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KBS <붉은 단심> 제11회에서는 대비 최가연(박지연 분)이 승려 혜강(오승훈 분)을 사주해 임금 이태(이준 분)에게 주술 공격을 거는 장면이 방영됐다.
 
대비가 어두운 방에서 "진정 내 소망을 이뤄줄 수 있느냐?"며 홀로 읊조리고, 혜강이 불상 앞에서 묵주를 굴리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수없이 반복하는 상황에서, 기우제를 지내던 이태가 갑자기 피를 토하며 고꾸라졌다.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는 순간에 이태의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대비 최가연은 이태의 왕권을 지탱하는 조정 실세 박계원(장혁 분)과 같은 편이었다. 최가연과 박계원은 예전에 연인 사이였다. 최가연이 왕실 일원이 된 뒤에 두 사람의 감정은 우정으로 제어되고 둘의 관계는 동맹으로 전환됐다.
 
그랬던 관계가 금이 갔다. 박계원이 가짜 조카인 유정(강한나 분)을 진짜로 둔갑시켜 중전으로 만들려고 시도하면서부터다. 최가연은 이태를 죽이고 박계원과 유정을 약화시켜 정권을 독점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주술을 통한 공격
 
 KBS2 <붉은 단심> 한 장면.

KBS2 <붉은 단심> 한 장면. ⓒ KBS2

 
그래서 내세운 것이 무명 승려, 혜강이다. 혜강의 주술 능력을 이용해 이태를 해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 공격은 실패했고, 쓰러진 이태는 되살아났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남아 있지만, 과거에는 주술을 통한 공격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존재했다. '주술 시장'이 형성돼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궁중 암투에도 이런 주술이 활용됐다. 주술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일은 물론이고, 상대방이 주술을 사용한 것처럼 조작해 곤경에 빠트리는 일도 적지 않았다.
 
중전 자리에 복귀한 인현왕후가 7년 뒤인 1701년에 세상을 떠났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숙종의 부인인 인현왕후가 사망하자, 전직 중전이자 세자 친모인 장희빈이 중전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커지게 됐다. 이때 후궁 최숙빈(숙빈 최씨, 영조의 생모)이 장희빈을 겨냥해 꺼내든 카드가 바로 주술 문제였다.
 
최숙빈은 보수세력인 서인당의 지지를 받았고, 장희빈은 상대적으로 진보세력인 남인당의 지원을 받았다. 최숙빈은 '인현왕후 생전에 장희빈이 왕후를 저주했다"고 고발해 장희빈이 사약을 마시도록 만들었다. 궁중의 암투와 조정의 당쟁이 연동된 이 상황에서, 주술 공격이라는 이슈가 정국 변동을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왕족들과 관련된 주술 공격이 항상 살벌하게만 전개됐던 것은 아니다. 애교에 가깝다는 느낌을 주는 주술 공격도 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신충(信忠)이라는 신라 사람이 효성왕(재위 737~742)을 주술로 위협한 사건도 여기에 포함된다.
 
<삼국유사> 피은(避隱) 편에 따르면, 신충은 효성왕과 가까운 사람이었다. 효성왕이 태자였을 때 궁궐 잣나무 밑에서 바둑을 두기도 했던 사이다. 그렇게 친했던 그가 주술을 이용해 효성왕에게 위협을 가하는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삼국유사>는 신충을 현사(賢士)로 소개한다. 선비 사(士)란 글자 때문에 그를 유교 선비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고대로 갈수록 '사'가 가리키는 범위는 상당히 넓었다. 경남 산청군 단성면에 소재한 단속사라는 사찰을 세웠다는 설이 전해지는 것, 주술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 재상이 되어 국가를 경영한 적이 있다는 것은 그가 유교적 소양뿐 아니라 승려나 도사의 면모도 어느 정도 겸비했음을 보여준다.
 
신충이 효성왕을 주술로 공격한 것은 인사 조치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잣나무 밑에서 바둑 둘 때 효성왕이 했던 언약이 있었다. 그대를 잊지 않을 것이며 이 잣나무가 증거가 될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감읍한 신충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절을 했다. 그러고 나서 몇 달 뒤에 효성왕이 즉위했고 뒤이어 개각이 단행됐는데도 아무런 연락이 없자 신충이 사고를 쳤던 것이다. .
 
효성왕이 신충을 등용하지 않은 것은 인사 검증의 결과 때문은 아니었다. '민정수석'이나 '법무부장관 직속 인사정보관리단'이 뒷조사를 벌여 신충의 비위 사실을 들춰냈기 때문은 아니었다. <삼국유사>는 망충(亡忠)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효성왕이 그 사이에 신충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몇 달 전에 잣나무 밑에서 함께 바둑까지 뒀던 사람을 그새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효성왕이 신충의 존재를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그 잣나무가 갑자기 말라버렸기 때문이다. 효성왕은 신충이 자신을 원망하는 글을 잣나무에 붙인 사실을 알게 됐다. 효성왕은 그 결과로 잣나무가 시들게 됐다고 판단했다. 그런 뒤, 바빠서 잠시 잊었노라며 사과했다. 신충에게 벼슬을 주자 잣나무가 되살아났다고 한다.

<삼국유사>는 이 사건을 주술적 관점에서 이해한다. 신충의 영적 능력으로 인해 발생한 사건으로 해석한다. 이런 관점에 입각하게 되면, 신충의 주술 공격은 상대방의 주의를 끌 목적으로 벌어진, 애교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KBS2 <붉은 단심> 한 장면.

KBS2 <붉은 단심> 한 장면. ⓒ KBS2

 
 KBS2 <붉은 단심> 한 장면.

KBS2 <붉은 단심> 한 장면. ⓒ KBS2

 
주술적 관점에서 이해되는 사건
 
유학자들은 허무맹랑하다며 주술을 배격했다. 유교가 대세를 이룬 조선시대에는 이런 논리가 한층 힘을 얻었다. 그렇지만, 주술 공격은 이 시대에도 그치지 않았다. 1701년에 세상을 떠난 장희빈의 사례에서도 나타나듯이, 조선 후기에도 주술의 힘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했다.
 
유교는 주술을 배척했지만, 주술을 합리화할 만한 요인이 유교 내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중국 한나라 유학자이자 재상인 동중서의 천인감응론도 그런 작용을 할 여지가 적지 않았다.
 
우주와 인간이 기(氣)로 연결돼 상호작용한다는 천인감응론 유형의 사유 방식은 인간의 사고 영역을 넓혀주는 데 기여했다. 일반적인 현대인들은 인간 감각으로 확인될 수 있는 것을 근거로 현상을 판단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고대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포함시켜 그런 판단을 내렸다.
 
현대인들은 위정자의 실패 원인을 눈에 보이는 것에서 찾지만, 고대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서도 그것을 찾으려 했다. 천재지변이 발생하면 군주에게 책임을 물은 것도 그런 사고방식의 결과였다. 군주의 부덕이나 실덕이 우주질서에 영향을 미쳐 재앙이 발생한다고 인식했던 것이다.

이 같은 사유방식은 주술 공격에 대한 사회적 수요를 조성하는 데도 기여할 여지가 컸다. 인간 감각으로 이해되는 세계와 이해되지 않는 세계가 하나로 이어져 상호작용한다는 관념은, 기도를 하거나 주문을 외는 방법으로도 남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주장과 연결될 소지가 컸다.
 
이는 주술을 거부하는 유교가 지배한 시대에도 주술 공격이 여전히 성행한 이유 중 하나를 설명할 수 있다. 천인감응론 같은 논리가 인간의 사고 영역을 넓혀준 것도 주술 시장의 성장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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