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라노> 중 한 장면
연분홍치마
하지만, 이 이야기의 대부분은 '여성'이라는 범위 안에 묶여 있습니다. 그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불협화음을 넣고 있는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그는 유복하게 자랐습니다. 그리고 태평양 전쟁 때 징집을 피하기 위해 일본인 장교와 결혼했지만, 2년 만에 이혼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의 아버지가 중일전쟁 발발 이후 국민총력조선연맹에 참가해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린 노창성씨라는 것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또한 이혼 뒤 1947년에는 우리나라 여성으로는 두 번째로 미국 유학길에 오릅니다. 그는 자신의 배경 덕분에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까지 한국사에서 가장 아픈 시기를 피해가지요.
영화는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노라노를 설명합니다. 하지만, 그를 말로써 복원하는 이들은 작가·전직 교수·디자이너·연예인 등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소위 '상류층'뿐입니다.'우리나라 대통령도 이제 여자분이신데 뭐가 그렇게 심각해 왜 안돼(걸스데이-여자대통령 중)'라는 노랫말이 나올 만큼 여성이 당당히 마케팅 요소로 쓰이는 시대라 하더라도, 영화는 5·16 군사정변 당시 그의 삶을 '남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담배를 피웠다'라는 말로 설명하는 게 전부입니다. 영화 전반적으로 '노라노는 여성이다'라는 말만 강조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 노라노를 알기 전에 '여성' 노라노만 알게 됩니다. 게다가 영화 속에서 나오는 각종 사료와 사회 상류층들의 증언들은 그를 '명망 있는 여성 디자이너'로만 묘사합니다.
누군가의 증언과 사료들 그리고 그를 한데 엮어 편집한 기록물은 대상의 모든 면을 보여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관객들이 잘 알지 못하고, 감독 역시 영화 서두에 던졌던 공통된 질문 '노라노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제대로 내려줘야 노라노를 복원하는 데 그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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