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2021년 여름, <블랙위도우>의 흥행보다 더 의미 있는 영화는 <랑종>일 것이다. 마블이야 언제나 성공했으니 코로나19를 뚫고 얼마나 갈지 궁금한 정도다. 그러나 흥행하기 힘든 공포장르가, 국내가 아닌 태국 감독의 영화가 올 여름 극장가의 흥행 2위를 달리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

많은 흥행 요인이 있겠지만 그중에서 이 영화가 페이크 다큐멘터리 방식을 택하고 있단 점이 돋보인다. <랑종>은 인간이란 범위에서 초자연적인 존재를 탐구하는 주제 의식을 갖는다. 사람이 쥔 카메라는 결코 물리적인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진실은 절대 밝혀지지 않는다. 주인공에게 가해진 시련과 저주는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운명이 되고 (귀)신과 대면하는 순간 인간은 '왜?'라는 질문조차 할 수 없는 무기력에 빠진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이 충격적인 연출은 아니었지만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랑종>을 옹호하기엔 분명히 비윤리적인 순간들이 포착된다. 이를테면 카메라가 신이 아닌 인간을 담아내는 순간, 영화의 주제는 신과 자연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끈질긴 시도에서 약자를 겁탈하는 관음증으로 추락한다. 이 역시 제작자 나홍진과 감독 반종 피산다나쿤의 노림수였을까?

답을 위해 우선 <랑종>이라는 영화를 관객이 보는 <랑종>과 영화 속 영화인 <랑종의 후예>로 나눠볼 필요가 있다. <랑종의 후예>는 다큐멘터리로, '바얀' 신을 모시는 랑종(무당) '님'의 삶을 통해 신과 인간의 관계를 질문한다. 그러던 중 '님'의 조카 '밍 아싼티아'가 신내림 징조를 보이면서 제작진은 '님'뿐만 아니라 '밍' 역시 카메라에 담아 신내림 과정을 지켜보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밍'은 신내림이 아니라 저주로 비롯된 빙의였다. '밍'의 빙의를 치유하기 위해 이모인 랑종 '님'은 구마 의식을 준비했으나 결국 실패한다. 여기까지가 다큐멘터리 <랑종의 후예>의 내용이다. 그리고 학살의 현장에서 필름을 주워 편집하고 에필로그를 추가한 영화가 <랑종>이 된다.
 
랑종 스틸컷 빙의 된 '밍'

▲ 랑종 스틸컷 빙의 된 '밍' ⓒ (주)쇼박스

 
어느 쪽이든 카메라의 윤리적 문제에서 자유로울 순 없을 것 같다. 딱 잘라 두 영화의 문제는 '밍'을 카메라에 가두면서 발생한다. 우선 생리혈을 쏟아내는 장면을 굳이 훔쳐보면서까지 담아낼 필요가 있었을까? 신내림이라 믿고 있던 시점에서 시작한 '밍'의 생리혈은 모계의 여성만이 랑종이 된다는 특수성을 상징할 수 있다. 그러나 굳이 화장실까지 따라가 문틈 사이로 피를 닦는 '밍'을 찍지 않아도 설명되는 장면이다.

또한 '밍'의 성교 장면도 다큐멘터리답게 모자이크 처리를 했어야 했다. 감독은 CCTV 화면으로 처리된 성관계 장면을 관객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무엇을 생각하게 만든 것일까? 이후 신내림이 아닌 빙의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밍'은 완전히 인간이 아닌 존재로 재탄생하게 되는데 이후 '밍'은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들을 행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다큐라는 이름으로 그대로 보여준다.

<랑종의 후예> 제작진은 다큐라는 이름으로 방관자 입장에서 모든 것을 찍는다. 그것은 다큐가 객관적이라는 전제의 맹종이다. 가족들이 '밍'을 사람이라 믿고 그가 회복되길 바라는 마지막 순간까지 카메라는 '밍'을 사람이 아닌 '빙의 된 무엇'으로 보았다. '밍'을 사람이라 생각했다면 관음의 대상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줬어야 했다.

영화가 불편한 점은 무서운 장면도, 잔인한 장면도 아니다. 공포라는 장르가 '밍'이라는 한 여성이 기어코 인간성을 상실할 정도로 고통을 받아 인간이 아닌 존재로 탈바꿈 되어야만 완성 된다는 점과 그것을 하필 다큐멘터리 카메라로 관음한다는 점이다. "다큐멘터리는 객관적이다"라는 허구에 숨어 타락하는 '밍'을 훔쳐보는 행위는 '밍'의 개인적인 것까지 대상화시킨다.

물론 앞서 "이 역시 제작자 나홍진과 감독 반종 피산다나쿤의 노림수였을까?"라고 썼던 것처럼 카메라의 윤리적 문제는 계산된 연출일 수 있다. 후반부 <랑종의 후예>의 VJ가 죽는 장면에서 '밍'은 그의 카메라를 빼앗아 그 장면을 찍는다. 그것은 형식적으로 '밍'을 괴롭혔던 가해자들에게 복수하는 결말이 된다. 그래서 그 모든 불편함 역시 계산된 것이라는 여지를 둘 수 있다.

그런데 에필로그에 신의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있음을 고백하는 '님'의 인터뷰가 추가되면서 영화는 <랑종의 후예>가 아닌 파운드 푸티지 설정의 <랑종>이라는 영화가 된다. 그렇다면 <랑종의 후예>가 <랑종>이 되는 과정에서 '밍'을 담는 카메라의 문제를 한 번 더 편집할 수 있었던 순간이 있다. 놓쳤던 것인지 역시 의도했던 건지, '밍'은 인간으로서 권리를 박탈당한 대상으로 전시되어 관객들 앞에 놓였고 공포를 위해 끊임없이 치부를 드러내고 있을 것이다. 
 
랑종 스틸컷 <랑종>의 감독 반종 피산다나쿤

▲ 랑종 스틸컷 <랑종>의 감독 반종 피산다나쿤 ⓒ (주)쇼박스

영화 랑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