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재와 김의성, 정진영, 감우성, 이상윤, 김태희, 이하늬, 옥자연 등은 서울대 출신 배우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연기와 학력이 큰 연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중들은 이들의 고학력에 새삼 한 번 더 눈이 가는 게 사실이다. 할리우드 배우들 중에서도 미국 최고 명문 하버드 대학교 출신들이 적지 않은데 그중에도 맷 데이먼은 하버드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졸업을 눈앞에 두고 연기를 위해 자퇴를 선택한 배우로 유명하다.

지천명의 나이가 지난 지금이야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지성파 배우 중 한 명이 됐지만 맷 데이먼은 유망주 시절이었던 데뷔 초기 주변으로부터 '과보호'를 받는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다. 출세작 <굿 윌 헌팅>에서는 수학천재지만 아직은 보호가 필요한 외롭고 어린 청년 윌 헌팅을 연기했고 1998년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는 전쟁터에서 형제를 모두 잃고 자신도 행방 불명된 제임스 라이언 역을 맡았다.

맷 데이먼은 2001년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오션스 일레븐>에서도 리더가 되고 싶지만 대니(조지 클루니 분)와 러스티(브래드 피트 분)에게 언제나 막내 취급을 당하는 라이너스를 연기했다. 이처럼 언제나 '위태로운 막내' 이미지가 강했던 맷 데이먼은 2002년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원톱 주인공'으로 인정 받기 시작했다. 맷 데이먼의 대표작이 된 '본 트릴로지'의 시작을 알렸던 더그 라이먼 감독의 <본 아이덴티티>였다. 
 
 <본 아이덴티티>는 6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 2억 달러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본 아이덴티티>는 6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 2억 달러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 UIP 코리아

 
관객들에게 사랑 받은 3부작 영화들

3개의 작품으로 구성된 시리즈를 3부작, 영어로는 트릴로지라고 한다. 과거에는 1편의 흥행에 힘입어 속편을 만들고 속편에서 끝내기가 아쉬워 3편까지 영화를 만든 후 '3부작'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는 진정한 의미의 '트릴로지'라고 부르기 어렵다. 물론 3부작으로 기획됐던 시리즈 중에서도 1편 또는 2편의 흥행실패로 인해 3편의 제작이 무산되면서 트릴로지가 완성되지 못한 경우도 수두룩하다.

트릴로지의 시작을 알린 영화는 역시 조지 루카스 감독의 <스타워즈 에피소드 4, 5 ,6>이었다. 조지 루카스 감독은 <에피소드4: 새로운 희망>의 흥행으로 <에피소드5: 제국의 역습>을 제작했는데 <제국의 역습>이 실패하면 <에피소드6: 제다이의 귀환>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어 부담이 매우 컸다고 한다. 하지만 <제국의 역습>은 5억 38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고 '스타워즈의 전설'이 이어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2000년대 들어 '트릴로지'라는 개념이 관객들에게 익숙해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바로 <반지의 제왕> 3부작을 만든 피터 잭슨 감독이었다. 피터 잭슨 감독은 15개월 동안 <반지의 제왕> 세 편을 동시에 촬영한 후 2001년부터 1년에 한 편씩 공개했다. <반지의 제왕> 3부작은 세 편 합쳐 29억 17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고 이에 자신감을 얻은 피터 잭슨 감독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호빗> 3부작을 선보였다.

일부 영화팬들에겐 마블의 <스파이더맨> 3부작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트릴로지 역시 명작으로 꼽히는 3부작 중 하나다. 당초 <스파이더맨>은 6편까지 제작될 예정이었고 2011년 개봉을 목표로 4편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샘 레이미 감독이 제작사의 불화로 하차했다. 이어 피터 파커 역의 토비 맥과이어까지 시리즈에서 빠지면서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은 결국 3부작으로 마무리됐다.

한국영화 중에는 <장군의 아들>과 <투캅스> <공공의 적> <두사부일체> <조폭마누라> 등이 3편까지 제작됐지만 이 영화들은 3부작으로 기획된 영화라고 보긴 힘들다. 따라서 한국영화 중 확실한 3부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작품은 역시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이다. 2014년 명량해전을 보여준 이순신 3부작은 2022년에 개봉한 프리퀄 <한산: 용의 출현>에 이어 오는 20일 개봉하는 시퀄 <노량: 죽음의 바다>로 3부작의 막을 내릴 예정이다.

잘 만든 3부작 첩보영화의 대표 시리즈
 
 맷 데이먼은 <본> 시리즈를 기점으로 여러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 할리우드 대표배우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맷 데이먼은 <본> 시리즈를 기점으로 여러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 할리우드 대표배우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 UIP 코리아

 
<본 아이덴티티>는 고 로버트 러들럼의 소설 제이슨 본 시리즈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기억을 잃은 한 남자가 자신의 신원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그린 첩보액션영화다. 맷 데이먼은 1980년대 후반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여러 영화에서 서브 주인공 또는 공동주연을 맡아왔다. <본 아이덴티티>는 맷 데이먼이 사실상 영화에서 처음으로 단독주연을 맡은 작품으로 맷 데이먼의 팬들에게도 의미가 남다른 영화로 꼽힌다. 

< 007 >과 <미션 임파서블>로 대표되는 첩보액션영화들은 시작부터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메인테마와 오프닝 영상이 대단히 유명하다. 하지만 <본 아이덴티티>에서는 어부들이 바다에서 제이슨 본(맷 데이먼 분)을 건져 내면서 무미건조하게 타이틀 화면이 등장한다(화려한 오프닝 영상은커녕 배우와 감독을 소개하는 자막조차 없다). 대신 <본> 시리즈에서는 영화가 끝날 때 멋진 메인테마 음악이 흘러 나오면서 관객들의 가슴을 웅장하게 한다. 

액션 장면 역시 마찬가지. <본 아이덴티티>는 다른 첩보액션영화들은 말할 것도 없고 <본 슈프리머시>와 <본 얼티네이텀> 등 다른 <본> 시리즈와 비교해도 액션 장면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하지만 <본 아이덴티티>에서도 정적인 영화의 분위기 속에서 충분히 '정적인 액션쾌감'을 즐길 수 있다. 특히 영화 중반 파리에서의 자동차 추격 장면은 마이클 베이 감독의 영화나 <분노의 질주> 시리즈와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

영화에서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손으로 그립을 잡고 찍거나 휴대용 카메라를 손으로 들고 찍는 촬영기법을 '핸드헬드'라고 한다. 흔히 액션장면에서 현실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핸드헬드 촬영이 자주 쓰이는데 <본> 시리즈는 핸드헬드 촬영을 대중화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한 작품이다. 물론 핸드헬드 촬영이 본격적으로 주목 받기 시작한 작품은 <본 슈프리머시>였지만 <본 아이덴티티>에서도 사실적인 핸드헬드 촬영으로 영화의 리얼리티를 보여줬다.

2002년 <본 아이덴티티>로 출발한 <본> 시리즈는 2004년 <본 슈프리머시>를 거쳐 2007년 <본 얼티메이텀>을 통해 트릴로지를 완성했고 '군더더기 없는 첩보영화 3부작'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2012년에는 '호크아이'로 유명한 제레미 레너를 새 주인공으로 내세운 <본 레거시>가 개봉했는데 주인공이 바뀐 탓인지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진 못했다. 그리고 2016년에는 맷 데이먼을 9년 만에 복귀시킨 <제이슨 본>을 만들어 시리즈를 부활시켰다.

엇갈린 <본> 시리즈 여성 캐릭터들의 운명
 
 <본 아이덴티티>의 히로인이었던 마리는 <본 슈프리머시>에서 영화 중반에 킬러에게 살해된다.

<본 아이덴티티>의 히로인이었던 마리는 <본 슈프리머시>에서 영화 중반에 킬러에게 살해된다. ⓒ UIP 코리아

 
스위스 취리히에서 자신이 쫓긴다는 사실을 알게 된 본은 취리히에서 비자발급을 거부당한 여성 마리(프랑카 포텐테 분)에게 2만 달러를 주며 파리까지 동행을 제안한다. 그렇게 마리는 본과 긴 여행을 떠나게 되고 여러 위험 속에서 본과 함께 위기를 극복하면서 사랑이 싹튼다. 그렇게 <본 아이덴티티>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마리는 속편 <본 슈프리머시>에서 제이슨 본을 암살하기 위해 투입된 킬러의 총에 맞고 세상을 떠난다.

<본> 시리즈에서 마리를 연기한 독일출신배우 프랑카 포텐테는 독일과 할리우드를 오가며 활동하는 배우 겸 감독으로 제임스 완 감독의 <컨저링2>, 존 쿠삭과 주윤발,공리가 출연한 미중 합작영화 <상하이> 등에 출연했다. 포텐테는 2005년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심사를 맡았고 2020년에는 <홈>이라는 영화의 감독과 각본을 담당했을 정도로 능력이 출중한 여성 영화인이다.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에서 고 히스 레저와 연기호흡을 맞췄던 줄리아 스타일스는 <본 아이덴티티>에서 요원들의 이동과 정신건강체크 등을 담당하는 내근직 요원 니키 파슨스를 연기했다. 당초 니키는 <본 아이덴티티>에서 사망하는 캐릭터였는데 맷 데이먼과 크리스 쿠퍼의 일정과 맞지 않아 해당장면을 촬영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니키는 <본 레거시>를 제외한 모든 시리즈에 출연하는 준주연 캐릭터로 신분(?)이 상승했다.
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영화 본아이덴티티 더그라이먼감독 맷데이먼 프란카포텐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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