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XtvN으로 채널명이 바뀐 XTM에서는 지난 2011년 <주먹이 운다>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프로 MMA 선수가 아닌 일반인들이 출연했던 종합격투기 리얼리티 서바이벌 프로그램 <주먹이 운다>는 2011년 1기를 시작으로 2014년 4기까지 방송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주먹이 운다>는 다소 자극적인 내용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박형근과 김재훈, 김승연 등 국내 격투단체 로드FC와 정식계약한 프로파이터들을 다수 배출했다.

사실 UFC를 즐겨보는 격투팬들은 <주먹이 운다>가 처음 방송됐을 때부터 UFC의 선수육성프로그램 TUF(The Ultimate Fighter)를 모티브로 했다는 사실을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작년까지 30번의 메인 시즌을 마친 TUF는 포레스트 그리핀과 마이클 비스핑, 라샤드 에반스, 맷 세라, 카마루 우스만, 줄리아나 페냐, 칼라 에스파르자 등 UFC 챔피언을 지낸 뛰어난 선수들을 대거 배출한 <주먹이 운다>의 원조격인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국내에 아직 격투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소개되지 않았던 지난 2010년에는 학창시절 이름을 날리던 '짱'들을 찾아 링에서 대결을 시키는 가상의 격투 예능프로그램을 소재로 한 웹툰이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이 웹툰은 2013년 강우석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져 관객들을 만났다. 황정민과 유준상, 이요원, 윤제문 등이 주연을 맡았던 액션 드라마 <전설의 주먹>이다. 
 
 영화 <전설의 주먹>은 조금은 어두웠던 색깔의 원작웹툰을 조금은 가벼운 느낌으로 각색해 리메이크했다.
영화 <전설의 주먹>은 조금은 어두웠던 색깔의 원작웹툰을 조금은 가벼운 느낌으로 각색해 리메이크했다.CJ ENM
 
대배우 황정민의 아역 맡았던 무서운 신인

안산에서 태어나 충북 충주와 경기도 성남, 충남 공주를 오가며 학창시절을 보낸 박정민은 고려대 안암캠퍼스 인문학부에 입학했을 정도로 공부를 잘하던 학생이었다. 하지만 대학입학 후 영화에 뜻을 품은 박정민은 1년 만에 자퇴를 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에 입학했다가 연기과로 전과했다. 성인이 될 때까지 제대로 연기를 배워본 적 없는 박정민이 한예종에서 경쟁률이 가장 높다는 연기과로 전과에 성공한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었다.

2011년 윤성현 감독의 독립영화 <파수꾼>으로 데뷔한 박정민은 <댄싱퀸>과 <감기> 등에서 조·단역으로 출연했고 2013년 강우석 감독이 연출한 <전설의 주먹>에서 황정민이 맡은 임덕규의 고교시절을 연기했다. 박정민은 올림픽 금메달을 꿈꾸던 복싱 유망주가 편파판정으로 선발전에서 탈락하고 홧김에 폭력을 휘두르다가 운동을 그만두게 되는 '청년 임덕규'의 방황을 잘 표현하며 관객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2015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성보라(류혜영 분)의  전 남자친구 역할로 시청자들의 미움을 받은 박정민은 2016년 영화 <동주>에서 독립운동가 송몽규 역을 맡아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2018년에는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오진태 역을 맡아 이병헌과 형제연기를 선보였다. 그리고 2019년에는 무려 세 편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으며 '박정민 시대'를 활짝 열었다.

2019년 장재현 감독의 <사바하>에서 미스터리한 죽음에 얽힌 인물을 연기한 박정민은 그 해 여름 <타짜:원 아이드 잭>에 출연했다. 박정민이 짝귀의 아들 도일출을 연기한 <타짜: 원 아이드 잭>은 관객들의 혹평 속에 흥행에서도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박정민은 그 해 겨울 마동석과 호흡을 맞춘 코미디 영화 <시동>을 통해 전국 331만 관객을 동원하며 명예회복에 성공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2020년 황정민, 이정재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 출연한 박정민은 2021년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에서 방송국PD 배영재 역을 맡아 발군의 '짜증연기'를 선보였다. 박정민은 올해도 <동주>의 각본을 썼던 신연식 감독의 배구영화 <1승>, 김혜수, 염정아, 조인성 등과 호흡을 맞춘 류승완 감독의 <밀수>, 한재림 감독의 드라마 진출작인 웹툰 원작의 <머니게임>을 차례로 선보일 예정이다.

조회수 800만 짤 만들었던 황정민의 참교육
 
 임덕규의 아역을 연기한 박정민은 폭력사건에 휘말려 운동을 그만두게 되는 올림픽 유망주의 방황을 잘 표현했다.
임덕규의 아역을 연기한 박정민은 폭력사건에 휘말려 운동을 그만두게 되는 올림픽 유망주의 방황을 잘 표현했다.CJ ENM
 
영화 <전설의 주먹>은 고교 시절 친하게 지내다가 특정 사건에 휘말리면서 멀어지게 된 세 친구가 40대의 중년이 된 후 각자의 사정으로 격투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회하는 내용을 그린 영화다. 원작 웹툰이 세 주인공이 어린 시절에 겪었던 비극적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에 중점을 뒀다면 영화는 나이가 들어 꿈을 잃었던 중년의 세 친구가 격투기를 통해 우정을 되찾고 재기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원작과 영화의 중요한 배경이 되는 '전설의 주먹'이라는 프로그램도 그 성격이 조금 다르다. 웹툰에서 나오는 프로그램 '전설의 주먹'은 왕년에 잘 나갔다는 학교 싸움짱들을 조롱하고 시청자들도 이를 함께 비웃는 성격의 예능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영화 속 '전설의 주먹'은 금주 우승자와 전주 우승자가 2000만 원의 상금을 걸고 싸우는 '격투 서바이벌'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심지어 마지막 '전설대전' 토너먼트의 우승상금은 무려 2억 원이었다.

올림픽을 노리던 복싱 유망주 출신의 임덕규를 연기한 황정민과 학창시절부터 날렵한 발차기가 특기였던 이상훈 역의 유준상은 <전설의 주먹>을 위해 근육질 몸을 만들어 관객들을 감탄하게 했다.

현재 유튜브 '쇼츠' 800만 이상의 조회수를 자랑하고 있는 <전설의 주먹>의 최고 명장면은 임덕규와 거북이(서범식 분)의 마지막 대결이 아닌 임덕규가 딸 수빈(지우 분)을 괴롭힌 일진무리를 '참교육'하는 장면이다. "'맞장카페'에서 일등 먹는다"는 일진 무리들은 격투 프로그램에서 이름을 날린 임덕규에게 딸까지 들먹이며 시비를 걸지만 참다 못한 임덕규의 주먹을 맞고 한 방에 나가 떨어진다.

지난 2010년 윤태호 작가의 <이끼>를 영화화해 340만 관객을 동원했던 강우석 감독은 3년 후 다시 인기웹툰을 원작으로 한 <전설의 주먹>을 연출했다. 2시간33분에 달하는 긴 런닝타임의 <전설의 주먹>은 웹툰의 설정에 강우석 감독 특유의 대중적인 정서를 담아낸 작품이었다. 하지만 개봉 후 2주 동안 흥행 1위를 달리던 <전설의 주먹>은 4월 25일 <아이언맨3>의 개봉과 함께 빠르게 관객이 줄어들면서 전국174만 관객에 머물렀다.

화려한 캐스팅에 비해 아쉬운 흥행성적
 
 황정민과 유준상,이요원 등이 열연을 펼친 <전설의 주먹>은 기대만큼 높은 흥행성적을 올리진 못했다.
황정민과 유준상,이요원 등이 열연을 펼친 <전설의 주먹>은 기대만큼 높은 흥행성적을 올리진 못했다.CJ ENM
 
이요원이 연기했던 격투 예능프로그램 <전설의 주먹>의 홍규민PD는 원작과 가장 성격이 달라진 인물 중 한 명이다. 일단 이름부터 유민혜에서 홍규민으로 바뀌었고 원작의 유민혜PD가 가지고 있던 불우한 가정환경이라는 설정도 사라졌다. 홍규민PD는 지상파에서 자극적인 설정의 프로그램을 제작해 케이블TV로 스카우트된 스타PD로 1%대를 전전하던 '전설의 주먹'도 '전설대전'을 통해 실시간 시청률 12%까지 끌어 올렸다.

악역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배우 정웅인이 맡은 손진호도 원작과는 설정이 많이 바뀌었다. 원작에서의 손진호는 교통사고로 하반신 장애를 얻고 학창시절 친구를 죽게 한 죄책감 때문에 투신자살을 선택한다. 하지만 영화 속 손진호는 장애나 자살 같은 비극적인 설정이 대부분 사라진 채 흥청망청 사는 재벌 3세로 나온다. 손진호는 이상훈이 회사를 그만둔 후에도 유흥업소에서 TV로 옛 친구들의 경기를 보며 환호한다.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으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성지루는 <전설의 주먹>에서 정권교체로 인한 권력다툼으로 직장에서 쫓겨난 전직 국정원 요원 서강국을 연기했다. 프로그램에서 일찌감치 탈락한 후 임덕규의 매니저를 자처하는 서강국은 강우석 감독의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개그캐릭터인 듯 했지만 영화 후반 정말 국정원 요원이었음이 밝혀진다. 서강국은 영화의 '빌런' 안용철(이철민 분)의 승부조작을 밝혀 내기도 했다.

<청춘시대2>에서 유은재, <소방서 옆 경찰서>에서 봉도진(손호준 분)의 동생이자 과학수사팀 검시관 봉안나를 연기했던 지우는 <전설의 주먹>에서 임덕규의 딸 임수빈 역을 맡았다. 영화 초반에는 친구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문제학생처럼 나왔지만 알고 보니 그림을 잘 그린다는 이유로 일진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왕따학생이었다. 참고로 <전설의 주먹>과 최신작<소방서 옆 경찰서>를 비교해 보면 지우의 연기가 얼마나 늘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전설의 주먹 강우석 감독 박정민 황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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