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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영화계 진보와 보수의 비율을 9:1이라고 한다. 그만큼 영화계는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이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보수정권 시절 '블랙리스트'에 영화인 대다수가 이름을 올릴 정도로, 저항은 거셌다. '한국영화운동 40년'에선 몇 차례에 걸쳐 한국영화운동에 대해 돌아본다.
성하훈 기자
영장 없는 필름 강탈에 항의하자 연행...시네마테크의 수난
[한국영화운동 40년_18] 시네마테크 다진 영화공간1895-씨앙씨에-문화학교 서울
'여자들끼리 모였으니...', 그 말에 분노했고 독해졌다
[한국영화운동 40년_17] 여성영상집단 바리터로 시작된 여성영화운동
영화 촬영 중 경찰에 연행... 강제징집에 고문까지
[한국영화운동 40년_16]부산영화운동2_영화패 살리라와 영상패 꽃다림
"나 아니면 누가 돕겠나?" 반대 물리친 프랑스문화원장
[힌국영화운동 40년 ⑮] 부산영화운동1- '부산씨네클럽'과 '씨네마테크 1/24'
담 넘어 들어가 녹음해서 제작... 비디오카메라의 힘
[한국영화운동 40년 ⑭] 민족영화연구소와 노동자뉴스제작단
"고난의 행군 같았다" 노동영화 역작, '파업전야'의 시작
[한국영화운동 40년 ⑬] 공연윤리위원회 해체시키고 검열 폐지 이끌어낸 '장산곶매'
검열에 고발에 보안사까지... 5·18 광주영화 수난사
[한국영화운동 40년⑫] 스크린으로 전하고자 했던 5월 광주의 진실
'전두환 독재 반대' 한국영화 첫 시국성명, 시작은 이랬다
[한국영화운동 40년 ⑪] 충무로라는 토양에 영화운동의 새로운 싹을 틔우다
'시나리오 검열'에 졸업작품 거부... 그들이 걸어온 길
[한국영화운동 40년 ⑩] 충무로 진입 통로된 한국영화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