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송일국의 어머니이자 대한·민국·만세 삼둥이의 할머니이기도 한 김을동 배우는 1980년대 연기자로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1991년 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물론 당시에도 연예인들의 정치도전은 종종 있었지만 김을동 배우의 정치입문은 대중들에게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김을동 배우의 아버지는 바로 정치깡패 출신으로 재선 국회의원을 지낸 '장군의 아들' 고 김두한이기 때문이다.

사실 해방 이후 본격적으로 정계에 뛰어든 '정치인 김두한'에 대한 평가는 긍정과 부정이 엇갈린다. 김영삼 정부에서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을 역임했던 고 권오기 전 장관은 김두한을 "시원시원한 말투와 예의를 지닌 호감 가는 사람"이라고 회상한 반면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자신의 이름보다는 '장군의 아들'이란 아버지의 후광 속에 들어가야만 빛을 발하는 존재"라고 평가했다.

워낙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인물답게 김두한은 사후 여러 창작물을 통해 다시 등장했다. <실록 김두한>과 <김두한과 서대문1번지> <야인시대>처럼 김두한이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나 드라마도 있었고 <무풍지대>와 <제1, 2, 3공화국> <왕초>처럼 주인공의 주변인물로 등장한 작품도 있었다. 그리고 1990년에는 한국영화의 거장 임권택 감독이 김두한의 청년시절을 다룬 액션영화 <장군의 아들>을 만들었다.
 
 80년대 예술영화를 주로 만들었던 임권택 감독은 <장군의 아들> 한 편으로 단숨에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감독이 됐다.

80년대 예술영화를 주로 만들었던 임권택 감독은 <장군의 아들> 한 편으로 단숨에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감독이 됐다. ⓒ 태흥영화(주)

 
'예술영화전문' 임권택 감독이 만든 액션영화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한 임권택 감독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주로 반공, 반일을 주제로 한 양산형 영화들을 찍었다. 1970년부터 1979년까지 10년 동안 무려 40편의 영화를 연출했으니 그 시절 임권택 감독은 예술가라기 보다는 '영화공장 공장장'에 가까웠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물론 임권택 감독은 다작을 하면서 배운 영화에 대한 공부와 시행착오가 훗날 연출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많은 영화를 만들며 경험을 쌓은 임권택 감독은 1980년대부터 대한민국의 전통을 돌아보는 예술영화에 심취했고 1981년 <만다라>, 1985년<길소뜸>으로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는 성과를 만들었다. 그리고 1986년에는 조선시대 대리모 문제를 다룬 영화 <씨받이>를 연출해 베니스 영화제에 진출했고 주인공이었던 고 강수연이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1989년에는 <만다라>에 이은 임권택 감독의 두 번째 불교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가 모스크바 영화제에 초청됐고 강수연이 또 한 번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렇게 1980년대 내내 예술영화에 매진하던 임권택 감독은 1990년 쉬어가는 의미로 신인 배우들을 대거 캐스팅해 김두한을 주인공으로 한 액션영화를 연출했다. 서울에서만 67만 관객을 동원하며 당시 한국영화 최고 흥행기록을 세운 <장군의 아들>이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1992년까지 3편의 <장군의 아들> 트릴로지를 완성한 임권택 감독은 1993년 <서편제>를 통해 한국 영화 최초로 서울 100만 관객을 동원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2000년 조승우의 데뷔작 <춘향뎐>으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임권택 감독은 2002년 <취화선>을 통해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물론 당시 '공로상 같은 감독상'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이는 그만큼 세계 영화계에서 임권택 감독이 차지하는 위상이 높았다는 뜻이다.

2007년 100번째 장편영화 <천년학>, 2011년 <달빛 길어올리기>를 연출한 임권택 감독은 2015년 <화장>을 선보이면서 본인의 마지막 영화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어느덧 80대 후반이 된 임권택 감독의 나이를 생각하면 그가 다시 현장으로 돌아올 확률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임권택 감독의 복귀여부를 떠나 그가 오늘날 한국영화의 봄날이 오기까지 초석을 쌓은 일등공신임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주인공은 물론 조연까지 신인으로 캐스팅
 
 <장군의 아들>은 거지패였던 김두한이 주먹패에 들어가 조선최고주먹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다룬 작품이다.

<장군의 아들>은 거지패였던 김두한이 주먹패에 들어가 조선최고주먹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다룬 작품이다. ⓒ 태흥영화(주)

 
<은교>의 김고은과 <아가씨>의 김태리, <마녀>의 김다미처럼 연기경험이 거의 없는 신인을 파격적으로 주인공에 캐스팅하는 영화는 지금도 종종 있다. 하지만 <장군의 아들>처럼 당대 최고의 감독이 주요인물들을 전부 신인급으로 채우는 영화는 당시는 물론 최근에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지금으로 치면 봉준호 감독이 대중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신인들을 캐스팅해 천만 영화를 만든 것이나 다름 없는 대형사건이었다.

실제로 <장군의 아들>에는 김두한 역의 박상민을 비롯해 하야시 역의 신현준, 김동회 역의 고 이일재, 신마적 역의 김형일, 쌍칼 역의 김승우 등 주요 인물들 대부분이 <장군의 아들>을 통해 연기자로 데뷔했다. 심지어 <장군의 아들>에는 지금은 대배우가 된 황정민이 우미관 지배인 역으로 전설의 액션 감독이 된 정두홍이 얼굴 한 번 제대로 나오지 않는 액션배우로 출연했다(정두홍은 2편에서 드디어 대사가 있는 배역을 따냈다).

2002년 드라마 <야인시대>가 시청률 50%를 넘기며 국민적인 사랑을 받자 '안재모의 김두한'과 '박상민의 김두한'을 비교하기 위해 <장군의 아들>을 다시 찾아본 관객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두 작품은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꽤 많다. <야인시대>에서 우미관의 원래주인이었던 구마적은 <장군의 아들>에서 신마적에게 패해 초반에 퇴장했고 <장군의 아들>의 주요인물인 김동회나 무사시(손호균 분)는 <야인시대>에서는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1990년대 초반 영화인 데다가 배우들이 대부분 신인이라 <장군의 아들>은 후시 녹음으로 만들어졌는데 김두한의 목소리는 박상민이 아닌 백순철 성우가 연기했다(2편과 3편에서는 <도가니>의 쌍둥이 역할로 유명한 장광 성우가 김두한의 목소리 연기를 했다). 이 밖에 모든 대사가 일본어인 하야시 역할도 일본인 성우가 따로 더빙을 했고 중저음의 멋진 목소리를 가진 김동회 역도 이성 성우(1, 2편)와 김태연 성우(3편)가 후시 녹음을 했다.

아쉬운 부분은 3편까지 제작된 <장군의 아들>이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흥행성적이 점점 떨어졌다는 점이다. 1편에서 67만 관객을 모은 <장군의 아들>은 2편에서 절반에 가까운 35만으로 관객이 뚝 떨어졌고 1992년에 개봉한 3편에서는 다시 16만 관객으로 1편의 1/4에도 미치지 못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장군의 아들3>는 서울에서만 52만 관객을 기록한 최민수, 심혜진 주연의 <결혼이야기>와 경쟁하면서 흥행에서 더 큰 손해를 봤다.

쌍칼-신마적, '청년 김두한'의 두 정신적 지주
 
 무사시와의 대결에서 패해 만주로 떠난 쌍칼은 <장군의 아들3>에서 만주로 도망온 김두한과 재회한다.

무사시와의 대결에서 패해 만주로 떠난 쌍칼은 <장군의 아들3>에서 만주로 도망온 김두한과 재회한다. ⓒ 태흥영화(주)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은 "만주에는 독립군들이 싸우고 있지만 우리도 일본인들로부터 조선의 심장인 종로를 지키는 거리의 독립군이다"라는 쌍칼(박준규 분)의 말에 감복해 주먹패에 합류한다.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도 김두한을 주먹패로 끌어들인 인물은 쌍칼인데 그만큼 김두한에게 쌍칼은 정신적 지주 같은 인물이다. <장군의 아들>에서는 영화 중반 무사시와의 대결에서 패하며 만주로 떠난다.

<야인시대>에서 최철호가 연기한 신마적은 언제나 술에 취한 채로 일본인들에게 시비를 걸고 다니는 다혈질의 무뢰한 같은 인물로 나온다. 하지만 <장군의 아들>에서 신마적은 매우 젊잖고 김두한을 특별히 아끼는 신사적인 인물로 나온다. 김두한 역시 신마적과의 첫 만남에서 그의 명성을 알고 있다는 듯 무릎을 꿇고 술잔을 받았을 정도. 신마적은 영화 후반부 김두한에게 "너는 '장군의 아들'이다"라는 결정적인 대사를 하는 인물이다.

신마적을 연기한 김형일은 <장군의 아들>에서 목소리를 더빙한 전문 성우들 못지 않은 멋진 목소리를 가진 배우로 실제 배우 데뷔 전 성우로 먼저 활동한 경력이 있다. 2000년 <태조왕건>에서 신승겸을 연기하면서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김형일은 1994년 드라마 <한명회>와 1998년 <왕과 비>에서 똑같이 홍윤성 역을 맡기도 했다. 2005년에는 <제5공화국>에서 전중앙정보부장 김재규를 연기한 배우로도 유명하다.

주먹패들과 야쿠자들만 잔뜩 등장하는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화자를 연기한 방은희는 실질적인 여자 주인공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화자는 폐병 걸린 남편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술집에 나가는 유부녀로 최종적으로 김두한과 맺어지진 못했다. 방은희에게도 <장군의 아들>은 실질적인 영화 데뷔작이었는데 방은희는 <장군의 아들> 이후 <구미호> <넘버3> <억수탕>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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