인 노출, 그 이전 단편 <211>에선 아이를 낙태하는 여성, <시라노: 연애 조작단> <전국노래자랑> 등에서의 코믹한 모습 등은 단지 캐릭터로서만이 아니라 현실 어느 지점에 존재하는 인물로 다가오기도 했다. 게다가 <날강도> <광태의 기초> 등 단편 영화를 연출한 감독으로서 면모도 있다. 이처럼 그의 필모그래피 자체가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상징한다. 그가 앞서 언급한 '평생 연기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신기전>(2008)을 찍을 당시였다.

"제겐 분기점이 될 작품이죠. TV영화 채널에서 종종 볼 때마다 마음이 뭉클해요. 같이 작품을 만들어갈 때 그 마음들이 보이거든요. 제가 연기적으론 부족했을지 모르겠지만 그건 계속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그전에도 작품은 계속 했지만 이걸 평생 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거든요. 현장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좋았고, 어렸을 땐 학교 수업을 빼먹으니 즐거웠죠.

근데 <신기전>을 8개월 간 전국을 돌며 찍었을 때였어요. 제가 정재영 선배를 끌어안고 '오라버니 죽지 마!'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 대사를 치는데 정말 이 사람이 죽을 거 같은 거예요. 아, 이런 느낌이구나. 그래서 선배들이 계속 연기하시는 거구나. 그 순간이 되게 감사한 거예요. 그때부터 제가 좀 더 고민하고 생각하면 더 좋은 여기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평생 연기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런 고민도 많이 한 거 같아요. 다양한 작품에서 좋은 배우로 잘 쓰이는 게 진짜 복된 일이라는 걸 깨달았죠. 그때부터 치열하게 열심히 했어요."

희망의 연속

 배우 류현경.

배우 류현경의 대본에는 물음표가 많다. 아마도 그 물음표들이 지금의 류현경을 만든 게 아닐까.ⓒ 프레인


그의 대본은 온갖 물음표로 가득하다. '얘가 왜 이런 대사를 칠까? 쟤는 왜 저렇게 걸어오지?' 등의 질문이 적혀있다.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도 마찬가지였다. 캐릭터를 이해하고 다가가기 위한 일종의 그만의 의식이다. "많이 듣는 말은 아니지만" 이란 단서를 달면서 류현경은 연기하며 가장 보람 있는 순간 하나를 언급했다.

"'현경씨 그 캐릭터, 제 얘기예요. 저랑 너무 똑같은 거 같아요' 이 말에 너무 감사해요. 연기를 계속 하게 하는 힘이 되죠. 많은 분들이 (요즘 한국영화에) 여성 이야기가 없다고들 하시는데 전 희망적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힘든 요즘이긴 하지만 분명 새롭고 다양한 작품이 나올 겁니다. 한때 조폭 영화가 한참 나오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그 이후엔 다양한 영화들이 나왔죠. 지금이 그런 시기 아닐까요. 남성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영화들이 나올 거라고 봐요. 전 작품으로 얘기할게요(웃음). 다양한 작품을 하는 걸로 보여야죠." 

인터뷰 말미 류현경은 가장 그리운 캐릭터로 <전국 노래자랑>의 오미애를 꼽았다. "우리 엄마, 이모, 언니 등 많은 여성에게 위로가 될 캐릭터라고 생각했다"며 "그때 촬영장이었던 미용실을 한참을 들여다보곤 했다"고 말했다. 한때 가수의 꿈을 키웠던 미용사 오미애는 그렇게 류현경을 통해 독자적인 여성 캐릭터로 등장할 수 있었다.

특별한 스타가 되려 하기 보다 류현경은 오히려 평범해지려 한다. 그럴수록 그의 연기는 현실성에 굳게 발을 딛게 된다. 그런 그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배우? 특별해선 안된다"... 평범함에서 빛난 정경호

[inter:view] <미씽나인>은 혹평, 연기는 호평... 그는 계속 재발견 돼야 한다

이 남자. 긍정적이라고 해야 할까, 속없다 해야 할까. "데뷔한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인생캐릭터'를 만나진 못한 것 같은데, 초조하진 않나"라는 조금은 아플 질문에 허허 웃으며 나온 답이다. 자신은 "(아직 '인생캐'를 만나지 못한 것이) 오히려 장점이라 생각한다"면서. 13일 서울 강남구 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배우 정경호(33)는 진지함 속에 가벼움을, 가벼움 속에 묵직함을 담고 있었다. 혹평 쏟아진 <미씽나인>... 정경호는 빛났다 <미씽나인>의 시작은 호평일색이었다. 해외 공연을 위해 스타들을 싣고 중국으로 향하던 전세기가 추락했고, 사고에서 살아남은 9명은 무인도에 떨어졌다. <미씽나인>의 초반 장르는 분명 어드벤처물이었다. 지금까지 TV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소재와 장르라 신선했다. 게다가 초반부 사건 진상 규명보다 그저 모든 것을 덮으려는 정부의 모습은 세월호를 연상시키며 큰 호응을 받았다. 첫 회 시청률은 6.5%(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에 그쳤지만, 극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다. 많은 이들이 새로운 '명품 드라마'의 탄생을 기대했다.하지만 드라마는 어드벤처물에서 범죄스릴러물로 바뀌었고, 호평이 혹평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경호에게도 고백했지만, <미씽나인> 후반부 전개는 보기 힘들 정도로 답답했다. 그럼에도 끝까지 드라마를 놓지 않았던 이유는, 스토리의 빈 곳을 채워나간 배우들의 호연에 있다. 그 중 단연 눈에 띄었던 것은 철부지와 리더 사이를 오가며 성장해 나가는 정경호(서준오 역). 그로서는 15년째 듣는 말이라 지겹겠지만, 다시 한 번 '정경호의 재발견'이라 할 만했다. '배우 정경호'는 호평을 받았지만, 드라마에는 혹평이 쏟아졌다. 주연배우로서 아쉬울 법도 하다. 하지만 그는 "이보다 잘 맞는 팀은 또 없을 것"이라면서 <미씽나인>으로 얻은 것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굉장히 피곤했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그의 말투와 표정에는 팀원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겨있었다. 후반부 개연성 잃은 전개에 대해 "태호가 벌여놓은 악행이 많아 모든 것들을 빠르게 해결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는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지만, "현장 분위기는 너무 좋았다. 시청률이 떨어져도 우리는 우리 이야기들을 해야 하지 않나. 시청률에 연연하기보다, 서로 '으쌰으쌰' 하면서 즐겁게 촬영했다"고 말했다. 오정세와 찰떡 케미... "거울 보고 연기하는 기분" 무겁고 진지한 극 안에서, 예상치 못한 코믹함으로 극에 활력소를 불어넣어 주는 것은 정경호와 오정세의 몫이었다. 둘의 호흡이 어찌나 찰떡같았는지, 오정세는 최근 인터뷰에서 "(정경호와 연기하며) 내 자신과 연기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표현했고, 정경호는 "거울 보고 연기하는 것 같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거울을 보고 연기하는 것 같았다'는 말은, 두 배우의 작품을 보는 시각과 변주를 주는 방향과 크기가 그만큼 비슷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연출자 공감이 필수적이다. 연출자가 그들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마음껏 연기 할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다행히도, 최병길 PD는 두 배우의 의도를 정확히 캐치했고, 톤 조절도 해줬다. 그는 새로운 장르, 새로운 상황, 새로운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이는 그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군 입대로 2년여간 작품을 쉬는 동안 "연기를 못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 "더 다양한 상황을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연예인 역할 네 번, "가장 닮은 건 서준오" 늘 새로운 시도를 추구하는 정경호지만, 지금까지 무려 네 번 연예인을 연기했다. 물론 모두 성격과 놓인 상황이 다르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최윤은 철부지였고,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의 유정훈은 장애를 가진 과거의 아이돌, <롤러코스터>의 마준규는 안하무인에 생각 없는 톱스타였다. 그는 네 번의 연예인 연기 중, <미씽나인>의 서준오를 자신과 가장 닮은 캐릭터로 꼽았다. 하지만 그는 이런 마음을 '갈증', '초조함', '불안함' 등으로 표현하기를 꺼렸다. 지향하고 있는 바를 '목표'라는 이름으로 거창하게 포장하지도 않았다. 지난겨울 제주도에서 무인도 분량을 촬영하며 힘들었겠다는 말에는 "추위 말고는 그리 큰 고생은 없었다"고 말했고, 지난 기간 조바심을 느낀 적은 없는지 물었을 때는 "그렇게까지 심각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언뜻 자기 감정 드러내는 걸 부끄러워하는 성격인가 싶었지만, 1시간가량 대화를 이어가다보니 그게 그의 솔직한 마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아버지 작품, 너무 하고 출연하고 싶지만..." 정경호는 2003년 KBS 공채탤런트 20기로 데뷔했다. 그는 연기를 시작하던 그때와 지금의 자신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연기를 하면할수록 "감독의 오케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연기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대사를 쉽게쉽게 치지 않았던 것 같다"는 말로 연기에 대한 그의 진지함을 표현했다.연기를 막 시작하며, 그 나름대로 세운 목표가 있지는 않았는지, 그때 그 기대치에 지금 얼마만큼 도달해 있는지 묻자, "그런 기대치는 없었다"며 "와 난 그런 게 없었구나. 보통 그런 게 있나요?" 라며 뒤늦은 깨달음을 토해냈다. "지금이라도 10년 뒤의 목표를 한 번 세워보라"고 제안하자, "이 일(연기)만 계속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미리부터 구체적 목표를 세우는 스타일은 아니라던 정경호에게도, 오래전부터 바라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아버지 정을영 감독의 작품에 출연하는 것. 그의 아버지는 <목욕탕집 남자들> <내 남자의 여자> <엄마가 뿔났다> 등을 연출한 대표적인 스타 PD이자 명감독다. 같은 분야에 큰 성과를 이룬 아버지가 있다는 건 분명 부담스러운 일일 것이다. 정경호는 "어릴 땐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이젠 그저 영광"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와는 친구 같은 관계"라는 그는 "늘 문제가 있으면 아버지랑 이야기 많이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와 아들' 하면 떠오르는, 무뚝뚝하고 어색한 관계도 아니라는 거다. 하지만 연기를 하면 할수록, 사랑하고 집중할수록 아버지가 대단하게 느껴진단다. 그래서 감히 아버지에게 조언을 해달라거나, 평가해 달라거나 하는 부탁을 하지 못했다고. 아버지 작품에 출연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 지 묻자 "전 있어요. 너무 하고 싶은데 안 된대요"라는 속상함이 가득 담긴 답이 돌아왔다. 아들이기 때문인 건지, 배우 정경호가 마음에 안 들어서인 건지 물어보지 그랬느냐고 농담하자, "둘 다인 것 같다"며 웃었다. 아들이라 더 조심스럽긴 하겠지만, 자칫 영영 아버지 작품에 출연할 기회가 없을 수도 있지 않느냐 말하자 "'이번엔 같이 하자'고 하면, 항상 '마지막에'라고 하신다"고 정을영 감독의 반응을 전했다. "마지막 작품은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던 그는, 이내 "마지막 작품이라니, (말만이라도) 너무 슬프다"며 금세 차분해졌다. '배우' 정경호, '연예인' 정경호 유독 연예인을 많이 연기했던 배우이기에, 연예인 중에서도 연예인 같은 모습이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하지만 그는 "배우가 특별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옆집 아저씨, 오빠, 그런 평범한 사람을 연기하는 것 아닌가. 추구하는 연기스타일도 편안함"이라고 말했다.하지만 배우로, 연예인으로 살다보면 평범함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본인은 "사람들 시선 신경 안 쓰고 편하게 산다"고 했지만, 그게 어디 100% 되겠는가. 공개 연애 중이지만, 당장 데이트를 할 때도 여느 평범한 커플과 같을 순 없을 텐데. 정경호는 그 조심스러움의 이유조차 "유명인이라서가 아니라, 이런저런 역할을 표현해야하는데, 나쁜 모습으로 기억되면 안 될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그는 '배우 정경호'로 살아갈 뿐, '연예인 정경호'는 전혀 연연하지 않는 것 같았다.

"손석희는 정파, 김어준은 사파... tbs는 타 방송이 못하는 걸 할 것"

[inter:view] tbs의 이유 있는 약진... 정찬형 사장 "진짜가 가짜 이기는 구도 만들겠다"

취임 후 만 1년이 지났다. 33년을 근속하며 여러 화제 프로를 만드는 등 뼛속까지 'MBC 맨'이었던 정찬형 대표는 지난 2015년 12월 tbs로 적을 옮기며 "공공의 이익만 바라보고 그것에 효율적으로 봉사하면 시민들이 사랑으로 보답해준다"는 믿음을 강조했다.그의 지난 1년은 그 믿음이 확신으로 바뀌고, 실체로 증명되는 기간이었다. 서울시 산하의 약소지상파 방송사가 이뤘다고 보기엔 스케일이 참 크다. 지난 3일 상암동 tbs 본사에서 만난 정찬형 대표는 "자랑질은 계속돼야 한다"고 웃어 보이며, 그 성과를 읊었다. tbs 모든 프로그램의 평균 청취율 두 배 상승, 0.8% 대였던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5.4%로 약 6배 상승 등.이 자랑이 의미 있는 건 단순히 수치의 변화라서가 아니다. MBC와 KBS 등이 공영방송사로 제 역할을 못하며 거리에서 시민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동안 tbs는 시민들에게 환영받았다. 정찬형 사장은 "최근까지 <정봉주의 품격시대> 생방송을 광화문에서 진행하고 있는데 시민들이 비오는 날엔 유리창을 닦으라며 세제까지 사오셨다"는 일화를 전했다.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다는 게 더욱 큰 쾌거 아닐까. 스스로 약소방송사라 칭했던 tbs 입장에선 분명 괄목할만한 변화다. tbs 저격수, tbs 선장이 되다"<김어준의 뉴스공장> 라이브 방송은 타사의 일선 PD들이 휴가까지 내며 구경 왔고, 몇몇 분들은 여론 조사 기관에 tbs 프로 시청률을 먼저 문의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겸연쩍어하면서도 할 만한 자랑은 하던 정 대표는 사실 현직 시절 'tbs 저격수'였다. 2015년 12월 18일 취임사를 보자. 당시 정찬형 대표는 "1990년에 tbs가 출범하면서 저녁 프로의 위협적인 상대로 떠오르자 <이무송·노사연의 특급작전>으로 맞서 다시 순위를 뒤집게 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로선 감회가 남다를 만하다.- MBC, KBS 등 지상파의 위기는 곧 타방송사의 기회의 때다. tbs도 여기에 해당하는데, 선택과 집중을 강조한 취임사가 기억난다. 당시 특별한 복안과 전략이 있었던 건가. "우리도 지상파다. 지상파 위기가 대안미디어의 기회라는 시각이 있는데 난 지상파 라디오로 승부할 게 여전히 있다고 생각한다. 강연할 때도 지구 종말 때까지 라디오의 역할이 있을 거라 말한다. 간편성과 오디오 중심 미디어라는 장점이 있거든. tbs가 약소방송국이잖나. 약점이 많지. 그걸 극복할 전략이 선택과 집중일 수밖에 없었다. (지난 1년은) 타사의 취약점은 공략하고, 우리 약점은 보완하는 과정이었다. 우리가 왜 존재하고 필요한지 시민들에게 마치 생필품처럼 인식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처음에 왔더니 PC용 홈페이지를 연결한 걸 어플로 쓰고 있더라. 일단 모바일 전용 어플리케이션부터 만들었다. MBC에 있을 때 '미니'라는 어플을 개발할 때 라디오본부장이었거든. 여기 와서 일단 어플에 투자했고, 2016년 9월 말 정도에 tbs FM, eFM, tv까지 다 되는 어플을 뿌렸다. 바로 그때 <김어준의 뉴스공장>도 시작했고, 빅뱅이 일어났지.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시사교양장르, 특히 탐사와 진실 추적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우리가 그 부분을 공략하고 서비스 해주면 청취자가 몰릴 수밖에 없다고 봤다. 일개 (서울시) 커뮤니티 라디오가 강소공영방송으로 거듭나려면 선택과 집중이 필수라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파악한 tbs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이었나."방금 내가 tbs를 커뮤니티라디오라고 좀 격하시켜 얘기했다. tbs는 직업운전자 분들이 즐겨들을 만한 방송사로 처음에 출발했다. 그러다가 네비게이션 등 여러 기기들이 발달하면서 교통 정보 자체보단 다른 생활 정보의 중요성이 커졌는데 tbs가 아직 거기까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난 그게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방송사에서 잘 안하는 걸 집중해보자 이런 식이었지. 약소 방송사로서 선택할 다른 방도가 없었다. 소수 인력에 저예산이다. 우리 인력 규모 들으면 아마 깜짝 놀랄걸?(웃음) 그래서 몇몇 핵심 장르와 핵심 시간대 프로에 집중 투자를 한 거다."- 잘한 부분과 동시에 1년이 지난 지금 애초 예상과 달랐던 시행착오는 없었는지."뭐든 시작하기 전에 시뮬레이션을 하잖나. 노력했는데 결과가 잘 안 나온 걸 시행착오라 정의한다면 그런 건 없다. 예상보다 더 큰 빅뱅이 벌어진 건 있지. 오히려 그게 시행착오라면 착오다. <지금은 라디오시대> <손석희의 시선집중>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등 MBC에서 30년 넘게 방송했는데 예측보다 훨씬 더 큰 성과가 일어났다. 물론 <김어준의 뉴스공장>으로 파란을 일으키겠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이건 그 자체로 문화적 사건현장이 됐다. 희한한 경우다. 부패한 정권에 시민들이 뭉쳐 저항하는 과정 자체가 우리 구성원에겐 훈련 과정이었다. 전투를 하면서 총검술, 사격술을 익힌 희한한 상황이었지.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던진 역동적 상황이라 빅뱅이 나왔다고 본다. 지난 9월 <김어준의 뉴스공장> 출범 전후로 <한겨레>의 미르 재단 보도가 있었는데 해당 기자가 우리 쪽 패널로 나오고 있었다. 다른 언론사가 보도 안 할 때 <뉴스공장>이 한 셈이지. 10월 <정봉주의 품격시대> 출범일엔 박근혜의 개헌 발언과 JTBC의 태블릿 PC 보도가 나오며 본격적인 싸움에 들어갔고. 이런 일들이 두 프로가 자리 잡는 데 엄청난 기여를 한 셈이다."신의 한 수 정찬형 대표 체제의 tbs 프로그램의 특징은 기존 프로그램의 변주와 과감한 도전으로 정리할 수 있다. 스테디셀러였던 <배칠수, 전영미의 9595쇼>에 힘을 실었고, 기존 방송사에서 외면하던 김어준, 정봉주, 김종배 등을 전격 영입했다. 물론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김어준을 섭외하는데 한 달, 회사의 결단을 기다리는 데 세 달 걸렸다. 간부들은 대부분 반대였는데 사장님이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던 <뉴스공장>의 정경훈 PD의 말을 떠올리며 질문을 이어갔다.- 분명 김어준, 김종배의 섭외 등은 신의 한 수였다. 두 사람 모두 MBC 방송 경험이 있고, 정 대표와도 인연이 있다. 이미 생각해놓은 카드였나."음, 솔직히 생각해볼 순 있었지만 깊이 염두에 둔 카드는 아니었다. 여러 다른 분들도 섭외 라인업에 있었다. (이 대목에서 비보도 전제로 몇몇의 이름이 나왔다) 우리 입장에선 일종의 보석 찾기다. 업계에서 손 안대고 있는 분들을 찾아야 했다. 시대의 결핍에 대응하자는 게 큰 틀이었다. 다른 방송사가 못하는 걸 하려 했고, 그러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 쫄면 안 되지. MBC가 본래 시사교양, 탐사보도가 강했지 않나. 김재철 사장을 거치며 쭉 언론인 찍어내기를 했왔는데 사실상 언론계 블랙리스트가 시작됐던 때다. 김종배, 김어준 등의 방송 복귀는 우리 입장에선 사실 이 시장에 메기를 풀어놓는 느낌이었다. 잠들어 있거나, 졸거나, 엉터리 가짜 정보를 팔거나, 유용한 정보를 바꿔먹는 이들에게 사기 치지 말라고 강한 압박을 넣는 거지(웃음)."- 김어준, 정봉주, 김종배씨의 설득과 결정 과정이 궁금하다. "그 분들 설득 자체는 금방 됐다. 블랙리스트라 방송사 출연에 제한을 받던 때 아닌가. 팟캐스트에서 활약하시다 오셨는데 우리 입장에선 상업적으로도 필요한 분들이다. 워낙 팬덤이 많기도 하고. 김어준, 정봉주 등은 캐릭터가 거칠고 비속어도 쓰지만 분석력 하난 예술이잖나. 위험한 뇌관만 제거하면 멋진 방송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근데 처음엔 프로그램 진행자가 아니라 코너 출연자로 부를 생각이었다. '금주의 핫캐스트' 뭐 이런 식으로 팟캐스트 계 소식을 전하자는 거였지. 그러다 정경훈 PD가 진행자로 하자고 확 제안했다. 이 이름을 기억해 달라. 배칠수, 전영미를 섭외했고, MBC에서 잘하고 있던 박찬혁 작가를 삼고초려 해 데리고 온 인물이다. 그 아이디어를 듣고 당연히 부담됐지. 살만큼 살아서 아쉬울 게 없는 나이인데도 '와 이건 세다!'고 생각이 들더라. 분명 논란이 될 거고, 김어준이 그때 선거법 재판 중이기도 해서 일단 보류했다. 그러다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제청을 인용하면서 '쓰라는 암시구나.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종배는 내가 <손석희의 시선집중> 할 때 검증된 유능한 인물이었고, 정봉주 선수 역시 여러 위험 요소가 해결되는 과정이었다."- 내부와 외부 반대도 많았을 거고, 자기 검열도 있었을 텐데."나 자신이 검열 거부 쪽으로 살아왔다. 언론 통제나 검열은 헌법정신으로 싸워야 한다고 본다. 구성원과 진행자들에게 압력을 가한 건 없다. 다만 법 안에서 하라고 말은 했지. 헌법, 방송법, 심의 규정 등 그런 법과 제도 안에서 무한자유를 보장한다고 했다. 아, 국가보안법도 지키라고 했다. <뉴스공장> 들으면 김어준이 소개하면서 '준법방송' 뭐 이런 말을 하는데 내가 얘기한 걸 비꼰 걸 수도 있다(웃음). 그에게 방송에서 욕설을 한 번이라도 하면 '즉결 조치하겠다'고도 했다(웃음)." - 최근 <다이빙벨> <또 하나의 약속> 등 정권 비판 영화를 공격적으로 상영하기도 한다. 이 역시 하나의 전략인 건지."tbs 약점 보완 프로젝트 중 하나다. 우리가 소수인력이라 데일리뉴스까진 가능한데 다큐 제작 쪽이 취약하다. 일종의 탐사 프로 보완을 위한 거지. <다이빙벨>을 틀 당시가 공교롭게 국회 청문회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시의적절 했다고 본다. <또 하나의 약속>도 지금 봐야할 이유가 충분했다. 삼성이 정유라의 말 구입을 위해 400억을 전달하는 동안 자기 회사 노동자의 목숨을 500만원에 흥정한 거 아닌가.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귀향>도 3월 중 틀 예정이다. 우리에겐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게 이런 영화들이다. 저예산 영화 제작자 입장에서도 조금 보탬이 되는 생태계가 되길 기대한다. 하다 보니 시네마달 작품을 많이 틀고 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지? 흠…. 폐업되면 안 된다."- <배칠수 전영미의 9595쇼>의 변주도 흥미롭다. 앞서 언급한 프로가 신상품을 잘 만든 경우라면 이건 tbs의 스테디셀러를 잘 살린 사례 같다."이 프로의 백미는 역시 백반토론이다. 이건 제가 표현의 자유를 좀 더 보장하는 과정이었고. 동시에 SNS 유통되도록 아예 음원 자체를 공개했다. 누리꾼들이 재가공해서 마음껏 놀 수 있도록 말이다. 유투브 등에 애니메이션과 진행자 목소리를 합성한 게 돌고 있잖나. 그거 우리가 한 거 아니다. 청취자들이 재가공하면 우린 거기서 홍보효과를 얻는 거지. 다만 누군가 그걸로 너무 많은 이익을 챙기고 있다면 계약서 들고 찾아간다고는 했다. 배철수, 전영미가 워낙 성대모사의 달인이다. 현란한 테크닉도 있고. 정오 시간의 새로운 예능 강자로 등극 중이다. (시사가 아닌) 소재의 폭을 좀 넓혀서 간 예능 프로로 이해해주길 바란다."- 가벼운 질문이다. 손석희와 김어준을 비교해보자면? "어유! 둘은 비교할 수 없다. 각자 절정 고수들이지. 손 사장은 <시선집중>을 13년 이상 해오며 쌓은 내공과 학교에서 강의하며 연구한 내공이 있다. 지금은 JTBC 보도본부 사장하면서 대한민국 최고의 영향력과 신뢰도를 가진 진행자 됐다. 손 사장이 무협지로 칠 때 소림이나 무당 등의 정파라면 김어준은 개방 방주 같은 사파 정도? (웃음) 거친 비유지만 이해해 달라.<뉴스공장> 장르가 뭐인 거 같나? 시사 맞나? 내용을 보면 시산데 형식은 리얼리티 쇼다. 현실과 묘하게 이어지는 면도 있다. 출연진들이 실제로 안팎에서 투닥거린다. 김성태, 안민석 의원은 방송 마치고 내려가는 승강기 안에서도 논쟁하고 그랬다. 시사리얼다큐? 뭐 이렇게 볼 수도 있겠지. 청취자들에게 김어준이 묻는 거다. 여러분들이 원하는 게 이건가? 그걸로 다퉈주지! 때론 과한 음모론 아니냐고 지적받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언론에 묻는 거다. '안녕? 언론사들. 내 가설에 어떤 허점이 있는지 찾아보셔!'라고. 사기와 협잡이 판치는 부조리 시대에 김어준의 추리가 주목받는 이유다."남은 과제들 유쾌한 분위기의 대화에서 짐짓 아픈 질문을 던져야했다. MBC의 망가짐을 몸소 겪고 지켜본 언론인으로서 정찬형 대표는 책임을 통감하고 있었다. 1992년 당시 손석희 아나운서와 함께 공정보도를 위해 파업하다 수감되기도 했던 그에게 언론의 자유를 물었다. 더불어 서울시 산하 방송이라는 제한된 구조에 대한 의문도 덧붙였다. 시장의 입맛에 따라 tbs 역시 좌우되기 쉬운 상태다. 이를 인지한 듯 정찬형 사장은 최근 몇몇 언론 인터뷰에서 재단법인 형태의 독립 공영방송사 모델로의 전환을 주장하기도 했다.- MBC 노조의 주요 요직이기도 했고,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공영방송 회복 운동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다른 인터뷰에도 tbs 얘기하기만도 바쁘다고 하는데 사실 안타깝지. MBC, KBS 양 공영방송이 제대로 역할을 했으면 지금 같은 상황은 안 왔을 거다. 부패, 무능, 불통 등 진짜 국격 떨어지는 일이 벌어졌고, 민주주의 가치가 훼손됐다. MBC는 특히 매년 대학생 선호도 1위 언론사 아니었나. 탐사와 예능, 교양 프로의 조화가 돋보인 곳인데 안타깝다. 유능한 방송인 다 내쫓고…. 국민들이 안 되겠다 싶어서 여소야대를 만들어줬는데 그건 바로 이런 부조리를 없애는 법안을 만들라는 거잖나. 국회가 그걸 제대로 안하고 있다. 이것 또한 부조리라고 본다. 다수 국민의 지상명령을 못 담는 의회는 정말 각성해야 한다.예전에 김중배 사장이 노조지지연설에서 '저와 선배들이 잘 하지 못해 후배들이 고통받는 거 같아 죄송하다' 말했는데 솔직히 그때 난 약간 거부반응이 있었다. 근데 지금은 제가 그 생각이다. 더 철저하게 못싸워서 MBC 후배들에게 죄송하다. 빨리 바로 잡아서 또 다른 부패권력이 생기지 않게 노조 중심으로 대응해야 한다. 사용자 입장에서 이런 얘길 하는 게 좀 이상한데 입법기관에서도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야지. 고장난 시스템은 고쳐야 한다."- 독립공영방송사에 대한 과제를 언급한 적 있다. 아마 정찬형 대표 체제의 가장 큰 목표가 아닐까. 서울시는 이에 긍정적인지. "시와 같이 고민할 대목이다. tbs가 출범 때에 비해 그 역할이 매우 커졌는데 여전히 서울시 한 과에 소속된 사업소 형태다. 역할에 걸맞게 공영방송 체제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서울시도 지금 이 상태로 두기엔 힘들겠다고 생각한다. 결국 시장의 판단이 중요하겠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모델을 고민할 때가 올 거다. 조금 과장해서 얘기하면 tbs를 들은 사람과 듣지 않는 사람 사이 정보의 격차가 생길 것이다. 사회문제, 법률문제 등등을 전달하고 있잖나. 서울시가 제공하는 여러 공공서비스가 있는데 tbs 역시 정보와 분석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가짜 지식인과 거짓에 대한 분별도 돕고 있다고 본다.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도시가 전 세계 어디에도 아마 없을 거다. tbs 법인화가 왜 필요한지 공공서비스 의미로서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PD 시절과 대표인 지금을 돌아보면 유독 '위험인사'와 함께 일한 느낌이 든다. 고 신해철과도 인연이 깊지 않나. 개인적으로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을 참 좋아했다."그런 느낌이 있긴 하다. <고스트 스테이션>에 나오는 경고문구도 내가 만들어 준 거다. (김어준, 신해철 등) 다들 통제가 잘 안 될 거 같은 느낌인데 동시에 굉장히 정교하고 과학적인 사람이다. 사회과학, 철학에 관심이 많다. 신해철씨도 그랬다. 그걸 예술에까지 연결하려 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는 거다. 또 궁금증이 생기면 계속 질문한다. 봉건체제, 왕정을 옹호하는 이들에 대해선 극도의 분노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구체제로의 회귀에 대해 철저히 싸워야 한다는 주의다.신해철씨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가 부조리였다. 극복하고 타파해야 할 걸로 생각했지. 사실 그 당시 MBC 젊은 PD들이랑 신해철씨가 많이 다투고 했다. 통제할 사람이 없어서 내가 맡은 거였지(웃음). 고 이종환 선배와 <라디오 시대>를 하기도 했는데 이 분도 사고 칠 위험이 있는 분이지 않나. 극우성향이거든. 근데 그런 발언만 잘 통제하면 최고의 엔터테이너기도 하다. 이런 분들 덕에 난 '하이리크스 하이리턴'이런 걸 배운 거 같다." - 그런 의미에서 tbs가 왠지 방송인의 인큐베이터가 아닌, '뇌관제거전문' 방송사가 될 것 같다."(웃음) 지금은 뇌관이 제거된 분들이지만 다시 장착하는 노하우도 갖고 있는 분들이다. <나는 꼼수다> 멤버들은 우리 사회 소중한 자산이라고 본다. 지상파용이 아니었을 뿐이지. 록스타(rock star)에 가까운 진행자들이다. 천재면서 엔터테이너 기질이 있고, 팩트 파이터(fact fighter) 기질이 있다. 또 정의와 민주주의 신봉자다. 이런 사람들이 더 많이 쓰임 받았으면 한다. 지하에서 교주처럼 있지 말고 땅 위로 나와야지!"인터뷰 중 유독 자주 등장한 단어 중 하나가 진실이었다. 역설적으로 여전히 우리 사회에 이 가치가 부족함을 암시한다. "가짜 말고 진짜를 해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는 걸 보이고 싶다"는 정찬형 대표의 말이 귓가에 남는다. 대중을 상대로 한 이 짜릿한 도전이 계속 돼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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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사심을 담습니다. 다만 진심입니다. 제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제 진심이 닿으리라 믿습니다. 공채 7기 입사, 사회부 수습을 거쳐 편집부에서 정기자 생활을 했고 지금은 오마이스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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