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장면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

 
인생은 타이밍일까? 언제 어떤 선택을 마주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행로가 바뀐다. 나도 모르게 주인공의 선택을 되새김질해보게 되는 영화가 있다. 악셀이 아니라 에이빈드를 먼저 만났다면? 아니, 그 파티에 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신작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이야기다.

이 영화는 율리에라는 여성의 삶을 통해 이삼십 대의 사랑과 혼돈을 풀어낸다. 의학을 전공하다 심리학으로, 그것마저 사진으로 바꾸느라 서른을 앞두고도 변변한 직장 없이 서점에서 일하는 율리에. 스물여덟에 취업해 꼬박꼬박 월급을 받았으니 나의 이십 대는 그나마 좀 괜찮았나? 아니다, 서른이 넘도록 부모님 집에서 독립하지 못했고 나를 비참하게 하는 남자 친구에게 매달려 있었다.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몰라 혼란스러웠지만 그걸 찾기 위해 가진 걸 버리거나 새로운 도전을 할 용기가 없었던 나는 율리에보다 한심하면 더 한심했지 나을 게 없었다.

율리에는 자신을 찾기 위해 불확실한 삶으로 뛰어들 줄 안다. 실패와 상처를 피하는 대신 서툴더라도 선택하고 도전한다.

율리에의 남자 친구 악셀은 만화가로 재능과 실력을 인정받아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마흔셋인 그는 아이를 낳고 자기만의 가족을 꾸려가는 친구들을 보며 정착을 희망하지만 이제 막 새로운 일을 시작했고 자신과 삶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율리에에게 아이는 부담스러운 문제다. 율리에가 겪는 혼돈과 불안을 공감해주는 대신 분석하고 판단하려는 악셀. 각자가 처한 위치와 상황의 차이가 사랑에 틈을 만든다.

어느 날 모르는 사람의 파티에 이끌리듯 들어간 율리에는 마음이 동하는 대로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시간을 보낸다. 거기서 만난 에이빈드에게 친밀감을 느끼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에 아쉽게 헤어진다. 하지만 우연한 재회에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 두 사람은 각자의 애인과 이별을 결심한다.

모든 것이 채워지는 완벽한 관계가 존재할 수 있을까. 지적인 예술가 악셀과는 언어로 친밀한 소통이 가능했던 반면 불확실 속에 쌓아가는 발견과 즐거움은 없다. 어리숙해 보이는 에이빈드와 함께 만들어가는 생활은 단순하고 유쾌하지만 거기엔 악셀과 공유했던 지적 취향과 대화가 부재한다. 영화는 어떤 사랑이든 결핍이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인생에는 혼자 직면하고 메꿔 가야 하는 결핍과 빈 채로 받아들여야 하는 결핍도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에이빈드와 사이도 삐걱거릴 즈음 예기치 않은 임신과 악셀의 암 투병 소식을 접하는 율리에. 그녀는 죽음과 탄생이라는 삶의 커다란 주제를 한꺼번에 끌어안고 힘겨운 시간을 보낸다. 그녀에게 삶의 전환점은 찾아올까.

서툴더라도 선택하고 도전하는 율리에
 
 자신을 찾기 위해 불확실한 삶으로 뛰어들 줄 아는 율리에.

자신을 찾기 위해 불확실한 삶으로 뛰어들 줄 아는 율리에. ⓒ 그린나래미디어㈜

 
12개의 장과 프롤로그, 에필로그로 이루어진 영화는 한 편의 소설처럼 율리에의 삶을 보여준다. 자아실현을 위해 방황하고 관계를 통해 자신의 본모습을 발견하며 삶의 방향을 탐색해야 하는 시기, 이삼십 대가 겪는 통과의례를 트렌디한 시선으로 담고 있다. 율리에 역의 레나테 레인스베가 발산하는 사랑스러움은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라는 영화 한 편을 보는 경험은 율리에라는 여성을 처음 만나 서서히 알게 되고 이해하면서 사랑에 빠지고 마는 경험이 아닐까 싶다.

이 영화는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데뷔작인 <리프라이즈>(2006)와 <오슬로, 8월 31일>(2011)과 더불어 오슬로 3부작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만큼 그만의 감성으로 담아낸 오슬로의 구석구석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크다. 유난히 붉게 번지는 노을, 밤이 되어도 완전히 짙어지지 않는 어둠 등, 북유럽 만의 이질적인 스펙트럼과 층을 보여주는 빛을 통해 도시에 대한 호기심과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빠져들다 보면 낮과 밤의 변화, 장소의 이동, 배경의 분위기가 주인공의 감정과 섬세하게 결을 같이 한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주인공의 감정이 결정적인 변화를 겪는 지점이 공간의 변화와 맞물려 있고, 오슬로라는 도시를 걸으며 익숙해진 공간을 떠나거나 낯선 공간과 공명하면서 율리에가 성장의 계기를 직면하기 때문일 테다. 어머니의 집에서 학교, 학교에서 악셀의 집, 파티장(들), 그리고 에이빈드의 집, 마침내 자신의 집을 마련하기까지, 공간의 전환은 성장의 추동력처럼 느껴진다.

에필로그에는 사진가로 안착한 율리에가 등장한다. 자신의 삶에서 적절한 자리를 찾은 듯 보인다. 불안과 결핍을 채우기 위해 관계에 매달리지 않고 일과 혼자만의 삶에서 균형을 이룬 것 같다. 어떤 타이밍에 다시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가족을 이루는 선택을 할지 모르지만 홀로 있는 그녀로도 충분한 느낌이다. 그리고 자신을 믿으며 삶을 선택해 갈 그녀의 미래를 믿게 된다. 우연한 선택이 일으킨 삶의 파장 안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그녀를 목격했기 때문일 테다.  

시간과 사건의 우연한 만남이 인생의 향방을 정하기도 한다. 삶의 가능성에 대한 우연한 발견, 파티장과 서점에서의 우연한 만남, 우연한 글쓰기, 우연한... 하지만 그 모든 걸 '타이밍'의 문제라고 간단히 말할 수 없는 건 인간이 지닌 모순 때문 아닐까.

정착을 확신하던 악셀이 자신에 대한 불신과 율리에의 예측 불가한 면모에 대한 사랑을 고백할 때, 아이를 원치 않는다던 에이빈드가 아빠가 되어 등장할 때, 이상한 다행감이 스며든다. 우리 모두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이상하고 엉뚱하며, 그래서 실수하고 후회할 선택을 한다는 걸 영화는 보여준다. 그건 타이밍이 맞아 최선의 선택을 한다 해도 우리 내부의 모순과 삶의 우연성으로 예상 밖의 시련은 닥칠 거라고 예감하게 하고. 

인생이란 어떤 가능성의 우연한 발로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그것만이 우리의 삶이다. 온전히 살아냄으로써 우연은 운명이란 이름으로 다시 쓰이기도 한다. '살아냄'은 '사랑'의 다른 표현일 테고. 우리의 현재를 사랑할 수 있다면, 부족해 보이는 지금일지라로 활짝 끌어안을 수 있다면. 혼돈으로 엉망인 삶도 사랑의 방식으로 진실한 내 것이 된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고 인간은 모순적이다. 삶의 시기마다 혼돈은 있다. 그 리듬에 한껏 흔들리는 율리에는 사랑스럽고 겸허히 몸을 낮추는 악셀은 아름답다. 탄생을 포옹하는 에이빈드의 선택은 따스하고.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하지만 최악인 상태로도 온전해질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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