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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체조팀 의사에 선고된 '175년 형'의 전말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

20.06.30 09:04최종업데이트20.06.30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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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 포스터. ⓒ ??넷플릭스

 
지난 2018년 1월, 미국에서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중요한 판결이 행해졌다. 정골의학 전문가이자 미시간주립대 교수였던 전 미국 국가대표 체조팀 팀닥터 래리 내서에게 최대 175년 형이 선고된 것이다. 그는 이미 아동포르노 소지죄로 6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는데, 지난 30여 년간 치료를 빌미로 160여 명이 넘는 미성년 여성과 성인 여성을 성추생한 혐의가 더해졌다. 실제 피해자는 500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 사건에서 눈여겨 봐야 할 건 수치뿐만 아니라 이 판결이 선고되기까지의 과정이다. 2016년 9월 이 판결의 시작점이 된다고 할 수 있는 첫 고발, 그리고 2017년 시작되어 전 세계적으로 퍼진 미투 운동, 그리고 2018년 1월 판결이 나오기까지의 맥락도 중요하지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권력'이라는 단어가 이 사건을 관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는 2018년 1월의 래리 내서에 대한 판결을 통해 전미체조협회의 사악한 이면을 조명한다. 작품의 제목은 재판 당시 피해를 증언한 '생존자' 카일 스티븐스가 남긴 "어린 여자아이들은 영원히 어리지 않다. 강력한 여성으로 변해 당신의 세계를 박살내려 돌아온다"는 말에서 가져왔다. 

안식처에서 행해진 악마의 행위

'USA 투데이 네트워크' 산하 <인디애나폴리스 스타>지(아래 <인디 스타>)의 2016년 보도가 사건의 발단이 됐다(전미체조협회는 인디애나폴리스 스포츠 센터에 위치해 있었다). <인디 스타>는 당시 전미체조협회가 협회 내 코치들의 성 학대 사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미체조협회는 성 학대를 당한 아이들이 아닌, 성 학대를 행한 코치들을 보호하고자 한 것이다.

해당 기사가 나가고, 전 미국 체조선수 레이첼 덴홀랜더는 코치가 아니라 의사에게 성 학대를 당했다고 제보했다. 이후 전 미국 국가대표 체조팀 팀닥터 '래리 낸서'라는 이름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덴홀랜더는 래리 낸서를 고발하기에 이른다. 덴홀랜더의 제보와 고발이 래리 낸서 단죄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덴홀랜더에 따르면, 그는 물리적 치료뿐만 아니라 심적으로도 선수들을 위로하며 접근했다. 믿을 만한 어른이라는 탈을 쓴 채 수십 년 동안 어린 선수들에게 악마같은 짓을 일삼아 왔던 것이다. 지친 심신을 치료받고 위로받을 유일한 안식처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행위에 선수들은 제대로 대항할 수 없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 관련 장면. ⓒ 넷플릭스

 
'잔인함'에 기댄 훈련

여기서 잠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학대와 다름없는 고통스러운 훈련의 양상이다. 잠깐 과거의 어느 때로 돌아가보자.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10점 만점을 기록하며 금메달을 따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전 루마이아 체조선수 나디아 코마네치를 기억하는가. 그의 우승 뒤는 벨라와 마르타 카롤리 부부 코치가 있었다. 

이후 카롤리 부부 코치는 미국으로 망명하여 미국 체조팀을 맡는다. 그들은 학대와 구분되지 않는 잔혹한 코치법으로 선수들을 훈련시키고 선수들은 좋은 성적을 거둔다. 하지만 선수들의 좋은 성적에 기댄 이들의 '잔혹함'은 쉽게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다.   

2010년대 미국 체조팀 수장은 여전히 마르타 카롤리였으며, 어린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가혹한 코치법으로 미국 체조를 세계 최고로 이끌었다. 그리고 이를 알면서도 묵인한 전미체조협회의 스티브 페니 회장이 있었고, 그의 보호 아래 아이들에게 성 학대를 일삼는 팀닥터 래리 낸서가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미국 체조의 '성공'만을 목표로 했다. 아이들은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성공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중 체조선수 '매기 니콜스'이 있다. 그녀는 2015년 6월 부모님을 통해 래리 낸서에 의한 성 학대 사실을 신고했다. 하지만 전미체조협회는 물론 FBI에서도 아무런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고 한다.

출중한 실력을 자랑하는 매기 니콜스는 5명이 정식 멤버로 뽑히고 3명이 예비로 뽑히는 2016년 리우 올림픽 대표 선발 대회에서 6위를 하고도 예비에 뽑히지 못했다. 주지했듯 전미체조협회는 마르타 카롤리와 스티브 페니가 좌지우지했는데, 팀닥터를 고발한 매기 니콜스를 아니꼽게 본 게 아닌가 하는 심증만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고통과 좌절을 딛고, 오클라호마 대학으로 적을 옮겨 NCAA(전미대학체육협회) 챔피언이 되는 기염을 토했다. 

역사적 판결의 결과

시기상으로, 래리 낸서에 대한 판결은 '미투 운동'의 영향권에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애초에 미투 운동이 없었으면 이 판결 자체가 없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미국 체조와 전미체조협회, 팀닥터 래리 낸서까지 아우르는 이 거대 스캔들을 비교적 올바르게 처리할 수 있었던 건 올바름을 추구하는 많은 이들의 '연대' 덕분이었다. 엄청난 심적 압박에도 용감하게 나선 전 체조선수들, 틀린 걸 바로잡는 것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한 신문사와 기자들, 그리고 변호사와 판사와 선수들의 부모들까지 한마음 한뜻으로 뭉쳤다.

그럼에도 아쉽다. 이 거대한 악의 소굴에서 '래리 낸서'라는 팀닥터 하나만 쓰러뜨렸기 때문이다. 스티브 페니 회장을 체포하며 소기의 목표를 실현했지만, 비단 전미체조협회뿐이겠는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정녕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조직에 얼마나 많은 악마가 존재해왔을까. 다시 한번 이 말을 전하며 끝맺고자 한다. 

"어린 여자아이들은 영원히 어리지 않다. 강력한 여성으로 변해 당신의 세계를 박살내려 돌아온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singenv.tistory.com)와 <프리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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