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전 승리 환호' 여자배구 대표팀 선수들과 조반니 미알레 코치(가운데)
미알레 코치 SNS
여자배구 팬들의 이런 반응에 대해 국내 감독과 프로구단 입장을 옹호해 온 인사들은 '편향된 팬심'이라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팬들의 글과 주장들을 살펴보면,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대목들이 적지 않다.
우선 한국 여자배구가 전 세계에서 가장 '극단적이고 강제적인 세대 교체'가 이뤄진 상황에서 선진 배구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코칭스태프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고, 배구계 전체가 적극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한국 여자배구는 올해 대표팀 선수 구성 면에서 너무도 큰 공백이 발생했다. 세계 최고 완성형 공격수인 김연경(192cm)이 대표팀에서 은퇴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손실인데, 양효진(190cm), 김수지(188cm)까지 장신 트리오가 모두 은퇴했다. 설상가상으로 남아 있는 주전급 선수들마저 대거 부상과 건강상의 이유로 대표팀에서 이탈했다. 심지어 이번 세계선수권에 출전한 14명도 몸이 성한 선수가 거의 없었다.
어렵게 세계선수권 대표팀을 구성했지만, 이후 진천선수촌 훈련마저 외국인 감독과 국내 감독의 불협화음 등 때문에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전력이 가장 크게 약화된 나라가 대표팀 선수 구성과 배구계 전체의 훈련 지원 부분까지 다른 배구 강국들보다 부실했던 것이다(관련 기사:
세계선수권 4연패 여자배구... 예견된 시련).
그런 상황에서 감독의 능력만으로 단기간에 경기력을 배구 강국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없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때문에 팬들은 올해 국제대회의 성적 부진을 세자르 감독과 외국인 코칭스태프에게만 전가하는 건 사리에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또한 남자배구와 여자배구 대표팀이 거둔 성적과 책임에 대한 평가가 공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남자배구 대표팀은 올해 주전급 선수가 대부분 대표팀에 참가했다. 진천선수촌 소집훈련도 2개월이나 실시했다.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 지난 7월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22 남자배구 발리볼챌린저컵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 내년에 열리는 '2023 발리볼 네이션스 리그(VNL)'로 승격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준결승에서 튀르키예에 0-3으로 완패해 결승 진출에도 실패했다. VNL 승격의 꿈도 날아갔다.
이어 열린 8월 AVC컵 대회에선 더욱 충격이었다. '세계랭킹 70위' 바레인에 0-3으로 완패하면서 4위에 그치고 말았다. 그럼에도 국내 배구계 인사와 언론 어디에도 '임도헌 대표팀 감독 책임'을 거론하지 않았다.
반면, 여자배구 대표팀은 발리볼챌린저컵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급이 높은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그것도 최악의 상황에서 크로아티아를 3-1로 이겼다. 크로아티아는 지난 7월 열린 2022 여자배구 발리볼챌린저컵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내년 '2023 발리볼 네이션스 리그(VNL)'로 승격된 팀이다.
'국내 감독 불신' 팽배.. 본질적 문제들 담겨 있다
여자배구 팬들이 외국인 코칭스태프를 지지하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국내 감독들의 지도 스타일과 플레이 방식에 대한 불신·불만이 팽배해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큰 이유로 보인다.
그 중심에는 국내 프로팀 감독들이 V리그에서 주도해 온 '외국인 선수 몰빵 배구'가 있다. 그러다 보니 국내 선수들이 세계 배구의 핵심 무기인 파이프 공격(중앙 후위 시간차 공격), 미들블로커 속공과 이동 공격 등 다양한 공격 옵션을 구사할 능력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 당연히 경기력이 V리그와 국제대회 사이에 현격한 격차가 날 수밖에 없다.
또한 플레이 스타일이 다르다 보니, 선수들이 대표팀에 들어갈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적응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발생한다. 설상가상으로 V리그와 사용하는 공인구도 다르다. 결국 대표팀에서 선진 배구 스타일을 연마했다고 해도 V리그로 돌아가면 다시 '도로아미타불 악순환'이 반복된다. 팬들은 또 국내 감독들이 6개월의 장기 리그에서 주전 선수 위주로만 팀 운영을 하기 때문에 시즌이 끝나면 부상자가 속출하고, 선수 발굴·육성에서도 뒤처졌다고 비판한다.
실제로 이런 본질적 문제들을 덮어둔 채, 다른 국제경쟁력 향상 방안을 논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그래서 배구 팬들이 찾아간 통로(대안)가 바로 유럽·남미 배구 강국의 대세인 '토털 배구를 바탕으로 하는 스피드 배구'이고, 이를 구현할 지도자로 외국인 감독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일각에선 "외국인 감독이 국내 배구를 무시한다"고 힐난하기도 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국내 배구 스타일과 문화를 고수할 거면 애당초 외국인 감독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런 걸 과감하게 개선시켜 달라고 영입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 관련 내용이 이어집니다.☞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