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더 포토그래퍼> 포스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더 포토그래퍼> 포스터. ⓒ 넷플릭스

 
1997년 1월 25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주의 대서양 연안 해양 도시이자 대표적인 휴양지 피나마르에서 극악무도한 사건이 터진다. 주로 정치적인 이슈를 다루는 유력 잡지 <노티시아스>의 사진 기사 '호세 루이스 카베사스'가 살해된 것이었다. 그는 납치되어 두 손에 수갑이 채워진 채 구타·고문당한 후 머리에 총 두 발을 맞고 차 안에서 불태워진 상태로 발견된다. 

발견 당시 시체는 신원을 특정하기 힘들 정도로 훼손된 상태였기에 고인이 카베사스라는 걸 알기 힘들었지만 불탄 차 안에서 함께 발견된 필름, 부츠, 시계, 열쇠 덕분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수갑이 발견되었는데, 카베사스가 납치당했다는 걸 알려 주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납치살해범 측에서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수갑은 경찰만 쓸 수 있는 것이기에 경찰 쪽으로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더 포토그래퍼: 호세 루이스 카베사스 살인사건>(이하 <더 포토그래퍼>)은 1990년대 아르헨티나를 송두리째 뒤흔든 최악의 사건을 다뤘다. 사진 기사 카베사스를 납치해 살해하고 불태우기까지 한 범인의 뒤에 당시 아르헨티나 정치 공작의 핵심 인물들이 얽히고설켜 있었으니 말이다. 참으로 암담한 나라의 암담한 시절이자 암담한 사건이었다. 

카베사스 살인사건 이후

사건 후 아르헨티나 메넴 대통령은 이 사건은 부에노스아이레스주의 일일 뿐이지 정치적인 사건이 아니라고 재빠르게 선을 긋는다. 그 자체로 이 사건은 정치적인 사건이 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이후 두알데 부에노스아이레스주 주지사는 두렵고 당황한 듯했다. 모든 이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릴 게 확실해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아르헨티나 정치 상황은 '메넴 vs. 두알데'의 양상을 띄고 있었다. 두알데로서는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야 하는 시기에 너무나도 큰 사건이 터진 것이었다. 메넴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당시 아르헨티나의 암울한 정치 상황을 그가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혹여 카베사스 살인사건이 정치적인 사건으로 비화될 때 모두의 시선을 그로 향할 것이었다. 

한편, 사건 이후 아르헨티나 전 국민이 거리로 나와 그를 기리며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당대 가장 많은 판매부수를 자랑했던 잡지사의 사진 기사가 처참하게 살해 당했는데 그 누가 안전하다고 느끼겠는가. 사실상 국민 모두가 잠정적 테러 대상이나 다름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이전에도 몇 차례가 석연치 않은 사건이 터져 진상규명이 되지 않은 채 지나갔었다. 그렇게 쌓이고 쌓이다가 터져 버렸다. 

카베사스 살인사건의 배후

두알데 주지사는 발빠르게 대응하여, 전 국민 대상으로 현상금을 걸었고 강력한 용의자가 붙잡힌다. 마르 델 플라타에서 온 마르가리타와 페피토였는데 수색 과정에서 발견된 총이 피해자의 두개골에서 발견된 납 조각과 일치했던 것이다. 사건은 종결을 향해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때 카베사스 유족은 변호사를 고용한다. 

그런데 사건이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보고서도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메넴 대통령이 보낸 정부의 고위 관료 두 명, 카를로스 코락 내무부 장관과 알베르토 코안 사무총장이 법원 앞에서 판사를 무시하고 사건이 해결되었다며 기자회견을 한 것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주의 책임이라고 다시 한 번 선을 긋기도 했다.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다. 

왜 그렇게 서두르는지 알 수 없었는데 메넴 대통령 측에서 사건을 서둘러 덮으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메넴 대통령과 관련이 있는 자가 카베사스 살인사건의 배후에 있다는 걸 강력하게 암시하고 있었다. 카베사스의 동료들, <노티시아스>의 기자들은 그 배후로 '샤브란'을 지목했다.

샤브란은 군부 독재 정권과 사업을 했고 민주 정부 시절에도 인맥을 유지했는데, 그야말로 아르헨티나 권력의 중심이자 최정점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었다. 그는 수없이 많은 사업체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어떤 물건이 아르헨티나에 도착하면 그 어떤 중개업자도 거치지 않고 샤브란의 회사만 통한다'고 했다.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일어나선 안 되는 일

다름 아닌 <노티시아스>, 그중에서도 특히 사진기사 카베사스가 바로 그 샤브란을 취재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매달렸다. 샤브란의 엄청난 영향력을 둘러싼 정치 권력자들의 암투가 아르헨티나를 뒤흔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게 베일에 가려진 샤브란, 정보 기관도 그의 사진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정도였다. 그런 샤브란의 정면 사진을 1996년 2월 카베사스가 기어코 찍어 <노티시아스> 표지에 실리게끔 한다. 샤브란의 사업 전반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도 함께였다. 

<노티시아스> 기자들은 샤브란에 관한 조사를 이어 갔고 인터뷰도 성공한다. 이들은 인터뷰에서 나중에 후회하길 "미쳤는지 (머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너무 깊이 들어가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이후 알 수 없는 위협과 공격을 받았지만 크게 대수롭지 않게 넘겼고, 1년여 후인 1997년 1월 카베사스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진범은 앞서 잡힌 마르가리타와 페피토 일당이 아니었는데, 진범이 배후를 자세히 내뱉으며 사건이 종결을 향해 나아갔다. 배후는 모두의 예상대로 샤브란이었고 전직 경찰들이 포진되어 있었다. 

이후 수사망이 좁혀지자 샤브란은 도망쳤는데 오래 가지 않아 체포될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죽어 더 이상 이 세상에 없게 된 것이다. 1990년대 말 아르헨티나를 뒤흔든 사건이 그렇게 끝났다. 한편, 카베사스 살인에 직접적으로 가담한 모든 이를 잡아 대부분 종신형을 내렸지만 오래지 않아 모두 풀려났다고 한다. 그리고, 차기 대권을 놓고 치열하게 다툰 메넴과 두알데 둘 다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국민들의 심판을 톡톡히 받은 것이다. 

호세 루이스 카베사스 살인사건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절대 일어날 수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20세기 말에 일어났다고 하기에 도무지 믿기 힘든 사건의 전말이기도 한대, 국민들 덕분에 엄폐될 뻔한 사건의 배후가 밝혀지고 관련자(권력자)들이 더 이상 권력을 부리지 않게 심판한 것이 끝맺음되어 한시름 놓은 것 같다. 하지만, 비슷한 사건은 언제든 어디서나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권력자는 자신의 권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아야 할 것이고 시민은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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