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공식 포스터물 밖으로 나온 고래처럼 영우는 뭍에 적응하려면 아직 배울 것이 많다
ENA
소설 <모비딕>에서 자신을 비롯하여 자신의 종족을 사냥하고 학살하는 포경선을 향해 이 돌연변이 고래는 바닷속 깊은 곳으로 도망가거나 피하지 않고 인간과의 정면승부를 택한다. 고래를 잡는 포경선과 인간의 오만은 드라마에서 장애를 비롯한 여러 소수자를 향한 사회의 편견과 억압으로 재구성된다. 그리고 이런 편견과 억압을 변호사 우영우는 어떻게 정면 승부하며 돌파하는지를 소송에 휘말린 사람들의 사연을 통해 하나하나 펼쳐 보인다.
드라마 제1화에서 고령의 노인 영란(강애심 분)이 화가 나서 휘두른 다리미에 남편이 크게 다쳐 살인미수죄로 재판이 시작되지만 남편이 재판 도중 그만 숨지게 되어 살인죄로 죄목이 변경된다. 자기 자신을 물리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방어하기 힘든 고령의 노인이면서 반평생 남편에게 폭언과 폭행에 시달렸으나 묵묵히 참고 견디다가 단 한 번의 실수로 재판정에 서게 된 영란을 변호하게 된 우영우는 기지를 발휘해 무죄를 입증해 낸다. 변호사로서 영우가 처음 맡은 사건이 자신이 어릴 적 커서 변호사가 되라고 처음 말해 준 집주인 영란의 재판이기에 끝에 닿은 감동은 더 배가 된다.
제2화에서는 결혼식장에서 드레스가 벗겨져 상반신이 노출된 신부 화영(하영 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종교의 배타성, 결혼의 의미, 성소수자의 행복할 권리 그리고 직장 상사의 갑질 등 보다 심층적인 주제들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가 사려 깊다는 것은 화영의 신분 설정과 성 정체성에서 엿볼 수 있다. 화영은 재벌가에 시집가는 상류층 자제이지만 화려한 삶과는 달리 결혼에 대한 선택권도 없고 사랑하는 사람과 당당히 사랑할 수도 없는 성소수자이기도 하다. 사회에서 억압받는 소수자는 신분이나 경제력과 상관없이 어느 누구나 될 수 있다는 균형적인 시선이 이 드라마를 더욱 빛나게 한다.
주인공 영우는 법이라는 커다란 울타리 안에서 억울한 이들의 사연을 때로는 정확한 법률 지식으로, 때로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통찰력으로 사건 이면에 담긴 진실을 찾아내고 해결 방법을 제시한다. 이런 사건과 사건 사이에서 영우 또한 자폐성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서 겪고 극복해야 할 내적이고 외적인 벽들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드라마는 마치 왈츠처럼 경쾌하면서도 즐겁게 풀어나간다.
이 드라마가 <모비딕>에 근간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극 중 영우가 고래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뽐낼 때 더 잘 드러난다. 소설 역시 바다와 선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 못지않게 고래의 생태에 대해 마치 동물학 논문처럼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의 작가가 그러하듯 영우 또한 사람들에게 고래의 이야기를 할 때 가장 행복하다. 그러나 회사에서 업무와 관련 없는 고래 이야기는 금지 사항이라 이를 자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영우의 모습은 천진난만하기까지 하다. 극을 심각하게 이끌지 않으면서 에피소드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위화감 없이 설득하는 데에는 우영우를 맡은 배우 박은빈의 공이 크다. 상큼하고 천진하고 순수하고 천재적인 이 역할을 과연 이렇게 소화할 배우가 누가 있을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고래와 왈츠를 추는 따듯한 세상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