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 뉴스 예능쇼 <B급 뉴스쇼 짠>의 진행을 맡고 있는 최일구 전 MBC뉴스 앵커가 22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TV조선 뉴스 예능쇼 의 진행을 맡고 있는 최일구 전 MBC뉴스 앵커가 22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정민


최일구 전 MBC 뉴스데스크 앵커는 최근 출판한 에세이집 <인생 뭐 있니?>에서 "지난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나는 웃어본 기억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고 고백한다. '재미있는 앵커, 풍자하는 앵커'로 오랜 시간 MBC에서 사랑받아온 최 전 앵커는 지난 3년간 파업·퇴사·빚보증 이어진 파산으로 인해 인생 최악의 시기를 경험했고, 그동안 웃어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채플린의 비애일까. 풍자에 필수불가결한 페이소스일까.

그는 이제 막 그 어두운 터널에서 빠져나오려 한다. 그런데 그 방법이 사뭇 낯설었다. 지상파 채널 MBC에 30년 가까이 몸담았고 MBC 파업에도 참여했던 사람이 종합편성 채널, 그것도 가장 보수적이라고 여겨지는 TV조선 프로그램의 MC로 복귀라니. "돈 때문에 TV조선으로 어쩔 수 없이 갔다"는 목소리, "그런데 왜 하필 TV조선이냐"는 의문들이 공중(公衆)을 떠다녔다. 그는 <고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TV조선에서 내 나름대로 저널리즘을 보여주겠다"고 호기롭게 밝히기도 했다.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 모처에서 최일구 전 앵커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생각하는 "내 나름대로 저널리즘"이 대체 뭔지, 그리고 떠나온 MBC에 대한 후회는 없는지.

최일구가 TV조선에 간 이유

 TV조선 뉴스 예능쇼 <B급 뉴스쇼 짠>의 진행을 맡고 있는 최일구 전 MBC뉴스 앵커가 22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TV조선 뉴스 예능쇼 의 진행을 맡고 있는 최일구 전 MBC뉴스 앵커가 22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 '지난 5년간 웃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요즘은 어떤가?
"TV조선 < B급 뉴스쇼-짠 >(아래 <짠>)의 MC를 맡아 인생 2모작을 시작할 수 있는 디딤돌을 놨다고 할까? 여기서 조금 웃어볼 수 있을까? 그런 게 있다."

- <짠>의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TV조선 PD가 먼저 만나자고 했다. 보수 매체고 그러니, 뭔가 할 생각 없이 그냥 만나나 보자 했다. 그런데 기획안을 보니 마음에 들었다. 시사와 예능을 합쳐서 B급 뉴스를 만들자는 거다. 그래서 하자고 했다. 분위기는 좋다. 스태프들도 다들 열정을 갖고 있고. 나라는 사람을 MC로 쓴다는 것 자체가 TV조선의 변화라고 봤다. TV조선이 집토끼만 고려하다가 4.13 총선 이후에 산토끼도 생각해보자 그런 전략인 것 같다."

- 소통은 잘 되나?
"원활하다. 근데 다들 워낙 바쁘다. 70분짜리 방송이니까 쟤네 다 죽는다. 녹화 끝나면, 편집하고 다음 주 뭐 할까 생각하고 쉴 틈이 없는 것 같더라. 나는 녹화하면 땡이지만."

- <짠>이라는 프로그램을 잘 만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있을 텐데.
"그럼!"

- <짠>이 뉴스 예능, 시사 예능을 표방한다고 했다. 특별한 점이 있을까?
"잊힐 수 있는 의제들을 발굴한다는 게 가장 좋은 점이다. 지난주에 어느 건축업자가 외국인 노동자에게 밀린 급여 440만 원을 동전으로 바꿔준 일이 있었지 않나. 이 뉴스를 발전시키더라고. 이 친구들(제작진)이 은행을 돌아다니면서 100원짜리를 모아서 녹화할 때 펼쳐보았다. 440만 원을 무게로 따지니 120kg이더라. 아무리 외국인이고 한국말 못한다고 인간적으로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거니까."

- 얼마 전 <고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내 나름대로 저널리즘을 만들어가겠다"고 했다. TV조선에서 만들 수 있는 저널리즘은 무엇인가?
"내가 TV조선에 직원으로 간 것도 아니고, 앵커도 아니다. <짠>의 기획안이 마음에 들어서 간 건데, MBC 후배 중에서도 가지 말라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악플 같은 게 달리더라. '최일구 돈 앞에 굴복했네', '거기 왜 갔냐'라면서. 나도 종편 출범할 때 반대했다. 근데 이미 생겼고, 연말이 되면 종편도 출범한 지 만 5년이 된다. 하나의 미디어로 어쩔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했다. 더불어민주당 쪽 사람들도 이제 종편에 출연한다. (TV조선이) 보수 매체로 알려졌지만, 최일구식 저널리즘은 변하지 않을 거다."

- 그렇다면 그 '최일구식 저널리즘'이라는 게 뭔가?
"책에 나온다, 저널리즘의 어원. 매일 일어나는 일들을 대중에게 알려주는 것. 내 나름의, 최일구의 저널리즘이라는 건 이런 의미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고, 때로는 돌려서라도 따끔한 소리를 하는 것."

- 아까 잠깐 언급했지만, 돈 때문에 TV조선에 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받지 않는다. 회당 출연료 정도다. 돈 때문에 갔다는 걸 부인할 수 없지만, 돈을 목표로 간 거냐고 하면 동의할 수 없다. 인생 2모작을 시작한 마당에 어디론가 가야 할 게 아닌가. JTBC나 MBN도 다 똑같은 종편이다. 그걸 누가 가서 바꿨는가. 처음에 손석희 선배가 JTBC에 갔을 때도 말들이 많지 않았나. 왜 종편에 갔느냐고. 그런데 우려와는 달리 지금 JTBC 뉴스는 완전히 달라져 있다. 그런 식으로 해보고 싶은 거다."

- <짠>을 통해 TV조선의 이미지도 같이 바꾸고 싶다는 말인가?
"그렇다."

- 다른 종편 채널에서도 제안이 있었는데 TV조선으로 갔다는 소문도 있었다.
"제안 없었다. 3월 초에 한 종편 PD가 왔었는데 그 후로 진전이 없었다. 왔다가 그냥 갔다. (웃음) 저울질할 수 있었다면 행복했겠지."

- B급 앵커라는 말이 재밌다. 앵커에 A급도 있고 B급도 있나?
"아, 그거야 내 삶 자체가 B급이니까. MBC 있을 때도 A급 앵커가 아니었다. 엄기영, 정동영, 신경민 같은 사람들처럼 메인 앵커를 해야지. 나는 일주일에 2번 주말에 한다. 그게 B급이지, '찌끼다시(밑반찬)'! 그래서 B급 뉴스쇼나 B급이라는 호칭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 주 진행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B급 앵커라고 말하는 건가? 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실제 그렇지 뭐, 내가 A급 앵커인가? 주접떨고 이상한 멘트하고 그런 게 B급이지."

"요즘은 SBS랑 JTBC 뉴스 본다"

 TV조선 뉴스 예능쇼 <B급 뉴스쇼 짠>의 진행을 맡고 있는 최일구 전 MBC뉴스 앵커가 22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TV조선 뉴스 예능쇼 의 진행을 맡고 있는 최일구 전 MBC뉴스 앵커가 22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 최근 시사 풍자 코미디가 실종됐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 미디어의 수준, 권력 잡은 자들의 의식 수준을 말해주는 거다. 미국은 대통령도 풍자의 대상이 된다. 그래도 대통령이 꿈쩍 하나? 오히려 매년 연례행사에서 대통령 스스로 유머를 사용해 자신을 낮춘다. 한국은 아직 멀었지. <개그콘서트> 민상토론 같은 거 이야기하는 거 아닌가 지금? 그런 거 하나 제대로 못 하는 게 한국의 수준인 거다. 갈 길 멀었다."

- 최일구가 생각하는 시사 풍자 코미디는 뭔가?
"아, 왜 나한테 자꾸 개그를 물어봐? (웃음) 대통령을 풍자해야지. 못하잖아. 근데. 그거 했다간 여기저기서 태클 들어올 테니까. 진정한 시사 개그를 하고자 한다면, 대통령을 갖고 유머를 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진짜 시사 개그다."

- 재미에 대한 욕심이 큰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앵커 처음 시작했을 때 한 달 정도는 그냥 남이 써준 멘트 읽었다. 취재 기자가 자기가 취재한 기사 앞에 앵커멘트를 써준다. 그거 누가 알겠나, 취재한 놈만 알지. 그러다가 문득 '왜 남이 써준 멘트를 읽어야 하나, 내 나름대로 뉴스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갖고 놀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진 끼 같다, 끼. 이렇게 만지면 재밌겠다는 게 떠오르거든.

<썰렁개그집> <아재개그집> 같은 유머책 보고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웃는 게 취미생활 중 하나이다. 거기 경상도 할머니 유머 시리즈가 있다. 서울대공원에서 탈출한 말레이곰 소식을 전하는데, 그 유머 시리즈가 생각난 거다. '말레이'가 꼭 경상도 사투리 같더라. 그래서 고민하다가 여자 앵커랑 연습해서 내보냈다. '말레이곰 도망가지 말레이'라고."

- 엔딩 멘트를 몇 시간씩 고민했다는 말도 있던데?
"항상 고민했다. 중간에 내가 만든 앵커멘트를 할까 말까, 이 정도면 될까. 누구에게 데스크를 받을 상황도 아니니, 내가 저지르고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너무 막 나가는 게 아닌가? 아니면 너무 세게 이야기하는 거 아닌가? 고민하다 보니 몇 시간씩 걸린다.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뉴스가 들어가기도 하고. 프롬프터에 띄워놓은 멘트를 안 읽고 버리기도 했다."

- 요즘도 방송뉴스 보나?
"SBS 아니면 JTBC 본다. 손석희 선배가 JTBC 가면서 백화점 나열식 보도는 안 하겠다고 선언했다. 1분 30초짜리 짧은 뉴스들은 한정된 시간 안에 시청자들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포맷이다. JTBC는 이런 관행에서 탈피했다. 한 이슈로 30분씩 다룰 때도 있고. 뉴스를 다 보고 나면 '밥 잘 먹었네'라는 뿌듯함이 있다. 한 놈만 쥐어 패니까."

"중이 절 싫으면, 절을 뜯어고쳐야지"

 TV조선 뉴스 예능쇼 <B급 뉴스쇼 짠>의 진행을 맡고 있는 최일구 전 MBC뉴스 앵커가 22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TV조선 뉴스 예능쇼 의 진행을 맡고 있는 최일구 전 MBC뉴스 앵커가 22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정민


-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MBC를 떠난 지 3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 마음 변치 않나?
"그럼! 내가 선택한 일이다. 모든 일이 다 그렇다. 채무자가 일 년이면 빚 갚을 수 있다고 해서 보증 서고 인감도장 찍었다. 찍기 싫었지만 찍었단 말이지. 누가 선택한 건가? 내가 한 거다, 내가. 사표 낸 것도 내가 결정한 거다. 내가 왜 후회를 해야 하나? 안 되지. 자기를 부정하는 행위니까."

"정동 MBC 5층에 보도국이 있었다. 입사 동기 수습기자들이 회의실에 모였다. 보도국 부국장이 들어왔다. 대뜸 이랬다. '요즘의 언론 상황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중이 절 싫으면 누가 떠나야겠습니까? 절입니까? 중입니까?'" - <인생 뭐 있니?> 233쪽 중에서

- 최일구 전 앵커가 입사하자마자 들은 말이 언론 상황에 대한 말이었다. 공교롭게도 최일구 전 앵커가 MBC를 떠났을 때, 마침 보도부 부국장의 직함을 달고 있었다.
"1985년 12월의 일이다. 지금 <경향신문> 건물인데, 그때는 정동 MBC 5층에 보도국이 있었다. 회의실로 들어오래서 갔는데, 부국장이 있더라. 딱 오더니 '너희들 말이야 중이 절 싫으면 떠나야 한다'고 하더라. 한 마디로 '알아서 기어라'라는 이야기다. 5공 때니까. 정부가 기자증을 주던 말도 안 되는 세월이었다. 보도지침이 횡행할 때고. 그러니까 신입 기자들 불러다 놓고 선배가 저런 이야기를 한 거야. 아직도 그걸 기억하고 있다. 어떻게 선배가 돼서 저런 이야기를 할까.

오히려 좀 에둘러서 '언론 상황이 여러분이 기대하는 것과는 달리 5공 정권 밑에서 기어야 하는 측면도 있으니까, 갈등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소주 한잔 하면서 풀자'고 이야기를 해주면 좋지 않나. 그게 아니더라. '알아서 기어' 이런 투잖아."

- 에둘러서 이야기해도 결국 '절이 싫으면 떠나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게 아닌가.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거다. 똑같은 본질을 얘기해도 우회해서 표현했으면 상처받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MBC 파업할 때 부국장이었거든. 그 부국장 선배 생각이 나더라고."

- 지금 누군가 '중이 절 싫으면 누가 떠나야겠습니까? 절입니까? 중입니까?'라고 물어본다면 최일구는 뭐라고 대답할까?
"중이 절 싫다고 제 발로 떠나기보다는 남아서 절을 뜯어고칠 생각을 해야 한다. 나는 절이 싫어서 나온 게 아니라 있을 수가 없어서 제 발로 걸어 나온 거다. 1985년에 받은 질문에 대한 내 답은 '남아서 절을 뜯어고칠 생각을 해야 한다, 중들이'이다."

하지만 그를 비롯해 MBC의 후배들은 속속 MBC를 떠나고 있다. 그들의 퇴사 행렬은 파업이 마무리되고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MBC에 남은 이들은 과연 그 절을 바꿀 수 있을까. 또 다른 절에 잠시 몸을 의탁한 최일구 전 앵커는 그 절을 바꿀 수 있을까. 또 바꾼다면 어떤 모습으로? 토요일마다 방송되는 <짠>에서 새로이 시작한 그의 '인생 2모작'의 일부분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TV조선 뉴스 예능쇼 <B급 뉴스쇼 짠>의 진행을 맡고 있는 최일구 전 MBC뉴스 앵커가 22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TV조선 뉴스 예능쇼 의 진행을 맡고 있는 최일구 전 MBC뉴스 앵커가 22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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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배우 김명민은 왜 3가지를 강조했나

[inter:view] 요령 피우지 않는 배우 김명민, 본질을 찾아서

기사를 쓰다보면, 이름 앞에 '배우'라는 호칭을 달기 애매한 경우가 있다. 영화에 한두 번 출연했다고 다 배우는 아닐 것이다. 반면, 배우란 호칭 위에 힘껏 방점을 찍어도 모자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배우 김명민이 꼭 그랬다. 그는 대쪽같이 '본질'을 지키고, 본질 아닌 모든 껍데기는 멀리하려고 노력하는 연기자였다.지난 3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명민은 자신만의 연기 철학을 부단히 잡아나가는, 성실한 사람이란 인상을 주었다. 초심자처럼 노력하는 모습이 다소 의아해 보이기도 했다. 오는 16일 영화 <특별수사 : 사형수의 편지>(아래 <특별수사>) 개봉을 앞둔 그의 인터뷰를 아래에 옮긴다. 배우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천천히 읽으시길. 연기자는 연기에 집중하는 사람 김명민은 배우로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지를 매순간 상기하려 했다. 앞서 말했듯 '본질'을 따르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결과를 미리 생각하고 작품에 임한 적이 없다는 그는 "예전부터 돈을 따라가진 않겠다는 신념 하나는 지키고 있다"고 단단한 어투로 말했다. 김명민이 말하는 '연기자의 본질'은 명료했다. 외과의사는 수술에 집중해야 하고, 수술을 잘 해야 하는 것처럼 연기자는 연기에 집중하고 탁월한 연기를 선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성격이 좋고 안 좋고는 두 번째 문제"라고 덧붙였다. 배우로서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그가 스스로를 다잡고 있는 듯 느껴졌다. 평소 배역을 준비하는 과정에 대해 물었다. "실존인물이라면 역사책을 많이 보고, 허구의 인물이라면 전사와 후사를 써내려간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어 "(맡은 배역의) 직업에 대한 연구는 당연히 하는 것이고, 발음은 안 되면 안 되는 기본 덕목"이라며 그에 더해 행간의 서브텍스트를 찾아서 대본에 메모하는 습관은 젊어서 연극할 때부터 쭉 해온 것이라고 했다. 고양이 역할을 맡으면 고양이가 되고 최상의 연기를 위해 최대한 집중력을 발휘하는 그는 연기를 위해 몸을 혹사시키기로 유명(?)하다. 2009년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서 루게릭 환자 역할을 맡아 뼈만 앙상하게 남을 만큼 체중감량했던 것이 대중에 각인돼 있다. 김명민은 이에 대해 담담하게 "그건 제작사의 문제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보통 장소별로 촬영하는데 그 영화는 대본 순서대로 찍었고, 대본에 '몰라보게 살이 빠진, 뼈만 앙상하게 남은' 등의 순서로 쓰여 있었다는 것. 하지만 배우이기 전에 그도 인간인데, '인간 김명민'의 삶은 중요하지 않은 걸까. 이 물음에 그는 갑자기 대학시절 교수님의 이야기를 꺼냈다.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고 교수님이 말한 적 있다"며 연기의 기원을 언급했다. "연기자의 기원은 무당에 가깝다"며 "신과 소통하는 사람, 접신을 통해서 사람과 신을 연결하는 사람이 배우이므로 고양이 역을 맡으면 고양이가 될 순 없어도 최대한 그 근처까지는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부터 납득이 돼야 연기할 수 있다 스스로 납득이 돼야 연기에 임할 수 있는 그의 태도 역시 본질을 따르는 일처럼 보였다. 캐릭터가 관객에게 받아들여지게끔 만드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는, 일단 자신이 납득이 안 되면 한 마디의 대사도 내뱉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캐릭터가 납득이 안 되는 시나리오는 전체적인 흐름도 이상하기 때문에 아예 선택하지 않는다고. 그런데 딱 한 번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다. 이번 영화 <특별수사>에서도 관객에게나 자신에게나, 설득이 가능한 연기를 하기 위해 힘썼다. 앞에 있는 상대배우가 내 연기를 보고 공감을 못하면 그건 잘못된 연기라고 말하는 김명민은 함께 연기한 김영애 선생님의 '납득되는' 연기에 소름이 돋았던 경험을 들려줬다. 갑질의 횡포를 일삼는 사모 역의 김영애는, 같은 공기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공포감을 주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 공간에 있는 스태프들, 상대 배우들을 설득시키지 못하는 연기라면 어떻게 스크린을 뚫고 관객을 이해시킬 수 있냐"고 되물었다. 인터뷰의 막바지, 그의 연기 철학을 한 마디로 정리해달라고 부탁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 없다는 듯 즉각적으로 대답이 돌아왔다.

'재벌 전문 여배우', 그래도 미워할 수 없는 그녀

[inter:view] 여전히 철없다는 채정안, 그녀의 철든 이야기

<딴따라> 여민주는 정말 괜찮은 여자였다. 재벌 2세지만 부모의 부를 누리지도 않았고, 오랜 시간 짝사랑해온 친구 석호의 마음이 그린(혜리 분)에게 향해있는 것을 알고도 훼방을 놓거나 쏘아대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여민주를 연기한 배우 채정안(38)과 만나 든 생각도 그랬다. 정말 괜찮은 여자.데뷔 20년, "여전히 철 없다" 1996년 MBC <남자셋 여자셋>으로 데뷔한 채정안은 올해 꼭 데뷔 20년이 됐다. 유난히 어린 신인들이 많았던 <딴따라> 촬영장에서 그녀는 '원로급'에 속했다. 실제로 촬영장에서 한 스태프가 자신을 선생님이라 불러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고. 정말 질색했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나이가 든다고 다 철드는 거 아니잖아요"라면서 어린 친구들에게 어른이기보다 "그냥 누나가 되고 싶었"단다.본인은 "여전히 철들지 않았"다지만, 20년이라는 시간은 그녀를 어른으로, 배우로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통통 튀는 하이틴 스타로 데뷔한 그녀는 가수로 변신해 테크노 여전사가 됐다가, <커피프린스 1호점> 한유주 역으로 첫사랑의 대명사가 됐다. 남자 주인공의 첫사랑은 로맨스 드라마의 단골 소재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한유주를 최고의 첫사랑 캐릭터로 꼽는다.그래서일까? 최근 <개과천선> <용팔이> <딴따라> 등 연이어 재벌, '차도녀(차가운 도시 여자)'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지만 "급격하게 변해야겠다는 조바심보다는 서서히 변화를 주고 싶"단다.첫사랑의 아이콘, 재벌 전문 여배우... 그게 다 아니다 그녀가 보여주고 싶은 다른 매력이 뭔지 물었더니 "액션"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묘한 분노와 답답함 같은 게 있는데, 정의를 위해 이 한 몸 부서져라 투쟁하고 싶은 에너지가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며 허공에 주먹을 날리는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채정안은 쉴새 없이 하고 싶은 것들을 말했다. JTBC <마녀보감> 염정아 같은 소름 끼치는 악역도 해보고 싶고, 강아지를 워낙 좋아해 반려견과 함께할 수 있는 예능프로그램도 해보고 싶단다. <딴따라>에서 딴따라 밴드가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장면을 보면서 과거 '테크노 여전사' 시절이 그립기도 했다고.번뜩 "다시 앨범 낼 거예요. 싱글로라도." 다짐처럼 외치더니 금세 "저 혼자 생각이에요"라며 깔깔대고 웃었다. 이어 "돈 벌어서 제가 제작할 거예요, <유희열의 스케치북> 같은 프로에도 나가서 라이브도 해보고 싶어요, 저 그렇게 라이브 안 되는 가수 아니었어요"라고 유쾌하게 말했다.채정안의 '디마프' 멤버는? 채정안은 요즘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tvN <디어 마이 프렌즈>에 푹 빠져있다는 채정안. 김혜자, 고두심, 윤여정, 김영옥, 박원숙 등 까마득한 선배 여배우들의 노련한 연기를 보며 자신의 30년 뒤를 그려봤다고.오랜 시간, 한 길을 함께 걸어온 까마득한 선배들이 한 앵글에 담겨있는 모습을 만으로도 감동이 밀려들었다는 채정안. 먼 훗날 그녀가 <디어 마이 프렌즈>에 출연한다면 그 곁에 함께하고 싶은 이들은 누구인지 물었다.언젠가 후배들이 자신의 이름을 떠올렸을 때 든든한 위로가 되는 따뜻한 선배가 되고 싶다는 그녀. "갑자기 연기파 배우가 돼서 '네게 연기를 알려주겠어!' 이런 건 아니에요"라고 손사래를 치더니 "한 길을 꾸준히 가는 멋있는 사람 멋있잖아요, 그런 선배, 힘들 때 술 한잔 사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내 편인 것 같은 선배가 되고 싶어요"라고 진지하게 소박한 바람을 이야기했다.한 시간. 그녀는 시종일관 호탕했고 유쾌했다. "나이 먹는다고 다 어른 되는 건 아니더라"며 내내 자신의 여전한 철없음을 어필하던 채정안. 하지만 허투루 흐르는 시간은 없는 법. 20년간 차곡차곡 쌓여온 시간은 호탕한 웃음과 유쾌한 말투로도 감춰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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