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용균 감독, 임안자 평론가
한국영상자료원 소장자료(임안자)
1980년대의 마지막 해였던 1989년, 대구에서 제작된 영화 한 편이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해 로카르노국제영화제 황금표범상, 감독상, 촬영상, 청년 비평가상 수상과, 제42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Un Certain Regard) 부문 수상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었다.
충무로라는 한국영화 중심을 벗어나 지역에서 제작된 영화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전례가 없는 이변이었다. 1989년은 충무로에서 작은영화·소형영화로 불리던 영화들이 독립영화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 시기였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대구에서 창작된 첫 독립영화로서 대구영화의 상징으로 부각된다.
1990년대 지역 영화운동의 특징은 서울을 중심으로 축적된 영화운동의 성과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개혁적 젊은 영화인들이 구체제에 맞서 충무로의 진보영화 전선을 확대해가는 과정에서 뒤늦은 출발이 이뤄졌다는 데 있다.
하지만 지역 영화운동은 대부분 사회변혁운동으로서의 영화보다는 새로운 영화에 대한 갈증을 바탕으로 했기에 주로 시네마테크 성격이 강했다. 그렇다고 군사독재 시기 정치·사회적 현실에 대해 방관한 것은 아니었다. 심의라는 이름으로 위장된 검열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이를 돌파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은 1987년 6월항쟁 이후 민주화가 진행되고 있던 시대적 흐름을 잇고 있었다.
운동으로서의 영화가 도드라진 것은 아니었으나 기본적으로 저항정신이 내재돼 있었다. 1980년대 민주화 투쟁 이후 불어닥친 문화개방 흐름에 맞춰 질적으로 저하된 기존 한국영화 대신 새롭고 다양한 영화를 추구하던 열정이 영화운동을 형성하고 발전시킨 것이다.
대학 영화동아리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후 중요한 변화는 대학가에 영화동아리가 등장한 것이었다. 비록 1980년 서울대 얄라셩 이후 1985년 서울지역 대학 영화서클(동아리)이 집중적으로 생겨났던 것과 비교하면 다소 늦은 출발이었으나, 1989년에서 1990년대로 접어들며 여러 대학에서 영화동아리가 등장한 것은 특별했다.
1990년대 중반 대학 영화동아리는 경북대 꿈틀, 빛그림, 계명대 햇살, 한누리, 대구대학교 영화세상, 경북산업대학교(현 경일대학교) 시넬레온, 계명전문대 사진영상과 영상클럽 아이콘 등이 존재했다.
가장 먼저 만들어진 것은 계명대 햇살로 1988년 준비작업을 통해 사진 전시회를 개최했고, 집회 때 영화상영을 하는 활동을 하다 1989년 정식 동아리가 됐다. 노동자뉴스제작단이 만든 16mm 비디오로 만든 <전국노동자뉴스> 등을 상영했고, 매년 영화제를 개최했다.
경북대학교 꿈틀은 비디오 영상 동아리로 1990년 10월 31일 창립했고, 매해 비디오 영화 발표회와 만화영화제(1994년)를 만들었는데, 단편영화를 비디오로 제작했다. 꿈틀에서 만들어진 비디오 영화는 <또는 어떻게 내가 걱정을 멈추고 지구를 사랑하게 되었는가>(11분 25초. 1993년 5월, 한받 연출), <아 대한민국> (4분 25초. 1994년 11월, 연출 노재원·박범필·최진호),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8분 10초. 1995년 11월. 연출 정승렬) 등이었다.
경북대 영화동아리 빛그림은 1993년 5월 정식 동아리 인정받은 후 가을부터 비디오 창작활동 시작했다. 1994년 봄 서울예전(현 서울예대) 영화과와 단편영화제 개최를 시작으로 봄 가을에 영화제 개최했다. 1994년~1995년 비디오 영화 <노을에 기댄 이유>, <블루 시티>, <깨달음> , <?>, <머리가 약한 사람들>, <페널틱 키커의 불안> 등을 제작했다.
이들 대구지역 대학 영화동아리의 주된 활동은 비디오 영화제작이었다. 다른 지역보다 비디오 카메라를 제작에 활용한 것은 대구의 특징이었다.
경북산업대 영화동아리 시넬레온 1994년 6월 만들어져 1995년 3월 본격적 활동을 시작했고, 비디오 영화 <옛것을 찾아서-우리의 소리>를 제작했다. 계명전문대 사진영상과 영상클럽 아이콘은 1994년 3월 시작돼 CF와 영화 전반에 대한 학습과 함께 비디오 <노을에 기댄 이유> < 5월 소냥도, Sognando > 등을 제작했다
계명대에는 햇살 외에 한누리가 1992년 결성돼 1993년 회원모집에 들어가 1994년 실질적 활동을 시작했다. 대구대 영화세상은 1985년 야학 봉사활동으로 시작된 동아리가 1993년 영화와 연극을 공부하면서 1994년 영화로 방향을 전환한 경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