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들을 보면 원작이 있는 작품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할리우드의 슈퍼히어로 영화는 이미 마블과 DC코믹스라는 미국의 양대 코믹스 회사가 양분한지 오래다. 작년 극장가에 대이변을 일으키며 세계적으로 4억5000만 달러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 코로나19 시대의 극장가 침체를 피해갔던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을 비롯한 일본 애니메이션들도 원작 만화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국내에서는 최근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들이 대거 제작돼 큰 사랑을 받고 있다. 200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강풀 작가의 웹툰을 영화화한 <아파트>,<순정만화>,<바보> 등이 흥행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엔 '쌍 천만 영화'가 된 <신과 함께> 시리즈를 비롯해 <은밀하게 위대하게>,<내부자들> 등이 크게 흥행하면서 인기 웹툰의 판권을 따내려는 영화와 드라마 제작사들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사실 한국에서 인기만화가 영화화됐던 것은 20세기 '출판만화시대'부터 종종 있었던 일이다. 이현세 작가의 대표작 <공포의 외인구단>과 <지옥의 링>은 80년대 영화화됐고 배금택 작가의 <변금련>과 <영심이>, 김혜린 작가의 <비천무> 등도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했다. 하지만 한국의 만화가 중에서 영화 쪽과 가장 인연이 깊은 작가는 단연 8편의 영화가 영화로 제작된 '한국 만화계의 대부' 허영만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식객>은 일반관객과 원작팬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크게 갈린 영화였다.

<식객>은 일반관객과 원작팬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크게 갈린 영화였다. ⓒ CJ엔터테인먼트

 
8편이 영화화된 대한민국 대표 만화가

만화를 좋아하지 않는 대중들에게는 '금요일 저녁마다 전국의 맛집을 찾아 다니는 할아버지'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허영만 작가는 대본소 시절부터 만화잡지 시절, 그리고 웹툰 시절을 모두 경험한 한국 만화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허영만 작가는 80년대부터 <각시탈>이 반공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고 1990년 KBS에서 방영된 애니메이션 <날아라 슈퍼보드>는 4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1995년 <아스팔트 사나이>가 드라마로 만들어졌던 허영만 작가는 같은 해 김명곤, 박상민 주연의 <48+1>이 처음 영화로 제작됐지만 서울관객 1만3000명으로 흥행 참패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하지만 2년 후 허영만 작가의 원작을 각색해 만든 정우성과 고소영 주연의 영화 <비트>와 김민종,김희선 주연의 드라마 <미스터 큐>가 큰 사랑을 받으면서 허영만 작가의 만화는 다시 영화와 드라마의 소재로 가치가 급상승했다. 

2004년에는 만화 주간지 '아이큐 점프'에서 연재되던 <망치>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고 2006년에는 1999년부터 2003년까지 4부에 걸쳐 연재됐던 <타짜>가 최동훈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타짜>는 원작의 설정과 새로운 이야기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면서 등급의 한계를 극복하고 전국 680만 관객을 동원하며 크게 흥행했다. 그리고 2007년 허영만 작가의 또 다른 대표작 <식객>이 관객들에게 선을 보였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무려 8년에 걸쳐 연재됐던 <식객>은 전윤수 감독이 연출하고 김강우,이하나,임원희 주연으로 2007년에 개봉했다. <식객>은 허영만 작가 원작의 <타짜>에 비해 상대적으로 캐스팅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화려한 색감과 뛰어난 영상미로 전국 3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허영만 작가의 대표작 <타짜>와 <식객>은 2008년 SBS에서 나란히 드라마로도 제작·방영됐다.

허영만 작가는 2010년대에도 카페를 소재로 한 <허영만의 커피 한잔 할까요?>와 주식을 소재로 한 <허영만의 3000만원>,<허영만의 주식타짜> 등을 연재했다. 허영만 작가는 지난 2019년부터 <허영만의 백반기행>을 진행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고 있지만 영화계는 2013년 <미스터 고>와 2014년 <타짜: 신의 손>, 2019년 <타짜: 원 아이드 잭> 등 허영만 작가의 작품들을 꾸준히 영화로 제작하고 있다.

김강우-이하나 '주연 영화' 중 최고 흥행작
 
 <식객>은 영화화되는 과정에서 성찬(왼쪽)과 오봉주의 요리배틀물로 장르가 변했다.

<식객>은 영화화되는 과정에서 성찬(왼쪽)과 오봉주의 요리배틀물로 장르가 변했다. ⓒ CJ엔터테인먼트

 
<식객>은 햇수로 9년 동안 연재되면서 27권의 단행본이 출간될 정도로 오랜 기간 큰 사랑을 받은 명실상부한 허영만 작가의 대표작이다. 하지만 주인공이 최종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여느 만화들과 달리 <식객>은 성찬이라는 주인공이 전국팔도의 맛있는 음식들과 그 음식에 얽힌 숨은 이야기들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만화다. 바꿔 말하면 영화로 각색하기 썩 좋은 소재의 만화는 아니라는 뜻이다.

이에 영화 <식객>은 라이벌 성찬(김강우 분)과 오봉주(임원희 분)가 조선시대 마지막 대령숙수(궁중의 잔치요리를 만들던 남자요리사)의 칼을 얻기 위한 요리대회에 참가해 경쟁하는 '요리 배틀물'이 됐다. 여기에 숯 대결과 고구마 에피소드, 소고기 정형 등 많은 독자들을 감동시켰던 원작의 에피소드들을 녹여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물론 '원작파괴'가 심하다는 팬들의 비판도 있었지만 흥행에 성공했으니 결과적으로는 꽤나 적절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초창기 작품인 <실미도>를 통해 한국 최초의 천 만 배우가 된 김강우는 이후 주연으로 출연한 대부분의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영화계에서 선구안이 좋지 않은 대표적인 배우가 됐다. 하지만 <식객>은 김강우가 주연을 맡은 영화 중에서 유일하게 전국 관객 300만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김강우는 <식객>을 통해 얻은 경험을 살려 2018년 예능프로그램 <현지에서 먹힐까?> 중국편에서 이연복 셰프의 보조셰프로 활약했다.

손예진의 20대 시절 인생작 <연애시대>에서 손예진의 동생 유지호 역으로 인상적인 데뷔를 한 이하나는 2007년 <식객>에서 요리대회를 취재하는 열혈 VJ 김진수 역을 맡아 관객들에게 유쾌한 웃음을 선사했다. <먼지가 되어>를 만든 작곡가 이대헌의 딸이자 대학에서 생활음악학을 전공한 이하나는 <식객>에서도 엔딩곡 <맛있는 세상>을 직접 부르며 뛰어난 노래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크고 작은 논란 속에도 3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한 <식객>은 3년이 지난 2010년 김정은과 진구,왕지혜 주연의 속편 <식객: 김치전쟁>이 개봉했다. 주인공 이름이 성찬과 진수라는 점을 제외하면 전편과 크게 접점이 없었던 <식객: 김치전쟁>은 전국 47만 관객에 그치며 흥행에 실패했다. 설상가상으로 <식객: 김치전쟁>을 공동 연출했던 백동훈,김길형 감독은 <식객: 김치전쟁> 이후 그 어떤 장편영화도 만들지 못했다.

카메오 출연해 중요한 스포(?)를 해버린 원작자
 
 8편의 작품이 영화화된 허영만 작가가 카메오로 출연한 영화는 <타짜>와 <식객>뿐이다.

8편의 작품이 영화화된 허영만 작가가 카메오로 출연한 영화는 <타짜>와 <식객>뿐이다. ⓒ CJ엔터테인먼트

 
지금은 서울대 인문대학에 입학한 수재 아들을 둔 아버지로 더 유명해진 정은표는 2000년대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활발하게 활동하던 신 스틸러 배우다. <식객>에서는 성찬의 친한 형이자 성찬이 사는 마을의 이장인 호성 역을 맡아 군대 후임 우중거 역의 김상호와 유쾌한 코믹연기를 선보였다. 정은표는 KBS드라마 <미남당>에서 성공에 대한 욕망이 넘치는 경찰서장을 연기하며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식객>에는 '정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 배우가 함께 출연한다. 조선의 마지막 대령숙수로부터 비전지탕(알고 보니 육개장)을 전수 받은 수제자이자 성찬의 할아버지를 연기한 고 정진 배우는 80년대 <조선왕조500년: 설중매>로 백상예술대상 TV 인기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잘 나가는 배우였다. <식객>에서는 죽음을 앞두고 손자인 성찬에게 비전지탕의 래시피를 하나씩 전수해 준 후 마지막 경합을 앞두고 세상을 떠난다.

운암정 시절부터 성찬과 친하게 지내다가 결혼 후 장인에게 정육식당을 물려 받은 덕기 역은 1976년생의 '젊은' 정진이 연기했다. 1976년생 정진은 <태극기 휘날리며>,<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같은 영화와 <신입사원>, <옥중화>,<닥터스> 등 여러 드라마에 출연했다. <식객>에서는 성찬이 동생처럼 키우던 소를 보고 "그냥 짐승일 뿐"이라며 도축하자고 주장하는 눈치 없는 행동을 했다(하지만 성찬은 결국 덕기 말대로 소를 도축한다).

'마블의 아버지' 고 스탠 리는 생전 MCU의 모든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한 것으로 유명했지만 자신의 만화 중 8편이 영화로 만들어진 허영만 작가는 단 두 편에만 카메오로 출연했다. 노름꾼으로 등장했던 <타짜>와 엔딩장면에서 칼국수집 손님으로 출연한 <식객>이었다. 특히 <식객>에서는 성찬과 진수를 보며 "진수하고 성찬? 그럼 '진수성찬'이네"라며 두 사람이 커플이 될 거라는 중요한 스포(?)가 담긴 대사를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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