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STORY <어쩌다 어른>의 한 장면.

tvN STORY <어쩌다 어른>의 한 장면. ⓒ tvN STORY

   
악인(惡人)의 진정한 정의는 무엇일까. 법을 어기고 살인이나 중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만 해당되는 것일까. 인간을 심리적으로 이용하고 타인을 착취하며 이 사회의 질서에 해를 끼치는 이들은 모두 악인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은 일상을 살면서 하루에 생각보다 많은 악인들을 접하고 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러한 악인들을 어떻게 알아보고 상대해야 하며, 악인들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

tvN STORY 인문학 예능 시리즈의 원조 격인 <어쩌다 어른>이 오랜만에 돌아왔다. 다방면의 지식에 목마른 시청자에게 다양한 각계 전문가가 풀어주는 프리미엄 강연쇼를 표방했다. 6월 9일 방송된 첫 회에서는 <어쩌다 어른>을 통하여 심리학 붐을 일으킨 대한민국대표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가 강연자로 나서서 '악인들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펼쳤다.
 
우리 일상 속 악인들

악인은 생각보다 우리 일상 가까이에 있다. 코로나19 시대의 노마스크족처럼, 상대의 안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생각'은 악인을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반사회적 성격 장애를 지닌 악인의 세 가지 유형은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나르시시스트가 꼽힌다. 사이코패스는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규범, 공정성, 책임감, 연민, 애착 등이 결여되어 있다.<배트맨> 시리즈의 악당 조커는 사이코패스를 대표하는 캐릭터로 꼽힌다.
 
심리학에서 '잃어버린 지갑' 실험에 따르면, 길에 떨어져 있는 지갑을 주었을 때 일반적인 사람들은 어떤 물건이 들어있느냐에 따라 돌려줘야겠다는 마음에 차이가 생긴다. 하지만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그들은 오로지 지갑 안의 돈에만 관심이 있었다. 이들은 연민이 없기에 딜레마에 빠질 일이 없었던 것이다.
 
한 마을에 살인마가 나타나서 사람들이 숨어있는데, 아기의 울음소리 때문에 위치가 탄로나서 목숨이 위험할 위기에 놓였다면? 사이코패스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이를 희생시켜서라도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그 대상이 약자나 소수라고 할지라도.
 
여기서 인간다움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것은 문제의 해결방법이나 결과가 아니라, 그 선택을 내리는 데 있어서나 그 이후에 벌어질 상황에 대하여 '얼마나 망설이고 주저하고 힘들어하는지'에 달려있다.
 
 tvN STORY <어쩌다 어른>의 한 장면.

tvN STORY <어쩌다 어른>의 한 장면. ⓒ tvN STORY

 
역사속에서는 유명한 사이코패스들이 존재한다. 잔혹한 처형기구인 '팔라리스의 황소'를 만들어 수많은 사람들을 살해하고 본인도 그 안에서 최후를 맞이한 고대 그리스의 왕 팔라리스,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친동생-자녀-가사도우미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잔혹하게 헤친 한국의 엄인숙 등은 사이코패스의 대명사로 꼽힌다.

소시오패스는 사이코패스들보다 좀더 다채로운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소시오패스의 특성을 드러내는 모습 중 하나가 약자 코스프레와 가스라이팅이다.

주로 가족-연인같은 밀접한 관계에서 더 빈번한 가스라이팅은 '관계형성'에 이어 '기억왜곡'을 거쳐 상대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며, '심리적 고립'을 유도하여 주변과의 관계를 단절시켜서 저항할 수 없게 만드는 미니마이징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최종단계인 '무시'에 이르면 소시오패스들은 피해자를 완전히 장악하고 자신의 기분과 생각대로 조종할 수 있게 된다.
 
소시오패스들은 자신들이 가스라이팅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까? 그들은 애초에 관심 자체가 없다. 김 교수는 "소시오패스들에게 그들이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걸 굳이 아는지 모르는지 궁금해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어차피 그들은 전혀 중요하지도 않고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세상에 가장 무서운 사람은, 자기 잘못에 관심이 없는 유형"이라고 평가했다. 자신이 한 행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일수록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대화는 불가능하다. 또한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사람들은 미니마이징의 단계에 진입했다면 반드시 타인과 주변에 상황을 공유하고 도움을 받을 것을 충고했다.
 
가스라이팅은 극단적 소시오패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가스라이팅을 저지르기도 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을 자주 비판하던 코미디언 존 올리버가 "자신의 쇼에 출연해달라고 사정하더라"라고 주장했다. 올리버는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지만 트럼프는 SNS를 통하여 반복해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급기야 올리버와 대중들도 트럼프의 말이 사실인가 아닌가 반신반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겨대는 사람에겐 답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가스라이팅을 저지르는 사람에게 합리적인 논리로 소통하겠다거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은 가능할까. 김 교수는 "다 망하는 길이다"라고 일축하며 "뒤도 돌아보지 말고 관계를 끊어라. 맞서 싸우려고 하지 말고 그냥 버려라"라고 조언했다.
 
가스라이팅과 훈계의 차이는 무엇일까. 훈계는 대부분 일회성에서 그친다면 가스라이팅은 동어반복이 많다. 훈계가 '~하라'는 권유가 많다면, 가스라이팅은 '~하지 말라'는 부정적이고 수동적인 요구가 대부분이다.
 
나르시시스트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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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STORY <어쩌다 어른>의 한 장면. ⓒ tvN STORY

 
김 교수가 지목한 최악의 성격 장애 유형은 나르시시스트였다. 그들이 위험한 이유는 근본적으로 타인이 불행해야 만족감을 얻는 유형이기 때문이다. 나르시즘에 빠진 이들에게 내가 잘난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남과의 격차나 자신보다 못한 것에서 쾌감을 느낀다. 겉보기에 겸손해보이는 나르시시스트라도 결국은 자기를 추켜세우는 결론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나르시즘을 더욱 부추기는 사회적 환경은 어릴 때부터 서열과 등수에 민감한 교육의 영향이다. 그리고 이렇게 나르시시스트로 성장한 이들이 부모가 되었을 때는 걸핏하면 자녀들을 탓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부모가 되기 쉽다. 천륜을 거부할 수는 없지만, 부모 자식간에도 적당한 거리두기가 필요한 관계에 해당한다.
 
나르시즘이 결국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갑질'이다. 나이, 계급, 재산 등 자신보다 만만한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갑질을 일삼는 이들이 전조처럼 자주 쓰는 표현 중 하나가 '어딜 감히'다. 인간을 서열화-계급화된 시각으로 보는 나르시시스트의 전형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이러한 악인들을 쉽게 끌어들이는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 환경적 영향으로 외로움을 잘타는 사람들, 악인의 능력을 필요로 하고 의존하는 사람들. 자존감이 낮고 자기 비하적인 성향을 지닌 에코이스트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런 성향을 지닌 사람들은 아무리 선하고 양심있고 책임감있게 살아가는 사람일지라도, 자기밖에 모르는 나르시시스트를 만났을 때는 언제든 먹잇감으로 착취당할 수 있는 위험 요소를 안고 있다.
 
악인의 부작용은 또다른 악인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선했던 사람이 악인에게 상처받거나 나쁜 경험을 바탕으로 후천적인 악인이 되는 경우가 있다. 피해를 준 당사자에게만 향해야 할 분노와 경험을 다른 죄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일반화시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악인에게 피해를 당했을 경우 명심해야 할 두 가지로 '좋은 사람-소중한 사람에게 더 잘해주기' 그리고 '나쁜 사람들에게는 더 냉정하고 강하게 대할 것'을 주문했다.
 
시카고대 이타성 연구자 엠마 레바인의 '선택적 정직'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이 유리할 때만 정직해지는 경우가 많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런 선택적 정직을 지닌 사람들이 사회에 많아지면, 겉으로는 정직해보여도 실제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넘쳐나게 된다. 자신에게 불리하더라도 정직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존중과 예우가 필요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내부고발자'다. 한 사회가 내부고발자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그 사회의 수준이나 정의도를 알 수 있다.
 
 tvN STORY <어쩌다 어른>의 한 장면.

tvN STORY <어쩌다 어른>의 한 장면. ⓒ tvN STORY

 
악인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후천적인 악인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은 대개 몇 개쯤은 자신들의 못난 행동을 습관으로 가지고 있다. 사람은 지칠수록 못난 행동을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보면 어느순간 타인에게 악인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이 좌절을 딛고 일어날 수 있을 힘을 회복탄력성이라고 한다. 회복탄력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쉽게 좌절하거나 포기하게 된다. 한국 사회는 시간과 기회가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촉박한 경쟁사회에서 한 번 박탈감을 느낄수록 사람은 조급해지고 마음의 여유를 잃게 된다.
 
김 교수는 악성 민원이 쏟아지는 창구앞에 거울을 설치하여 민원인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하면서 민원이 크게 줄었다는 일화를 언급했다. 김 교수는 "화가 날 때는 상대에게 화를 내기 보다 '나'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라"고 조언하며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화법을 바꾸면 감정을 다스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악인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소시오패스 연구로 유명한 심리학자 마사 스타우트는 "악인들보다 더 똑똑(Outsmarting)해져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야만 상대와의 관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고, 악인이 접근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 성공과 행복을 꿈꾸지만 정작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를 망각하는 경우가 많다.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정의'가 있어야만 타인의 정의와 결합하는 과정을 통하여 한층 다듬어진 가치관으로, 그리고 철학으로 발전할 수 있다.
 
우리의 삶 속에서는 학교에서는 가르쳐줄 수 없는 현실의 수많은 가치판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정의를 내리는 연습'이 필요한 이유다. 그래야만 인간관계에서 내가 적절하게 거리를 둬야하는 사람, 아예 손절해야 할 사람들을 구분할수 있는 지혜를 갖출 수 있다.

악인을 알아봐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래야 진짜 내게 소중한 사람을 알아보고 잘해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 교수는 악인들로부터 나를 지키는 습관으로 연락처 저장하지 않기, 가까운 사람만이 나를 구한다는 비합리적 신념을 버릴 것, 그리고 이분법적이고 극단적인 언어를 버릴 것을 주문했다. 느슨하지만 다양한 인간관계, 다양한 분야에의 경험과 취미생활 등은 사람에게 신선한 행복감과 만족을 줄 수 있다.
 
악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먹잇감은, 능력있고 열심히 살고 착하지만, 자신에게 감탄할 게 없는 사람들이다. 착취할 것이 많으면서도 자신만의 행복을 위한 가치관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그래서 오로지 일만 하면서 사는 사람들일수록 가장 위험하다"고 조언한다. 인간은 타고나기를 일 이외의 삶을 하면서 살도록 만들어졌다. 김 교수는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며 "스스로 감탄할 만한 인생을 살아간다고 느낄 때, 우리는 악에 대하여 빈틈을 보이지 않고 나 자신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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