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드릭 라마의 정규 5집 'Mr. Morale & The Big Steppers'

켄드릭 라마의 정규 5집 'Mr. Morale & The Big Steppers' ⓒ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지난 10년 동안, 켄드릭 라마는 래퍼 이상의 래퍼였다. 동시대의 경쟁자들을 저격한 '컨트롤(Control)' 디스전은 시작일 뿐이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삶을 대변한 명반 < To Pimp A Butterfly >(2015) 이후, 켄드릭 라마는 흑인 사회의 구세주로 격상되었다.

버락 오바마의 초대를 받아 백악관에 갔고, 2018년에는 퓰리쳐상을 수상한 최초의 래퍼가 되었다. 그의 음악이 '현실을 반영한 저널리즘'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었다.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삶도 중요하다)' 운동에서는 그의 노래 'Alright'이 울려 퍼졌다. 모두가 '선지자' 켄드릭 라마의 입을 바라 보기 시작했다.

돌아온 21세기 랩의 신

지난 5월 13일, 켄드릭 라마가 5년 만의 새 앨범 < Mr. Morale & The Big Steppers >를 발표했다. 발매와 동시에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를 비롯, 여러 국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 선 굵은 힙합과는 거리를 둔다. 프리 재즈와 전자 음악의 흔적이 짙으며, 피아노를 활용한 미니멀한 편곡이 주를 이룬다. 'Alright'이나 'Humble', 'm.a.a.d city'처럼 관객을 열광하게 만들 수 있는 곡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이 앨범에 대한 여론이 유독 갈리는 이유 중 하나다.

최근 사촌 동생 베이비 킴(Baby Keem)과의 작업에서도 드러났듯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랩 솜씨에는 변함이 없다. 그의 장점 중 하나는 곡의 분위기에 따라 플로우를 자연스럽게 바꾸는 것이었다. 때로는 속삭이듯이, 때로는 술에 취한 광인처럼 목소리를 조절한다. 신보에서도 이 강점은 극대화된다. 켄드릭 라마는 목소리를 악기처럼 다루는 래퍼다.

그는 여전히 시대를 직시하지만, 이번 앨범은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내면적이며 자기고백적이다. 켄드릭 라마는 전에 없이 혼란스럽다. 첫 곡 'United In Grief'의 변칙적인 편곡부터가 그렇다. 모두가 힙합 선지자의 입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는 대답을 내놓지 못 한다.

이야기는 여러 줄기로 뻗어 나간다. 'N95'에서는 주류의 힙합 문화를 냉소하고, 모든 것을 회의한다. 트랜스젠더인 이모의 일화를 빌려, 혐오를 성찰한 'Aunties Diaries'도 인상적이다. 일각에서는 성소수자 혐오 표현인 'Faggot'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이유로 비판받았지만, 혐오 표현에 대한 반성을 위해 이 단어를 끄집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배우 테일러 페이지와 함께 강도 높은 감정 다툼을 연출한 'We Cry Together'는 인간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듯한 트랙이다. 샘파(Sampha)가 피쳐링한 'Father Time'은 음악을 통한 거울 치료처럼 느껴진다. 이 곡에는 미워했던 가부장적 아버지를 닮았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자식에게는 다른 아버지가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켄드릭 라마는 어느 때보다 개인적인 결핍을 많이 노출하고 있다.

"Daddy issues, hid my emotions, never expressed myself
아빠 관련 문제, 난 내 감정을 숨겼어, 스스로를 표현하지 않았지.

Men should never show feelings, being sensitive never helped"
남자는 감정을 숨겨야 해. 감성적인 건 도움이 되지 않아.

- 'Father Time' 중


메시아도, 운동가도 아닌 '켄드릭 라마'

< To Pimp A Butterfly >의 마지막 트랙인 'Mortal Man'에서 켄드릭 라마는 '넬슨 만델라의 혼'을 소환하고, 투팍과 대화하는 자신의 모습을 연출했다. 그런데 이 앨범의 후반부, 어두운 가정사를 다룬 'Mother I Sober'에서는 섹스 중독과 외도를 고백한다. 그는 자신에게 드리워진 아우라를 지우고, 영웅 서사를 해체했다. 자신은 메시아도 아니며, 무오류적 존재도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은 오히려 많은 사건 사고를 일으킨 코닥 블랙(Kodak Black )에 가깝다고 말하기도 한다.

"The cat is out the bag, I am not your savior"
진실은 드러났어. 난 너의 구세주가 아니야.

- 'Savior' 중


켄드릭 라마는 신보 발매를 앞두고 'The Heart Pt.5'를 발표했다.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서 켄드릭 라마는 다양한 얼굴의 흑인이 되어 노래한다. 그는 오제이 심슨 같은 범죄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칸예 웨스트나 윌 스미스처럼 구설수에 휩싸인 예술가가 된다. 또 코비 브라이언트와 닙시 허슬처럼 흑인 사회에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의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미국 사회의 흑인은 물론, 자신 역시 어떤 모습으로든 존재할 수 있다는 듯 하다. 그는 흑인 구세주 대신, 입체적인 인간이 되고자 했다.

2010년대의 켄드릭 라마가 그랬듯, 1960년대의 밥 딜런에게는 '저항의 아이콘', '반문화의 기수' 같은 수식어가 붙어 있었다. 하지만 밥 딜런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할 뿐이었었고, 특정 세력의 기수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화 <아임 낫 데어>에 그려졌듯이, 세간의 의표를 찌르는 행보를 보이기에 바빴다. 지금의 켄드릭 라마에게서도 그 시절의 밥 딜런이 보인다.

셰익스피어의 '헨리 4세'를 인용한 'Crown'에서 켄드릭 라마는 '왕관을 쓴 머리는 무겁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왕관을 살포시 내려 놓는다. 'Alright' 같은 희망 찬가는 없지만, 아픈 과거를 대면하면서 커리어의 2막으로 나아갔다. < Mr. Morale & The Big Steppers >는 21세기 랩의 신이 발표한 '인간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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