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25일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공개된 다큐멘터리 <비틀즈 겟 백>은 내 오랜 비틀스 사랑을 자극했다. 동시에 20년 전 배낭을 메고 비틀스의 흔적을 찾아 인도 리시케시의 명상원을 찾아갔던 기억을 떠올렸다. 비틀스는 1968년 리시케시에 가서 초월명상 수업을 들으면서 '화이트 앨범'(1968)의 밑바탕이 되는 수십 곡을 작곡한 바 있다. 비틀스가 리시케시를 방문한 것은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인도를 여러 차례 여행하고 몇 달 간 크리슈나 사원에 머물며 베다 문화에 입문했던 적도 있다. 모쪼록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비틀스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시간인 동시에, 가장 특별하고 마법과도 같았던 그 시간들을 확인했으면 한다. [편집자말]
1967년 8월 25일 오후 3시 5분, 비틀스 멤버와 그들의 아내, 여자친구는 런던 유스턴 기차역으로 모였다. 기차를 타고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의 열흘짜리 명상 세미나가 열리는 북웨일스 뱅거로 가기 위해서였다. 기차역은 수많은 팬과 기자, 카메라맨, 경찰, 승객들로 꽉 차 있어 승강장으로 진입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비틀스는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매니저도, 로드 매니저도 없이 여행에 나섰다. 그 때문인지 기차 출발시간보다 6분가량 늦게 역에 도착했지만, 다행히도 정비 관계로 출발이 지연되어 기차에 올라탈 수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어딜 가든지 항상 그들을 책임졌던 매니저인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비틀스와 동행하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는 주말에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 명상 세미나에는 며칠 뒤에 합류하기로 했다. 평소라면 역까지 그룹을 배웅했을 법도 한데 자기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갑자기 내려진 결정이기도 해서인지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대신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조수 피터 브라운을 유스턴 역으로 보냈다. 또 그룹 초창기 캐번 클럽 시절부터 로드 매니저로 있으면서 가장 가까이에서 비틀스를 돌봤던 최측근 닐 애스피널과 말 에반스도 함께 하지 않았다.
 
 1964년 존 레논과 그의 아내 신시아 레논이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공연을 마치고 함께 귀국했다(자료사진).

1964년 존 레논과 그의 아내 신시아 레논이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공연을 마치고 함께 귀국했다(자료사진). ⓒ 연합뉴스

 
이 때문에 멤버들은 난장판을 스스로 뚫고 8번 승강장으로 달려가 기차에 올라타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 와중에 존 레논의 아내 신시아 레논이 기차를 놓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남편의 짐까지 모두 들고 뒤처져 따라가다가 가까스로 승강장에 도착했을 때, 경찰들이 그녀의 길을 막아서서 옆으로 밀어냈다. 홀로 남겨진 신시아 레논은 도와달라고 절규했고, 이미 기차에 타고 있었던 존 레논은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외쳤다.  

"그 사람한테 들여보내 달라고 해. 당신이 우리 일행이라고 말해."

하지만 결국 신시아 레논은 일행 중 유일하게 기차에 타지 못했다. 이때 기자와 카메라맨이 몰려들어 플래시를 터뜨리면서 이 장면은 온갖 기록 필름에 고스란히 남았다. 신시아 레논은 기차역에 그대로 서서 참담함과 창피함으로 눈물을 쏟았다. 이에 배웅차 왔던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조수 피터 브라운이 뱅거까지 차로 데려다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녀를 위로했다. 그의 도움으로 로드 매니저 닐 애스피널의 차를 타고 뱅거까지 갈 수 있었지만, 이날 기차를 놓쳤을 때 신시아 레논은 남편 존 레논과의 이별을 직감했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흐릿한 거리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것이 내 미래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알았습니다. 그 역 승강장에서 느꼈던 외로움은 머지않아 영원한 외로움이 될 것입니다." (신시아 레논)

세 시간의 기차여행

신시아 레논이 결혼생활의 마감을 예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이, 그녀를 제외한 나머지 비틀스 일행은 일명 '미스티컬 스페셜' 열차의 일등석 칸에 앉아 세 시간 동안의 기차여행을 시작했다. 

기차에 함께 올라탄 일행 중에는 롤링 스톤스의 리더 믹 재거와 그의 여자친구이자 가수 겸 배우 마리안느 페이스풀, 리버풀 출신의 동료 가수 실라 블랙, 조지 해리슨의 처제 제니 보이드, 그리고 비틀스 공인 전기 작가 헌터 데이비스도 있었다. 당시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는 최대의 라이벌이었지만 사적으로는 친분이 두터웠고 상대방을 끊임없이 염탐하면서 서로의 관심사를 공유했다. 뱅거에서의 명상 세미나가 마음에 들었는지 믹 재거는 브라이언 존스 등 동료 뮤지션과 함께 이후에도 여러 번 마하리시의 강연에 참석했다. 

기차가 출발한 이후 비틀스는 짐을 도난당할까 봐 화장실도 가지 않고 좌석에 앉아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룹은 용기를 내어 다른 일등석 칸에 있던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를 보러 갔다. 마하리시는 제자들이 깔아놓은 하얀 시트 위에 가부좌로 앉아있었다. 그는 초월 명상을 창시한 영적 스승이었지만 엄숙하지 않고 항상 웃는 얼굴에 밝은 분위기였다. 거기에 비틀스는 안도감을 느끼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기차 안에서 비틀스와 마하리시는 온화하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마치 친구들처럼 수다를 떨었다. 이어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는 초월 명상에 관해 비틀스에게 간단하고 쉽게 설명했다. 

"초월명상은 그저 빠르고 쉽게 영적인 상태에 도달하는 방법입니다. 이 명상은 한 번 배운 뒤 아침마다 30분 동안만 연습하면 됩니다. 하루에 그걸로 충분합니다. 은행에 비유해보겠습니다. 은행이 있으면 여러분은 돈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고 원하는 만큼 얻기 위해 가끔 방문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 말을 들은 존 레논이 질문했다. 

"만약 욕심이 생겨서 점심 이후에 30분 명상을 더 하고 차 마시고 30분 명상을 더 한다면 어떻게 되죠?"

실제 존 레논의 명상 욕심이 반영된 이 말에 마하리시를 포함해 모두가 활짝 웃었다. 이렇게 대화를 이어가다가 보니 어느덧 뱅거 역에 도착할 무렵이 되었다. 뱅거 역에는 이미 소식을 듣고 수많은 팬과 기자, 카메라맨이 몰려와 비틀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팬들과 미디어의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았던 멤버들은 뱅거 다음 역에 내려 택시를 타고 뱅거까지 가려고 했다. 하지만 마하리시가 자기 곁에 가까이 있으라고 해 결국 모두 뱅거 역에서 내렸다. 

명상 세미나 장소였던 뱅거 노멀 컬리지는 여름 방학을 맞아 비어 있던 실제 기숙학교였고, 이날 비틀스는 초월명상 과정에 등록한 다른 참가자 300여 명과 똑같이 2층 침대가 놓인 기숙사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비틀스의 뱅거행이 불과 하루 전에 갑자기 결정된 일이라서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는 비틀스가 묵을 숙소를 마련할 수 없었다. 비틀스는 하룻밤 숙박과 다음 날 아침식사가 포함된 숙박비 1.5파운드를 내고 기숙사 방을 썼다. 그간 호텔 스위트룸만 썼던 록 스타가 묵기에는 다소 형편없는 숙소였지만, 배움에 대한 열의가 있었기에 비틀스는 불편함을 개의치 않아 했다. 

비틀스는 명상을 배우러 모인 사람을 만나고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진동을 느꼈다. 조지 해리슨이 말한다. 

"처음 뱅거에 갔을 때 우리는 모든 명상가를 만났고 그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평화와 행복을 발산할 수 있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명상을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진동이 발생하고 이는 다른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진동이 클수록 더 많은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더 많은 사람이 그것을 믿게 될 것입니다." 

내면의 여정 시작한 비틀스
 
 1966년 비틀스 맴버 존 레논(가운데), 조지 해리슨(맨 왼쪽), 링고스타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1966년 비틀스 맴버 존 레논(가운데), 조지 해리슨(맨 왼쪽), 링고스타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 연합뉴스

 
다음날인 8월 26일 비틀스는 초월 명상에 입문했다. 인도의 남성 전통의상인 쿠르타로 옷을 갈아입은 이들은 먼저 입문 강연을 듣고 난 뒤, 한 사람씩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의 방에 들어가 그에게 꽃을 공물로 바치고 각자 개인 만트라를 받았다. 인도의 베다 전통에 따르면, 이로써 그룹은 사실상 마하리시와 사제관계가 된 것이고, 앞으로 아침저녁으로 20분씩 이 만트라를 구송하면서 내면의 여정을 시작할 것이었다.

이후 삶의 전환점이 된 이날에 대해 링고 스타는 "(이때) 처음으로 우리는 동양 철학에 빠져들게 됐어요. 그리고 그건 새로운 돌파구가 되었죠"라고 소감을 밝혔다.  

입문식이 끝난 뒤 비틀스는 기자회견을 열고 약물을 끊었다고 발표했다. 그것은 단순히 약물 복용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측면에서 더 나아가기 위함이었다.

"영원히 약물을 복용할 수는 없어요. 우리는 좀 더 자연스러운 걸 원했어요. 이거다 싶은 거요. 그건 우리에겐 하나의 경험이었죠. 이제 다 끝난 일이고 우린 더 이상 그걸 필요로 하지 않아요. 우리는 그곳에 이르는 다른 길들을 찾고 있다고 생각해요." (폴 매카트니)
 
 1966년 비틀스가 8천여 명의 팬들 앞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1966년 비틀스가 8천여 명의 팬들 앞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 연합뉴스

 
사실 폴 매카트니가 1967년 6월 기자에게 공식적으로 LSD(강력한 환각제)를 복용했다고 시인한 이후 언론과 기성세대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룹 내에서도 갈등이 있었다. 또 일부 멤버는 젊은 세대가 약물복용을 따라 한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자신들의 약물 복용 중단 사실을 공표하는 동시에, 젊은이들에게 명상을 권유한 것이다.  

"명상은 우리로 하여금 인생에 대한 만족감을 찾게 해 주고, 삶을 온전히 살도록 도와주죠. 젊은 사람들은 자신들 안에서 작은 평화라도 찾아 헤매고 있어요." (조지 해리슨)
덧붙이는 글 저서로는 <조지 해리슨: 리버풀에서 갠지스까지>(오픈하우스, 2011), <살림지식총서 255 비틀스>(살림출판사, 200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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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와 조지 해리슨을 좋아하는 비틀스 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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