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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헤드가 부른, 영원한 디스토피아의 노래

[비바 라 비다] 영원한 대중음악의 명반, 라디오헤드의 < Ok Computer >

20.09.18 06:42최종업데이트20.09.18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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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와 HBO의 합작 TV 시리즈 < 이어즈 & 이어즈 > ⓒ 왓챠


임기 말의 도널드 트럼프가 중국의 인공섬을 핵으로 폭격하고, 수많은 목숨이 죽는다.

영국 BBC와 미국 HBO가 합작한 TV 시리즈 <이어즈 & 이어즈>는 초장부터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이 디스토피아 드라마의 배경은 2019년부터 2034년까지, 현재와 근 미래에 걸쳐져 있다. 기후 변화, 핵, 난민, 소수자 혐오, 브렉시트, 우경화, 가짜 뉴스, 빅 브라더에 대한 공포 등 현대 사회가 직면한 이슈들을 엮어낸 후 돌파한 작품이었다.
 
<이어즈 & 이어즈>는 거시적인 정치의 영역이 개인과 가족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혐오와 배제를 활용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극중 사성당의 당수 비비안 룩(엠마 톰슨)은 "I don't give a fuck(나는 신경 x도 안 써요)"라는 발언을 슬로건으로 활용한다. 이것은 도널드 트럼프의 "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와 질적으로 같다 할 것이다.
 
이처럼 현대 사회를 비관한 작품은 영화나 TV 시리즈, 소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음악계로 눈을 돌려 보면, 얼터너티브 록의 '만신전'에 오른 밴드 라디오헤드(Radiohead)의 명작 < Ok Computer >(1997)가 있다.

< The Bends >로 큰 성공을 거둔 라디오헤드는 무엇이든지 만들 수 있는 권한을 허락받았고, 나이젤 고드리치를 프로듀서로 불러 이 작품을 완성했다. 나는 친구들에게 이 음악을 '죽기 전에 내 장례식에서 틀어주었으면 하는 앨범'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만큼 이 앨범은 놀라운 순간들로 가득하다. < Ok Computer >는 세기말의 정서를 머금은 앨범이다. 정보화와 세계화가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파괴로 몰아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깔려 있다.
 
실험적인 사운드와 난해한 가사 때문일까, 당시 레이블에서는 이 앨범을 듣고 '상업적 자살 행위'라고 경고했다. 오아시스와 블러로 상징되던 브릿팝 시대가 지나가던 1997년, 이 앨범은 누구와도 같지 않았다. 레이블의 우려와 달리 이 앨범은 역사상 최고의 앨범 중 하나가 되었고, 미국 의회도서관은 이 앨범을 '국가 녹음 기록물'로 선정했다.

'Ok Computer'는 록의 표피를 취하고 있었지만 재즈, 일렉트로닉, 클래식, 엔니오 모리코네의 영화 음악 등 수많은 요소들을 스폰지처럼 흡수했다. 해체주의를 표방하는 라디오헤드표 혁신의 시발점이었다. 소울 뮤지션 맥스웰은 이 앨범을 '기타의 천국'이라고 표현했다.

두려움이 만든 명반 
 

밴드 라디오헤드(Radiohead)의 명반 < Ok Computer > ⓒ 강앤뮤직

 
이 앨범의 문을 여는 'Airbag'은 라디오헤드의 혁신을 잘 보여준다. 드러머 필 셀웨이는 디제이 쉐도우를 연상시키는 드럼 비트를 샘플링해서 반복한다. 기타리스트 조니 그린우드는 멜로트론, 옹드 마르트노 같은 악기들을 더했다. 'Airbag'에서 리더 톰 요크는 여자친구랑 같이 교통 사고를 당했던 날을 노래한다. 그는 살아남았음에도 공포를 느꼈다. 자동차를 곧 기계 문명 그 자체에 대입했고, 언제든 인간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Paranoid Android'는 라디오헤드를 상징하는 곡으로 자리잡았다. 비틀즈의 'Happiness Is A Warm Gun', 퀸의 'Bohemian Rhapsody'처럼 여러 파트가 하나의 곡으로 합쳐져 있는 복잡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어쿠스틱 기타로 시작되면서 환각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다가, 조니 그린우드의 기타 솔로가 파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다시 서늘하고 서글픈 코러스가 깔린다.
 
'Ambition makes you look very ugly Kicking squealing Gucci little piggy'
욕심이 너를 얼마나 추악하게 하는지 몰라. 걷어차면 꿀꿀대는 구찌 돼지 새끼들...

 
톰 요크는 < Ok Computer >를 준비하면서 노엄 촘스키 MIT 교수의 책을 많이 읽었다고 알려진다. 그 때문일까, 톰 요크는 'Paranoid Android'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차가운 시선을 견지한다. 그래서 톰 요크는 여피족을 '허세에 찌든 집단'이라며 혐오했지만, 신은 끝내 그들을 사랑할 것이라 체념한다.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라고 울부짖는 'Karma Police'도 빼놓을 수 없는 명곡이다. 라디오헤드 특유의 우울한 서정성이 빛나는 곡 중 하나다. 이 곡이 끝나면, 매킨토시 컴퓨터로 만들어낸 기계 목소리가 섬뜩한 메시지를 읊는다.
 
'Fitter healthier and more productive a pig in a cage on antibiotics
더욱 건강하게, 더 생산적으로. 항생제 투성이의 우리 속 돼지처럼.
- 'Fitter Happier' 중


이 세상은 우리가 만들었다

라디오헤드는 한 앨범에 시대가 주는 불안, 개인의 고독, 죽음에 대한 공포를 녹여 놓았다. 라디오헤드가 노래한 디스토피아는 '전쟁으로 모든 게 사라진 폐허'가 아니라. '소외된 인간들의 현대 도시'다. 첫곡부터 마지막곡 'The Tourist'에 이르기까지, 라디오헤드는 개인이 암담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어즈 & 이어즈>에 등장하는 가족의 할머니 뮤리얼 디컨(앤 리드)은 '우리의 책임이야. 우리가 만든 세상이 바로 이거야. 모두 축하한다!'라며 일침을 가한다. 시스템이 인간성을 파괴하는 동안, 인간은 그에 맞서기 위해서 무엇을 했냐는 것이 뮤리얼의 논리다. 1997년의 명반인 < Ok Computer >를 2020년에 들으면서 이 대사가 겹쳐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앨범을 발표할 당시에 라디오헤드 멤버들은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였지만, 이 앨범과 < Kid A >를 거치면서 록 음악의 권력, 전설로 거듭났다. 그것보다 더 이야기되어야 할 사실은, < Ok Computer >는 21세기의 대중음악과 21세기의 풍경을 동시에 예언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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