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어느 구조기술사가 억울한 누명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형을 구하기 위해 교도소의 설계도면을 문신으로 새긴 후 감독에 들어가 탈옥을 시도하는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가 많은 인기를 끌었다. <프리즌 브레이크>는 특히 국내에서 신드롬에 가까운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고 '석호필'로 불리던 주인공 마이클 스코필드를 연기한 배우 엔트워스 밀러는 지난 2007년 한국에 입국해 커피CF를 찍기도 했다.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73년 스티브 맥퀸과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을 맡은 '전설의 탈옥영화' <빠삐용>이 있었고 1994년엔 팀 로빈스와 모건 프리먼 주연의 <쇼생크 탈출>이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한국영화 중에서도 1994년 문성근과 이경영 주연의 <세상 밖으로>와 2009년 김윤석,정경호 주연의 <거북이 달린다>처럼 탈옥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제작·개봉된 바 있다.

죄를 지어 감옥에 들어간 죄수들이 가장 갈망하는 것이 바로 '자유'이기 때문에 탈옥은 영화로 만들어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재 중 하나다. 하지만 자유를 위해 감옥에서 빠져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지만 힘들게 빠져 나온 감옥에 다시 들어가려고 애쓰는 영화는 결코 흔치 않다. 그 중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지난 2002년 설경구와 차승원, 그리고 송윤아가 코믹 본능을 마음껏 뽐냈던 김상진 감독의 <광복절특사>였다.
 
 <광복절특사>는 연말 시즌이 되기 전이었던 2002년11월에 개봉해 300만이 넘는 관객을 불러 모았다.

<광복절특사>는 연말 시즌이 되기 전이었던 2002년11월에 개봉해 300만이 넘는 관객을 불러 모았다. ⓒ 시네마서비스

 
TV에 강한 배우의 영화흥행작

대학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송윤아는 1995년 차태현을 배출했던 제1회 슈퍼탤런트 선발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하지만 대상을 받았던 박상아가 곧바로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에 주연으로 투입된 것과 달리 송윤아는 데뷔 초기 조·단역을 전전하며 약 2~3년 동안 무명시절을 보냈다. 1997년 <전설의 고향 1997>에서 구미호를 연기했던 게 송윤아가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첫 작품이었다.

그렇게 KBS와의 전속기간이 끝난 송윤아는 1998년 SBS 드라마 < 미스터Q >에서 김희선을 괴롭히는 직장상사 황주리 역을 맡아 시청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1997년 <일팔일팔>로 영화에 데뷔한 송윤아는 1998년 학원물 <짱>과 2000년 멜로 영화 <불후의 명작>에 출연했다. 하지만 송윤아는 역시 영화보다 <애드버킷>과 <왕초>,<호텔리어>,<반달곰 내 사랑> 등 드라마에서 더욱 두각을 나타냈다.

그렇게 'TV전문배우'로 이미지가 굳어지던 송윤아는 2002년 설경구, 차승원과 함께 코미디 영화 <광복절특사>에 출연했다. 사기를 치다 교도소에 수감된 남자친구를 버리고 경찰과 결혼을 약속한 한경순을 연기한 송윤아는 평소의 지적인 이미지를 버리고 코믹한 푼수로 변신을 시도했다. 세 배우가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을 펼친 덕에 <광복절특사>는 전국 310만 관객을 동원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송윤아는 <광복절특사>를 통해 청룡영화상과 대종상 여우조연상을 휩쓸었지만 아쉽게도 영화와의 인연은 그렇게 성공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송윤아는 2004년 <페이스>, 2006년 <사랑을 놓치다>와 <아랑>, 2009년 <시크릿>과 <웨딩 드레스>를 통해 꾸준히 영화에 출연했지만 번번이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다. 반면에 드라마 작가 서영은을 연기했던 드라마 <온 에어>는 연기와 시청률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며 큰 사랑을 받았다.

2009년 <광복절특사>와 <사랑을 놓치다>에 함께 출연한 설경구와 결혼해 이듬 해 아들을 출산한 송윤아는 2014년 드라마 <마마>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싱글맘을 연기하며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이제 영화보다는 드라마 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송윤아는 작년 <쇼윈도: 여왕의 집>을 두 자릿수 시청률로 이끌었다(닐슨 코리아 기준). 이는 채널A 개국이래 최고 시청률로 배우 송윤아의 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단면이었다.

'원톱 주연' 차승원의 발판을 마련해준 영화
 
 차승원은 <광복절특사> 이후 충무로에서 확실한 원톱주연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차승원은 <광복절특사> 이후 충무로에서 확실한 원톱주연배우로 자리매김했다. ⓒ 시네마서비스

 
영화 <광복절특사>는 자신들이 특사 명단에 포함된 줄 모르고 8월 14일에 탈옥을 감행한 두 남자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코미디 영화다. 빵을 훔쳐 먹었다가 징역형을 선고 받아 억울함에 탈옥을 시도했다가 형기가 늘어난 최무석(차승원 분)은 숟가락으로 6년 동안 성실하게 땅굴을 팠고 광복절에 애인의 결혼소식을 들은 유재필(설경구 분)은 무석에게 부탁해 함께 탈옥을 시도했다.

사실 영화가 개봉할 때만 해도 <광복절특사>는 2000년대 들어 <박하사탕>과 <공공의 적>,<오아시스>를 연속으로 히트시킨 설경구 쪽으로 배우의 무게중심이 쏠린 작품이었다. 하지만 정작 영화에서는 설경구가 맡은 유재필보다 차승원이 연기한 최무석 쪽에 코믹한 장면들이 집중됐고 차승원 역시 <신라의 달밤>에 이어 김상진 감독과 찰떡 호흡을 과시하며 <광복절특사>의 웃음지분을 대거 책임졌다.

데뷔 후 대형 시상식의 연기상과는 거리가 있었던 차승원은 2003년 백상예술대상에서 설경구를 제치고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차승원은 "앞선 시상식에서 11개의 남우주연상을 독식하셨다가 드디어 하나 양보해 주신 설경구씨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라는 위트 있는 수상소감을 남겼다. 실제로 차승원은 <광복절특사> 이후 <선생 김봉두>,<귀신이 산다> 등을 통해 충무로의 확실한 '원톱 주연'으로 자리매김했다.

장편 데뷔작 <돈을 갖고 튀어라>부터 <주유소 습격사건>,<신라의 달밤> 등 김상진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들은 대부분 영화 막판 큰 규모의 소동이 벌어지고 주인공이 이를 수습하면서 마무리되는 결말을 보여준다. <광복절특사>에서도 재소자들이 폭동을 일으켜 교도소를 장악하는 대형사건이 벌어지지만 코미디 영화답게 최무석과 유재필의 활약으로 순식간에 소동이 마무리되고 두 주인공은 다음 날 무사히 특사로 교도소에서 출소한다.

<광복절특사>에서는 영화만큼 유명해진 OST가 있었다. 바로 1988년에 발매된 강애리자의 히트곡을 리메이크한 송윤아의 <분홍립스틱>이었다. 송윤아의 <분홍립스틱>은 영화의 인기와 함께 한 동안 노래방 애창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영화 속에서 한경순은 <분홍립스틱>에 남다른 애착을 가진 캐릭터로 나오는데 실제로 한경순은 극 중에서 어떤 남자라도 <분홍립스틱>을 부르기만 하면 눈에 하트가 그려지며 첫 눈에 반한다. 

송윤아 약혼자였던 다혈질 경찰 연기한 유해진
 
 지금까지 주로 코믹한 연기를 했던 유해진은 <광복절특사>에서 '빌런'으로 연기변신을 시도했다.

지금까지 주로 코믹한 연기를 했던 유해진은 <광복절특사>에서 '빌런'으로 연기변신을 시도했다. ⓒ 시네마서비스

 
2000년대 초반 강우석 사단(김상진 감독은 강우석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다) 영화에 단골로 출연하던 유해진은 코믹한 캐릭터를 벗어나 <광복절특사>에서 빌런에 가까운 캐릭터를 연기했다. 한경순과 결혼을 앞둔 약혼자지만 최무석과 유재필이 자신을 화나게 했다는 이유로 끝까지 추격을 해 두 사람을 잡아 구타한다. 하지만 보다 못한 경순의 난입으로 포승줄에 묶여 경찰차에 가둬졌다. 

<주유소 습격사건>의 딴따라 역을 통해 데뷔 후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던 강성진은 주연으로 나섰던 이무영 감독의 <휴머니스트>가 서울관객 3만에 그친 후 <광복절특사>에서 주조연급 캐릭터인 강패두목 용문신을 연기했다. 용문신은 국회의원들의 교도소 사찰이 임박하자 밥도 안 먹이고 작업을 시키는 교도소장에게 반기를 들어 재소자들의 폭동을 주도하지만 영화 막판 동료들이 재필의 설득에 넘어가면서 폭동 중단을 선언한다.

<공공의 적>에서 강철중을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던 강력반장 역의 강신일은 <광복절특사>에서 융통성 없는 교도소의 보안과장을 연기했다. 원조교제와 사기, 공금횡령 등 화려한 범죄경력을 자랑하는 교도관이나 국회의원들에 비하면 비교적 정직한 캐릭터지만 재소자들의 밥을 굶겨가며 일을 시키다가 폭동이 일어나게 한 원인을 제공했다. 강신일은 <광복절특사> 이후 설경구, 강성진과 함께 곧바로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에 합류했다.

4년 후 <타짜>에서 곽철용을 연기한 김응수는 <광복절특사>에서 교도소에 사찰을 나온 여당 국회의원을 연기했다. 민주열사로 투옥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지며 유난히 깐깐한 모습을 보이지만 영화 후반부 그의 죄목이 '사기'였음이 밝혀진다. 역시 <타짜>에서 정마담(김혜수 분)에게 설계를 당하는 호구를 연기했던 권태원은 교도대장 역을 맡아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와 비굴한 캐릭터 사이를 넘나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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