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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싱글라이더>의 이주영 감독이 23일 오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전공, 그리고 광고 감독 생활을 오래 한 이주영 감독.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싱글라이더>는 그의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이정민


영화 <싱글라이더>가 세상에 나오기 직전까지 이주영 감독은 영화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삼성 휴대폰, 한국 타이어, 쌍용 자동차 등 10년 가까이 광고장이로 살아온 그였다. "의도치 않게 직장을 떠나면서 영화를 공부"했던 이주영 감독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이창동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14번 가까이 한 이야기를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 이 이야기를 배우 이병헌이 우연히 접하고 영화화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렇게 <싱글라이더> 제작이 급물살을 탈 수 있었다.

'풍경과도 같은 영화', '기존 한국 상업 영화의 문법을 벗어난 작품' 등. <싱글라이더>에 대한 평이 다양했다. 부실채권 판매로 궁지에 몰린 한 기러기 아빠 재훈(이병헌 분)이 아내와 자식을 보기 위해 호주로 날아들며 접하게 되는 일들이 이 영화의 처음과 끝이다. 그 재훈이 호주에서 워홀러로 살던 지나(안소희 분)를 만나고 두 사람이 서로의 상실을 공감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변화를 인정하는 과정이 느린 호흡으로 영화에 담겨있다.

수치심과 상실감은 누구의 것인가

 영화 <싱글라이더>의 이주영 감독이 23일 오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주영 감독은 영화감독이 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번 영화에는, 감독 자신이 직장을 그만두고 감독이 되기까지의 어려움이 어느 정도 투영되어 있다.ⓒ 이정민


"참 좋아하는 일이었는데 의도치 않게 직장을 그만뒀다"라고 이주영 감독은 말했다. 큰 불만 없이 나름의 보람을 느끼며 일하던 일터를 떠났고, 그즈음 몇 가지 상징적 사건을 뉴스로 접한다. 영화 속 재훈이 증권사 직원으로 나오는 건 2013년 발생한 동양그룹 사태(동양증권을 통해 회사채 등을 불완전 판매하며 개인투자자들에게 경제적 피해를 준 사건)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다. "삶에서 느낀 상실감과 회의감을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직업이라 생각했다"는 게 감독의 설명이었다.

"아무래도 처음 영화 이야기를 쓰다 보니 자신이 투영되는 면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소속감을 되게 중시하잖나. 직장을 나오면서 내가 느꼈던 불안감과 공포가 있었는데 시간이 좀 지나면서 객관적으로 그걸 바라볼 수 있었다. 삶의 가치를 내가 너무 규정짓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시나리오를 쓰면서 그때가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사실 증권이나 경제 쪽은 무지하다시피 한 데 그때 동양증권 사태가 터졌고, 뭔가 딱 들어맞는 느낌이었다.

사건 자체보단 그 사건에 들어있는 사람들이 인상적이었다. 직원들이 느낀 수치심과 죄책감은 영화 속 재훈이 딱 전형적 조직에서 느꼈을 충격과 어울릴 거라는 생각이었다. 소희씨가 맡은 지나의 이야기는 실제로 제 지인의 이야기다. 뉴스에도 나왔고, 참 가슴 아픈 기억이라 영화에 이걸 차용할 거라 생각 못 했는데 이야기를 쓸 때 여러 가지를 고민하다가 워킹 홀리데이 설정이 나왔고, 그 친구 이야기를 차용하게 됐다.

증권사 분들 취재를 좀 했다. 동양 사태 관계자는 많이는 못 만났고, 그 사태를 바라본 다른 회사 분들을 만났다. 다들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계셨더라. 막상 회사채를 판 사람은 단순 영업직이고, 사고는 윗사람이 잘못해서 난 거지 않나. 근데 죄책감은 말단 직원들이 느끼고 있다는 게 참 아이러니했다."

실제 사건에 함몰됐다면, 아마 <싱글라이더>는 몇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 시스템을 지적하는 전형적인 '요즘' 상업영화가 됐을 것이다. 그 대신 이주영 감독은 "최근까지 사회 문제를 다루는 영화가 많긴 했지만, 난 시스템의 오류를 지적하기보단 그 안에서 그걸 겪는 사람들 개인의 감정에 관심이 갔다"며 "사회가 아무래 발전해도 개인이 불행한 건 다들 원하지 않는 일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싱글라이더>는 그런 의미에서 개인을 바라보는 특별한 시각이 담긴 영화라고 설명할 수 있다.

대사의 중요성

 영화 <싱글라이더>의 이주영 감독이 23일 오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싱글라이더>의 원래 제목은 <기분>이었다. 그만큼 인물의 '정서'에 집중한 작품이다.ⓒ 이정민


이 영화의 초기 제목이 <기분>인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등장인물의 감정의 결과 정서가 그만큼 세밀하게 표현돼야 했다. 이주영 감독은 "결정적인 사건이 많지 않은 사람의 여행기 같은 외피를 입은 이상 대사를 더 공들여 써야 했다"며 "이 감독은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털어놓는 속마음 같은 이야기"라 설명했다. 그래서 배우들과 사전에 많은 만남도 필수였다.

 영화 <싱글라이더> 한 장면. 이병헌은 해당 시나리오를 접한 이후 꼭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였다. 안소희 역시 사전에 먼저 참여 의사를 강하게 밝히기도 했다. 그만큼 배우들을 매료시킨 이야기라는 뜻이다.

영화 <싱글라이더> 한 장면. 이병헌은 해당 시나리오를 접한 이후 꼭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였다. 안소희 역시 사전에 먼저 참여 의사를 강하게 밝히기도 했다. 그만큼 배우들을 매료시킨 이야기라는 뜻이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사실 제작이 될 거란 생각은 안 했다. 이병헌씨가 시나리오를 어떻게 접하게 되면서 참여하고 싶다 하신 이후 급물살을 탔다. 제작사도 없었는데 큰 배우가 하고 싶다 하니까 만들어질 수 있었지. 그간 범죄물 같은 장르물을 쭉 하시다가 본인도 그런 역할에 피로감을 느낀 거 같더라. <싱글라이더>를 찍고 바로 <마스터>를 찍어야 했는데 '정서적으로 쉬어가는 느낌으로 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런데 현장이 그렇게 쉴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지. 대사 말고 얼굴과 눈빛으로 감정을 표현해야 했으니까. 총 28회 차를 찍었는데 매번 감정적으로 각성된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이병헌씨도 (재훈의 아내로 등장하는) 공효진씨도 상업영화의 전형성을 벗어나고 있는 지점들을 좋아했다. 효진씨는 재훈이 느낀 상실감에 대해 여러 얘길 하셨다. 소희씨 역시 자기가 왜 처음에 원더걸스로 데뷔했고,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등을 나눴다. 각자가 자기식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이 촬영 전에 있었던 거다."

개봉 이후 크게 흥행세는 타지 못했지만, 영화는 관람객들 사이에서 꾸준히 회자 중이다. 이주영 감독이 경계하는 지점은 의도치 않은 반전 마케팅이었다. 앞서 설명한 대로 감정이 주인 이유다. 이 감독은 "그런 마케팅으로 가서 관객분들이 뭔가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있다고 기대하시는 거 같은데 애초에 그 부분을 노리고 이야기를 쓴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후회의 개수

 영화 <싱글라이더>의 이주영 감독이 23일 오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싱글라이더>에 대한 호불호는 명확히 갈렸다. 이주영 감독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이정민


<싱글라이더>를 두고 나오는 여러 반응, 상반된 평가에 이주영 감독 자신도 깊은 인상을 받은 듯하다. "좋아하시는 분들은 많이, 또 싫어하시는 분들도 매우 싫어하신다"며 그가 웃어 보였다.

누가 뭐라든 이주영 감독은 "스타 캐스팅, 혹 배우 조합으로 박진감 있게 이야기를 잘 끌어가는 분들의 영역이 있듯, 제가 잘할 수 있는 걸 하고 싶다"는 분명한 주관이 있었다. 반전의 영화라는 세간의 정의를 부정하면서 <싱글라이더>를 "삶이 끝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소개한 대목을 기억하자. 애니메이터, 광고 감독을 거친 그는 분명 한국영화계에선 독특한 위치를 점유할 인물임이 분명하다.

"살면서 후회를 아주 안 할 수 없지만 가능하면 후회를 안 하고 살려고 노력한다. 할 수 있는 건 일단 해보자는 주의다.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지. 후회하는 개수를 줄이고 싶다. <싱글라이더> 이후 뭔가 고민하는 단계는 아직 없는데 다음엔 좀 더 현명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했다. 감정에 의지하는 영화다 보니 그 과정이 참 힘들더라(웃음)."


"손석희는 정파, 김어준은 사파... tbs는 타 방송이 못하는 걸 할 것"

[inter:view] tbs의 이유 있는 약진... 정찬형 사장 "진짜가 가짜 이기는 구도 만들겠다"

취임 후 만 1년이 지났다. 33년을 근속하며 여러 화제 프로를 만드는 등 뼛속까지 'MBC 맨'이었던 정찬형 대표는 지난 2015년 12월 tbs로 적을 옮기며 "공공의 이익만 바라보고 그것에 효율적으로 봉사하면 시민들이 사랑으로 보답해준다"는 믿음을 강조했다.그의 지난 1년은 그 믿음이 확신으로 바뀌고, 실체로 증명되는 기간이었다. 서울시 산하의 약소지상파 방송사가 이뤘다고 보기엔 스케일이 참 크다. 지난 3일 상암동 tbs 본사에서 만난 정찬형 대표는 "자랑질은 계속돼야 한다"고 웃어 보이며, 그 성과를 읊었다. tbs 모든 프로그램의 평균 청취율 두 배 상승, 0.8% 대였던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5.4%로 약 6배 상승 등.이 자랑이 의미 있는 건 단순히 수치의 변화라서가 아니다. MBC와 KBS 등이 공영방송사로 제 역할을 못하며 거리에서 시민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동안 tbs는 시민들에게 환영받았다. 정찬형 사장은 "최근까지 <정봉주의 품격시대> 생방송을 광화문에서 진행하고 있는데 시민들이 비오는 날엔 유리창을 닦으라며 세제까지 사오셨다"는 일화를 전했다.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다는 게 더욱 큰 쾌거 아닐까. 스스로 약소방송사라 칭했던 tbs 입장에선 분명 괄목할만한 변화다. tbs 저격수, tbs 선장이 되다"<김어준의 뉴스공장> 라이브 방송은 타사의 일선 PD들이 휴가까지 내며 구경 왔고, 몇몇 분들은 여론 조사 기관에 tbs 프로 시청률을 먼저 문의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겸연쩍어하면서도 할 만한 자랑은 하던 정 대표는 사실 현직 시절 'tbs 저격수'였다. 2015년 12월 18일 취임사를 보자. 당시 정찬형 대표는 "1990년에 tbs가 출범하면서 저녁 프로의 위협적인 상대로 떠오르자 <이무송·노사연의 특급작전>으로 맞서 다시 순위를 뒤집게 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로선 감회가 남다를 만하다.- MBC, KBS 등 지상파의 위기는 곧 타방송사의 기회의 때다. tbs도 여기에 해당하는데, 선택과 집중을 강조한 취임사가 기억난다. 당시 특별한 복안과 전략이 있었던 건가. "우리도 지상파다. 지상파 위기가 대안미디어의 기회라는 시각이 있는데 난 지상파 라디오로 승부할 게 여전히 있다고 생각한다. 강연할 때도 지구 종말 때까지 라디오의 역할이 있을 거라 말한다. 간편성과 오디오 중심 미디어라는 장점이 있거든. tbs가 약소방송국이잖나. 약점이 많지. 그걸 극복할 전략이 선택과 집중일 수밖에 없었다. (지난 1년은) 타사의 취약점은 공략하고, 우리 약점은 보완하는 과정이었다. 우리가 왜 존재하고 필요한지 시민들에게 마치 생필품처럼 인식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처음에 왔더니 PC용 홈페이지를 연결한 걸 어플로 쓰고 있더라. 일단 모바일 전용 어플리케이션부터 만들었다. MBC에 있을 때 '미니'라는 어플을 개발할 때 라디오본부장이었거든. 여기 와서 일단 어플에 투자했고, 2016년 9월 말 정도에 tbs FM, eFM, tv까지 다 되는 어플을 뿌렸다. 바로 그때 <김어준의 뉴스공장>도 시작했고, 빅뱅이 일어났지.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시사교양장르, 특히 탐사와 진실 추적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우리가 그 부분을 공략하고 서비스 해주면 청취자가 몰릴 수밖에 없다고 봤다. 일개 (서울시) 커뮤니티 라디오가 강소공영방송으로 거듭나려면 선택과 집중이 필수라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파악한 tbs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이었나."방금 내가 tbs를 커뮤니티라디오라고 좀 격하시켜 얘기했다. tbs는 직업운전자 분들이 즐겨들을 만한 방송사로 처음에 출발했다. 그러다가 네비게이션 등 여러 기기들이 발달하면서 교통 정보 자체보단 다른 생활 정보의 중요성이 커졌는데 tbs가 아직 거기까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난 그게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방송사에서 잘 안하는 걸 집중해보자 이런 식이었지. 약소 방송사로서 선택할 다른 방도가 없었다. 소수 인력에 저예산이다. 우리 인력 규모 들으면 아마 깜짝 놀랄걸?(웃음) 그래서 몇몇 핵심 장르와 핵심 시간대 프로에 집중 투자를 한 거다."- 잘한 부분과 동시에 1년이 지난 지금 애초 예상과 달랐던 시행착오는 없었는지."뭐든 시작하기 전에 시뮬레이션을 하잖나. 노력했는데 결과가 잘 안 나온 걸 시행착오라 정의한다면 그런 건 없다. 예상보다 더 큰 빅뱅이 벌어진 건 있지. 오히려 그게 시행착오라면 착오다. <지금은 라디오시대> <손석희의 시선집중>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등 MBC에서 30년 넘게 방송했는데 예측보다 훨씬 더 큰 성과가 일어났다. 물론 <김어준의 뉴스공장>으로 파란을 일으키겠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이건 그 자체로 문화적 사건현장이 됐다. 희한한 경우다. 부패한 정권에 시민들이 뭉쳐 저항하는 과정 자체가 우리 구성원에겐 훈련 과정이었다. 전투를 하면서 총검술, 사격술을 익힌 희한한 상황이었지.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던진 역동적 상황이라 빅뱅이 나왔다고 본다. 지난 9월 <김어준의 뉴스공장> 출범 전후로 <한겨레>의 미르 재단 보도가 있었는데 해당 기자가 우리 쪽 패널로 나오고 있었다. 다른 언론사가 보도 안 할 때 <뉴스공장>이 한 셈이지. 10월 <정봉주의 품격시대> 출범일엔 박근혜의 개헌 발언과 JTBC의 태블릿 PC 보도가 나오며 본격적인 싸움에 들어갔고. 이런 일들이 두 프로가 자리 잡는 데 엄청난 기여를 한 셈이다."신의 한 수 정찬형 대표 체제의 tbs 프로그램의 특징은 기존 프로그램의 변주와 과감한 도전으로 정리할 수 있다. 스테디셀러였던 <배칠수, 전영미의 9595쇼>에 힘을 실었고, 기존 방송사에서 외면하던 김어준, 정봉주, 김종배 등을 전격 영입했다. 물론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김어준을 섭외하는데 한 달, 회사의 결단을 기다리는 데 세 달 걸렸다. 간부들은 대부분 반대였는데 사장님이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던 <뉴스공장>의 정경훈 PD의 말을 떠올리며 질문을 이어갔다.- 분명 김어준, 김종배의 섭외 등은 신의 한 수였다. 두 사람 모두 MBC 방송 경험이 있고, 정 대표와도 인연이 있다. 이미 생각해놓은 카드였나."음, 솔직히 생각해볼 순 있었지만 깊이 염두에 둔 카드는 아니었다. 여러 다른 분들도 섭외 라인업에 있었다. (이 대목에서 비보도 전제로 몇몇의 이름이 나왔다) 우리 입장에선 일종의 보석 찾기다. 업계에서 손 안대고 있는 분들을 찾아야 했다. 시대의 결핍에 대응하자는 게 큰 틀이었다. 다른 방송사가 못하는 걸 하려 했고, 그러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 쫄면 안 되지. MBC가 본래 시사교양, 탐사보도가 강했지 않나. 김재철 사장을 거치며 쭉 언론인 찍어내기를 했왔는데 사실상 언론계 블랙리스트가 시작됐던 때다. 김종배, 김어준 등의 방송 복귀는 우리 입장에선 사실 이 시장에 메기를 풀어놓는 느낌이었다. 잠들어 있거나, 졸거나, 엉터리 가짜 정보를 팔거나, 유용한 정보를 바꿔먹는 이들에게 사기 치지 말라고 강한 압박을 넣는 거지(웃음)."- 김어준, 정봉주, 김종배씨의 설득과 결정 과정이 궁금하다. "그 분들 설득 자체는 금방 됐다. 블랙리스트라 방송사 출연에 제한을 받던 때 아닌가. 팟캐스트에서 활약하시다 오셨는데 우리 입장에선 상업적으로도 필요한 분들이다. 워낙 팬덤이 많기도 하고. 김어준, 정봉주 등은 캐릭터가 거칠고 비속어도 쓰지만 분석력 하난 예술이잖나. 위험한 뇌관만 제거하면 멋진 방송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근데 처음엔 프로그램 진행자가 아니라 코너 출연자로 부를 생각이었다. '금주의 핫캐스트' 뭐 이런 식으로 팟캐스트 계 소식을 전하자는 거였지. 그러다 정경훈 PD가 진행자로 하자고 확 제안했다. 이 이름을 기억해 달라. 배칠수, 전영미를 섭외했고, MBC에서 잘하고 있던 박찬혁 작가를 삼고초려 해 데리고 온 인물이다. 그 아이디어를 듣고 당연히 부담됐지. 살만큼 살아서 아쉬울 게 없는 나이인데도 '와 이건 세다!'고 생각이 들더라. 분명 논란이 될 거고, 김어준이 그때 선거법 재판 중이기도 해서 일단 보류했다. 그러다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제청을 인용하면서 '쓰라는 암시구나.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종배는 내가 <손석희의 시선집중> 할 때 검증된 유능한 인물이었고, 정봉주 선수 역시 여러 위험 요소가 해결되는 과정이었다."- 내부와 외부 반대도 많았을 거고, 자기 검열도 있었을 텐데."나 자신이 검열 거부 쪽으로 살아왔다. 언론 통제나 검열은 헌법정신으로 싸워야 한다고 본다. 구성원과 진행자들에게 압력을 가한 건 없다. 다만 법 안에서 하라고 말은 했지. 헌법, 방송법, 심의 규정 등 그런 법과 제도 안에서 무한자유를 보장한다고 했다. 아, 국가보안법도 지키라고 했다. <뉴스공장> 들으면 김어준이 소개하면서 '준법방송' 뭐 이런 말을 하는데 내가 얘기한 걸 비꼰 걸 수도 있다(웃음). 그에게 방송에서 욕설을 한 번이라도 하면 '즉결 조치하겠다'고도 했다(웃음)." - 최근 <다이빙벨> <또 하나의 약속> 등 정권 비판 영화를 공격적으로 상영하기도 한다. 이 역시 하나의 전략인 건지."tbs 약점 보완 프로젝트 중 하나다. 우리가 소수인력이라 데일리뉴스까진 가능한데 다큐 제작 쪽이 취약하다. 일종의 탐사 프로 보완을 위한 거지. <다이빙벨>을 틀 당시가 공교롭게 국회 청문회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시의적절 했다고 본다. <또 하나의 약속>도 지금 봐야할 이유가 충분했다. 삼성이 정유라의 말 구입을 위해 400억을 전달하는 동안 자기 회사 노동자의 목숨을 500만원에 흥정한 거 아닌가.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귀향>도 3월 중 틀 예정이다. 우리에겐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게 이런 영화들이다. 저예산 영화 제작자 입장에서도 조금 보탬이 되는 생태계가 되길 기대한다. 하다 보니 시네마달 작품을 많이 틀고 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지? 흠…. 폐업되면 안 된다."- <배칠수 전영미의 9595쇼>의 변주도 흥미롭다. 앞서 언급한 프로가 신상품을 잘 만든 경우라면 이건 tbs의 스테디셀러를 잘 살린 사례 같다."이 프로의 백미는 역시 백반토론이다. 이건 제가 표현의 자유를 좀 더 보장하는 과정이었고. 동시에 SNS 유통되도록 아예 음원 자체를 공개했다. 누리꾼들이 재가공해서 마음껏 놀 수 있도록 말이다. 유투브 등에 애니메이션과 진행자 목소리를 합성한 게 돌고 있잖나. 그거 우리가 한 거 아니다. 청취자들이 재가공하면 우린 거기서 홍보효과를 얻는 거지. 다만 누군가 그걸로 너무 많은 이익을 챙기고 있다면 계약서 들고 찾아간다고는 했다. 배철수, 전영미가 워낙 성대모사의 달인이다. 현란한 테크닉도 있고. 정오 시간의 새로운 예능 강자로 등극 중이다. (시사가 아닌) 소재의 폭을 좀 넓혀서 간 예능 프로로 이해해주길 바란다."- 가벼운 질문이다. 손석희와 김어준을 비교해보자면? "어유! 둘은 비교할 수 없다. 각자 절정 고수들이지. 손 사장은 <시선집중>을 13년 이상 해오며 쌓은 내공과 학교에서 강의하며 연구한 내공이 있다. 지금은 JTBC 보도본부 사장하면서 대한민국 최고의 영향력과 신뢰도를 가진 진행자 됐다. 손 사장이 무협지로 칠 때 소림이나 무당 등의 정파라면 김어준은 개방 방주 같은 사파 정도? (웃음) 거친 비유지만 이해해 달라.<뉴스공장> 장르가 뭐인 거 같나? 시사 맞나? 내용을 보면 시산데 형식은 리얼리티 쇼다. 현실과 묘하게 이어지는 면도 있다. 출연진들이 실제로 안팎에서 투닥거린다. 김성태, 안민석 의원은 방송 마치고 내려가는 승강기 안에서도 논쟁하고 그랬다. 시사리얼다큐? 뭐 이렇게 볼 수도 있겠지. 청취자들에게 김어준이 묻는 거다. 여러분들이 원하는 게 이건가? 그걸로 다퉈주지! 때론 과한 음모론 아니냐고 지적받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언론에 묻는 거다. '안녕? 언론사들. 내 가설에 어떤 허점이 있는지 찾아보셔!'라고. 사기와 협잡이 판치는 부조리 시대에 김어준의 추리가 주목받는 이유다."남은 과제들 유쾌한 분위기의 대화에서 짐짓 아픈 질문을 던져야했다. MBC의 망가짐을 몸소 겪고 지켜본 언론인으로서 정찬형 대표는 책임을 통감하고 있었다. 1992년 당시 손석희 아나운서와 함께 공정보도를 위해 파업하다 수감되기도 했던 그에게 언론의 자유를 물었다. 더불어 서울시 산하 방송이라는 제한된 구조에 대한 의문도 덧붙였다. 시장의 입맛에 따라 tbs 역시 좌우되기 쉬운 상태다. 이를 인지한 듯 정찬형 사장은 최근 몇몇 언론 인터뷰에서 재단법인 형태의 독립 공영방송사 모델로의 전환을 주장하기도 했다.- MBC 노조의 주요 요직이기도 했고,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공영방송 회복 운동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다른 인터뷰에도 tbs 얘기하기만도 바쁘다고 하는데 사실 안타깝지. MBC, KBS 양 공영방송이 제대로 역할을 했으면 지금 같은 상황은 안 왔을 거다. 부패, 무능, 불통 등 진짜 국격 떨어지는 일이 벌어졌고, 민주주의 가치가 훼손됐다. MBC는 특히 매년 대학생 선호도 1위 언론사 아니었나. 탐사와 예능, 교양 프로의 조화가 돋보인 곳인데 안타깝다. 유능한 방송인 다 내쫓고…. 국민들이 안 되겠다 싶어서 여소야대를 만들어줬는데 그건 바로 이런 부조리를 없애는 법안을 만들라는 거잖나. 국회가 그걸 제대로 안하고 있다. 이것 또한 부조리라고 본다. 다수 국민의 지상명령을 못 담는 의회는 정말 각성해야 한다.예전에 김중배 사장이 노조지지연설에서 '저와 선배들이 잘 하지 못해 후배들이 고통받는 거 같아 죄송하다' 말했는데 솔직히 그때 난 약간 거부반응이 있었다. 근데 지금은 제가 그 생각이다. 더 철저하게 못싸워서 MBC 후배들에게 죄송하다. 빨리 바로 잡아서 또 다른 부패권력이 생기지 않게 노조 중심으로 대응해야 한다. 사용자 입장에서 이런 얘길 하는 게 좀 이상한데 입법기관에서도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야지. 고장난 시스템은 고쳐야 한다."- 독립공영방송사에 대한 과제를 언급한 적 있다. 아마 정찬형 대표 체제의 가장 큰 목표가 아닐까. 서울시는 이에 긍정적인지. "시와 같이 고민할 대목이다. tbs가 출범 때에 비해 그 역할이 매우 커졌는데 여전히 서울시 한 과에 소속된 사업소 형태다. 역할에 걸맞게 공영방송 체제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서울시도 지금 이 상태로 두기엔 힘들겠다고 생각한다. 결국 시장의 판단이 중요하겠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모델을 고민할 때가 올 거다. 조금 과장해서 얘기하면 tbs를 들은 사람과 듣지 않는 사람 사이 정보의 격차가 생길 것이다. 사회문제, 법률문제 등등을 전달하고 있잖나. 서울시가 제공하는 여러 공공서비스가 있는데 tbs 역시 정보와 분석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가짜 지식인과 거짓에 대한 분별도 돕고 있다고 본다.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도시가 전 세계 어디에도 아마 없을 거다. tbs 법인화가 왜 필요한지 공공서비스 의미로서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PD 시절과 대표인 지금을 돌아보면 유독 '위험인사'와 함께 일한 느낌이 든다. 고 신해철과도 인연이 깊지 않나. 개인적으로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을 참 좋아했다."그런 느낌이 있긴 하다. <고스트 스테이션>에 나오는 경고문구도 내가 만들어 준 거다. (김어준, 신해철 등) 다들 통제가 잘 안 될 거 같은 느낌인데 동시에 굉장히 정교하고 과학적인 사람이다. 사회과학, 철학에 관심이 많다. 신해철씨도 그랬다. 그걸 예술에까지 연결하려 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는 거다. 또 궁금증이 생기면 계속 질문한다. 봉건체제, 왕정을 옹호하는 이들에 대해선 극도의 분노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구체제로의 회귀에 대해 철저히 싸워야 한다는 주의다.신해철씨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가 부조리였다. 극복하고 타파해야 할 걸로 생각했지. 사실 그 당시 MBC 젊은 PD들이랑 신해철씨가 많이 다투고 했다. 통제할 사람이 없어서 내가 맡은 거였지(웃음). 고 이종환 선배와 <라디오 시대>를 하기도 했는데 이 분도 사고 칠 위험이 있는 분이지 않나. 극우성향이거든. 근데 그런 발언만 잘 통제하면 최고의 엔터테이너기도 하다. 이런 분들 덕에 난 '하이리크스 하이리턴'이런 걸 배운 거 같다." - 그런 의미에서 tbs가 왠지 방송인의 인큐베이터가 아닌, '뇌관제거전문' 방송사가 될 것 같다."(웃음) 지금은 뇌관이 제거된 분들이지만 다시 장착하는 노하우도 갖고 있는 분들이다. <나는 꼼수다> 멤버들은 우리 사회 소중한 자산이라고 본다. 지상파용이 아니었을 뿐이지. 록스타(rock star)에 가까운 진행자들이다. 천재면서 엔터테이너 기질이 있고, 팩트 파이터(fact fighter) 기질이 있다. 또 정의와 민주주의 신봉자다. 이런 사람들이 더 많이 쓰임 받았으면 한다. 지하에서 교주처럼 있지 말고 땅 위로 나와야지!"인터뷰 중 유독 자주 등장한 단어 중 하나가 진실이었다. 역설적으로 여전히 우리 사회에 이 가치가 부족함을 암시한다. "가짜 말고 진짜를 해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는 걸 보이고 싶다"는 정찬형 대표의 말이 귓가에 남는다. 대중을 상대로 한 이 짜릿한 도전이 계속 돼야 할 이유다.

"정의 구현? '세상은 X같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inter:view] 연극 <베헤모스>의 연출 김태형, 그가 말하는 연극

*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학로에서 가장 주목받는 연극·뮤지컬 연출은 누구일까? 대학로를 지나가는 마니아를 붙잡고 물어보면 둘 중 하나는 '아마도' 그의 이름을 말하지 않을까. 김태형. 팬들 사이에서 '탱연출'이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불리는 그. 특유의 냉소적이면서도 재치 있는 말투의 소유자. 그는 의미와 재미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줄 아는 몇 안 되는 감독 중 하나이다.낯선 창작극이라고 하더라도 연출의 이름이 '김태형'이라면 설레는 관객들이 있다. 라이선스 작을 해도 오리지널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 여기'의 맥락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니도록 치밀하게 조율하는 것으로 유명하다.2007년에 데뷔하여 이제 만 10년. 2017년에도 그는 바쁠 예정이다. 작년부터 이어진 <벙커 트릴로지>가 끝나자마자 새 연극 <베헤모스>의 연출을 맡았다. 국내 초연할 대극장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도 개막을 앞두고 한참 준비 중이다. 작년 연극계에 선풍을 불러일으킨 <글로리아>의 올해 지휘봉도 그가 잡을 테고, '즉흥' 뮤지컬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아내인 이영미 배우와 작업할 캬바레 뮤지컬 <Mee on the Song> 등 그의 실험 정신이 마구 발휘될 무대도 예정되어 있다. 지이선 작가와 남다른 '케미'를 한 번 더 뽐낼 <Rooms>도 기대되기는 마찬가지.'상업판'에서 활동하지만,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철저하게 계산된 구도 아래에 심는 연출.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아찔하게 연극적 재미를 추구하는 감독. 언제나 관객과 호흡하며 무대를 만드는 사람. 비가 내리던 지난 2월 22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팬심을 가득 품고, 그를 만났다.연극보다 더 연극 같은 현실 속에서 재벌가 아들 태석은 언제나 사고를 치고 돈으로 수습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번 사고는 좀 컸다. 실수라고는 하지만 사람을 죽였으니까. 그냥 가볍게 하룻밤을 할 생각이었지만, 하필이면 '그 X'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건드려 버렸다.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언제나처럼 아버지에게 전화를 건다. 아들이 못마땅한 아버지이지만, 금배지에 욕심이 있는 그가 이런 사건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요트를 타고 남해를 누빌 꿈에 부푼, 돈에 눈먼 변호사 '이변'이 이 사건을 맡는다. 그리고 아주 약간의 사실과 수많은 거짓을 섞어 태석을 무죄로 만들 시나리오를 짠다. 이변의 별명은 '베헤모스'이다. 성경에 나오는 그 거대한 지옥의 괴물 리바이어던의 또 다른 이름.그 괴물 앞에 청개구리 '오검'이 섰다. 저번 사건에서도 물을 먹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엄정하고 공정하게' 수사하겠다는 그의 목표는 저 괴물을 쓰러트려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것이다. 외압과 언론 플레이, 온갖 유혹이 들끓지만, 이 청개구리는 괴물에 맞서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개구리와 괴물의 공방은 일진일퇴를 거듭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괴물을 고꾸라트릴 결정적인 한 방을 잡는다. 하지만 이 방아쇠를 당기기 위해선 자신도 괴물이 되어야 한다. 청개구리 오검은 고민한다. 청개구리로 남아 또 한 번 괴물 사냥에 실패할 것인가, 괴물이 되어 괴물을 잡을 것인가."사실 각본은 꽤 오래전에 들어왔어요. PMC프로덕션에 계신 분이 꼭 같이해 보고 싶다고 하셨죠. 사실 스케줄도 차고, 처음 드라마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개인적으로 흥미가 막 돋지는 않아서 피했어요. 그런데 PD님 처음 만났을 때 여쭤봤던 것 같아요. 보통 작품을 맡을 때 많이 여쭤 보거든요. 이 이야기로 무슨 메시지를 주고 싶은지. 그런 얘기를 듣는 게 저한테는 중요한 선택의 기로가 되더라고요. 흥미가 있거나, 감동적이면 같이 일을 하게 돼요. <베헤모스>의 경우 마지막 대사 '그래서 네가 다르다고 생각해?'를 관객들에게 주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이 말을 듣고 하자고 결심했죠.그런데 본격적으로 해볼까 하고 마음먹은 시기에 비슷한 장르의 영화나 드라마가 되게 많이 나왔어요. <추격자> <내부자들> <베테랑>…. 이런 사회 권력에 대한 고발, 그것도 검사가 등장하는 작품들이요. 그래서 연극 <베헤모스>로 뭘 더 새로운 걸 할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도 들고, 고민을 많이 했죠. 우리 주변에는 계속 드라마틱하고, 신경 써야 할 현실들이 벌어지고 있잖아요. 지금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더 괴물 같고, 베헤모스 같으니까요. '과연 관객들이 이 이야기를 재미있어할까'하는 의문이 들었죠. 그런 생각을 준비하면서 계속했어요."2017년 김태형 연출이 처음으로 선택한 연극 <베헤모스>는 지난 2014년 3월 30일 KBS에서 방영된 드라마스페셜 <괴물>을 원작으로 삼아 각색된 작품이다. 3년 전에는 흥미로웠을 이야기이지만,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 극적인 이야기가 현실에서 구현되는 때, 구미를 확 당기는 시놉시스는 아니다. 그가 지적한 것처럼, 이미 비슷한 서사가 장르를 불문하고 수차례 대중 앞에 모습을 내밀지 않았던가. 과연 관객은, 현실과 비교했을 때 자칫 밋밋해 보일 수 있는 이 이야기를, 연극 <베헤모스>를 보러 극장까지 찾으러 올까. 준비 과정이 절대 쉽지 않았을 것 같다."연습 과정 내내 힘들었어요. '현실은 이렇게 흥미진진한데 우리 건 덜 해' 이런 얘기만이 아니라요. 텍스트의 완성도나, 상징, 공간의 구성 등에서 아쉬움이 있기도 했고, 캐릭터의 묘사나 설정에서 여러 가지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쉽지가 않았거든요. 결말이 예상되기도 하고, 이런 스토리텔링을 다른 콘텐츠에서도 많이 겪었잖아요. 그래서 그걸 공연이라는 매체가 갖는 다른 장점으로 보완하려고 했죠. 그래서 좀 더 테크닉을 부린 거죠. (웃음) 음악, 조명, 영상, 동선과 무대의 활용…. 이런 것들로 말하자면 잔재주를 부린 거거든요. (웃음) 제가 생각했던 문제점들을 파악해 주시고, 아쉬워하는 관객분도 계시지만, 또 제가 재주를 부린 부분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도 꽤 있더라고요.사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해도 완성도가 부족하면 들으려 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저는 어떻게 이걸 잘 전달할까 하는 게 가장 고민이었어요. 이야기에는 아쉬움이 있어도, '웰메이드'로 잘 전달해 보자. 그러고 나니까 그 만듦새가 관객들에게 어필하는 부분이 있었고, 그러다 보니까 텍스트도 더 잘 받아들여 주신 것 같아요.""솔직히 망할 줄 알았어요"라며 웃었지만, 그의 걱정과 달리 지난 2월 1일 개막 이후 꾸준히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페미니즘 그리고 여성에 대한 고민 준비과정이 힘들었다고 하지만, 진짜 고민되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바로 '여성 캐릭터'의 활용. <베헤모스> 속 여성 캐릭터는 전형적인 '피해자'이자, '꽃뱀'으로 그려진다. '성녀 혹은 창녀' 프레임 중 후자에 속하는 듯 보인다. 작품 속 언론은, 으레 현실 속 언론이 그렇듯이, 나서서 'XX녀'와 같은 호칭을 붙이며 피해자에게 잘못이 있는 것처럼 몰아간다. 그의 평소 행실이 바르지 않았다고, 빌미를 제공했다고. 이변은 이 점을 집요하게 퍼트리며 여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처음 대본을 리딩했을 때부터 굉장히 마음에 걸렸어요. '뭐, 피해자고, 꽃뱀이고, 소재로 쓰였는데 어떻게 하냐'는 얘기도 있었지만, 여자 배우는 불편해했죠. '기분 나쁘다'가 아니라, 자기가 직접 연기해야 하는 입장에서 그 '캐릭터가 다뤄지고 있는 방식'을 '불편'해하더라고요. 그 지점을 끝까지 고민 많이 했어요. 그래서 역으로 그 캐릭터가 사회적으로 다루는 암시들을 적나라하게 나타내기로 했죠. 전형적인 남자 가해자와 여자 피해자 관계에서 피해자를 다루는 방식들도 때려 넣고요. 그리고 끝에 가서야 이런 걸 뒤집을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 보자고 했죠. 개인적으로 연출로서 가장 뿌듯했던 건 이 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그리고 이렇게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전복시키는 과정에서 '감동이 있었다'라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만족스러워요."연극 <베헤모스> 프레스콜 현장에서, 김태형 연출이 유일한 여성 배역을 맡아 멀티를 소화하는 김히어라 배우에게 "미안하다"고 한 것, 그리고 그 미안함에도 불구하고 극을 올린 이유를 알 것 같다.사회적으로 성 평등이 화두이다. 페미니즘 운동이 다시 한번 세상의 주목을 받으며 'Go Wild, Speak Loud, Think Hard' 같은 구호가 광장에 울려 퍼지고 있다. 이전부터 성 소수자의 이야기가 자주 극화되면서, 젠더적 감수성이 높은 편에 속하는 공연계이지만, '갈 길'이 멀기는 매한가지이다. 다행히도 최근에는 여성 중심의 서사가 각광받기도 하고, 전형성을 탈피한 여성 캐릭터도 등장하고 있다. 시대와 소통해야 하는 창작자로서 어렵지 않을까."사실 어렵지는 않아요. 어려운 문제 같지만, 해결점이 어려운 곳에 있지 않거든요. 그냥 평등하게 생각만 해 보면 되니까요. '이게 이상하다'라는 문제의식만 있으면 돼요. 그리고 요즘 관객분들은 그 고민을 더 잘 이해해 주시거든요. 고민하지 않았을 때는 문제가 되지만, 이걸 개선하려고 노력한다면 쉽게 이해해 주셔요. 이게 저한테는 또 하나의 도전이 되는 거죠. 정치적인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해서도, 사실 이게 전통적으로 무대에서 중요한 지점은 아니었거든요. 신경 쓴다고 해서 누가 인식해 주는 것도 아니었고. 하지만 젠더 문제는 공연을 주로 보시는 관객분들께 굉장히 중요한 이슈잖아요. 그러니까 이 부분을 정직하고 정확하게 다뤄 주는 게 중요해요. 사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저도 어떤 경우에는 신경을 쓰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아요.'나는 페미니스트인가?' 고민도 해 봤어요. 그렇다고 하기엔 공부가 좀 부족하죠. 그런데 어떤 이슈가 터졌을 때 어느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지 그 지점은 예전부터 정해져 있었던 거 같아요. 조금 더 진보적이고, 젠더적으로 평등하기를 바라고…. 이건 사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각자 살아온 환경과, 사회를 바라보는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잖아요. 다만 저는 눈에 걸리거나, 불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겁니다."찜찜한 결말을 의도한 이유 그렇게 많은 고민 끝에 무대에 올렸다. 그런데 이 작품, 그 끝이 너무도 찜찜하다. 언뜻 승리한 듯 보였던 청개구리의 선택은 무위로 돌아간다. 오히려 오검은 괴물을 잡기 위해 괴물이 되는 길을 택한다. 괴물이 되지 않고는 괴물을 잡을 수 없는 것인가. 그렇게 괴물이 되었음에도, 베헤모스는 다시 일어섰다. 그렇게 피해자는 지워지고, 타락한 괴물들은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희희낙락한다. 그 위를 정의의 여신이 비꼬는 듯, 서글픈 듯 미소 짓는다."정의가 구현되고, 약자가 승리하고, 이런 지점에서 감동을 하긴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잖아요. 연극에서 카타르시스를 확 느끼게 해 주는 건 어쩌면 '가짜'라는 생각을 했어요. 공부하면서 브레히트에게 많이 영향을 받았는데, 그는 독일의 파시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기제로 활용되던 연극을 이용해 그 반대되는 효과를 만들고자 했어요. 물론 이런 시도는 실패하고 망명했죠. 많은 창작자와 관객은 그의 오락적 기법들만 받아들였지만, 저의 연극관에는 그의 관념도 많이 스며들었어요. 새로운 테크닉, 재미있는 시도와 함께 제 공연을 보는 사람들이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씨앗을 심는 거예요. 궁극적으로 '혁명'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그 씨앗 덕분에 관객들에게 새로운 관점이 생겼으면 좋겠어요.물론 원작도 막 정의가 승리하고 이런 건 아니지만, 저는 한 발 더 나갔어요. 원작은 변호사의 구속으로 끝나지만, 연극에서는 더 나아가서 결국 이변이 무죄를 받고, 타락한 주인공들이 잘 먹고 사는 모습이 나오잖아요. '세상은 이래! X 같아!'를 보여주려고 했어요. 그래서 무대를 본 관객분들 중 몇 명이라도 새로운 씨앗을 가져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염세적이라고까지 비칠 정도로 김태형은 현실을 비관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는 것일까. 정의로운 검사 오검이 결국 이변과 같은 괴물이 되어버린 것처럼, 우리도 또 하나의 괴물이 될 수밖에 없는 걸까."시스템을 고쳐야죠. 개인이 시스템을 고치려고 노력해야 하고요. 그렇지 않다면 작품 속의 오검처럼 정의를 구현하겠다고 발버둥 쳐봤자 결국 시스템에 잡아먹히는 거죠.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게 중요해요, 일단. 대기업 같은 곳 들어가는 사람은 사실 전체 취업자의 몇 퍼센트도 안 되잖아요. 문제는 무조건 거기에 들어가야 한다고 부추기는 게 한국 사회죠. 그게 위험해요. 그걸 깨자고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베헤모스'가 한 사람의 사이코패스일 수도 있지만, 사실 저는 그게 우리 사회라고 생각해요. 경쟁이나, 만들어진 행복에만 노력을 기울이게 만드는 시스템 자체가 괴물이에요. 그걸 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을 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김태형 자체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느냐'라고 묻는다면 사실 할 말이 없죠. (웃음) 저도 이게 옳지 않다고 느끼면서도 시스템에 부합할 때도 잦으니까. 그래도 항상 생각하고 공연을 만들며, 노력하고 있습니다."김태형이 그 시스템 안에 있다면 그렇다면, 만약 자연인 김태형이 오검의 위치에 있었다면, 오검이 아닌 '김검'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 시스템에 잡아먹혀 괴물이 되어버리지 않기 위해 어떤 선택을 했을까."연습하면서 그런 얘기를 한 적은 있어요. '나라면 어땠을까'. 제가 해석한 것과 배우들이 연기하는 게 조금씩 다르긴 해요. 오검의 마지막 선택에 대해, 이유가 과연 뭐냐. 배우들은 그게 변호사에 대한 경쟁심과 복수심, 여동생 죽음과 연관된 욕심이라고 하죠. 그런데 저는 좀 다르게 생각했어요. 저는 검사라는 직업 자체에 어마어마한 출세욕과 성공욕이 있다고 생각을 해요. 검사라는 게, 군대처럼, 개인의 선택이나 판단보다는 조직 자체의 효율성을 중요시하잖아요. 상명하복의 조직이고 말을 잘 들어야 하니까. 그래서 오검은 그 자리에서 정의 구현을 위한 욕구 때문이든, 성공을 위한 욕구 때문이든, 어떤 이유에서라도 그런 선택(괴물이 되는)을 했어야 해요. 여기서 한 번 눈을 감고, 실적을 올려야죠.배우들은 그러면 이 착하고 정의로운 사람이 바뀌는 동기가 없지 않으냐고 했지만…. 오검의 터닝포인트가 잘 만들어졌으면 더 매력적이었겠죠. 하지만 사람은 언제든지 그럴 수 있는 존재예요. 그래서 극적인 계기는 없어요.만약 제가 오검이었다면 검사를 때려치겠죠. 변호사 개업하면 되잖아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건, 시스템을 벗어나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에요. 학교나 집단에서, 생각보다 쉽게 발을 빼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짊어져야 할 게 많을수록 어려운 일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 조직에서 한 발 빠져나와서 바라봤다면 조금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이 답변을 듣고 김태형 연출답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문득 든 또 하나의 생각. 그건 오검이니까, 김태형 연출이니까 할 수 있는 선택 아닐까. 사법고시를 패스해 성공 가도를 달려온 검사. 로스쿨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검사가 되기 위해서는 상위권에 들어야만 한다. 가진 것이 있으니까, 때려치워도 변호사 개업은 할 수 있으니까 시스템을 박차고 나올 수 있다. 과학고등학교, 카이스트를 다닌 학벌 사회의 '엘리트'였기에 때려치울 수 있었고, '한예종'이라는 문화예술계에서 때로 권력으로 작용하는 또 다른 카르텔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는 건 아닐까. 사실 대부분 관객은 평범하게 일상을 영위하는 소시민인데, 안전망이 없는 이들에게 시스템을 박차고 나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김태형은 자신이 '엘리트'라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엘리트와 소시민을 구분하는 이분법은 거부했다."그래서 '소위 말해' 가진 게 없는 분들의 행동이 더 감동적이고 의미 있을 때가 있어요. 근데 이게 또 하나의 엘리트주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너무 가진 자의 입장에서 판단하는 것이 아닐까요. 학벌이 낮거나, 재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불쌍하게' 생각하면 안 되잖아요. 각자의 삶에서는 오검 못지않은 책임과 의무를 다하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언젠가는 오검처럼 생각하고, 고민하고, 용기를 내야 하는 순간들이 와요. 연극은 검사, 재벌, 변호사, 이런 사람들에 대한 얘기지만, 결국 '내가 오검이다', '태석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지점이 확실히 있고, 그렇게 볼 수 있도록 공연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블랙리스트이지만, 연극을 계속 하는 이유 김태형 연출은 그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미래는 낙관한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 방법은 그 시스템 안에서 성공하기 위한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이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개개인의 노력이 모였을 때 가능하다. 그 '혁명'의 방법으로 그는 연극이라는 무대를 택했다. 어쩌면 그런 발상 때문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것일지도 모르겠다."당황스럽기도 했고,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정말 '천박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거기서 출발한 게 점점 커져서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그 지점은 고무적이더라고요. 균열들이 하나씩 발견되어서 결국에는 쾅 터지는 그것. 참지 않고 던져내고, 촛불을 들고 목소리를 내는 이 지점이 아름답고 감동적이라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눈물 날 것 같은 순간들도 많았고, 감회가 새로웠죠.시위 장면으로 '뮤지컬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있는데, 금방은 못 만들 것 같아요. 나한테만 특별한 사건도 아니고, 조금 더 내밀하게 들여다봐야 할 것 같아서 당장은 못 쓰겠어요. (웃음) 지금은 너무 막 시류에 물타기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조금 지나서라도 이 이야기는 꼭 하고 싶어요. 이런 사태에 분노하고 목소리 내는 사람들에게 감동했던 얘기를 꼭 한번 해보고 싶어요. 5·18 광주 얘기로 수많은 명작이 나왔고, 사람들에게 전달됐던 것처럼."김태형 연출은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다. "하다 보면 하고 싶은 일이 자꾸" 생긴단다. 연극의 위상은 자꾸만 줄어들고, 연극 한 편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시대도 아니지만, 김태형 연출은 지난 10년 동안 연극을 통해 끊임없이 메시지를 던지려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왜?"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연습실이 너무 재밌어요. 배우들과 사랑을 주고받는 시점이 될 때, 함께 고민하고 연습실에서 어떤 순간들을 만들어 가면서 확 오는 순간이 있어요. 배우들도 그걸 알아요. 마법이 지나가는 순간, 마약 같아요. (웃음)두 번째는 관객들이죠. 한편으로는 무서워요. 뒤처질 것 같다는 걱정이 들 때도 있고, 책임감 들고 그렇지만…. 누군가 내 일을 응원해 주고 좋아해 준다는 게 대단한 유혹이거든요. 칭찬만이 목적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욕구니까요. (웃음) 앞으로 10년은 큰 사고 치지 않는 한 계속 가지 않을까요."그가 데뷔로 만 20년을 채우는 2027년에도, 그와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그의 지난 10년을 돌아보기에 연극 <베헤모스>는 아마도 적절한 작품일 것이다. 김태형 연출 '10년'의 기술이 녹아든 이 작품을 가늠쇠로 삼아서, 앞으로의 10년을 예측해보자. 오는 4월 2일까지 서울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상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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