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빛내는 또 다른 주역을 찾습니다. 연기하는 배우라는 점에서 '주'와 '조'는 따로 없습니다. 혹시 연기는 잘하는데 그동안 이름을 잘 몰랐다고요? 가만 보니 이 사람 확 뜰 것 같다고요? 자신의 길을 최선을 다해 걸어온 이들을 <오마이스타>가 직접 '픽업'합니다. [편집자말] |
▲ 영화 <재심>에서 악질 형사 백철기. 배우 한재영은 그를 연기하며 "악역의 정점을 찍고 싶었다"고 말했다. ⓒ 이정민
모든 일의 시작은 그에게 잘못 걸리면서부터다. 살인사건을 목격하고 경찰 앞에서 증언까지 했지만, 오히려 형사들은 그를 의심하고 겁박했다. 여기에 검찰과 법원의 안일함까지 보태져 결국 그 소년은 인생의 황금기를 고스란히 교도소에서 보내야 했다. 영화 <재심>의 일부 줄거리이자, 실제로 벌어진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전말이다.
"악하게 표현하려고 안 했다. 근데 또 악하지 않게 하면 오히려 더 악하게 보일 거 같더라. 백철기라는 사람도 그렇게 막 때리고 잡아넣고 싶어 혈안이 됐다기보단 상부의 눈치도 있고, 관계된 이들도 많아서 그랬을 거로 생각했다. 영화에서 표현되진 않았지만 일말의 양심의 가책은 있지 않았을까. 집에 가면 아내도 있고, 잔소리도 듣고 그런 가장이었을 거다."
그 악질 형사 백철기 역을 맡은 배우 한재영의 변이다. 연기 경력만 벌써 15년이 넘어가는 그가 해석한 인물은 평범한 나머지 너무 삶의 논리에 충실해 버린 사내였다. 그간 다수의 영화에서 건달, 경찰을 반복해서 맡아온 그였기에 내심 수긍이 간다. 기능적으로 소모되고 마는 캐릭터가 아니라 이야기에서 살아 있는 캐릭터가 한재영의 재현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 지난 14일 상암동 <오마이뉴스>에서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기로 했다.
악역의 정점
▲ <재심> 촬영 전보다 그는 살이 꽤 빠졌다. "악역은 이제 그만하고 뭔가 새로운 역할을 해봐야 하지 않겠냐"며 그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 이정민
인상만 놓고 보면 움찔하는 게 사실이다. 큰 덩치에 입 주위를 둘러싼 수염이 전형적인 '범죄형 얼굴'이다. "얼굴이 너무 밋밋해 기르기 시작했다"며 그가 너털웃음을 짓는다. 같은 소속사 배우인 황정민이 '좀 깎으라'고 장난 섞인 핀잔을 준다지만 그의 의지는 꿋꿋해 보였다.
"건달 역도, 경찰역도 그간 꽤 했다(웃음). 관객분들이 어찌 볼지 모르겠지만 <재심>에서 백철기는 마냥 윽박지르는 형사와는 다르게 표현하려 했다. 식상해 보이기 싫었고, 그저 그의 입장에선 정당하게 하는 일이라는 인식을 주고 싶었다. 전부터 그 생각을 했다. 이런 악역을 맡으면 정말 일상생활인 것처럼 해야겠다고. <살인의 추억> 속 송강호 선배같이 말이다. 실제 사건을 일부러 공부하진 않았다. 정보를 보게 되면 연기도 그쪽으로 쏠릴까 봐 내 상상력에 맡겼다. 아, <그것이 알고 싶다>는 봤다. 대충 어떤 느낌일지 감은 오더라."
전라남도 영광 출신인 그는 표준어로 제시된 대사를 노련하게 사투리로 다 바꿔 연기했다. 전작 <친구2>에선 계부로 등장했기에 혹시 물으니, 청소년기를 또 부산에서 보냈단다. 호남과 영남 사투리를 함께 탑재한 '드문' 배우였다. 그는 <재심> 시나리오를 읽고 정말 출연하고 싶어 제작사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꼭 하고 싶다는 의지를 강하게 밝힐 정도로 욕심을 냈다. "아무래도 조연 캐릭터 중에선 가장 매력 있는 역이었고, 백철기를 통해 악역의 정점을 찍고 싶었다"고 그가 고백했다. 그만큼 애착이 갔던 작품인 건 분명하다.
당근과 채찍
▲ 영화에선 주로 악역이었지만 여러 무대 작품에서 그는 누군가의 아빠이거나 선생님 등의 역을 주로 맡았다. 이것 또한 반전 매력. ⓒ 이정민
오랜 경력의 배우들이 저마다 연기가 꿈이라고 고백하곤 했다. 한재영은 보다 더 담담했다. "고등학교 때 자습하기 싫어하는 모습에 선생님이 연기는 어떠냐고 권유해 접하게 됐다"고 시작점을 그가 설명했다. 그렇다고 절실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2002년 뮤지컬 <55 사이즈> 이후 대학로 극단 신화에 몸담았고, 외길을 걸었다. 불과 3년 전까지 고시원에서 살 정도로 생활이 풍족하진 않았지만, 버티고 또 실력을 닦으며 지금에 이르렀다.
"어릴 땐 중상위권 정도 성적이었는데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공부가 재미가 없었다. 집안 환경도 그리 좋진 않았지. 그렇다고 사고를 치진 않았고, 그저 꿈이 없었을 따름이다. 그러다 문학 선생님의 친구가 연기학원을 하신다고 들어 연기를 시작했는데 잘 맞더라. 주위에서도 곧잘 한다는 말을 해주니까 신도 났고. 극단도 교수님 권유로 들어간 거다.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서 고시원, 극단 사무실 생활을 전전했다.
서른여섯 때였나. 10년 넘게 연기했는데 앞이 안 보여서 포기하려고도 했다. 근데 이렇게 인터뷰를 하고 있을 줄 알았을까. 연극을 하면서 나름 강하게 배웠다. 맞기도 많이 맞았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 많이 지적받았다. 나 스스로 그래서 좀 엄격한 편이다. 제대로 연기에 대해 생각한 게 <강남1970> 때다. 내 이름을 걸고 연기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지. 그럴수록 연기는 더 어려워지더라. 이번에 <재심>도 60점 정도밖에 못 주겠더라. 그분이 오려다 말았어! (웃음)"
홀로 점검하는 습관이 들어있기에 한재영은 당근보다는 채찍을 더 많이 적용한다. 연극 무대를 서는 후배들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뭔가 건드려서 더 잘 될 거 같으면 당근보다는 채찍을 더 쓰는 편"이라며 "그런 말을 하는 게 쉽진 않지만, 더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에서 꺼낸다"고 말했다.
"2008년까지인가. 영화를 몇 편하긴 했지만 주로 연극만 팠다. 영화에 좋은 역할로 논의가 되다가 꼭 최종에서 미끄러지더라. 그땐 내가 아무런 줄도 없고, 믿는 구석이 없어서 그런 줄 알았다. 근데 돌아보면 내 실력이 부족했던 거다. 내공 부족이지. 그걸 서른 초반에 느꼈다. 물론 잘 되기 위해선 실력도 중요하고 운도 따라줘야 한다. 그땐 내가 그냥 너무 닫혀 있던 건 아니었을까 돌아보긴 한다.
여전히 초야에 묻힌 고수가 많다. 그분들도 좀 마음을 열고 나왔으면 한다. 영화계도 너무 젊은 친구들 위주로만 쓰지 말고 고수를 찾으러 돌아다녔으면 좋겠다. 냉정한 기준으로 잘한다고 평가할 수 있는 이들을 찾아야지."
연기의 짜릿함
무대와 영화로 그는 "이미 짜릿함을 맛봤기에 다른 길로 돌아가긴 힘들다"고 말했다. 어쩌면 이게 그가 연기하는 솔직한 이유일 것이다. 연극 <서쪽나라에서 온 플레이보이> 등 몇 가지 작품을 언급하며 한재영은 "어떤 계기 없이 그냥 작품이 쭉 받아들여지고 캐릭터가 잡힐 때가 있다"며 "영화에서도 그런 순간을 맞는 게 꿈"이라 밝혔다.
그렇다고 애써 무리하진 않는다. 스스로 최고 경지의 연기라고 생각하는 게 '평범함의 연기'니까. "무대에서든 화면에서든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연기를 하고 싶다"고 한재영은 속마음을 꺼냈다.
"달리 말하면 평범하게 보이는 연기다. 그게 제일 힘들다. <재심>도 평범한 시민처럼 보이려 했는데 그게 좀 부족했던 거 같다. 평범함의 연기 그게 내 목표다. 천천히 해나가야지. 뭔가 이루고픈 욕심이야 있지만, 사람은 다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매 작품 내 인생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해나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