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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bs 정찬형 사장

tbs 정찬형 사장이 취임 후 만 1년이 지났다. 그간 급변한 언론 지형도에 tbs가 선봉에 서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희훈


취임 후 만 1년이 지났다. 33년을 근속하며 여러 화제 프로를 만드는 등 뼛속까지 'MBC 맨'이었던 정찬형 대표는 지난 2015년 12월 tbs로 적을 옮기며 "공공의 이익만 바라보고 그것에 효율적으로 봉사하면 시민들이 사랑으로 보답해준다"는 믿음을 강조했다.

그의 지난 1년은 그 믿음이 확신으로 바뀌고, 실체로 증명되는 기간이었다. 서울시 산하의 약소지상파 방송사가 이뤘다고 보기엔 스케일이 참 크다. 지난 3일 상암동 tbs 본사에서 만난 정찬형 대표는 "자랑질은 계속돼야 한다"고 웃어 보이며, 그 성과를 읊었다. tbs 모든 프로그램의 평균 청취율 두 배 상승, 0.8% 대였던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5.4%로 약 6배 상승 등.

이 자랑이 의미 있는 건 단순히 수치의 변화라서가 아니다. MBC와 KBS 등이 공영방송사로 제 역할을 못하며 거리에서 시민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동안 tbs는 시민들에게 환영받았다. 정찬형 사장은 "최근까지 <정봉주의 품격시대> 생방송을 광화문에서 진행하고 있는데 시민들이 비오는 날엔 유리창을 닦으라며 세제까지 사오셨다"는 일화를 전했다.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다는 게 더욱 큰 쾌거 아닐까. 스스로 약소방송사라 칭했던 tbs 입장에선 분명 괄목할만한 변화다.

tbs 저격수, tbs 선장이 되다

"<김어준의 뉴스공장> 라이브 방송은 타사의 일선 PD들이 휴가까지 내며 구경 왔고, 몇몇 분들은 여론 조사 기관에 tbs 프로 시청률을 먼저 문의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겸연쩍어하면서도 할 만한 자랑은 하던 정 대표는 사실 현직 시절 'tbs 저격수'였다. 2015년 12월 18일 취임사를 보자. 당시 정찬형 대표는 "1990년에 tbs가 출범하면서 저녁 프로의 위협적인 상대로 떠오르자 <이무송·노사연의 특급작전>으로 맞서 다시 순위를 뒤집게 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로선 감회가 남다를 만하다.

- MBC, KBS 등 지상파의 위기는 곧 타방송사의 기회의 때다. tbs도 여기에 해당하는데, 선택과 집중을 강조한 취임사가 기억난다. 당시 특별한 복안과 전략이 있었던 건가. 
"우리도 지상파다. 지상파 위기가 대안미디어의 기회라는 시각이 있는데 난 지상파 라디오로 승부할 게 여전히 있다고 생각한다. 강연할 때도 지구 종말 때까지 라디오의 역할이 있을 거라 말한다. 간편성과 오디오 중심 미디어라는 장점이 있거든. tbs가 약소방송국이잖나. 약점이 많지. 그걸 극복할 전략이 선택과 집중일 수밖에 없었다. (지난 1년은) 타사의 취약점은 공략하고, 우리 약점은 보완하는 과정이었다. 우리가 왜 존재하고 필요한지 시민들에게 마치 생필품처럼 인식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왔더니 PC용 홈페이지를 연결한 걸 어플로 쓰고 있더라. 일단 모바일 전용 어플리케이션부터 만들었다. MBC에 있을 때 '미니'라는 어플을 개발할 때 라디오본부장이었거든. 여기 와서 일단 어플에 투자했고, 2016년 9월 말 정도에 tbs FM, eFM, tv까지 다 되는 어플을 뿌렸다. 바로 그때 <김어준의 뉴스공장>도 시작했고, 빅뱅이 일어났지.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시사교양장르, 특히 탐사와 진실 추적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우리가 그 부분을 공략하고 서비스 해주면 청취자가 몰릴 수밖에 없다고 봤다. 일개 (서울시) 커뮤니티 라디오가 강소공영방송으로 거듭나려면 선택과 집중이 필수라 생각한다."

- 구체적으로 파악한 tbs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이었나.
"방금 내가 tbs를 커뮤니티라디오라고 좀 격하시켜 얘기했다. tbs는 직업운전자 분들이 즐겨들을 만한 방송사로 처음에 출발했다. 그러다가 네비게이션 등 여러 기기들이 발달하면서 교통 정보 자체보단 다른 생활 정보의 중요성이 커졌는데 tbs가 아직 거기까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난 그게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방송사에서 잘 안하는 걸 집중해보자 이런 식이었지. 약소 방송사로서 선택할 다른 방도가 없었다. 소수 인력에 저예산이다. 우리 인력 규모 들으면 아마 깜짝 놀랄걸?(웃음) 그래서 몇몇 핵심 장르와 핵심 시간대 프로에 집중 투자를 한 거다."

- 잘한 부분과 동시에 1년이 지난 지금 애초 예상과 달랐던 시행착오는 없었는지.
"뭐든 시작하기 전에 시뮬레이션을 하잖나. 노력했는데 결과가 잘 안 나온 걸 시행착오라 정의한다면 그런 건 없다. 예상보다 더 큰 빅뱅이 벌어진 건 있지. 오히려 그게 시행착오라면 착오다. <지금은 라디오시대> <손석희의 시선집중>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등 MBC에서 30년 넘게 방송했는데 예측보다 훨씬 더 큰 성과가 일어났다. 물론 <김어준의 뉴스공장>으로 파란을 일으키겠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이건 그 자체로 문화적 사건현장이 됐다. 희한한 경우다. 부패한 정권에 시민들이 뭉쳐 저항하는 과정 자체가 우리 구성원에겐 훈련 과정이었다. 전투를 하면서 총검술, 사격술을 익힌 희한한 상황이었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던진 역동적 상황이라 빅뱅이 나왔다고 본다. 지난 9월 <김어준의 뉴스공장> 출범 전후로 <한겨레>의 미르 재단 보도가 있었는데 해당 기자가 우리 쪽 패널로 나오고 있었다. 다른 언론사가 보도 안 할 때 <뉴스공장>이 한 셈이지. 10월 <정봉주의 품격시대> 출범일엔 박근혜의 개헌 발언과 JTBC의 태블릿 PC 보도가 나오며 본격적인 싸움에 들어갔고. 이런 일들이 두 프로가 자리 잡는 데 엄청난 기여를 한 셈이다."

신의 한 수

 tbs 정찬형 사장

취재 및 제작의 자율성 보장. 정찬형 사장 스스로도 자부하는 부분이었다. "디테일을 많이 얘기하기 보단 언론의 정도, 진실에 대한 능동적이고 적극적 노력을 강조하는 정도"라고 그가 설명했다. 과연 이를 직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설마 간섭이라고 안 느끼겠지?"라며 그가 웃어 보였다.ⓒ 이희훈


정찬형 대표 체제의 tbs 프로그램의 특징은 기존 프로그램의 변주와 과감한 도전으로 정리할 수 있다. 스테디셀러였던 <배칠수, 전영미의 9595쇼>에 힘을 실었고, 기존 방송사에서 외면하던 김어준, 정봉주, 김종배 등을 전격 영입했다. 물론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김어준을 섭외하는데 한 달, 회사의 결단을 기다리는 데 세 달 걸렸다. 간부들은 대부분 반대였는데 사장님이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던 <뉴스공장>의 정경훈 PD의 말을 떠올리며 질문을 이어갔다.

- 분명 김어준, 김종배의 섭외 등은 신의 한 수였다. 두 사람 모두 MBC 방송 경험이 있고, 정 대표와도 인연이 있다. 이미 생각해놓은 카드였나.
"음, 솔직히 생각해볼 순 있었지만 깊이 염두에 둔 카드는 아니었다. 여러 다른 분들도 섭외 라인업에 있었다. (이 대목에서 비보도 전제로 몇몇의 이름이 나왔다) 우리 입장에선 일종의  보석 찾기다. 업계에서 손 안대고 있는 분들을 찾아야 했다. 시대의 결핍에 대응하자는 게 큰 틀이었다. 다른 방송사가 못하는 걸 하려 했고, 그러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 쫄면 안 되지. MBC가 본래 시사교양, 탐사보도가 강했지 않나. 김재철 사장을 거치며 쭉 언론인 찍어내기를 했왔는데 사실상 언론계 블랙리스트가 시작됐던 때다. 김종배, 김어준 등의 방송 복귀는 우리 입장에선 사실 이 시장에 메기를 풀어놓는 느낌이었다. 잠들어 있거나, 졸거나, 엉터리 가짜 정보를 팔거나, 유용한 정보를 바꿔먹는 이들에게 사기 치지 말라고 강한 압박을 넣는 거지(웃음)."

- 김어준, 정봉주, 김종배씨의 설득과 결정 과정이 궁금하다. 
"그 분들 설득 자체는 금방 됐다. 블랙리스트라 방송사 출연에 제한을 받던 때 아닌가. 팟캐스트에서 활약하시다 오셨는데 우리 입장에선 상업적으로도 필요한 분들이다. 워낙 팬덤이 많기도 하고. 김어준, 정봉주 등은 캐릭터가 거칠고 비속어도 쓰지만 분석력 하난 예술이잖나. 위험한 뇌관만 제거하면 멋진 방송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근데 처음엔 프로그램 진행자가 아니라 코너 출연자로 부를 생각이었다. '금주의 핫캐스트' 뭐 이런 식으로 팟캐스트 계 소식을 전하자는 거였지. 그러다 정경훈 PD가 진행자로 하자고 확 제안했다. 이 이름을 기억해 달라. 배칠수, 전영미를 섭외했고, MBC에서 잘하고 있던 박찬혁 작가를 삼고초려 해 데리고 온 인물이다.

그 아이디어를 듣고 당연히 부담됐지. 살만큼 살아서 아쉬울 게 없는 나이인데도 '와 이건 세다!'고 생각이 들더라. 분명 논란이 될 거고, 김어준이 그때 선거법 재판 중이기도 해서 일단 보류했다. 그러다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제청을 인용하면서 '쓰라는 암시구나.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종배는 내가 <손석희의 시선집중> 할 때 검증된 유능한 인물이었고, 정봉주 선수 역시 여러 위험 요소가 해결되는 과정이었다."

- 내부와 외부 반대도 많았을 거고, 자기 검열도 있었을 텐데.
"나 자신이 검열 거부 쪽으로 살아왔다. 언론 통제나 검열은 헌법정신으로 싸워야 한다고 본다. 구성원과 진행자들에게 압력을 가한 건 없다. 다만 법 안에서 하라고 말은 했지. 헌법, 방송법, 심의 규정 등 그런 법과 제도 안에서 무한자유를 보장한다고 했다. 아, 국가보안법도 지키라고 했다. <뉴스공장> 들으면 김어준이 소개하면서 '준법방송' 뭐 이런 말을 하는데 내가 얘기한 걸 비꼰 걸 수도 있다(웃음). 그에게 방송에서 욕설을 한 번이라도 하면 '즉결 조치하겠다'고도 했다(웃음)."

 tbs 대표프로그램.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어준의 뉴스공장> <배칠수 전영미의 9595쇼><정봉주의 품격시대><김종배의 색다른 시선>.

tbs 대표프로그램.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어준의 뉴스공장> <배칠수 전영미의 9595쇼><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정봉주의 품격시대>.ⓒ tbs


- 최근 <다이빙벨> <또 하나의 약속> 등 정권 비판 영화를 공격적으로 상영하기도 한다. 이 역시 하나의 전략인 건지.
"tbs 약점 보완 프로젝트 중 하나다. 우리가 소수인력이라 데일리뉴스까진 가능한데 다큐 제작 쪽이 취약하다. 일종의 탐사 프로 보완을 위한 거지. <다이빙벨>을 틀 당시가 공교롭게 국회 청문회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시의적절 했다고 본다. <또 하나의 약속>도 지금 봐야할 이유가 충분했다. 삼성이 정유라의 말 구입을 위해 400억을 전달하는 동안 자기 회사 노동자의 목숨을 500만원에 흥정한 거 아닌가.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귀향>도 3월 중 틀 예정이다. 우리에겐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게 이런 영화들이다. 저예산 영화 제작자 입장에서도 조금 보탬이 되는 생태계가 되길 기대한다. 하다 보니 시네마달 작품을 많이 틀고 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지? 흠…. 폐업되면 안 된다."

- <배칠수 전영미의 9595쇼>의 변주도 흥미롭다. 앞서 언급한 프로가 신상품을 잘 만든 경우라면 이건 tbs의 스테디셀러를 잘 살린 사례 같다.
"이 프로의 백미는 역시 백반토론이다. 이건 제가 표현의 자유를 좀 더 보장하는 과정이었고. 동시에 SNS 유통되도록 아예 음원 자체를 공개했다. 누리꾼들이 재가공해서 마음껏 놀 수 있도록 말이다. 유투브 등에 애니메이션과 진행자 목소리를 합성한 게 돌고 있잖나. 그거 우리가 한 거 아니다. 청취자들이 재가공하면 우린 거기서 홍보효과를 얻는 거지. 다만 누군가 그걸로 너무 많은 이익을 챙기고 있다면 계약서 들고 찾아간다고는 했다. 배철수, 전영미가 워낙 성대모사의 달인이다. 현란한 테크닉도 있고. 정오 시간의 새로운 예능 강자로 등극 중이다. (시사가 아닌) 소재의 폭을 좀 넓혀서 간 예능 프로로 이해해주길 바란다."

- 가벼운 질문이다. 손석희와 김어준을 비교해보자면? 
"어유! 둘은 비교할 수 없다. 각자 절정 고수들이지. 손 사장은 <시선집중>을 13년 이상 해오며 쌓은 내공과 학교에서 강의하며 연구한 내공이 있다. 지금은 JTBC 보도본부 사장하면서 대한민국 최고의 영향력과 신뢰도를 가진 진행자 됐다. 손 사장이 무협지로 칠 때 소림이나 무당 등의 정파라면 김어준은 개방 방주 같은 사파 정도? (웃음) 거친 비유지만 이해해 달라.

<뉴스공장> 장르가 뭐인 거 같나? 시사 맞나? 내용을 보면 시산데 형식은 리얼리티 쇼다. 현실과 묘하게 이어지는 면도 있다. 출연진들이 실제로 안팎에서 투닥거린다. 김성태, 안민석 의원은 방송 마치고 내려가는 승강기 안에서도 논쟁하고 그랬다. 시사리얼다큐? 뭐 이렇게 볼 수도 있겠지. 청취자들에게 김어준이 묻는 거다. 여러분들이 원하는 게 이건가? 그걸로 다퉈주지! 때론 과한 음모론 아니냐고 지적받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언론에 묻는 거다. '안녕? 언론사들. 내 가설에 어떤 허점이 있는지 찾아보셔!'라고. 사기와 협잡이 판치는 부조리 시대에 김어준의 추리가 주목받는 이유다."

남은 과제들

 tbs 정찬형 사장

마침 빈 스튜디오를 찾아 정찬형 사장에게 촬영을 요구했다. 어색해하면서도 그는 기자가 원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이희훈


유쾌한 분위기의 대화에서 짐짓 아픈 질문을 던져야했다. MBC의 망가짐을 몸소 겪고 지켜본 언론인으로서 정찬형 대표는 책임을 통감하고 있었다. 1992년 당시 손석희 아나운서와 함께 공정보도를 위해 파업하다 수감되기도 했던 그에게 언론의 자유를 물었다. 더불어 서울시 산하 방송이라는 제한된 구조에 대한 의문도 덧붙였다. 시장의 입맛에 따라 tbs 역시 좌우되기 쉬운 상태다. 이를 인지한 듯 정찬형 사장은 최근 몇몇 언론 인터뷰에서 재단법인 형태의 독립 공영방송사 모델로의 전환을 주장하기도 했다.

- MBC 노조의 주요 요직이기도 했고,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공영방송 회복 운동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다른 인터뷰에도 tbs 얘기하기만도 바쁘다고 하는데 사실 안타깝지. MBC, KBS 양 공영방송이 제대로 역할을 했으면 지금 같은 상황은 안 왔을 거다. 부패, 무능, 불통 등 진짜 국격 떨어지는 일이 벌어졌고, 민주주의 가치가 훼손됐다. MBC는 특히 매년 대학생 선호도 1위 언론사 아니었나. 탐사와 예능, 교양 프로의 조화가 돋보인 곳인데 안타깝다. 유능한 방송인 다 내쫓고…. 국민들이 안 되겠다 싶어서 여소야대를 만들어줬는데 그건 바로 이런 부조리를 없애는 법안을 만들라는 거잖나. 국회가 그걸 제대로 안하고 있다. 이것 또한 부조리라고 본다. 다수 국민의 지상명령을 못 담는 의회는 정말 각성해야 한다.

예전에 김중배 사장이 노조지지연설에서 '저와 선배들이 잘 하지 못해 후배들이 고통받는 거 같아 죄송하다' 말했는데 솔직히 그때 난 약간 거부반응이 있었다. 근데 지금은 제가 그 생각이다. 더 철저하게 못싸워서 MBC 후배들에게 죄송하다. 빨리 바로 잡아서 또 다른 부패권력이 생기지 않게 노조 중심으로 대응해야 한다. 사용자 입장에서 이런 얘길 하는 게 좀 이상한데 입법기관에서도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야지. 고장난 시스템은 고쳐야 한다."

- 독립공영방송사에 대한 과제를 언급한 적 있다. 아마 정찬형 대표 체제의 가장 큰 목표가 아닐까. 서울시는 이에 긍정적인지. 
"시와 같이 고민할 대목이다. tbs가 출범 때에 비해 그 역할이 매우 커졌는데 여전히 서울시 한 과에 소속된 사업소 형태다. 역할에 걸맞게 공영방송 체제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서울시도 지금 이 상태로 두기엔 힘들겠다고 생각한다. 결국 시장의 판단이 중요하겠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모델을 고민할 때가 올 거다. 조금 과장해서 얘기하면 tbs를 들은 사람과 듣지 않는 사람 사이 정보의 격차가 생길 것이다. 사회문제, 법률문제 등등을 전달하고 있잖나. 서울시가 제공하는 여러 공공서비스가 있는데 tbs 역시 정보와 분석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가짜 지식인과 거짓에 대한 분별도 돕고 있다고 본다.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도시가 전 세계 어디에도 아마 없을 거다. tbs 법인화가 왜 필요한지 공공서비스 의미로서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 PD 시절과 대표인 지금을 돌아보면 유독 '위험인사'와 함께 일한 느낌이 든다. 고 신해철과도 인연이 깊지 않나. 개인적으로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을 참 좋아했다.
"그런 느낌이 있긴 하다. <고스트 스테이션>에 나오는 경고문구도 내가 만들어 준 거다. (김어준, 신해철 등) 다들 통제가 잘 안 될 거 같은 느낌인데 동시에 굉장히 정교하고 과학적인 사람이다. 사회과학, 철학에 관심이 많다. 신해철씨도 그랬다. 그걸 예술에까지 연결하려 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는 거다. 또 궁금증이 생기면 계속 질문한다. 봉건체제, 왕정을 옹호하는 이들에 대해선 극도의 분노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구체제로의 회귀에 대해 철저히 싸워야 한다는 주의다.

신해철씨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가 부조리였다. 극복하고 타파해야 할 걸로 생각했지. 사실 그 당시 MBC 젊은 PD들이랑 신해철씨가 많이 다투고 했다. 통제할 사람이 없어서 내가 맡은 거였지(웃음). 고 이종환 선배와 <라디오 시대>를 하기도 했는데 이 분도 사고 칠 위험이 있는 분이지 않나. 극우성향이거든. 근데 그런 발언만 잘 통제하면 최고의 엔터테이너기도 하다. 이런 분들 덕에 난 '하이리크스 하이리턴'이런 걸 배운 거 같다."

 tbs 정찬형 사장

그의 메일주소엔 jazz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그만큼 클래식과 재즈에 대한 애정이 크다. 인터뷰 말미 독자를 위해 음악 하나 추천을 부탁했다. 트렘펫 연주로 널리 알려진 쳇 베이커 이름이 나왔다. 정 사장은 "긴장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쭉 이완된다"며 쳇 베이커의 몇몇 면모를 소개했다.ⓒ 이희훈


- 그런 의미에서 tbs가 왠지 방송인의 인큐베이터가 아닌, '뇌관제거전문' 방송사가 될 것 같다.
"(웃음) 지금은 뇌관이 제거된 분들이지만 다시 장착하는 노하우도 갖고 있는 분들이다. <나는 꼼수다> 멤버들은 우리 사회 소중한 자산이라고 본다. 지상파용이 아니었을 뿐이지. 록스타(rock star)에 가까운 진행자들이다. 천재면서 엔터테이너 기질이 있고, 팩트 파이터(fact fighter) 기질이 있다. 또 정의와 민주주의 신봉자다. 이런 사람들이 더 많이 쓰임 받았으면 한다. 지하에서 교주처럼 있지 말고 땅 위로 나와야지!"

인터뷰 중 유독 자주 등장한 단어 중 하나가 진실이었다. 역설적으로 여전히 우리 사회에 이 가치가 부족함을 암시한다. "가짜 말고 진짜를 해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는 걸 보이고 싶다"는 정찬형 대표의 말이 귓가에 남는다. 대중을 상대로 한 이 짜릿한 도전이 계속 돼야 할 이유다.


파격노출이든 낙태여성이든... "나는 평생 연기할 거다"

[inter:view] 21년차 배우 류현경의 '평생연기론', 그리고 영화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50편이 넘는 작품에 참여한 이 배우, "주연, 조연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배우로서 캐릭터를 보다 현실의 인물처럼 연기"하는 게 중하다고 말한다. 21년차 연기 경력의 류현경 이야기다.그가 전면에 나선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가 최근 개봉했다. 개봉 즈음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일대일'로 만났다. 때가 되면 제작발표회와 언론 시사, 그리고 으레 몇 명씩 기자들을 묶어 인터뷰 하는 최근의 영화 홍보 흐름에 염증을 느끼던 차에 신선했다. "여러 기자 분들과 한꺼번에 만나면 제가 집중이 안 되어서요"라며 그가 가볍게 웃었다.예술과 상업 사이 이번 영화에서 류현경은 무명작가였으나 죽은 이후 오히려 스타로 급부상한 미술작가 지젤 역을 맡았다. 본명은 오인숙. 일단 이 설정만으로 작품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 일부를 예상할 수 있다.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을 땐 스스로 자신이 진짜 예술가라고 생각했던 지젤은 일종의 닫힌 사고방식의 인물이다. 동시에 분위기에 휩쓸려 지젤의 작품을 사려고 하는 미술 관계자들은 미의 기준 없음 내지는 허상의 산물이다. 영화는 지젤과 그런 사람들을 한꺼번에 풍자한다.일종의 블랙코미디다. 한 사람의 생사를 놓고 벌이는 등장인물들의 행동은 하나하나가 비장하지만, 영화는 그걸 유쾌하고 빠른 흐름으로 녹였다. 배우 박정민이 미술관 관장으로 류현경과 호흡을 맞췄다. 류현경은 "감독님은 처음엔 진지하게 가고 싶어 했던 것 같은데 정민씨와 제가 캐스팅되면서 얘길 많이 했다"며 배경을 살짝 전했다. 그렇게 진지하지만 우스꽝스러운 지금의 영화가 나올 수 있었다.미술계에 한정했지만 동시에 영화는 예술과 상업 사이에서 저울질 받는 창작자들의 일반론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우선 이걸 류현경에게 적용해 봤다. 배우 김혜수, 강수연의 아역으로 연기를 시작한 류현경은 각종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아우르며 지금에 이르렀다. 지젤에 감정 이입할 여지가 그만큼 컸다. "제가 그림에 대해선 전혀 몰라요. 영화적 표현을 위해 영화에 등장하는 그림을 그린 작가님 작업실에 갔는데 하나의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시간이 굉장히 중요하단 걸 느꼈어요. 이 부분이 연기자와 비슷한 것 같아요. 배우 역시 결과물로 보이는 사람이지만 그걸 해내기 전까지 상당히 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준비하거든요. 지젤도 그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저 역시 준비 과정이 좋아야 결과물도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막상 2년 전에 이 영화를 찍을 땐 배우로서 느낀 어떤 갈등보단 살면서 이루고 싶은 것들에 대한 갈등을 더 생각했어요. 비단 예술계만 다룬 게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런 의미에서 언론시사회 때 '(특정 분야 사람이 아닌) 우리 모두가 아티스트'라며 정민씨가 한 말에 공감해요. 목표를 향해 준비하는 것 자체가 예술이죠."진심의 표현산업의 관점에서 스타 배우는 분명 중요하다. 대중의 관심도와 함께 실력까지 갖추면 금상첨화다. 실제로 많은 연기자는 알게 모르게 작품의 성공에 신경을 쏟는다. 자신의 만족도와 별개로 관객들에게 많이 팔리면, 곧 다음 작업을 지속하게 하는 물리적 지지대가 되기도 하니까. 그런데 이 관점에 류현경은 조심스럽다. 20년이 넘은 경력을 쌓으며 속된 말로 '스타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을 터. 이 우문에 류현경이 웃는다. "만약 됐을 거라면 진작 되지 않았을까"라며 받아쳤다. 현답이다. 이어진 그의 배우론이 더욱 빛난다."민감할 수도 있는 문젠데요. 어쨌든 배우는 진심을 표현하는 사람이라 생각해요. 진심과 진실에 가깝게 연기하려 하고 그게 잘 표현되면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실 거 같아요. 그런 점에서 상업 영화와 예술 영화를 구분하는 건 좀 의미가 다르죠. (잠시 고민하며) 이걸로 제목 안 뽑을 거죠? (웃음) 꾸준히 일하면 어느 순간 좋은 시기도 만나고 그럴 텐데요. 전 작품을 꾸준히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요. 아직 멀었죠. 작품을 할 때마다 아쉽고, 고민과의 싸움이거든요. 진지하게 (스타성을) 고민할 시간이 없어요! 평생 연기하겠다고 마음먹었던 순간부터 제겐 스타가 되는 것보단 작품에서 잘 쓰임 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류현경을 수놓는 여러 작품이 있다. 그 안에서 철저히 캐릭터에 다가가고자 한 흔적이 엿보인다. <방자전>(2010)에서의 파격적인 노출, 그 이전 단편 <211>에선 아이를 낙태하는 여성, <시라노: 연애 조작단> <전국노래자랑> 등에서의 코믹한 모습 등은 단지 캐릭터로서만이 아니라 현실 어느 지점에 존재하는 인물로 다가오기도 했다. 게다가 <날강도> <광태의 기초> 등 단편 영화를 연출한 감독으로서 면모도 있다. 이처럼 그의 필모그래피 자체가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상징한다. 그가 앞서 언급한 '평생 연기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신기전>(2008)을 찍을 당시였다."제겐 분기점이 될 작품이죠. TV영화 채널에서 종종 볼 때마다 마음이 뭉클해요. 같이 작품을 만들어갈 때 그 마음들이 보이거든요. 제가 연기적으론 부족했을지 모르겠지만 그건 계속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그전에도 작품은 계속 했지만 이걸 평생 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거든요. 현장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좋았고, 어렸을 땐 학교 수업을 빼먹으니 즐거웠죠.근데 <신기전>을 8개월 간 전국을 돌며 찍었을 때였어요. 제가 정재영 선배를 끌어안고 '오라버니 죽지 마!'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 대사를 치는데 정말 이 사람이 죽을 거 같은 거예요. 아, 이런 느낌이구나. 그래서 선배들이 계속 연기하시는 거구나. 그 순간이 되게 감사한 거예요. 그때부터 제가 좀 더 고민하고 생각하면 더 좋은 여기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평생 연기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런 고민도 많이 한 거 같아요. 다양한 작품에서 좋은 배우로 잘 쓰이는 게 진짜 복된 일이라는 걸 깨달았죠. 그때부터 치열하게 열심히 했어요."희망의 연속 그의 대본은 온갖 물음표로 가득하다. '얘가 왜 이런 대사를 칠까? 쟤는 왜 저렇게 걸어오지?' 등의 질문이 적혀있다.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도 마찬가지였다. 캐릭터를 이해하고 다가가기 위한 일종의 그만의 의식이다. "많이 듣는 말은 아니지만" 이란 단서를 달면서 류현경은 연기하며 가장 보람 있는 순간 하나를 언급했다."'현경씨 그 캐릭터, 제 얘기예요. 저랑 너무 똑같은 거 같아요' 이 말에 너무 감사해요. 연기를 계속 하게 하는 힘이 되죠. 많은 분들이 (요즘 한국영화에) 여성 이야기가 없다고들 하시는데 전 희망적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힘든 요즘이긴 하지만 분명 새롭고 다양한 작품이 나올 겁니다. 한때 조폭 영화가 한참 나오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그 이후엔 다양한 영화들이 나왔죠. 지금이 그런 시기 아닐까요. 남성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영화들이 나올 거라고 봐요. 전 작품으로 얘기할게요(웃음). 다양한 작품을 하는 걸로 보여야죠." 인터뷰 말미 류현경은 가장 그리운 캐릭터로 <전국 노래자랑>의 오미애를 꼽았다. "우리 엄마, 이모, 언니 등 많은 여성에게 위로가 될 캐릭터라고 생각했다"며 "그때 촬영장이었던 미용실을 한참을 들여다보곤 했다"고 말했다. 한때 가수의 꿈을 키웠던 미용사 오미애는 그렇게 류현경을 통해 독자적인 여성 캐릭터로 등장할 수 있었다.특별한 스타가 되려 하기 보다 류현경은 오히려 평범해지려 한다. 그럴수록 그의 연기는 현실성에 굳게 발을 딛게 된다. 그런 그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증권사 직원의 죽음, 감독은 이 영화가 제작될 줄 몰랐다

[inter:view] 이주영 <싱글라이더> 감독이 담아낸 삶의 자세... "묻힐 뻔한 이야기가 빛 봤다"

영화 <싱글라이더>가 세상에 나오기 직전까지 이주영 감독은 영화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삼성 휴대폰, 한국 타이어, 쌍용 자동차 등 10년 가까이 광고장이로 살아온 그였다. "의도치 않게 직장을 떠나면서 영화를 공부"했던 이주영 감독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이창동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14번 가까이 한 이야기를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 이 이야기를 배우 이병헌이 우연히 접하고 영화화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렇게 <싱글라이더> 제작이 급물살을 탈 수 있었다.'풍경과도 같은 영화', '기존 한국 상업 영화의 문법을 벗어난 작품' 등. <싱글라이더>에 대한 평이 다양했다. 부실채권 판매로 궁지에 몰린 한 기러기 아빠 재훈(이병헌 분)이 아내와 자식을 보기 위해 호주로 날아들며 접하게 되는 일들이 이 영화의 처음과 끝이다. 그 재훈이 호주에서 워홀러로 살던 지나(안소희 분)를 만나고 두 사람이 서로의 상실을 공감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변화를 인정하는 과정이 느린 호흡으로 영화에 담겨있다.수치심과 상실감은 누구의 것인가 "참 좋아하는 일이었는데 의도치 않게 직장을 그만뒀다"라고 이주영 감독은 말했다. 큰 불만 없이 나름의 보람을 느끼며 일하던 일터를 떠났고, 그즈음 몇 가지 상징적 사건을 뉴스로 접한다. 영화 속 재훈이 증권사 직원으로 나오는 건 2013년 발생한 동양그룹 사태(동양증권을 통해 회사채 등을 불완전 판매하며 개인투자자들에게 경제적 피해를 준 사건)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다. "삶에서 느낀 상실감과 회의감을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직업이라 생각했다"는 게 감독의 설명이었다."아무래도 처음 영화 이야기를 쓰다 보니 자신이 투영되는 면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소속감을 되게 중시하잖나. 직장을 나오면서 내가 느꼈던 불안감과 공포가 있었는데 시간이 좀 지나면서 객관적으로 그걸 바라볼 수 있었다. 삶의 가치를 내가 너무 규정짓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시나리오를 쓰면서 그때가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사실 증권이나 경제 쪽은 무지하다시피 한 데 그때 동양증권 사태가 터졌고, 뭔가 딱 들어맞는 느낌이었다.사건 자체보단 그 사건에 들어있는 사람들이 인상적이었다. 직원들이 느낀 수치심과 죄책감은 영화 속 재훈이 딱 전형적 조직에서 느꼈을 충격과 어울릴 거라는 생각이었다. 소희씨가 맡은 지나의 이야기는 실제로 제 지인의 이야기다. 뉴스에도 나왔고, 참 가슴 아픈 기억이라 영화에 이걸 차용할 거라 생각 못 했는데 이야기를 쓸 때 여러 가지를 고민하다가 워킹 홀리데이 설정이 나왔고, 그 친구 이야기를 차용하게 됐다.증권사 분들 취재를 좀 했다. 동양 사태 관계자는 많이는 못 만났고, 그 사태를 바라본 다른 회사 분들을 만났다. 다들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계셨더라. 막상 회사채를 판 사람은 단순 영업직이고, 사고는 윗사람이 잘못해서 난 거지 않나. 근데 죄책감은 말단 직원들이 느끼고 있다는 게 참 아이러니했다."실제 사건에 함몰됐다면, 아마 <싱글라이더>는 몇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 시스템을 지적하는 전형적인 '요즘' 상업영화가 됐을 것이다. 그 대신 이주영 감독은 "최근까지 사회 문제를 다루는 영화가 많긴 했지만, 난 시스템의 오류를 지적하기보단 그 안에서 그걸 겪는 사람들 개인의 감정에 관심이 갔다"며 "사회가 아무래 발전해도 개인이 불행한 건 다들 원하지 않는 일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싱글라이더>는 그런 의미에서 개인을 바라보는 특별한 시각이 담긴 영화라고 설명할 수 있다.대사의 중요성 이 영화의 초기 제목이 <기분>인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등장인물의 감정의 결과 정서가 그만큼 세밀하게 표현돼야 했다. 이주영 감독은 "결정적인 사건이 많지 않은 사람의 여행기 같은 외피를 입은 이상 대사를 더 공들여 써야 했다"며 "이 감독은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털어놓는 속마음 같은 이야기"라 설명했다. 그래서 배우들과 사전에 많은 만남도 필수였다. "사실 제작이 될 거란 생각은 안 했다. 이병헌씨가 시나리오를 어떻게 접하게 되면서 참여하고 싶다 하신 이후 급물살을 탔다. 제작사도 없었는데 큰 배우가 하고 싶다 하니까 만들어질 수 있었지. 그간 범죄물 같은 장르물을 쭉 하시다가 본인도 그런 역할에 피로감을 느낀 거 같더라. <싱글라이더>를 찍고 바로 <마스터>를 찍어야 했는데 '정서적으로 쉬어가는 느낌으로 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런데 현장이 그렇게 쉴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지. 대사 말고 얼굴과 눈빛으로 감정을 표현해야 했으니까. 총 28회 차를 찍었는데 매번 감정적으로 각성된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이병헌씨도 (재훈의 아내로 등장하는) 공효진씨도 상업영화의 전형성을 벗어나고 있는 지점들을 좋아했다. 효진씨는 재훈이 느낀 상실감에 대해 여러 얘길 하셨다. 소희씨 역시 자기가 왜 처음에 원더걸스로 데뷔했고,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등을 나눴다. 각자가 자기식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이 촬영 전에 있었던 거다."개봉 이후 크게 흥행세는 타지 못했지만, 영화는 관람객들 사이에서 꾸준히 회자 중이다. 이주영 감독이 경계하는 지점은 의도치 않은 반전 마케팅이었다. 앞서 설명한 대로 감정이 주인 이유다. 이 감독은 "그런 마케팅으로 가서 관객분들이 뭔가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있다고 기대하시는 거 같은데 애초에 그 부분을 노리고 이야기를 쓴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후회의 개수 <싱글라이더>를 두고 나오는 여러 반응, 상반된 평가에 이주영 감독 자신도 깊은 인상을 받은 듯하다. "좋아하시는 분들은 많이, 또 싫어하시는 분들도 매우 싫어하신다"며 그가 웃어 보였다.누가 뭐라든 이주영 감독은 "스타 캐스팅, 혹 배우 조합으로 박진감 있게 이야기를 잘 끌어가는 분들의 영역이 있듯, 제가 잘할 수 있는 걸 하고 싶다"는 분명한 주관이 있었다. 반전의 영화라는 세간의 정의를 부정하면서 <싱글라이더>를 "삶이 끝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소개한 대목을 기억하자. 애니메이터, 광고 감독을 거친 그는 분명 한국영화계에선 독특한 위치를 점유할 인물임이 분명하다."살면서 후회를 아주 안 할 수 없지만 가능하면 후회를 안 하고 살려고 노력한다. 할 수 있는 건 일단 해보자는 주의다.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지. 후회하는 개수를 줄이고 싶다. <싱글라이더> 이후 뭔가 고민하는 단계는 아직 없는데 다음엔 좀 더 현명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했다. 감정에 의지하는 영화다 보니 그 과정이 참 힘들더라(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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