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에서 또다시 음주운전의 악몽이 되풀이됐다. 그리고 한국프로농구연맹(KBL)은 이에 철퇴로 화답했다.

KBL은 지난 28일 논현동 KBL센터에서 재정위원회를 개최하고 음주운전 사고를 낸 원주 DB 배강률 선수에게 54경기 출전 정지와 사회봉사 120시간, 제재금 1천만원의 징계를 내렸다.
 
배강률 선수는 지난 25일 전주 인근 도로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내 경찰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가 사고를 낸 직후 구단에 자진 신고했지만 KBL은 음주운전에 대한 무관용 원칙에 따라 중징계를 결정했다.
 
한편 배강률은 KBL의 징계가 결정된 이후 소속팀 DB를 통하여 은퇴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배강률 선수는 "프로선수로서 물의를 일으켜 농구 팬과 관계자 분들에게 실망을 안겨드려 정말 죄송하다. 본인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KBL의 제재와 봉사활동 등의 조치를 성실히 이행하겠다"라고 전했다. DB 구단 역시 "다시 한번 팬 여러분들께 사과를 드리며 책임을 통감하고 재발방지에 만전을 기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사과했다.
 
배 선수는 전주고와 명지대를 졸업하고 2014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서울 삼성에 2라운드 9순위로 지명되어 프로에 데뷔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2020년에는 FA가 되어 DB로 이적했다. 준수한 운동능력과 투지넘치는 플레이로 백업 빅맨-포워드로 활약하며, 짧은 시간이지만 종종 알토란같은 활약을 보여줬다.
 
가장 많은 기회를 얻었던 2020-21시즌에는 무려 46경기에 출전하여 평균 16분 57초 출전, 4.1점 3.3리바운드로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하지만 2021-22시즌에는 고작 7경기에 출전해 평균 0.3점에 그쳤다. 지난 시즌까지 올스타전 덩크 콘테스트에 몇차례 출전하여 2019년에는 우수 퍼포먼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돌이킬수 없는 한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30세의 젊은 나이에 불명예스럽게 농구인생을 접어야 했다.
 
프로농구에서 올해에만 음주운전 적발→KBL와 구단의 중징계→은퇴 직행으로 이어진 것은 두 번째다. 지난 1월 19일 당시 서울 삼성 가드 천기범은 인천에서 만취한 상태로 승용차를 운전한 혐의로 입건 됐다. 천기범은 당시 출동한 경찰관에게 직접 운전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거짓말을 한 혐의까지 받았다.

천기범은 결국 여론의 비난과 KBL의 중징계를 받고 선수 은퇴를 발표했다. 또한 천기범의 음주운전 여파로 당시 이상민 삼성 감독이 성적부진과 선수단 관리소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중도 사임하는 후폭풍으로까지 이어졌다.
 
안타깝게도 한국농구계에서 음주운전의 역사는 뿌리가 깊다. 실업과 대학농구 중심의 세미프로였던 농구대잔치 시절에도 유명 선수들이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프로화 이후에도 농구계에 음주운전 사고는 잊을만하면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천기범-배강률을 비롯하여 김민구(당시 KCC, 2014년) 김지완(당시 KCC, 2017년), 박철호(당시 KT, 2018년), 김진영(삼성, 2021년)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가장 유명하면서도 충격적인 사례는 역시 김민구다. 당시 촉망받는 국가대표로 한창 전성기를 달리던 김민구는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켜 바로 본인이 심각한 고관절 부상을 당하는 인과응보를 치렀다. 김민구는 이후 겨우 코트에 복귀했으나 예전의 기량과 운동능력, 팬들의 지지를 모두 잃었고, 몇 년 더 선수생활을 근근이 이어가다가 초라하게 은퇴했다.
 
또한 박철호는 음주운전으로 화물차량과 접촉사고를 일으켰는데, 당시 동승자였던 팀동료 김기윤이 더 중상을 입었다. 두 선수 모두 징계를 받고 결국 코트로 다시 돌아오지 못했는데 김기윤은 징계보다 부상이 사실상 은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김민구와 박철호-김기윤의 사례는 음주운전이 더 이상 가벼운 실수나 해프닝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실제 목숨이 달린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웠다.
 
농구계에서 음주운전 사고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지만, 최근들어 그나마 달라지고 있는 부분은 인식의 개선과 처벌 강화다.
 
지난해 부임한 KBL 부임한 김희옥 총재는 "공적 인물인 프로 선수들의 윤리문제, 특히 음주운전, 약물 복용, 승부 조작, 폭력 등에는 철저히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2014년 이전까지만 해도 형식적인 수준에 그쳤던 KBL의 음주운전 징계는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며, 출전정지 경기 숫자만도 27경기→36경기→54경기 등으로 점점 강화했다.
 
54경기는 KBL 한 시즌 정규리그 전체 경기 숫자로, 사실상 1년간 출전 정지에 해당한다. 여기에 구단도 KBL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의 자체 징계를 추가로 내리고 있다. 사실상 2~3년 이상 코트에 설수 없게 되면서, 운동선수들에게는 치명적인 중징계에 대한 부담이 커졌다.
 
KBL이 올해 음주운전을 저지른 천기범과 배강률에게 내린 징계 수위는 동일하다. 그리고 두 선수 모두 징계가 확정되자 곧바로 은퇴를 발표했다. 사실상 강제 은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한번의 음주운전만으로 농구계에서 바로 퇴출될 수 있는 '원아웃'이 가능해진 것은 엄청난 변화다. 솜방망이에서 철퇴의 시대로 바뀐 것이다.
 
하지만 허점은 남아 있다. 은퇴를 선언한 천기범은 최근 일본에서 다시 농구선수생활을 이어간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농구팬들을 또 한번 분노하게 했다. 일본 B리그 2부 후쿠시마 파이어본즈는 지난 27일 구단의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천기범의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음주운전으로 사실상 KBL에서 퇴출된지 불과 5개월만이었다.
 
국내 여론의 비난이 빗발치자 천기범은 28일 자신의 SNS 계정에 자필 사과문을 게시하고 농구팬들과 삼성 구단 측에 뒤늦은 사과의 말을 전했지만 반응은 싸늘하다. 자칫 해외진출이라는 꼼수로 KBL의 징계가 사실상 무력화되는 선례로 남을 수 있는만큼, KBL 역시 규정에 대한 입장정리와 보완책이 필요해 보인다.
 
한편으로 단순히 처벌 강화만이 아니라 농구계 내부적으로도 음주운전 방지와 인식 개선을 위한 근본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과거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반성 없이 미래로 나아가는 혁신은 불가능하다. 농구계는 현역 선수에 대한 처벌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음주운전 적발 전력이 있는 인물들의 사례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향후 이들의 농구계 활동을 제한하는 것까지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나간 과거라도 해서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음주운전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역시 명백한 범죄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음주운전을 저지른 당사자만이 아니라, 그동안 음주운전과 음주관련 사고들에 안이하게 대처해왔던 농구계와 KBL 역시 반성이 필요하다. 운동만 잘한다고 용서되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 바닥으로 떨어진 농구의 인기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구성원들 각자가 잘못된 과거와 단절하고, 올바른 프로의식을 확립하겠다는 '진정성'으로 대중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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