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하 감독의 대표작인 <말죽거리 잔혹사>와 <비열한 거리> <강남1970>은 흔히 유하 감독의 '거리 3부작'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세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바로 '폭력'이기 때문에 영화팬들은 이 세 작품을 유하 감독의 '폭력 3부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영화들은 폭력적인 주제에도 <말죽거리 잔혹사>가 310만, <비열한 거리>가 200만, <강남1970>이 210만 관객이라는 괜찮은 흥행성적을 기록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이렇게 폭력을 주제로 하고 있는 유하 감독의 세 영화가 관객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이 영화들의 주인공이 권상우(<말죽거리 잔혹사>)와 조인성(<비열한 거리>), 김래원·이민호(<강남1970>)였기 때문이다. 여성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남성미와 깊은 눈빛을 가진 미남 배우들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하면서 이 영화들은 자연스럽게 폭력수위를 조절하고 관객들과 '타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브레이크 없는 거친 '폭력의 미학'을 보고 싶었던 관객들은 유하 감독이 만든 폭력 3부작의 수위가 다소 아쉽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유하 감독의 폭력 3부작과 김래원의 <해바라기> 등 관객들을 매료시켰던 액션영화들을 한참 능가하는 '거친 폭력의 미학'을 보여준 작품이 지난 2006년 세상에 공개됐다. <여고괴담>을 만들었던 박기형 감독의 4번째 장편영화 <폭력써클>이었다.
 
 <폭력써클>은 개봉 당시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지만 훗날 영화팬들에 의해 재평가 받은 작품이다.

<폭력써클>은 개봉 당시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지만 훗날 영화팬들에 의해 재평가 받은 작품이다. ⓒ (주)쇼박스

 
30대 후반에 전성기 온 정경호의 첫 번째 주연작

<목욕탕집 남자들>과 <부모님 전상서> <엄마가 뿔났다> 등을 연출한 정을영 PD의 아들인 정경호는 2003년 KBS 20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사랑의 바보>를 부른 밴드 더 넛츠의 기타리스트이자 2021년 <신사와 아가씨>로 KBS 연기대상을 수상했던 지현우가 정경호의 공채탤런트 동기다. 데뷔 초기 <낭랑 18세>와 <알게 될거야> 등에 출연하던 정경호는 2004년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처음으로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인기가수 최윤을 연기하며 시청자들에게 얼굴을 알린 정경호는 2005년 민규동 감독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과 김현석 감독의 <광식이 동생 광태>에 출연하며 영화로 활동범위를 넓혔다. 2006년에 출연했던 박기형 감독의 <폭력써클>은 유약한 서브주인공 이미지가 강했던 정경호가 처음으로 강인한 주인공을 연기했던 영화였다. 하지만 <폭력써클>은 전국관객 2만 9000명으로 흥행에서는 크게 실패했다.

정경호는 <폭력써클> 후에도 <님은 먼 곳에>와 <거북이 달린다> 등에 출연하며 영화 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친 정경호는 2013년 배우 하정우의 연출 데뷔작 <롤러코스터>에서 한류스타 마준규 역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300만 관객을 동원했던 <거북이 달린다> 이후 좀처럼 영화에서 인상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고 정경호는 2010년대 중반부터 드라마 활동에 매진했다.

공교롭게도 드라마에 집중하면서 정경호의 배우인생은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김소연, 윤현민과 함께 한 <순정에 반하다>와 싱글대디 기자를 연기한 <한 번 더 해피엔딩>이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고 이는 2017년 <슬기로운 깜빵생활>과 2018년 <라이프 온 마스>의 호연으로 이어졌다. 특히 <라이프 온 마스>의 엘리트 형사반장 한태주는 시청자들로부터 정경호의 '인생연기'라는 평가를 들을 만큼 극찬을 받았다.

40대로 접어드는 시점에 전성기가 찾아온 정경호는 2020년과 2021년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1, 2>에서 흉부외과 과장이 되는 김준완 교수를 연기하면서 까칠하지만 따뜻한 매력으로 시청자들을 사로 잡았다. 소녀시대 멤버 수영과 10년째 장기연애 중인 정경호는 오는 10월 개봉 예정인 코미디 영화 <대무가>와 마동석, 오나라, 오연서 등이 출연하는 <압구정 리포트>의 촬영을 마치면서 스크린 컴백을 기다리고 있다.

수위 높은 폭력에 대한 면역이 필요한 영화
 
 영화 속 '타이거'는 축구를 위해 결성된 모임이지만 축구모임 치고는 너무 많은 싸움에 휘말렸다.

영화 속 '타이거'는 축구를 위해 결성된 모임이지만 축구모임 치고는 너무 많은 싸움에 휘말렸다. ⓒ (주)쇼박스


1991년 육군 장교인 아버지를 따라 육사진학을 목표로 고등학교에 입학한 상호(정경호 분)는 중학교 동창 재구(이태성 분)와 창배(이석 분), 그리고 재구의 초등학교 동창 3명과 함께 축구 소모임 '타이거'를 결성했다. 상호는 창배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된 여학생 수희(장희진 분)에게 첫눈에 반하지만 알고 보니 수희는 옆 학교 폭력써클 TNT의 리더 한종석(연제욱 분)의 전 여자친구였다. 그렇게 타이거와 TNT는 충돌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사실 상호는 싸움이나 폭력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TNT와 시비가 붙은 타이거 멤버들이 TNT에게 당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싸움에 자주 휘말리게 된다. 중학교 시절 교내 유도부를 단신으로 쓰러뜨렸을 정도로 뛰어난 싸움실력의 소유자인 상호는 TNT 무리들을 혼내주고 친구들을 구한다. 하지만 이에 분노한 TNT의 리더 종석은 상호와 친한 친구 창배를 마구 구타한 후 본보기로 정강이뼈를 부러뜨린다.

설상가상으로 재구마저 TNT 무리들과의 싸움 도중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상호는 엄청난 분노에 휩싸여 TNT와의 전면전을 결심한다. 남은 타이거 멤버들과 함께 TNT의 아지트인 당구장으로 쳐들어 간 상호는 일당백의 실력으로 TNT의 무리들을 하나씩 쓰러뜨린다. 특히 상호는 쇠몽둥이에 맞은 홍규(조진웅 분)를 발견한 후 완전히 이성을 잃고 쇠몽둥이를 빼앗아 타이거의 원수인 종석을 마구 내리쳐 사망에 이르게 한다.

사실 <폭력써클>은 영화 내내 싸움과 폭력이 끊임 없이 이어지기 때문에 교육적으로는 매우 좋지 않은 영화다. 하지만 주인공이 혼자 날아 다니면서 정의구현을 하는 비현실적인 학원폭력물에 비하면 <폭력써클>은 주인공의 심리묘사와 각 캐릭터들의 특징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폭력수위에 대한 면역이 없다면 다소 충격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폭력의 미학'을 수용할 준비가 된 관객이라면 즐길 거리가 많은 작품이다.

<구미호>의 조감독을 지낸 박기형 감독은 1998년 '레전드 호러 영화' <여고괴담>을 통해 서울에서만 62만 관객을 모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하지만 2000년 김승우와 장민경이 출연한 미스터리 판타지 <비밀>과 2003년 심혜진 주연의 호러영화 <아카시아>가 연속으로 흥행에 실패했다. 박기형 감독은 2006년 액션 드라마 <폭력써클>을 연출하며 변신을 시도했지만 역시 상업적으로 좋은 결과를 얻는 데 실패했다.

류승범 못지 않았던 연제욱의 양아치 연기
 
 TNT 리더 한종석 역의 연제욱은 소름 끼치는 악역 연기로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TNT 리더 한종석 역의 연제욱은 소름 끼치는 악역 연기로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 (주)쇼박스

 
대한민국에서 양아치 연기를 가장 잘 하는 배우를 꼽으라면 아마도 많은 관객들이 류승범의 이름을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폭력써클>을 관람한 관객이라면 류승범의 뒤를 이을 양아치 연기의 대가로 연제욱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연제욱은 <폭력써클>에서 TNT의 수괴이자 악질적인 양아치 한종석 역을 무척 잘 소화했다. 특히 영화 초반 당구장에서 군인들과 시비가 붙었을 때는 아주 무서운 살기를 보여줬다.

<폭력써클>에서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연제욱은 2008년 <강철중:공공의 적 1-1>에서도 조직폭력배를 동경하는 일진 고등학생을 연기했다. 하지만 끝까지 교화가 되지 않았던 <폭력써클>에서와 달리 <강철중>에서는 후반부에 착해지는 역할이었다. 연제욱은 2020년 드라마 <런온>에서는 <폭력써클>에서 자신을 죽인 상호 역을 맡은 정경호의 실제 여자친구 수영이 연기한 서단아의 비서 정지현 역을 맡기도 했다.

<말죽거리 잔혹사>로 데뷔해 <우리 형> <야수> <비열한 거리> 등에서 단역으로 출연했던 조진웅은 <폭력써클>에서 타이거의 멤버 조홍규 역을 맡았다. 큰 덩치를 앞세워 유도기술을 구사하는 전형적인 힘 캐릭터로 재구가 폭력교사에게 맞는걸 말리다 교사를 구타하고 퇴학 당했다. 홍규는 마지막 당구장 혈투에서도 상호 못지 않게 활약하지만 한종석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의식을 잃고 싸움이 끝난 후에도 병원에서 의식을 찾지 못했다.

정경호와 KBS 20기 공채탤런트 동기인 고규필은 <폭력써클>에서 1년 유급한 나상식을 연기했다. 영화 후반부까지 큰 싸움에 휘말리지 않던 상식은 상호, 홍규, 경철(김혜성 분)과 당구장 혈투에 함께 하지만 쇠파이프를 들고 싸우다가 당구 채에 오른쪽 눈을 찔리면서 실명한다. 실제로도 친분이 두터운 고규필과 정경호는 영화 <폭력써클>을 시작으로 <롤러코스터>, 드라마 <한번 더 해피엔딩> <라이프 온 마스>까지 네 작품에 함께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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