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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망친 딸을 울린 노래

[김혜원의 문득 이 노래] 황규영의 <나는 문제없어>

22.11.23 14:27최종업데이트22.11.23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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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한국 대중가요를 선곡해 들려주는 라디오 음악방송 작가로 일했습니다. 지금도 음악은 잠든 서정성을 깨워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날에 맞춤한 음악과 사연을 통해 하루치의 서정을 깨워드리고 싶습니다.[편집자말]

▲ '수능대박! 사랑한다! 응원한다!'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하루 앞둔 2022년 11월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 수험생을 응원하는 메시지가 걸려 있다. ⓒ 연합뉴스

 
매년 수능시험이 끝나고 나면 어떤 이들에겐 인생엔 오로지 두 가지 길밖에 없는 것처럼 여겨지곤 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경중(輕重)의 차이만 있을 뿐, 어김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성공 혹은 실패. 이 단호하기 그지없는 갈림길 앞에 서서 수험생은 물론이고 그 가족들까지 전전긍긍 또는 갈팡질팡 어디로 가야 할지 머뭇거리기 마련이다. 대학입시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게 하는 잣대로 쓰이는 수능시험은 한 가지 관점으로만 보면 이렇게 가혹한 시험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이 하루의 평가로 인해 세상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험을 맛보기 때문일 테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세상이 여기서 끝을 맺을 것만 같은 시간도 지나와보면 그저 삶의 대지 여기저기에 솟아 있는 많고 많은 산들 중 하나의 넘어야 했을 산이었을 뿐,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뒤흔들지는 못 했다는 걸 우린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잠시 머뭇거리고 있는 이 순간에도 어떤 노래는 주춤거리고 있을 시간에, 쓸데없는 고민에 빠져 있을 시간에 '나만의 길'을 찾아 걸어보라 얘기해준다.

이 세상 위엔 내가 있고
나를 사랑해주는
나의 사람들과
나의 길을 가고 싶어
많이 힘들고 외로웠지
그건 연습일 뿐야
넘어지진 않을 거야
나는 문제없어
짧은 하루에 몇 번씩 같은 자리를 맴돌다
때론 어려운 시련에 나의 갈 곳을 잃어 가고
내가 꿈꾸던 사랑도 언제나 같은 자리야
시계추처럼 흔들린 나의 어릴 적 소망들도
그렇게 돌아보지 마
여기서 끝낼 수는 없잖아
나에겐 가고 싶은 길이 있어
너무 힘들고 외로워도 그건 연습일 뿐야
넘어지진 않을 거야
나는 문제없어

- 황규영 '나는 문제없어' 가사


오직 이 노래만이 알려진 원 히트송 가수 황규영의 '나는 문제없어'는, 수능일이 끝나고 나면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신청곡으로 많이 들어오곤 하던 노래다. 수능일 전에도 수험생들에게 힘을 실어주고자 이런저런 희망적인 가사를 담은 노래를 띄워 달라는 청취자들이 많지만, 유독 이 노래만큼은 수능일이 끝나고 시험성적이 발표되기 전까지 사연과 함께 신청되곤 했었다. 그 사연들은 희한하게도 많이들 닮아 있었는데, 요약하자면 이런 문장으로 정확히 귀결될 만큼.

"우리 아이가 이번 수능을 망친 거 같아요. 아이에게 괜찮다고, 다음 기회도 있다고 말해줬지만 스스로에게 실망이 컸던지 매일 울기만 하네요. 힘을 줄 수 있는 노래 신청해 봅니다."

사실 시험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어느 정도는 범위 내에서 점수가 오를 수도 있고, 내릴 수도 있는데, 유독 '수능시험' 만큼은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는 관념이 지배적이라 조금이라도 기대에 못 미쳤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마치 더 이상의 기회는 없는 것처럼, 때로는 인생이 끝나기라도 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부끄럽지만 나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음을 고백한다.

수능 이후 '두문불출'했던 딸과 나
 

▲ 수능 뒤 첫 주말, 논술시험 마친 수험생 19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인문사회캠퍼스에서 2023학년도 대입 수시전형 논술시험에 응시한 수험생들이 시험 종료 뒤 퇴실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고등학교 3년 내내 한 가지 목표만 보고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달려온 딸아이에게 '급 브레이크'를 건 것도 바로 수능시험이었다. 수능 바로 직전 모의고사 성적이 너무도 좋았기에 학교의 기대를 한껏 받고 있었음은 물론이고, 본인 스스로도 수능에 대한 기대치가 덩달아 높아져 있었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뜻대로만 흘러가던가. 긴장한 탓인지 밤새 장이 꼬인 데다, 잠을 한 숨도 자지 못한 채 치른 시험성적이 좋을 리 만무했다. 수능 당일까지 컨디션을 잘 유지해야 한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몸과 정신의 엇갈린 반응을 제어할 힘이 안타깝게도 그때의 우리에겐 없었다.

시험 이후 몇 주를 딸도 나도 '두문불출'했던 거 같다. 세상으로 향한 문이 닫힌 것처럼, 다시는 희망이 오지도 않을 것처럼, 넋을 놓은 채 말 그대로 먹지도 자지도 않았던 시간이었다. 아이의 시험 결과를 묻는 주변인들에게 그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던 날들 그 한가운데서 이 노래, '나는 문제없어'가 신청된 어느 날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 이전에도 매년 수능 이후엔 늘 신청되던 곡이었는데, 이게 나의 사연과 맞물려 가슴으로 훅, 치고 들어오니 가사 한 줄 한 줄이 그렇게 절절할 수가 없었다. '나는 문제없어'라는 단 한 문장이 주는 '희망의 알고리즘'은 감고 있던 마음의 눈을 일시에 열게 만들었다.

'넘어지고 힘들어도 그건 연습일 뿐이라고... 다음번엔 넘어지지 않을 거라고' 어디선가 다정한 목소리가 끝도 없이 메아리로 귓가에 와닿았다. '그래, 스러지는 건 다음에 더 잘 일어나기 위한 연습일 거야. 그러니 더 이상 눈물바람은 하지 말자'. 그날 저녁 아이에게도 결연한 눈빛과 함께 이 노래를 들려주었다. 말없이 노래를 듣고 있던 아이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나왔지만 그 눈물은 어제의 눈물과는 다른 빛을 지니고 있었음이다. 한없이 밝은 멜로디에 실린 더없이 희망에 찬 가사는 내내 들어왔던 백 마디의 위로보다 더 큰 위안을 가져다주었으니까.

인생이란 녀석, 어찌 보면 굉장히 얄밉긴 하지만 '최선'이 안 될 때를 대비해 몇 가지의 '차선'이라는 길을 열어두고 있다. 눈만 크게 뜨면 보이는 그 길들을 '실패'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때때로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너무나 중요한 기로에서 만나는 시험이지만 이 시험 하나 때문에 인생이 엉망으로 망가진다는 생각은 하지 말자. 시련의 터널을 뚫고 나오면서 '나는 문제없어'를 주문처럼 외우다 보면 분명 또 다른 길을 만나게 될 테니. 설혹 그 길이 원래 가고자 했던 길이 아니면 어떤가, 길은 결국 어디에선가 이어져 만나게 되므로 우린 그저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기만 하면 될 일이다.
덧붙이는 글 기자의 개인브런치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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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음악방송작가로 오랜시간 글을 썼습니다.방송글을 모아 독립출간 했고, 아포리즘과 시, 음악, 영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에 눈과 귀를 활짝 열어두는 것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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