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한국 대중가요를 선곡해 들려주는 라디오 음악방송 작가로 일했습니다. 지금도 음악은 잠든 서정성을 깨워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날에 맞춤한 음악과 사연을 통해 하루치의 서정을 깨워드리고 싶습니다.[편집자말]
세상엔 감동을 주는 여러 가지 일들이 많고도 많지만 그중에서도 스포츠가 주는 감동은 항상 예상치를 넘어서곤 한다. 그 어떤 의도도 가미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우리 몸 깊숙이 파고드는 날것의 감동, 그것이 바로 스포츠의 묘미일 것이다. 얼마 전 오랜만에 그런 감동을 목격하고는 개인적으로도 꽤 한참 동안 지나온 삶에 대해 반추하는 계기를 갖게 됐다. 다름 아닌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주장이자 자랑스러운 프리미어 리거인 손흥민 선수와 관련된 일화였다.

지난 시즌, 리그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고 '골든 부트'까지 수상해 온 국민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지게 했던 그가 수 경기째 골을 넣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움과 걱정 어린 시선이 깊어가던 중이었다. 그리고 그런 우려는 선발 출장이 되지 못한 채, 벤치를 지키고 있는 그의 어두운 얼굴에 그대로 드리워져 있었다. 하지만 후반 교체 후 그가 단 시간에 쏘아 올린 '해트트릭'은 이 모든 상황을 일시에 종결시켜버렸다. 그리고 그는 다시 우리가 아는 미소가 무척이나 아름다운 청년으로 복귀했다.

사실, 스포츠가 주는 감동을 새삼스레 이야기 하자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 감동으로 많은 이들이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순간을 맞았음은 부인할 순 없지만 내 관심을 끈 것은 그 이후 손흥민 선수가 자신의 사회관계망 서비스에 올렸다는 짧은 문구였다. 
 
"삶이 우리에게 레몬을 건네면, 해트트릭을 하면 돼요". 

'와우, 이런 멘털을 가지고 있었으니 세계적인 선수가 됐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의 이 한 마디는 언제나 노래와 삶을 연결 짓는 나만의 데이터베이스로 전송돼 왔다. 그리고 이걸 기반으로 한 알고리즘이 작용하며 자연스레 오석준의 노래 <웃어요>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오석준의 '웃어요'가 수록된 앨범.

오석준의 '웃어요'가 수록된 앨범. ⓒ Dreamus

 

 세상 사람들은 언제나 삶은 힘들다고 하지만
 항상 힘든 것은 아니죠 가끔 좋은 일도 있잖아요
 웃어요 웃어봐요 모든 일 잊고서
 웃어요 웃어봐요 좋은 게 좋은 거죠
 외롭다고 생각 말아요 혼자 살다 혼자 가는 거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이 그게 바로 인생이에요
 웃어요 웃어봐요 모든 일 잊고서
 웃어요 웃어봐요 좋은 게 좋은 거죠
 외롭다고 생각 말아요 혼자 살다 혼자 가는 거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이 그게 바로 인생이에요
 웃어요 웃어봐요 모든 일 잊고서
 웃어요 웃어봐요 좋은 게 좋은 거죠
 사랑하고 미워했던 많은 일들이
 다신 돌아올 수 없지만
 그냥 그렇게 왔다가 그냥 이렇게 떠나는 거죠
 웃어요 웃어봐요 그게 바로 인생이에요 / 오석준 웃어요 가사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오석준은 장필순, 고 박정운과 더불어 '오장박'이란 이름으로 청춘영화 '굿모닝 대통령'이라는 영화의 OST인 '내일이 찾아오면'이란 노래를 작곡하고 함께 불렀다.

또한 이승환의 초기 노래들을 만들고 프로듀싱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이오공감' 이란 앨범을 들어보면 그가 왜 훌륭한 프로듀서인 줄 짐작할 수가 있다. 해서 가수보다는 작곡자 혹은 프로듀서라는 명칭이 더 어울릴 거 같기도 하다. 아무튼.

방항과 좌절의 20대

이 노래가 나왔을 무렵 내 삶은 부서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었다. 그 좋은 20대의 끝 즈음에서 방황과 좌절을 지독하게 경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 계획하고 있었던 '유학'은 여러 가지 사정이 뒤엉켜 물 건너가 버렸다. 유학을 준비하느라 다니던 회사까지 관두었기에 어떻게든 생활비 정도는 벌어야 된다는 생각에 다시 라디오 부스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졸지에 꿈과 희망이 사라져 버린 20대 후반의 초점 잃은 청춘이 된 나는, 매일을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기분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꿈꾸던 학업도, 용광로처럼 들끓던 연애도 원래 내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렸고, 라디오 부스의 부품 같은 프리랜서 작가의 알량한 일상에 내 전 생애를 기대 살고 있었다. 지금 와 생각해봐도 전 생애를 통틀어 그때만큼 삶이 갈가리 찢겨 흩날리던 때는 없었던 거 같다. 친구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한눈에도 삶을 굳건하게 다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더 조급함이 들었다. 이 조급함은 날이 갈수록 내 삶에 좌절의 그늘을 더 깊게 드리웠다.

그때, 나는 내게 내일은 오지 않을 거라는 위험한 생각에 잠시 빠져있었던 거 같다. 마치 하루하루를 연명해 나간다는 생각에 지배당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깊은 시간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빠져나오고 있지 못할 때, 뜻하지 않은 곳에서 삶은 숨겨둔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었다. 어쩌면 오랫동안 내밀고 있었던 그 손을 뒤늦게 발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을볕이 참 좋았던 어느 하루, 그날따라 원고가 술~술 써지는 것이었다. 아마도 가을의 정령이 절대자의 명으로 내 위험한 삶을 수습하기 위해 머물렀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그날의 방송을 여는 말은 이탈리아가 낳은 명배우 소피아 로렌에 관한 것이었다.

너무 강한 개성을 가진 그녀의 얼굴을 보고 전통적인 미녀가 대세던 그 시절, 사람들은 그녀가 배우로 성공하지 못할 거라 얘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사람들의 멸시를 견디고 마침내 대배우로 우뚝 서게 됐다. 그 비결에 관한 이야기인데 그녀는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자기 암시를 했다고 한다.  

'넌, 아름다운 사람이야... 넌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야' 

자존감의 극대화는 타인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직조하는 것이란 걸 글을 쓰면서 온 몸으로 체득했다. 글과 함께 그때 막 신곡으로 나왔던 오석준의 '웃어요'를 선곡했고. 여는 말과 함께 곡이 나가는 동안 부스에 있던 D.J가 달려 나와 얘기했다

"작가님, 제가 정말 작가님 원고 좋아하는 거 아시죠?  작가님 원고는 리듬감 있고 간결해서 음악 방송용 멘트로 딱이라니까요! 특히나 오늘 오프닝 멘트는 너무너무 좋아서 감동했어요."

시디신 삶, 웃음으로 화답하자
 
 웃음은 우리 인생의 게임 체인저다.

웃음은 우리 인생의 게임 체인저다. ⓒ pixabay

 
어설프긴 했어도 꽤 오랜 시간 문학을 꿈꾸었던 나의 장기가 십분 발휘되면서, 납작해졌던 자존감도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후 소피아 로렌이 매일 거울 앞에서 자신에게 했다던 말을 상기하며 즐거워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야 즐거워할 일이 생긴다는 긍정의 마법을 나 스스로에게도 적용시키기로 마음먹었다. 노래 가사처럼 '삶이 항상 힘들지만은 않다는 걸' 어쩌면 불현듯 그날 깨달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무엇보다 삶이 시디신 레몬을 내밀 때, 웃음으로 화답해보자는 배포를 이 노래를 통해 체득했다. 생각하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  착착 앞으로 나아가고 더해 찬란할 줄만 알았던 삶은, 생각보다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다. 가끔은 길도 없는 광야를 지나기도 하고, 높은 산을 오르거나, 바다에 던져져 거센 광풍과 맞서기도 해야 한다. 그때마다 적어도 찌푸리지 말고 물러서지도 않은 채 '그래, 씩 한 번 웃어보는 거야. 가끔 좋은 일도 있으니까'라는 말을 되뇌기로 마음먹으면 어떨까.

웃음은 우리 인생의 게임 체인저다. 짜릿한 역전승을 일궈낼 단초를 마련해준다. 손흥민 선수처럼 삶이 시디신 레몬을 내밀 때, 해트트릭을 기록할 순 없어도 누구나 가지고 있는 멋진 무기 '웃음'이 있지 않은가. 

삶은 무엇 때문인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때로 씁쓸하기도 하다. 그래도 항상 힘든 것만은 아닐 테다. 그럴 때도 한 번씩~웃어줄 용기만 있다면 말이다. 삶이 고단할수록, 쓰라리고 아플수록 웃음이라는 어퍼컷을 회심에 찬 얼굴로 날려보자. 생의 달관 그 끝에는 울음보다는 웃음이 존재해야 한다는 걸, 아니 존재하고 있다는 걸 노래 <웃어요>가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혜원 시민기자의 브런치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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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음악방송작가로 오랜시간 글을 썼습니다.방송글을 모아 독립출간 했고, 아포리즘과 시, 음악, 영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에 눈과 귀를 활짝 열어두는 것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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