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일(현지 시각), 제64회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의 수상자를 발표하기 위해 에이브릴 라빈이 등장했다. 방탄소년단의 'Butter'가 후보에 오른 부문이기 때문에 그의 입모양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라빈의 입에서 'Kiss Me More'라는 말이 나왔을 때 짧은 탄식이 나왔다. 스스로 놀랐다. 나도 '아미(방탄소년단의 팬덤)'였던 것일까. 아니면 내셔널리즘(민족주의)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었나.

방탄소년단은 'Butter'로 빌보드 핫 100 차트 10주 1위를 차지했고,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올해 그래미 어워드에서 선보인 모습 역시 수상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첩보 요원의 콘셉트를 빌려 'Butter'를 부르는 모습에서는 슈퍼스타의 위용이, 진행자 트레버 노아와 나누는 대화에서는 여유가 묻어났다. 어느 때보다 수상 가능성이 높아 보였던 상황이라, 한국인들이 느끼는 아쉬움은 더욱 컸다.

수상 실패는 아쉽지만, '실패'는 아니다
 
그래미 시상식 도착한 BTS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3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제64회 그래미 시상식에 도착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방탄소년단 공식 트위터 캡처)

▲ 그래미 시상식 도착한 BTS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3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제64회 그래미 시상식에 도착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방탄소년단 공식 트위터 캡처) ⓒ 연합뉴스

 
누군가는 '그래미 어워드가 흥행을 위해 방탄소년단이 이용한다'고 말한다. 최고의 대우를 해 주는 듯 '희망 고문'을 하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마다 외면한다는 것이다. 특히 2021년 그래미 어워드에서는 방탄소년단의 'Dynamite' 무대를 후반부에 배치해놓고, 끊임없이 중간 광고로 홍보했지만 정작 상은 레이디 가가와 아리아나 그란데의 'Rain On Me'에 돌아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그래미는 '시청률을 위해 방탄소년단의 팬을 인질로 잡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현시점 팝 최고의 슈퍼스타인 방탄소년단을 앞자리에 배치하고, 얼굴마담 격으로 쓴 것은 방송사인 CBS나 주최, 행사 기획 측의 입장에서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우가 곧 수상을 예약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방탄소년단이 후보 중 가장 높은 차트 성적을 거뒀는데 왜 상을 받지 못하느냐는 여론도 있다. 하지만 시상을 결정하는 것은 차트 성적도, 참석 여부도, 화제성도 아니다. 레코딩 아카데미(Recording Academy)를 구성하는 만 이천여 명의 뮤지션과 음악 산업 관계자들이다. 그러니까 빌보드 앨범 차트 86위에 그친 재즈, 소울 뮤지션 존 바티스트의 < We Are >도 올해의 앨범상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모두에게 동등한 수상의 자격이 있다. 'Kiss Me More'로 올해 그래미 팝/듀오 그룹 퍼포먼스 상을 받은 도자캣(Doja Cat)과 시저(SZA)도 그렇다. (방탄소년단의 뷔 역시 팬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도자의 노래가 좋았다. 깔끔했다'고 말했다. 동시에 '나는 울었다'며 위트있게 아쉬움을 드러냈지만.) 수상 결과가 아시안 팝 스타에 대한 차별이라는 결론은 섣부르며, 근거 역시 희박하다. 수상 실패 자체는 보이콧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 (실크 소닉 등 다른 뮤지션의 수상을 기쁘게 축하하는 제이홉의 모습을 보면, 앞으로도 그들이 시상식을 보이콧할 것 같지 않다.)

수상 불발? 슈퍼스타에 흔들림 없다
 
그래미 시상식 참석한 BTS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3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제64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빅히트뮤직 제공)

▲ 그래미 시상식 참석한 BTS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3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제64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빅히트뮤직 제공) ⓒ 연합뉴스

 
그래미 어워드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니, 누군가에게는 아쉬운 결과가 생기기 마련이다. 지난해 < Justice >를 발표한 저스틴 비버는 음악적 성장과 함께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지만 무관으로 돌아갔다. 케이티 페리는 < Teenage Dream >(2010)에서 5개의 차트 1위 싱글을 배출하고도 트로피는 0개였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팝스타인 마돈나는 전성기인 1980년대에는 그래미상을 받지 못했고, 1999년 < Ray Of Light > 앨범으로 첫 그래미상을 받았다. 본 조비 역시 LA 메탈의 최전성기인 1980년으로부터 한참 지난 2007년이 되어서야 첫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방탄소년단 이전에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보이 밴드 원 디렉션 역시 단 한번도 그래미 후보에 오른 적이 없다. 칸예 웨스트와 프랭크 오션, 켄드릭 라마, 위켄드 등 2010년대 대중음악을 정의한 이들도 역사적 가치만큼의 평가를 그래미로부터 받지 못 했다. 그렇다고 이 아티스트들의 가치가 절하될 수는 없다. 방탄소년단 역시 마찬가지다.

제64회 그래미 어워드가 끝난 이후, '수상 불발'이라는 헤드라인이 뉴스를 뒤엎었다. 수상하면 '쾌거'나 '위업'이 되고, 수상하지 못하면 '수상 불발', '로컬 잔치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예상할 수 있었던 풍경이다.

그래미 시상식을 마친 직후 진행된 브이 라이브에서 방탄소년단의 슈가는 "노미네이트된 것도 두 번째다. 슬퍼할 일이 아니고 대단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제 시작이다. 주요 부문인 '제너럴 필드(General Field)' 후보 지명이라는 목표 역시 남아 있다. 오늘날의 방탄소년단의 위치를 잘 보여주는 것은 '수상 불발'이 아니라 라스베이거스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공연이다. 그들은 더는 동양에서 온 손님도, 피해자 서사의 주인공도 아니며, 메이저 팝 산업의 가장 화려한 일원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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