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음 소희>를 연출한 정주리 감독.

영화 <다음 소희>를 연출한 정주리 감독.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키이스트


 
제75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된 <다음 소희>의 정주리 감독은 나름 개근생이다. 데뷔작 <도희야>로 67회 칸영화제 공식 부문인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됐고, 8년 만에 두 번째 장편이 다시 초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여성 주인공, 여성 서사로 해외 평단의 관심을 받아온 정주리 감독을 25일 오후(현지 시각) 팔레 데 페스티벌 내 영화진흥위원회 부스에서 만났다. <다음 소희>는 2016년 전주에서 발생한 콜센터 실습생 사망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배우 김시은이 고교생으로서 실습을 나가는 소희 역을 맡았고, 배두나가 형사 유진 역으로 사망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다.
 
"한 시사 프로를 통해 알게 됐을 때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지?'라고 생각했다. 고등학생이 이런 일을 하는 게 도저히 이해가 안 돼서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단순히 한 아이가 일을 겪고 죽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그것을 궁금해하는 누군가가 파고듦으로써 그 사람의 이야기를 영화로 완성하고 싶었다."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소희가 실습 나간 회사에서 각종 괴롭힘을 당하는 과정, 그리고 소희의 죽음 이후 유진이 학교와 회사 등을 오가며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주다. 정 감독은 "처음엔 이 사건이 정확하게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서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혼자 사는 사람들> <젊은이의 양지> 등 콜센터 직원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있다는 사실에 부담이 됐다는 고백도 더했다.
 
"사실 그 사건과 난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외면했던 누군가였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사실 (비슷한 소재의 영화가 있기에) 많이 걱정했다.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채로 전반부를 만들고 싶었다. 그렇다고 사건 관계자나 유가족을 만난 적은 없다. 따로 콜센터에 가본다거나 직접 상담해 보지도 않았다. 이 영화를 만들어 내는데 온전히 기자분들, 작가분들이 쓰신 글로 충분했다. 그런 분들을 유진이라는 캐릭터로 표현하고 싶었다."

 
"배두나 함께 못 해, 커다란 구멍 난 것 같다"
 
 영화 <다음 소희>의 공식 포스터.

영화 <다음 소희>의 공식 포스터.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키이스트

 

그래서 배두나라는 존재가 중요했다. <도희야>로 인연을 맺은 배두나에게 감독은 시나리오를 탈고하자마자 건넸다고 한다. 정주리 감독은 "누구보다 이 영화가 꼭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주셨는데 그 말이 영화를 만드는 내내 큰 힘이 됐다"며 배두나와의 인연을 강조했다. 
 
"사실 시나리오를 건넬 때 걱정도 있었다. 제발 내가 쓴 대로 봐주셨으면 했는데 온전히 이해해 주셨다. 이번에 함께 못 오게 돼서 너무 아쉽다. 마치 커다란 구멍이 난 것 같은 느낌이다."
 
중심 캐릭터 소희를 연기한 김시은도 감독에겐 행운이었다. "꽤 캐스팅이 오래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었는데 조감독님이 소개해 주셔서 만나게 됐다. 시나리오를 어떻게 봤는지 묻는데 이 영화가 꼭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하더라"며 정 감독은 "자기가 꼭 하고 싶다고 말하지 않는 모습에서 비범함을 느꼈다"라고 일화를 전했다.
 
혹자는 첫 장편과 두 번째 장편 영화 주인공 이름이 모두 희자 돌림이라는 사실에 궁금증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정주리 감독은 이 말에 웃으며 "정말 우연"이라며 "권여선 작가의 단편 중 <손톱>이라는 소설이 있는데 그 작품 주인공 이름이 소희라 거기서 따왔다"라고 말했다.
 
"제목은 영화화를 결심한 순간 거의 동시에 떠오른 것이다. (피해자가 된) 소희의 다음이 누가 될 수도 있고, 소희도 누구의 다음이었을 수도 있다. 우리 사회가 물론 많은 게 개선되고 좋아졌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많이 모르는 사실들이 존재하잖나. 계속해서 누군가는 그 얘기들을 해야 사회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유진이라는 인물이 바로 그런 희망이 담긴 캐릭터였다."
 
26일 오전(현지 시각 기준) <다음 소희>의 첫 상영장엔 관객들이 자리를 꽉 채웠다. 상영 중간에 종종 웃음이 나오기도 했고, 영화가 끝나자 관객들은 박수를 보내며 화답했다. 
 
"이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는데 생각보다 도중에 극장 밖으로 나가시는 분이 없어서 놀랐다. 영화의 힘이라는 게 있다는 걸 실감한다. 아직 후반작업 과정이 남아있다.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올해 칸에 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다. 와서 보니 새삼 우리나라 영화 위상이 엄청나다는 걸 느낀다. 감사한 일이다. 어쩌면 우린 진작부터 그랬는데 이제야 알아봐 준다는 기분도 든다. 처음 칸에 왔을 땐 관객분들이 어떻게 보실지 걱정도 많았다. 나 혼자만의 이야기 아닐까 싶었는데 제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까지 공감해 주셨다. 그런 경험으로 제가 아무리 작은 주제, 작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관객들은 어디선가 공감해 주신다는 믿음 같은 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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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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